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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適當한 失禮’로 마음의 기지개를 켜봐요” 天賦的인 才談꾼 量多率 作家|여성동아

PEOPLE

“‘適當한 失禮’로 마음의 기지개를 켜봐요” 天賦的인 才談꾼 量多率 作家

문영훈 記者

2024. 04. 30

敎訓을 傳達하는 冊은 많지만 品格 있는 웃음을 주는 冊은 드물다. 그래서 量多率은 稀貴한 作家다. 

천부적인 재담꾼, 양다솔 작가가 꿈 없이도 사는 법

天賦的인 才談꾼, 量多率 作家가 꿈 없이도 사는 法

構內食堂에서 팟캐스트 ‘조용한 生活’을 듣다가 숨죽여 웃었다. 量多率(30) 作家가 ‘弄談하는 立場’이라는 코너를 進行 中이다. 스탠드업이 아닌 시티드(seated) 코미디다. 그는 10年을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망원동을 떠나 忠北 槐山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女子의 立場’ ‘시골 사는 靑年의 立場’ ‘茶道 하는 立場’(별 5個)같이 웃음과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處地에서 빙긋 微笑를 끄집어낸다. 그는 하루는 槐山에서 親舊들과 노래房을 찾아 헤맸는데, 맵에 檢索하면 열 곳 中 세 곳은 廢業, 여섯 곳은 業種이 달라 보이는 殊常한 데, 겨우 찾은 한 곳이 노래房이었다. 甚至於 “아가씨 必要해요?”를 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가씬데 아가씨가 있어서 뭐 하겠어요? 勿論 그분들과 만나면 즐겁겠지만요.”

그의 말은 천연덕스럽지만 肺腑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拍掌大笑를 하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適當한 失禮’는 線을 넘는 이야기가 담긴 그의 세 番째 冊이다. 民弊와 無禮의 境界를 사뿐히 넘나들며 페이소스를 토핑으로 얹었다. 그가 傳達하는 웃음처럼 人間 量多率의 軌跡은 銓衡에서 벗어난다. 中學校를 그만뒀고, 2年間 절에서 行者로 지내기도 했다. “꿈 같은 건 없었지만 그동안 못 한 工夫를 했다”고 記憶하는 大學 時節을 마치고 硏究所 事務職, 出版社 企劃者, 市民 團體에서 일했다. “서로에게 民弊”라 일을 그만둔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活動했고, 글房을 運營한다. 좋아하는 게 하루에 10個씩 쏟아져서 배운 것도 많다. 그는 보이茶와 비건 料理, 돌寢臺를 좋아한다. 只今까지 그라피티, 댄스, 판소리, 주짓수를 배웠고 最近엔 복싱을 始作했다. 그의 하루는 48時間이기라도 한 것인가. 되고 싶은 건 없지만 오늘에 精誠을 다하는 態度, 效率을 最上의 價値로 두는 現代 社會를 거스르는 삶이다.

4月 3日 만난 양 作家는 “無用한 일이 가장 즐거운데, 最高峯은 글쓰기”라며 “글을 쓰면서 돈을 벌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세 卷의 冊을 내고 나니 이제는 이걸 繼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글쓰기 小商工人’이라고 定義하는 그와의 對話.

作家의 誕生, 어딘 글房

양다솔 작가는 글방지기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열혈 우정인이자 생활 다도인이다.

量多率 作家는 글房知己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熱血 우정인이자 生活 多道人이다.

職業이 다양한데, 近況이 궁금합니다.
新刊을 내고 弘報하러 많이 다녔고요. 그前에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旅行도 다녀왔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러 갈 準備도 하고 있고요. 上半期는 全혀 가지 않았던 곳을 旅行하는 期間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試圖를 많이 하는 便인가요.
살맛이 나야 글 쓸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요. 예전에 關心이 없던 걸 해보고 안 가본 곳에 가보려고 하고 있어요. 窓門을 열어둔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어둔 窓門으로 豫想치 않은 게 들어와 삶이 다른 局面으로 흘러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勿論 꼭 글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고요.

기지개 켜기, 물구나무서기, 까치발 들기, 콧노래 부르기로 이어지는 冊 ‘適當한 失禮’의 小題目이 印象的입니다.
‘適當한 失禮’는 偏見 같은 定해진 線을 넘는 態度에 關한 이야기예요. 相對方이 웃으면 弄談이 되고, 正色하면 失禮가 되는 것 같은 거죠. 그래서 緊張을 내려놓고 어깨에 힘을 푸는 行動, 마음이 便할 때 하는 行動을 小題目으로 붙이고 싶었어요. 表現도 재밌지 않나요. 스위치도 아니고 기지개를 ‘켠다니’.

어떤 글이 기지개를 켜고, 어떤 글은 거꾸로 서나요? 쓴 글을 配列한 過程이 궁금합니다.
쓴 글을 모아보니 아이들이 正말 많은 班 先生님이 된 것 같았어요. 제各各 性格이 달랐죠. 그래서 좀 잘 지낼 것 같은 아이들끼리 모아야 葛藤이 없을 것 같았어요. 글들을 다 프린트해서 한 篇씩 묶은 다음에 다 펼쳐두고 ‘너 여기로 가, 너 저기로 가’ 하는 式이었습니다.

글감은 어떻게 定하나요.
겪은 일을 말로 傳하는 걸로는 解消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슬프다, 기쁘다같이 하나로 定義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分明히 슬픈데 同時에 기쁜 구석이 있고, 웃긴 事件인데 슬프기도 하고, 宏壯히 矛盾的이면서 다양한 게 뭉쳐져 있고, 한마디로 定義할 수 없는 일일 때 關心이 가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사는 게 재밌다, 좋다 이렇게 퉁値機가 漸漸 어려워지잖아요. 이 事件이 나에게 重要한 만큼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도 重要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씁니다.

連結되는 感覺이네요.
때로는 옆에 있는 親한 親舊보다 나를 全혀 모르는, 멀리 있는 사람이 저와 더 共感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글 안에서 만나는 거죠.

量 作家가 글에서 他人과 만나는 感覺을 느낀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當時 中學校를 自退하고 料理, 힙합, 그라피티를 배우는 等 스스로 時間表를 만들었다. ‘어딘 글房’은 一週日에 한 番 있는 國語 時間 같은 것이었다. 多樣한 授業에서 만난 사람 中 글房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꾸준히 出席했다. 어딘 글房은 10年 後 有名해지는데, 兩 作家뿐 아니라 ‘日刊 이슬아’의 그 이슬아, 農人 父母와의 經驗을 映畫로 만든 이길보라 監督, ‘미쳐있고 怪常하며 傲慢하고 똑똑한 女子들’을 쓴 하미나 作家가 같은 글房 出身이다.

當時 글房은 어떤 雰圍氣였나요.
느슨한 共同體 形態였는데요. 一週日에 한 番 열리는데, 글을 쓴 사람만 出席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떨 땐 2名이, 다른 週엔 11名이 앉아 있기도 했죠.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쓴 글을 읽고, 글에 關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게 끝이에요.

作家 量多率에게 어떤 影響을 줬나요.
‘글에는 起承轉結이 있어야 한다’ 같은 글쓰기 스킬을 알려주는 空間은 아니었어요. 다만 저를 오래 봐온 사람들에게 글에 對한 꾸준한 피드백을 받았죠. 저는 讀書가, 쓰는 사람이 班걸음 가고 讀者가 班걸음 오면 만들어지는 空間이라고 생각하거든요. 旣成 作家도 讀者들에게 能動的인 피드백을 받는 境遇는 別로 없어요. 혼자 글을 쓰면 내 立場에서 말하는 데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요. 제게 글房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에게 어떻게 傳達되는가를 繼續 實驗하는 곳이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靑少年이었군요.
외동딸이었고 어릴 때 親舊가 많은 便은 아니어서 할 말이 늘 쌓여 있었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었죠. 비슷한 經驗과 苦悶을 하는 또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글만 써가면 글房에서 그 이야기를 다 들어줬으니까요.

글房 學生에서 글房 運營者가 됐습니다.
글房 共同體를 運營하는 일이 只今까지 살면서 해본 일 中에 第一 재미있어요. 글房에서 저는 言語를 갈고닦을 수 있는 雰圍氣를 몸에 새겼거든요. 그걸 글房 사람들에게 再現해주고 싶어요.

글房은 어떤 效驗이 있나요.
글房은 作家 志望生이 아니라 地域 거버넌스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時代 사람들이 겪는 問題 中 하나가 疏通이라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SNS가 이렇게 活潑한데요.
SNS만 보면 모든 사람이 다 잘 살고 苦悶도 없어 보이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하면 슬픈 이야기만 나와요. 事實 누구나 異常한 部分을 갖고 있고, 모두가 말하고 싶어 하는데 그럴 만한 空間이 없어요. 내 이야기를 갈고닦아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場所가 글房이에요. ‘나와 같은 苦悶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가 모르는 世上이 있구나, 事實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죠.

親舊를 만나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만난 親舊나 職場 同僚라도 그 사람의 글을 한 篇 읽는 經驗은 次元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걸 알게 되죠.

冊 ‘適當한 失禮’에 실린 ‘正말 異常하네요’라는 題目의 글이 그 事例다. 量 作家는 江南 8學群에 있는 한 男子 高等學校로부터 글쓰기와 讀書의 重要性에 對한 講義를 付託받는다. 李公 系列을 志望하는 男高生 400名 앞에서의 글쓰기 講演. 그는 講演 末尾에 “自身의 가장 異常한 點을 세 줄만 써주세요. 아직 깨어 있다면, 5分 동안 아무거나 써주세요”라고 付託한다. 그리고 到着한 글들.

“나의 가장 異常한 點은 懶怠함이다. 分明 1時間 前에 宿題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다.”

“그냥 나라는 存在가 第一 異常하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남에게 털어놓기 부끄럽지만 眞率한 이야기가 凝縮된 글은 말과 全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量 作家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글은 自身의 삶을 主體的으로 解釋하고 내러티브를 갖게 해줘요. 自己가 어떤 式으로 흘러왔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을 對하는 態度가 달라요. 그래서 글쓰기는 自身에게 좋은데, 글房에서 이를 共有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影響을 줘요. 쓰는 試圖를 꾸준히 하면서 變化를 느낄 수 있는 空間을 運營하는 게 저의 第一 큰 기쁨입니다.”

나로부터 出發하는 코미디

글도, 코미디도 自身의 經驗을 率直하게 풀어내는데, 自己檢閱과 부딪히진 않나요.
제 이야기가 특별한 게 아니기에 率直하게 써야 글이 특별해져요. 아무리 赤裸裸한 이야기를 쓰더라도 삶이라는 건 繼續 變化하고 저라는 사람도 繼續 달라져서 그 글 안에 完璧히 내가 있다고 하긴 어려워요.

過去의 나를 正確히 剝製해두려는 努力이네요. 코미디도 그 一環인가요.
저는 말이 많은 便인데 親舊들이 漸漸 바빠지면서 더 以上 이야기를 들어줄 時間이 없어졌죠. 親舊들이 舞臺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코미디 모임에 저를 아웃소싱韓 거죠. 그래서 가봤는데 모임 사람들이 재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슬펐죠. 그래서 ‘아, 내가 眞짜 재밌는 게 뭔지 보여줘야겠다’ 생각해서 하다 보니 제 中心으로 돌아가는 코미디 모임이 돼 버렸습니다.

웃기는 사람이라는 건 언제 알았나요.
알고 보니 周邊에 있는 사람들이 作家 아니면 詩人이더라고요. 그런 애들이 뭐가 웃기겠어요. 그러니까 相對的으로 웃긴 사람일 뿐이었죠. 저는 코미디를 하면서 弄談을 만드는 일이 너무 複雜하고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領域이 있다고 생각해서 試圖를 繼續해볼 생각이지만 自身은 없습니다.

어떤 領域인가요.
元來 웃긴 걸로 웃게 하는 건 꽃이 피는 것처럼 當然한 일이라 쉽다고 생각해요. 웃기지 않은 걸로 웃기는 것이 어려운 作業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本人의 立場에서 始作해야 한다고 여겨지거든요. 남의 人生을 材料로 使用해서 까내리는 것보다 내 삶에 存在하는 悲劇이나 따분해서 注目하지 않는 問題 같은 걸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偏見을 깨는 作業인가요.
저도 많은 偏見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그게 깨지는 瞬間이 正말 좋아요. 反轉 魅力이랄까요. 그러면 ‘내가 또 사람을 납작하게 靜物처럼 봤구나’ 싶은 거죠. 사람은 繼續 움직이잖아요. 그런 經驗을 할 때가 즐겁고, 그걸 主로 쓰는 것 같습니다. 모두 어떤 式으로든 矛盾을 갖고 있잖아요.

量 作家는 ‘빌린 傳貰保證金을 갚아야 해서 다닌 會社’ ‘管종이 될 수밖에 없는 비건’ ‘노상 放尿를 하는 아저씨를 目擊한 初等學校 女學生’ 같은 素材를 選擇한 뒤 期於이 喜劇에 到達한다. 그냥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만으로 族해도 될 텐데, 空中을 세 바퀴 도는 妙技를 선보이고 着地 때 삐끗하는 것. 그게 그가 選擇한 코미디의 方式이다.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周邊에 잘난 親舊들이 많거든요.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 요즘 苦悶 없냐고 물어봐요. 없는 사람이 없어요. 부럽다는 感覺은 眞正한 疏通이 안 되기에 느끼는 거죠. 그만큼 디테일이 안 보이는 距離를 維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成功하고 싶어 하는 時代입니다.
各自의 삶이 있는 거죠. 저와 같이 글을 쓴 親舊 中에 冊을 낸 親舊도 있고 그렇지 않은 親舊도 있어요. 冊을 내지 않은 親舊 中에도 글 잘 쓰는 親舊가 많거든요. 各自의 速度가 있는 건데 사람들은 섣불리 한 面만 보고 나보다 成功이다, 失敗다 생각하는 거죠. 勿論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電話를 합니다. 그러면 알게 되죠. ‘敢히 내가 내 삶과 저 사람의 삶을 比較하려고 했구나.’

量多솔로 사는 건 幸福할 것 같습니다.
量多솔로 산다는 건, 언제든지 辭職書를 내고 싶은 일입니다. 于先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하고요. 살기 위해서 다양한 일을 하는 겁니다. 每番 저를 救助하는 거죠. 제게 ‘어떻게 하면 다음 週까지 살아볼래? 어떻게 하면 來年까지 살아볼래?’ 물어보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來日의 門을 여는 것뿐이기도 하고요.

정성스럽게 산다는 印象을 주는데요.
그건 悲觀에서 오는 건데요. 제가 너무 否定的이기 때문에 삶의 要素가 제게 影響을 주지 못하도록 事前에 遮斷하는 겁니다. 騷音이 들린다거나, 집이 너무 어질러져 있다거나,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면 當場 ‘아 그냥 살지 말까?’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링거를 꽂듯 맛있는 밥을 해 먹고, 집을 아늑한 空間으로 만들고, 茶를 憂慮 마시는 거죠.

不安이 있나요.
經濟的으로는 먹을 걸 살 돈이 없을 程度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알바를 하든, 新聞을 돌리든 어떤 式으로든 돈을 벌었습니다. 勿論 어른이 되고 나서 10年 동안 經濟的으로 不安했지만 이젠 그 不安을 덜 느끼려고 해요. 요즘 不安한 건, 어릴 땐 하고 싶은 일이 正말 많았는데 只今은 해보기도 前에 判斷하는 게 많아진다는 거예요. ‘저건 나랑 안 맞아, 굳이 저것까지 해야 하나’ 같은 式으로요.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하루에 10個씩 생겼거든요. 그래서 ‘나는 못 할 거야’ 지레 겁먹지 않고 ‘그냥 해보자’ 하는 마음이 찾아오면 그 瞬間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巨視的인 計劃은 세우지 않는 便인가요.
當場을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그래도 이런 式으로 하루하루 熱心히 찾아보면 나중에는 좀 재밌는 걸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只今도 充分히 재밌는 글을 쓰지 않나요.
率直히 말하면 아직 제 글을 읽어야 할 必要는 없다고 생각해요. 事實 재밌는 건 글 말고도 많잖아요. 그래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더 感謝합니다. 읽을 必要가 있는 冊, 意味가 있는 冊을 쓰고 싶긴 한데 欲心이겠죠. 冊을 읽으면서 내가 보는 世界가 달라지고, 내 삶을 보는 方式이 달라질 수 있는 텍스트를 언젠가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量多率 #適當韓實例 #여성동아

寫眞 지호영 記者 
寫眞出處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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