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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强占期부터 유튜브 時代까지 ‘여성동아’ 90年 歷史|여성동아

CULTURE

日帝强占期부터 유튜브 時代까지 ‘여성동아’ 90年 歷史

문영훈 記者

2023. 10. 26

‘여성동아’가 創刊 90周年을 맞았다. 1933年 ‘新家庭’의 誕生부터 女性誌로서 頂點에 오르기까지, ‘여성동아’의 華麗한 歷史를 整理했다. 

1932年 가을, 現在 일민미술관이 된 동아일보 社屋 3層 調査部 書庫에서 이은상·김자혜 記者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當時 송진우 동아일보 社長이 女性 啓蒙을 위한 ‘新家庭’ 創刊을 指示했기 때문이다. 李殷相은 追後 이를 “風雨를 뚫고 가는 强行軍”이었다고 描寫한다.

“‘新家庭’을 내기 위해서 거기에 매달린 사람은 나와 女記者 한 사람뿐! 許諾된 定員은 두 사람이었던 것인데….”(1967년 11月 ‘여성동아’ 復刊號 中)

드디어 1933年 1月 ‘여성동아’의 前身이자 90年 歷史의 始作點이 된 ‘新家庭’이 世上에 나왔다. 女性 讀者를 考慮해 題目만 國漢文을 섞어 쓰고 記事는 모두 純 한글로 製作했다. 初代 編輯長 李殷相은 “限定된 筆陣에 原稿 蒐集까지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新家庭’에는 啓蒙에 焦點을 맞춘 雜誌답게 當時의 世界情勢, 三國時代의 女流文學, 東西洋의 主要 女性 人物을 整理한 記事 等 다채로운 內容의 글이 실렸다. 李泰俊의 小說, 피천득의 隨筆, 兒童文學家 윤석중의 同時, 玄濟明의 音樂 칼럼 等 當代 作家들도 ‘新家庭’의 한 대목을 차지했다.

‘新家庭’은 每달 讀者들에게 새로운 情報를 傳達하면서 主婦들을 위해 料理, 뜨개질, 한글 綴字法 等 多樣한 講演을 열었다. 野遊會, 밤 줍기 大會 等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어 當時 主婦들에게 만남의 場을 提供하기도 했다. 日帝强占期 女性들에게 知識은 勿論 커뮤니티 役割을 했던 ‘新家庭’은 베를린 日章旗 抹消 事件으로 인한 日帝의 彈壓으로 1936年 9月, 45卷의 冊을 끝으로 歷史 속으로 사라진다.

復刊 첫 特輯技師는 ‘쓰개치마 벗고 60年’

‘여성동아’ 복간호에 실린 특집 기사.

‘여성동아’ 復刊號에 실린 特輯 記事.

‘新家庭’은 1967年 11月 ‘여성동아’로 이름을 바꿔 復刊했다. 廢刊된 지 31年 만이다. ‘여성동아’ 復刊號에서는 ‘쓰개치마 벗고 60年’이라는 特輯 企劃이 마련됐다. 韓國 近代史에서 女性 權利의 發展 過程에 對해 敍述한 記事, 新女性 時代의 굵직한 戀愛史를 整理한 記事, 韓國 女性의 未來像을 提示한 記事 等 다양한 種類의 글이 特輯으로 묶였다. 男女 不平等을 象徵하는 儒敎 用語, 男尊女卑(男尊女卑)를 비틀어 ‘世上은 元來 女尊男卑’라는 破格的인 題目의 칼럼도 確認할 수 있다.



그 外에 交通事故의 危險을 警告하는 內容이나 男便을 今週시키는 方法, 웨딩드레스를 집에서 만드는 法 等 女性의 삶에 直接的으로 도움이 될 情報性 記事도 보인다. 文化主義를 提唱한 ‘東亞日報’와 ‘新家庭’의 뜻을 이어 文化와 關聯된 事業에도 힘썼다. ‘여성동아’ 復刊號에는 박경리의 短篇 ‘겨울비’가 실렸으며 復刊 이듬해부터 ‘女流 長篇小說 公募’를 始作한다.

‘여성동아’ 女流 長篇小說 公募를 통해 韓國 文壇의 巨木 박완서가 登壇한다. 그의 데뷔作 ‘羅牧’은 ‘여성동아’ 1970年 11月號 別冊 附錄으로 發刊됐다. 新人 作家 登壇 所感을 들어보자.

“좋은 글을 쓰고 싶다. 繼續 좋은 主婦이고 싶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악착같은 執着을 느낀다. 나는 내 이 無謀한 貪慾을 위해 조금 더 고단해야겠고 좀 더 瘦瘠해져야 할까 보다.”

2010年代까지 이어진 女流 長篇小說 公募를 통해 남지심(1980), 이남희(1986) 等의 作家가 文壇에 登場했다.

‘여성동아’ 復刊 10年을 記念해 나온 1977年 11月號에는 그동안 달라진 韓國人의 生活 패턴에 對한 記事가 실렸다. 1970年代는 政治的으로 10月維新이 宣布되는 嚴酷한 時節이었지만, 漢江의 奇跡이라 불리는 經濟開發이 活潑히 이뤄지는 時期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파아트(아파트) 團地 造成과 아파아트 生活圈이 設立되었고 이에 따라 室內 構造, 生活樣式에 커다란 變化가 隨伴됐다. (中略) 同時에 10年 동안 富益富 貧益貧 現象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少數 財閥은 엄청난 富를 蓄積한 데 反해 大多數 國民은 僅僅이 살아나간다.”

復刊 10周年 特輯記事 外에도 마리아 칼라스의 悲劇的인 죽음과 그의 一生에 對한 記事, 탤런트 최불암 어머니와의 인터뷰 等 많은 女性의 耳目을 끌 만한 消息을 실었다.

“新年이면 家計簿를 救하기 위해 女性 雜誌를 사는 主婦들이 부쩍 늘어난다. 그래서 女性 雜誌社들은 新年號를 平素의 두 倍, 甚하면 네 倍까지 찍어낸다.”(1979년 12月 14日 東亞日報)

1970年代 附錄으로 發刊되기 始作한 家計簿도 書店에서 ‘여성동아’를 집어 들게 만들었다. 1970年代 當時 女性誌에서 發刊한 家計簿 數字만 100萬 部에 이를 程度였다. ‘여성동아’는 그 熱氣를 主導했다. 家計를 記錄하는 用途를 넘어 料理法, 生活 常識, 電話番號, 記念日 等을 적을 수 있는 다이어리 役割을 하기도 했다. 年末年始를 달궜던 家計簿 烈風은 스마트폰이 本格的으로 普及되기 前인 2000年代까지 이어졌다.

女性 權益 向上에 힘쓴 1980年代

‘여성동아’ 1997년 11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

‘여성동아’ 1997年 11月號에 실린 인터뷰 記事.

‘여성동아’ 1987年 11月號에 이르면 많은 變化를 體感할 수 있다. 于先 表紙가 크게 달라졌다. ‘여성동아’는 ‘新家庭’ 創刊號부터 1983年 3月號까지 表紙化를 커버로 使用해왔으나 4月號부터 有名 演藝人의 寫眞으로 바꾸게 된다. 1984年 커버는 俳優 윤영실이 裝飾했다. 冊을 열어보면 10年 前과 달리 가로쓰기를 使用했다는 點도 確認할 수 있다. 1983年 7月號부터 이뤄진 變化다. ‘東亞日報’의 全面 가로쓰기가 1998年부터 施行된 點을 勘案하면 讀者들의 便宜에 맞춰 日帝强占期 純 한글 記事를 執筆하던 ‘新家庭’의 精神이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다.

1980年代 ‘여성동아’는 女性 權益을 增進하는 役割을 도맡았다. 1983年 創刊 50周年 記念 ‘社會 構造에 따른 女性의 役割’을 始作으로 每年 ‘21世紀 女性 敎育’ ‘韓國 社會의 男女 差別 意識’ 等을 主題로 심포지엄 및 討論會를 열었다.

1987年은 政治의 季節이었다. ‘여성동아’도 이에 발맞춰 第13代 大統領選擧에 앞서 ‘1盧 3金’(盧泰愚·김영삼·金大中·김종필)의 家族과 親戚들의 이야기를 特輯으로 構成했다. 以後 ‘여성동아’는 政治人과 퍼스트레이디를 直接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노태우 候補의 夫人 김옥숙 女史(1990), 盧武鉉 大統領의 夫人 권양숙 女史(2003), 李明博 大統領의 夫人 김윤옥 女史(2009) 等이다.

그 外에도 1987年 11月號에는 女性으로서는 두 番째로 司法考試에 首席 合格한 김소영 前 大法官, 拉北됐다 美國으로 逃避한 최은희·申相玉 夫婦 인터뷰 等이 실린다. 속옷, 粉乳, 주스, 無線電話機 等 올 컬러로 된 廣告가 크게 늘어난 點도 1970年代 ‘여성동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變化다.

1990年代·밀레니얼의 ‘여성동아’

‘여성동아’ 2007년 11월호 표지.

‘여성동아’ 2007年 11月號 表紙.

韓國 大衆文化의 黃金期로 불리는 1990年代에 들어서며 ‘여성동아’는 大衆媒體로 한 次元 더 발돋움한다. 1994年 1月號부터 視覺的인 效果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判型을 5x7倍版으로 늘린다. 當時 늘어난 廣告와 뉴스로 紙面은 特大號 基準 700페이지에 達했다. 內容 面에서는 社會的으로 큰 影響力을 發揮하는 女性 人物(三星電子 最初 女性 任員 이현정 常務, 金恩慧 當時 MBC 記者) 等을 두루 涉獵하면서 同時에 演藝人에 特化된 記事를 선보인다. 沈銀河, 고현정, 한석규, 최민수 等 只今도 膾炙되는 톱스타들이 모두 ‘여성동아’ 카메라 앞에 섰다. 그 當時 ‘여성동아’를 살펴보면, 只今은 톱스타가 된 차승원이나 共有가 모델로 活動하던 時節 뷰티 畫報를 찍었던 異色的인 모습도 確認할 수 있다.

2000年代 포털의 到來, 2010年代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時期에 발맞춰 ‘여성동아’ 亦是 紙面의 限界를 넘어 온라인 技士 서비스를 提供하고 유튜브 채널을 開設하는 等 讀者와의 窓口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基調는 2020年代 들어 더욱 剛해졌으며 只今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7年 11月號에 실린 復刊社에서 고재욱 當時 동아일보 社長은 “‘여성동아’는 여러분과 함께 있고 여러분과 함께 前進하는 全體 韓國 女性의 雜誌임을 强調하면서 鞭撻을 바라 마지않는 바이다”라고 밝혔다. 女性과 함께 걷는 雜誌임을 闡明한 ‘여성동아’는 以後 56年間 讀者와 呼吸하며 歷史를 이어오고 있다.

#90周年 #여성동아

寫眞 박해윤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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