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世上에 살면서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생각의 差異 때문이다.” ―조세희, ‘칼날’ 中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聯作 곳곳의 날카로운 文章들과 比較하면 ‘칼날’의 위 文章은 심심해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생각의 差異가 存在하며, 그러므로 서로를 尊重해야 한다는 倫理를 우리는 初等學校에서부터 배운다. 다만 어른이 되면 ‘尊重’이란, 많은 境遇 ‘그냥 말을 말자’에 머물고 만다. 인터넷에서 어떤 主張을 펼친 後 스스로 ‘反駁 不可’라는 말을 덧붙이는 流行이 있었다. 요즘은 아예 ‘反駁 詩 네 말 맞음’이라고 덧붙이는 境遇가 있다. ‘於此彼 말이 안 통할 텐데 너는 그냥 네가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回避다. 그러나 이런 流行의 뒷맛이 찝찝한 理由는 나는 如前히 우리가 ‘같은 世上’에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現實 世界에서 산뜻한 個人主義를 固守하려면 넉넉한 돈과 時間이 必要하다. 그 資源이 모두에게 公平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平凡한 사람이라면 權利와 義務를 두고 다툴 수밖에 없다. ‘생각의 差異’를 서둘러 認定하고 對話를 省略한다면 그 뒤에는 무엇이 올까. 말이 안 통하면 주먹을 쓰고 싶지 않을까. 或은 單 1%라도 더 得票해서 相對를 制壓하는 方法도 있다. 때때로 ‘節次的 正當性’이란 民主主義 社會에서 주먹에 붙이는 예쁘장한 이름 같다.
그러니 나는 생각을 充分히 하지 않거나 말을 제대로 섞지 않고서 ‘생각의 差異’라는 安樂한 말로 逃亡치는 習慣을 버리려 한다. 反駁 歡迎. 疲勞와 幻滅 끝에 決코 좁힐 수 없는 間隙과 마주할 수도 있지만, 意外로 間隙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事實을 發見할지도 모른다. ‘칼날’에서 信愛는 난장이 아저씨에게 말한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便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