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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름 박완서 文學洞네 散文으로 만나다|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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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름 박완서 文學洞네 散文으로 만나다

글&拔萃·金明熙 記者 | 寫眞·홍중식 記者, 동아일보 寫眞DB파트

2015. 03. 18

박완서 作家가 世上을 떠난 지 어느덧 4年이 흘렀다. 小說도 그렇지만 삶의 智慧와 經綸을 따뜻한 文章에 담은 그의 散文은 많은 讀者들의 共感을 얻었다. 文學동네가 忌日인 1月 22日에 맞춰 박완서 散文集 7卷을 엮어 냈다. 그의 散文 世界를 網羅하는 意味 있는 일이다.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1970年 ‘여성동아’ 長篇小說 公募에 ‘羅牧’으로 當選돼 登壇한 뒤, 40餘 年間 많은 사랑을 받았던 作家 박완서(1931~2011). 그는 데뷔作 ‘羅牧’부터 ‘그 山이 正말 거기 있었을까’를 거쳐 마지막 長篇 ‘그 男子네 집’으로 이어지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小說에서 고른 成就를 보여주는 한便, 1977年 ‘꼴찌에게 보내는 喝采’를 始作으로 散文集도 꾸준히 내왔다. 그의 散文은 엄마, 아내, 中産層 小市民, 時代의 어른으로서의 眞率한 自己 告白이자, 우리의 內面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治癒의 힘을 지녔다.

文學洞네에서 펴낸 박완서 散文集은 ‘쑥스러운 告白’ ‘나의 萬年筆’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살아 있는 날의 所望’ ‘只今은 幸福한 時間인가’ ‘사라져가는 것에 對한 哀愁’ ‘나는 왜 작은 일에만 憤慨하는가’ 等 7卷이다. 어느 冊 몇 페이지를 펴든 엄마가 딸에게, 或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한 속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特히 作家의 맏딸 好圓熟 隨筆家가 7卷의 散文集이 새롭게 讀者들 앞에 설 수 있도록 出刊 過程을 함께했다. 罹病率 詩人과 박완서 作家의 孫女 김지상 氏는 作家의 遺品을 寫眞으로 찍어 散文集 標識를 만들었다.

散文集에 收錄된 글 中 一部를 拔萃해 收錄한다. 專門을 다 싣지 못하는 것이 故人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憂慮되지만, 박완서 作家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작은 膳物이 되길 바란다.

박완서 散文集 1 ‘쑥스러운 告白’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그들에겐 우리가 못하는 것을 능히 할 수 있는 底力이 있다. 팝송을 들으며 온몸을 들까불면서도 어려운 試驗工夫를 거뜬히 해낼 만큼 한 가닥 맑은 精神만은 또렷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옷차림은 꺼벙하고 때로는 冶해서 한마디로 格式을 度外視한 것이고 하는 짓은 輕妄하고 唐突해서 한마디로 버르장머리가 없다. 그것이 그들의 겉模樣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은 우리 旣成世代의 痼疾病―必死的인 外貨치레, 冷水 먹고 이 쑤시는 虛飾,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같잖은 점잖음에 對한 一種의 挑戰인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 挑戰을 하려거든 徹底히 해라. 속 빈 강정인 旣成世代에게 너희들의 알찬 內室로 맞서거라. -‘답답하다는 아이들’ 中에서

傲氣가 모조리 뽑히면 성가신 말썽도 없어지기야 하겠지만 그게 어디 사람이 살아 있는 世上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죽은 肉身엔 腐敗가 있을 뿐이고 죽은 精神엔 沈滯가 있을 뿐이다. 오기를, 特히 正義感이 시들지 않은 젊은이의 新鮮한 오기를 살 勇氣가 없는 사람은 權限이란 칼자루를 쥘 資格도 없다고 斷言한다면 지나친 苦言일까. -‘傲氣로 산다’ 中에서

또 돈이 貴하다는 것도 알 만큼은 알지만 世上에 사람보다 더 貴한 것은 없다는 믿음과는 바꿀 수 없고, 돈을 自己를 위해서는 아낄 줄도, 남을 위해선 쓸 줄도 알고, 自己 일, 自己 집안일과는 直接的으로 關係는 없더라도 크게는 관계되는 사람들과 사람들과의 關係, 世上 돌아가는 일과 사람들과의 關係의 그른 일, 꼬인 일, 돼먹지 않은 일은 外面할 수 없고 마음이 便할 수 없어, 그런 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야 하는 樣式의 所有者도 바로 이 普通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意味로도 普通 사는 사람이 大部分이고 富者와 가난뱅이가 極少數與野겠고, 普通 사는 게 떳떳이 사는 거라는 主대와 傲氣가 있어야겠는데 그렇지가 못하니 안타깝다. -‘普通으로 살자’ 中에서

박완서 散文集 2 ‘나의 萬年筆’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食口들을 위해 場을 보고 맛있는 飯饌을 만드는 일, 每日每日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아 快適하고 정갈한 生活環境을 만드는 일, 아이들 工夫를 돌보고 가끔 學校 出入을 하는 일, 뜨개질, 옷 만들기-소위 살림이라 불리는 이런 일들을 나는 잘했고, 또 좋아했지만, 아무리 죽자꾸나 이런 일을 해도 決코 채워질 수 없는 虛한 구석을 나는 내 內部에 갖고 있다는 걸 自覺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그날 온 終日, 어디서 小包 뭉치가 되어 뒹굴고 있을 내 作品에 對한 肉親愛와도 彷彿한 짙은 憐憫으로 거의 흐느낄 것 같았다. 나는 또 내 原稿를 딴 小包들과 함께 마구 賤待할 郵遞局 職員을 假想하고 怏心을 품기까지 했으니 氣가 찰 노릇이다.

(……) 마치 덮어놓고 제 子息 잘난 줄만 알고, 제 子息 역성만 드는 어리석은 엄마 같은 盲目의 愛情을 나는 이미 내 앞을 떠나 있는 내 첫 作品에 對해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글은 아무렇게나 쓸 게 아니라는, 글을 하나 써내는 것도 子息을 하나 낳아놓는 것만큼 責任이 무거운 큰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中年 女人의 虛飢症’ 中에서

우리는 늙은 女子분들 中에서도 깜짝 놀라게 아름다운 분을 發見할 때가 있다. 勿論 官能을 刺戟해오는 아름다움일 수는 없으나, 좀 더 깊숙한 곳에 와닿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은은히 빛나는 분이 있다. 그런 분을 보면 人生의 끝에 늙음이 있다는 게 조금도 슬프거나 욕되게 느껴지지 않고 크나큰 恩寵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런 분일수록 깊숙이 넓고도 흐뭇한 棺臺의 房을 가진 분이다. 男便의, 子息의, 兄弟의 過誤와 苦惱와 傷處를 말없이 받아들여 容恕하고 治療한 經驗이 豐富한 분이다.

한 番이라도 女子의 寬大함에 안겨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世上을 索莫하다고만은 하지 못할 것이다. -‘따습고 부드러운 藥손이 되어’ 中에서

問題는 일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일을 處理하는 사람의 能力에 있다. 페인트와 캔버스가 그림을 만드는 게 아니라 畫家의 能力이 페인트와 캔버스를 맨날 페인트와 캔버스인 채로 放置할 수도, 看板을 그릴 수도, 藝術을 創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내가 됨으로써 人間으로서의 自己 成長을 멈춰버릴 게 아니라 自己가 받은 敎育을 바탕으로 知的인 探究를 繼續하고 能力을 開發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 自己 能力에 맞는 일을 發見할 일이다. 能力과 情熱을 바칠 일을 가짐으로써 아내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能力과 主대 없는 者에게 주어진 自由는 말짱 헛거다. 幻想이다. -‘自由와 幻想’ 中에서

박완서 散文集 3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저만치서 木발을 짚은 女子가 천천히 걸어왔다.

小鹿島에서 만난 最初의 患者였다. 멀리서도 단박 患者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外樣을 하고 있었다. 好奇心을 가지고 그 女子를 너무 注目해도 안 되고, 不快한 눈치를 보이며 被害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普通 行人과 엇갈리듯이 自然스럽게 엇갈려야 된다고 생각할수록 얼굴이 자연스럽지 못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女子가 좀 더 가까워졌다. 그때 숲에서 맑고 드높은 새소리가 들렸다. 새소리는 規則的이었고 좀 더 커졌다. 나는 救援받은 것처럼 歎聲을 질렀다.

“얘들아! 저 새소리 좀 들어보렴, 무슨 새일까?”

그러나 딸애들은 異常하게 難處한 얼굴을 하고 내 歎聲을 못 들은 척했다. 마침내 그 女子는 우리와 엇갈리고 멀어져 갔다. 새소리도 殷殷하게 멀어져 갔다. 그제야 아이들이 나를 핀잔주었다.

“엄마도 참 주책이셔. 새소린 무슨 새소리예요? 저 患者 木발에서 나는 소리였단 말예요.”

이런 때 무슨 辨明을 試圖했다간 더 주책 노릇 되고 만다. -‘小鹿島의 새소리’ 中에서

나는 參與도 좋아하고, 純粹도 좋아하고, 甚至於는 參與하고 純粹하고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나더러 參與냐 純粹냐 그 어느 便에 屬하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지면서 다만 슬픔을 느낄 뿐이다. 나는 作家가 갓 되고 나서, 앞으로 作家는 될지언정 決코 女流 作家는 안 될 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즈음 묵은 스크랩을 뒤적이다가 그런 句節을 보고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그때는 무슨 배짱으로 그런 豪言壯談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作家로서 느끼는 어려움과 슬픔 中 가장 큰 것은 亦是 女流이기 때문에 當하는 어려움과 슬픔이라는 걸 굳이 감출 必要는 없을 것 같다. -‘作家의 슬픔’ 中에서

孔子님 말씀 中에 이런 것도 있다. “父母가 계시면 멀리 나다니지 말되, 가야 할 때는 반드시 告하도록 하라.” 옛말이지만 요새 中學生들에게도 들려주고 지키게 하고 싶은 말이다. 오늘에 되살리고 싶은 옛말은 이 밖에도 많다. 또 孝가 傳統的인 道德이라고 해서 반드시 옛말에서 그 規範을 찾을 必要가 있을까. 淆亂 結局 父母님의 마음을 幸福하게 해드리는 거라는 單純 素朴한 뜻마저 잊어버리질 않길 바란다. -‘孝道觀光’ 中에서

박완서 散文集 4 ‘살아 있는 날의 所望’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어머니를 사랑하기보다는 내 子息을 사랑하기가, 내 子息보다는 孫子를 사랑하기가 努力을 요하지 않고 훨씬 더 자연스럽다. 입에 담기도 憫惘한 노릇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特히 外孫子에 對해서는, 外孫子를 귀여워하느니 방앗공이를 귀여워하라는 俗談까지 있지만, 나는 요새 나를 처음으로 할머니로 만든 괘씸한 나의 外孫子한테 거의 빠져 있다시피 한다. 勿論 따로 사니까 每日 보는 건 아니지만 每日 보고 싶어하고 아무리 봐도 싫症이 안 난다. 잊어버려서 그런지 모르지만 젊은 날의 戀愛 經驗도 이렇게 切實했던 것 같진 않다. 그 녀석의 寫眞을 冊床 위에 두고 하루에 몇 番을 봐도 싫症이 안 날뿐더러 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난다. 어머니를 보면서 곧 나에게도 닥쳐올 늙음 끝의 消滅을 豫感하는 일이 쓸쓸하고 서글픈 일이라면, 孫子를 통해 늙음이 남기고 가는 힘찬 生成을 確認하는 일은 기쁘고 燦爛한 일이다. -‘살아 있는 날의 所望’ 中에서

조금이라도 밑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한 實利的인 結婚이 正말 크게 밑지고 들어가는 게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건 사랑의 기쁨이다. 사랑한다는 건 自己도 미처 모르고 있던 사람됨 속의 眞價를 發見하고 發見당하는 기쁨이요, 이런 기쁨을 모르고서야 아무리 잘 살았대도 헛살았다고 할 만치 정작 삶의 實속이다. 墮落한 結婚 風習을 慨歎하기 前에 于先 참다운 戀愛를 하라고 勸하고 싶다. -‘오늘의 젊은 世代에게’ 中에서

엘리트 意識은 그 始初부터 수많은 꼴찌들을 그 基盤으로 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꼴찌들은 첫째를 爲해 꼴찌를 하고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렇게 破廉恥한 꼴찌는 적어도 우리 꼴찌 中에는 하나도 없다. 敗者가 아니란 것, 棄權을 하지 않았다는 게 꼴찌의 單 하나의 自尊心이다.

時時때때로 첫째의 입에 오르는 것을 꼴찌는 別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利用하려는 속셈이 뻔하기 때문이다. 꼴찌의 孤獨하고 苦痛스러운 走行은 利用 當하기엔 너무도 所重한 그 무엇이다. 拍手나 喝采도 꼴찌는 바라지 않는다. 同情이나 僞善의 냄새가 나서 自尊心이 傷한다.

꼴찌에게 自尊心을… 내가 꼴찌의 立場에서 부르짖을 게 있다면 그것으로 足하겠다. -‘꼴찌에게 보내는 마음’ 中에서

박완서 散文集 5 ‘只今은 幸福한 時間인가’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눈이 疲困할 때나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 窓밖을 보면 멀리 城南 쪽의 山들이 바라보였다. 空氣가 자욱해서 가까운 山만 보일 적도 있었고, 山 넘어 山, 그 山 넘어 또 山까지 보일 만큼 空氣가 透明한 날도 있었다. 窓가에서 먼 山을 볼 수 있다는 건 나에게 큰 慰安이었다. 그러나 길가로 免한 얼마 안 되는 空터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섬으로써 나의 窓가의 이런 위안마저도 빼앗기고 말았다. 이제 내 窓가에서 볼 수 있는 건 온통 아파트뿐이다. 앞에도 左右에도 멀리에도 가까이에도 疊疊한 아파트의 숲이다. 어떤 때는 내 눈에 그게 엄청난 돈더미로 보인다. 저건 1億원 뭉치를 쌓아놓은 거, 저건 5千萬원 뭉치를 쌓아놓은 거, 하는 式으로 곱셈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0이 數도 없이 새끼를 치고 混亂을 일으켜 到底히 堪當을 못하게 된다. 그런 計算이야말로 사람의 머리가 할 짓이 아니라 電子計算機라는 그 앙증맞고 妖妄한 機械나 할 일이란 생각이 절로 난다. -‘잃어버린 우리 洞네’ 中에서

아마 어머니가 몇 十 年 늦게 태어나셔서 새로운 敎育을 받을 수 있었다면 나보다 몇 倍 나은 이야기꾼이 되셨으리라. 어머니는 그때 當身도 모르게 當身 속에 있는 이야기꾼의 싹수를 어린 딸에게 부지런히 옮겨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中의 얼마가 자라 只今의 내 이야기 밑천이 돼주고 있다.

내가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보다 더 確實하게 물려받은 게 있다면 그건 아마 夢想일 게다. 내가 내 이야기에게 줄기차게 거는 꿈이 있는데 그건 내 이야기가 讀者와 만나 그들의 아픔과 쓸쓸함과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나아가선 그들의 답답하고 구질구질한 狀況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어머니는 뛰어난 이야기꾼’ 中에서

박완서 散文集 6 ‘사라져가는 것에 對한 哀愁’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내 作品 世界의 主流를 이루는 이런 作品들의 決定的인 힘은 6·25 때의 體驗을 아직도 客觀化시킬 만한 充分한 距離로 밀어내고 바라보지 못하고 어제인 듯 너무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데서 비롯됨을 알고 있다. 알고 있건만 모든 記憶들은 時間과 함께 저절로 멀어져가 遠景이 되는데 唯獨 6·25 때의 記憶만은 마냥 내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는 게 이젠 지겹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6·25를 主題로 한 小說은 아무리 써봤댔자 大作을 쓰긴 틀렸다는 漠然하면서도 確實한 豫感 같은 걸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그런 小說은 그만 쓰겠단 뜻은 決코 아니다.

나의 同語反復은 當分間 아니 내가 小說家인 限 繼續될 것이다. 大作은 못 되더라도 내 傷處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以上 그 피로 뭔가를 써야 할 것 같다. 傷處가 아물까 봐 일삼아 쥐어뜯어가면서라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싱싱한 피를 흐르게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건 내 個人的인 傷處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無慘히 토막난 傷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小說은 무엇인가’ 中에서

왜 이렇게 對話가 어려울까? 對話처럼 重要한 人生의 어려움과 慰安이 없다고 생각할 때 아무리 物質的으로 풍요한 世上도 索莫하고 貧困해 보인다. 人間(人間)이란 말은 곧 사람과 사람 사이, 卽 社會를 뜻한다. 사람 사이에 對話가 없이는 서로의 人間性, 卽 사람됨을 確認할 길이 없다. 人間이 社會性을 잃었을 때 非人間化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人間性 回復이 時急한 課題라면 對話의 回復은 그보다 앞서야 할 前提 條件 같은 것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말 가난’ 中에서

感性의 老化가 겁나는 것은 自身의 글이 惰性에 빠질까 봐였다. 六十, 七十까지도 싱싱하고 彈力 있는 글로 젊은 苦惱와 만나고, 七十이 넘으면 情緖는 더욱 純化돼 맑고 玲瓏한 童話를 쓸 수 있을 것을 꿈꿔왔다. 내 末年의 讀者를 어린이로 假定할지언정 老人으로 想像하긴 싫었다.

꽁바기 일이 있은 後 문득문득 老人들을 위한 몇 個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굴려보곤 한다. 그게 조금도 憂鬱하지 않고 신명이 난다. 앞서 몸은 늙어도 感性은 안 늙을 自身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自身이 아니라 조바심이나 强迫觀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음보다 더 좋은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배추 꽁바기’ 中에서

박완서 散文集 7 ‘나는 왜 작은 일에만 憤慨하는가’

그리운 이름  박완서 문학동네 산문으로 만나다
꿈 代身 欲心만 있는 女子, 끝없는 物慾을 높은 以上으로 錯覺하고 있는 女子는 밉다. 自身의 成就欲이 온통 子息과 男便한테로 뻗친 女子도 밉다. 特히 職場에서 自身의 無能이나 不足함을 응석으로 때우려는 女子는 自己도 모르게 같은 女子의 일자리를 막아서고 있으므로 미울 뿐 아니라 困難하다. 大學을 卒業하고도 平生 敎育長의 모든 科를 두루 涉獵하고 온갖 趣味 生活을 다 한 番씩 집적거려보고도 自己가 正말 願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지 않은 女子도 밉다. 有名 라벨의 高級 옷으로 빼입고 露店商한테 千원어치 사고 덤 한 알 더 얻으려고 악을 악을 쓰는 女子도 밉다.

女子가 아름답다는 건 한 家庭에뿐 아니라 한 나라에도 큰 福이다. 家庭이나 나라가 苦難에 處했을 때 우리의 어머니나,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얼마나 아름답게 處身했던가는 想起해볼 만하다. -‘베란다에서’ 中에서

現代를 눈물이 메마른 荒廢한 時代란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건 眞正한 感動이 없다는 얘기도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感動을 할 距離(素材)까지 메말랐단 얘기가 아니다. 그 距離가 우리의 心琴을 直接 건드리는, 妨害하는 現代的인 여러 複雜한 要素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先入觀, 固定觀念 없이 純粹하게 對象과 만나는 일이 거의 없고, 對象 亦是 感動을 强要하고 부추기는 煽動 먼저 앞세우지 않고 素朴하게 다가오는 일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런 複雜한 군더더기를 除去하고 單純 素朴한 生活을 回復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모처럼 한番 크게 韻 體驗이 그런 것을 생각하는 데 작은 暗示라도 되었으면 싶다고 말하면 바람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오랜만의 눈물’ 中에서

디자인·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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