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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家族과 이웃에 對한 사랑 至極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여성동아

PEOPLE

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家族과 이웃에 對한 사랑 至極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

우먼東亞日報

2014. 10. 28

김진아가 지난 8月 20日 美國 하와이 自宅에서 숨을 거뒀다. 死因은 硬皮症 後遺症에 依한 癌. 男동생인 俳優 김진근에게 그의 힘겨웠던 鬪病 生活, 남겨진 家族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 지극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

西歐的인 外貌로 1980年代 映畫界를 風靡했던 김진아가 享年 51歲의 나이로 生을 마감했다. 지난해 한 아침 放送을 통해 美國 하와이에서의 幸福한 日常을 公開했던 그였기에 衝擊은 더욱 크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前부터 不治病을 앓아왔다. 過去 放送에서도 “어느 날부터 몸이 너무 아프고 붓기 始作해 檢査를 했더니 免疫力이 거의 떨어졌다는 診斷을 받았다. 健康한 몸으로 回復하기는 거의 不可能한 것 같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산 바 있다. 그로부터 4年 뒤 結局 김진아는 하와이 自宅에서 男便과 家族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偶然인지 몰라도, 美國에서 葬禮를 치르는 동안 平素 自身의 遺骸를 뿌려달라고 付託했던 집 앞 바닷가에 무지개가 세 番이나 떴다고 한다. 마지막 瞬間까지 家族들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했던 故人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0年 美國인 事業家 케빈 오제이 氏와 結婚한 김진아는 2004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生後 11個月 된 매튜를 公開 入養한 以後 오랫동안 聖家庭入養원을 다니며 갓난아기들을 돌보는 奉仕活動을 해왔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 亦是 平素 그가 보여준 남다른 奉仕 精神과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向한 極盡한 사랑 때문이다. 김진아는 過去 本紙와의 인터뷰에서 “只今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많은 膳物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누려야 한다고 믿었기에, 入養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매튜(마태오)라는 이름 또한 ‘하느님의 膳物’이란 뜻”이라고 밝힌 바 있다. 當時 그는 아이를 入養하고 한동안 不安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入養 後 6個月 內에 親父母 側에서 入養取消請求訴訟을 提起하면 아이를 돌려줘야 하는 境遇가 많기 때문이다. 多幸히 그런 일 없이 비로소 매튜를 穩全한 自身의 아들로 삼게 된 김진아는 인터뷰 내내 幸福한 表情으로 매튜와의 運命 같은 사랑을 쏟아놓았었다.
秋夕 連休가 끝나고 이틀 뒤인 9月 12日, 김진아의 동생인 俳優 김진근(44)을 만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故人의 鬪病 過程과 마지막 삶의 記錄을 들었다. 김진근은 映畫俳優 김진규·김보애 夫婦의 아들로 김진아를 包含해 위로 누나가 셋이다. 그의 姨母夫는 이덕화다.


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 지극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

고 김진아의 동생 김진근 氏.


두 달 동안 하와이에서 누나 곁 지켜
2009年 同僚 탤런트 정애연과 結婚한 김진근은 김진아가 世上을 뜨기 두 달 前 아내, 다섯 살배기 아들과 함께 하와이로 건너가 누나와의 마지막 時間을 함께했다. 美國에서 葬禮를 마친 뒤 韓國에서 追慕式 形態의 두 番째 葬禮式을 치르는 동안에도 집안의 代表로 손님을 맞고 모든 일 處理를 도맡아했다. 힘든 時間을 보내고 나서인지 그의 얼굴은 多少 瘦瘠해 보였다.
“家族들의 슬픔이 크지만 妹兄과 매튜만큼이야 하겠어요. 그동안 葬禮式이며 이런저런 일 處理로 제 마음을 돌아볼 餘裕가 없었는데, 妹兄이 다시 하와이로 누나 遺骸를 모셔가고 나니 이제야 實感이 나요. 아직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세요. 特히 잠깐 韓國에 들어와 계실 때 누나가 運命을 달리한 바람에 臨終을 지키지 못하셨거든요. 한便으로는 누나가 그걸 더 願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父母 앞에 두고 먼저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 달 동안 姑母를 옆에서 지켜본 제 아들도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는 ‘姑母는 天使가 돼서 하늘에 있으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하고 慰勞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빨리 기운을 차리시길 바랄 뿐이에요.”
어머니에게 둘째 딸 김진아는 아들처럼 든든한 存在였다고 한다. 父母의 離婚 後에도 김진아는 두 분의 名譽와 自尊心을 지켜드리기 위해 무던히 애썼으며 집안에 問題가 있을 때마다 늘 앞장서서 解決했다고 한다. 김진근은 “누나는 家族에게 큰 나무와 같았다. 우리는 누나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便히 쉴 수 있었지만 정작 自身은 속으로 많이 힘들고 아팠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家族들은 김진아가 硬皮症(皮膚硬化症으로도 불리며 皮膚가 굳어 彈力이 없어지는 病)을 앓고 있다는 事實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김진아가 2年 前 하와이로 移徙하면서 비로소 病의 深刻性을 알게 됐다고. 그 以後에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運動에 邁進하고, 새로운 環境에 잘 適應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家族들은 健康이 좋아질 거란 漠然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苛酷한 運命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結局 지난해 9月 硬皮症의 後遺症으로 온몸에 腫瘍이 퍼졌다는 事實을 알게 됐고, 10回에 걸쳐 抗癌 治療도 받았지만 免疫力이 바닥인 狀態에서 오래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6月에 하와이에 到着하자 妹兄이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고요. 누나 狀態가 많이 안 좋아졌으니 마음의 準備를 하는 게 좋겠다고요. 病院에 누워 있는 누나를 봤는데 넉 달 前에 봤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어요. 鎭痛劑에 醉해 精神이 昏迷한 狀態인데도 저를 보고 애써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때 누나의 얼굴을 平生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누나한테 ‘아무 일도 아니니까 우리 반드시 이겨내자’ 하고 얘기했지만 그때부터 家族들은 徐徐히 마음의 準備를 했던 것 같아요. 누나도 마찬가지고요.”


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 지극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

김진아의 外三寸인 이덕화가 故人의 殯所를 찾아 男便 케빈 오제이 氏와 人事를 나누고 있다.


至極精誠으로 누나 돌본 妹兄에게 고마운 마음
그 사이 김진아의 男便은 아픈 아내를 精誠껏 돌보며 癌 患者가 어떤 過程을 거쳐 臨終에 이르는지에 對해 細心히 工夫했다고 한다. 結局 患者가 病院에 있는 것보다 집에서 家族들과 함께 마지막을 準備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아내의 寢臺 옆에 酸素 呼吸器를 設置하고 室內에서도 휠체어를 使用하기 쉽도록 하는 等 집 全體를 호스피스 病棟처럼 꾸몄다. 이런 그의 配慮 德分에 故人이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男便과 아들, 家族들 사이에서 平穩하게 生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남은 家族들에게는 큰 慰安이 된다고 한다.  
“妹兄한테 眞心으로 感謝드려요. 두 달 동안 妹兄이 누나한테 하는 걸 보면서 反省도 많이 했어요. ‘男子가 女子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나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때론 弱한 모습도 보였지만 누나 앞에서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매우 毅然하고 剛한 모습을 보였어요. 무엇보다 누나를 對하는 態度가 말로 다 說明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多情했어요. 한便 그 둘이 眞心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까 누나가 먼저 떠나야 한다는 現實이 더욱 원망스럽게 다가오더라고요. 妹兄도 술을 한盞 마시면 ‘結婚해서 10年 넘게 일에 미쳐 살다가 이제야 둘이 便安하게 餘生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恨歎을 많이 했어요.”
하와이에 집을 지을 때만 해도 서로에게 남겨진 時間이 이렇게 짧은 줄은 아무도 몰랐다. 特히 아들 매튜와의 時間은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1分 1秒를 아까워했다고 한다. 病床에서도 김진아의 걱정은 늘 매튜였다. 擧動이 거의 不可能한 狀況에서도 휠체어에 酸素 呼吸器를 着用하고 아이의 校服을 사러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外出이 됐다. 김진근은 “그날 누나가 氣盡脈盡한 모습으로 ‘盡根牙 너무 힘들어. 그런데 엄마는 强하다’ 하면서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心情을 어떤 말로 表現할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매튜의 슬픔 亦是 쉬 가늠하기 힘들다.
“누나가 돌아가시기 하루 前 매튜를 데리고 病院으로 갔어요. 엄마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엄마, 조금만 더 제 곁에 있어줄 수 없나요?’ 하면서 엉엉 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正말 億丈이 무너지더군요. 누나는 氣가 막힌 듯 눈물도 흘리지 않고 헛웃음을 지으며 ‘우리 매튜 어떡하니’란 말만 反復했죠. 그때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누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저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죠. 누나는 늘 저한테 매튜와 妹兄을 付託한다고 했어요. 萬若 自身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絶對로 두 사람만 두지 말고 한두 달이라도 하와이에서 함께 지내달라고 했었죠. 그게 누나의 마지막 遺言이었던 것 같아요.”
김진아는 結局 自宅에서 男便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았다. 마지막 時間이 다가오자 오제이 氏는 김진아의 머리를 매만지며 마치 告解聖事라도 하듯 귀에 입을 대고 끊임없이 속삭였다고 한다. 김진아度 男便의 얘기에 때때로 힙겹게 “응, 응” 하며 對答했다고. 숨이 멎자 故人의 얼굴은 琉璃알처럼 말개지면서 表情 또한 平穩함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누나는 마지막까지도 아름다움과 品位를 잃지 않았어요. 누나의 지난 삶 또한 그렇고요. 結婚 前부터 오랫동안 호스피스로 奉仕活動을 해왔고 매튜를 얻고부터는 入養 關聯 奉仕活動에도 앞장섰어요. 男便과 아이에게는 둘도 없이 훌륭한 아내이자 엄마였고요. 누나가 돌아가시기 며칠 前에는 窓밖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래, 잘했어. 後悔 없어’라고 말하더군요. 죽는 瞬間 自身의 삶을 後悔하지 않을 사람이 果然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 面에서 누나는 分明 幸福한 삶을 살았다고 믿어요.”


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 지극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

男便 內助는 勿論 가슴으로 낳은 아들 매튜를 至極精誠으로 돌보며 幸福한 家庭을 꾸렸던 김진아. 남겨진 家族에게도 그女의 體臭와 사랑이 오랫동안 머물길 祈願한다.<br>


부디 하늘나라에서 平安하기를…
現在 五제이 氏와 매튜는 하와이에서 조금은 낯선 日常을 맞고 있다. 김진근은 누나의 付託대로 같이 하와이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于先 우리끼리 부딪쳐보겠다”는 妹兄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代身 날마다 電話로 安否를 묻는데, 요즘 오제이 氏는 매튜를 위한 韓國 飮食을 만들려고 孤軍奮鬪 中이라고 한다. 10代 때부터 美國에서 留學 生活을 했던 김진근은 平素 妹兄과 생각이 잘 맞고 얘기도 잘 통한다고 한다. 오제이 氏 亦是 그를 親同生처럼 아꼈다고. 그가 정애연과 結婚할 때도 經濟的으로 힘들어 敎會에서 半指만 주고받으며 言約式을 올리자 “그래도 新婦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式場에 들어가야 한다”며 盛大한 結婚式을 膳物해주기도 했다.
“좀 더 時間이 지난 뒤에 누나들과 제가 順次的으로 妹兄과 매튜를 만나러 갈 생각이에요. 妹兄이 葬禮를 다 치르고 난 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只今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가 남남이 되는 것이다. 普通 이럴 境遇 남이 되고 말지만 우리는 絶對로 그러지 말자’고요. 當然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매튜는 永遠히 제 조카高 妹兄 亦是 끝까지 제 妹兄이에요.”
하와이 집에는 김진아의 遺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직은 매튜에게도, 오제이 氏에게도 故人의 體臭가 必要하기 때문이다. 故人의 遺骸 亦是 아직 뿌려지지 않았다. 1周年 追慕式 날 온 家族이 모여 故人이 生前에 付託했던 집 앞 바닷가에 뿌리기로 했다고 한다. 김진근은 自身이 이番 인터뷰에 應한 것 亦是 많은 사람들에게 故人의 意味 있던 삶을 다시 한 番 알리고 남겨진 家族들에게도 故人과 關聯된 마지막 追憶을 안겨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터뷰에 應하기 前 妹兄에게 먼저 承諾을 求했어요. 亦是나 欣快히 좋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매튜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요. 저 亦是 이番 인터뷰를 통해 누나가 生前에 제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더 熱心히,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누나 亦是 只今쯤 하늘나라에서 큰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며 幸福하게 지낼 거라고 믿어요.”





글·김유림 記者 | 寫眞·조영철 홍중식 記者, 東亞日報 出版寫眞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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