의(義)를 重要한 德目으로 배운 儒生(儒生)들을 中心으로 나라의 數値에 報復하고, 빼앗긴 國權을 되찾기 위해 목숨 건 抗日義兵이 始作되었던 楊平.
韓末 日本의 侵奪에 거센 抵抗을 보여준 人物들이 楊平에서 적지 않게 輩出된 데에는 그 밑바탕에 透徹한 醫師像을 일깨우고 發現하게 한 精神的·地理的 條件이 있었다.
衛正斥邪思想(衛正斥邪思想)으로
外勢에 맞선 李杭魯
楊平을 代表하는 人物 화서 李恒老에 依해 定立된 衛正斥邪思想을 통해 楊平人들의 머릿속에 國防意識이 자리 잡게 되었다.
1895年 明成皇后弑害事件과 斷髮令 恐怖에 對한 反撥로 地平에서 義兵을 倡義한 것도 화서學派의 儒林들이었다.
화서學派는 日帝와 非妥協的으로 日帝强占期에는 滿洲地域 抗日獨立運動, 上海臨時政府, 光復軍을 이끌었다.
화서學派에서 獨立有功 敍勳을 받은 사람이 233名이고, 103名이 殉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