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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今부터 始作 수드래곤의 全盛期|여성동아

PEOPLE

#comedian #soo_dragon #interview

只今부터 始作 수드래곤의 全盛期

editor 정희순

2017. 08. 09

歌謠界에 지드래곤이 있다면 개그界엔 수드래곤이 있다. 前無後無한 獨步的인 藝能感으로 大衆의 마음을 사로잡은 數드래곤 김수용의 魅力 속으로.

“메이크업을 너무 짙게 했나 봐요. 다크서클이 아예 안 보이잖아요.”

撮影場에 들어선 그가 대뜸 볼멘소리를 했다. 種種 年輪이나 自然스러운 引上을 드러내기 위해 주름을 지우지 말아달라는 要請은 받아봤지만, 다크서클이 도드라지지 않는다고 아쉬운 表情을 짓는 演藝人은 그가 처음이다. “활기차 보이고 좋은데요?” 하고 되묻자 그가 말한다. “事實 저 이달 末에 化粧品 바이럴 廣告를 찍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더 神經이 쓰여요. ‘판다鳳’이라는 製品이래요.” 아직 出市된 건 아니지만, 어째 이름만 들어도 그가 모델로 제格이라는 느낌이 딱 온다. 大勢 개그맨 김수용(51)이다.?

그는 1991年 KBS ‘第1回 大學개그制’로 데뷔했다. 劉在錫과 金龍萬, 박수홍이 그의 動機다. 或是 事故를 쳐 出演 停止를 當한 것 아니냐는 弄談을 던질 程度로 보기 어려웠던 그는 요즘 KBS2 〈해피투게더 3〉, MBC 〈歲模倣 : 世上의 모든 放送〉, SBS 〈同牀異夢 2 - 너는 내 運命〉에 出演한다. 地上波 放送 3社를 涉獵했으니, 트리플 크라운이다.




率直히 말하면, 김수용은 只今껏 에디터가 만난 사람 中 가장 對答이 느렸다. 質問을 하나 던지면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느릿한 말套로 答辯을 하기 始作했는데, 한 文章을 말한 뒤 이어지는 다음 文章 사이에도 꽤 긴 時間이 必要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다음 質問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망설여져 몇 番이고 “다음 質問을 드려도 괜찮나요?” 하고 물을 程度였다고나 할까. 藝能‘꾼’들의 特徵이 ‘치고 빠지는 타이밍에 能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김수용은 이와는 對蹠點에 있는 사람이다.



리액션은 고사하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行動에 옮기기까지 5秒의 時間이 걸린다고 해서 ‘5초남’이라 불리기도 한다. 꾼과는 距離가 먼 그가 왜 只今 大勢가 됐는지는 인터뷰를 마치고서야 알았다. 답답하리만큼 느렸던 그와의 인터뷰를 되새기고 있는 只今 이 瞬間, 아이러니하게도 ‘풉’ 하고 웃음이 터지니까 말이다. 그는 ‘大勢’라는 修飾語엔 “아직 멀었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데뷔 以後 27年 만에 맞이한 ‘첫 番째 全盛期’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疲困해 보이시네요(웃음).
늘 듣는 말이에요. 푹 자고 爽快하게 미팅 자리에 나갔는데도 ‘氣分 안 좋냐’ ‘잠 못 잤냐’는 이야기를 하시니까요. 잘 잤다고 對答하면 失望하실까 봐 “두 時間밖에 못 잤다”고 말하기도 해요.

다크서클이 콤플렉스겠어요.
아니요. 이건 오히려 제 트레이드마크죠. 얼마 前엔 化粧品 會社에서 連絡이 왔어요. 다크서클 가려주는 化粧品이 있는데 저와 바이럴 廣告를 하고 싶다면서요. 오히려 콤플렉스는 脫毛였죠. 처음엔 黑彩 뿌리고 어떻게든 가리려고 했는데 到底히 안 되겠다 싶어서 毛髮 移植 手術을 받았어요. 돌려 막기처럼 옆·뒷머리로 앞머리 쪽을 채운 거예요. 金龍萬, 지석진 氏가 宏壯히 關心 있어해요. 한 모에 얼마냐, DC 되냐 이런 것들을 물어보더라고요. 아주 만족스러워요.

“김수용의 첫 番째 全盛期가 왔다”고들 해요. 이 말에 同意하나요.
그렇죠. 한 房이 있었던 타입은 아니었으니까(웃음). 아내는 “물 들어 올 때 櫓 저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큰 欲心 안 내려고요. 한便으론 이게 얼마나 갈까 싶기도 해요. 요즘 世上이 워낙 今方今方 바뀌잖아요. 事實 前에도 〈라디오스타〉나 〈해피투게더〉에 一 年에 한두 番씩은 出捐하곤 했어요. 放送이 나가면 話題가 되고, 그땐 꼭 잘될 것 같은 雰圍氣가 생겨요. 그때마다 재석이는 “兄, 反應 좋아. 느낌 와, 느낌 와” 하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2週쯤 지나고 나면 또 今方 사그라지더라고요. 재석이의 설레발이 問題인가 싶어서 이제 그런 電話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

放送街에서 김수용의 人脈은 相當히 華麗하다. 그와 데뷔 動機인 유재석은 두말할 것도 없고 金龍萬, 김국진, 지석진, 박수홍 等 1990年代부터 放送街를 주름잡았던 藝能人들과의 郵政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屬해 있는 代表的인 私組織이 바로 ‘조동아리’다. 술을 마시지 않고 아침까지 수다를 이어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의 이 私組織의 멤버로는 劉在錫, 金龍萬, 지석진이 있다. 개그맨 그룹 ‘감자골’도 그를 說明하는 重要한 키워드 中 하나다.

1990年代 KBS 公採 개그맨들에게는 所屬 放送社에서만 活動해야 하는 等의 여러 가지 制約이 있었는데, 當時 最高의 人氣를 謳歌하던 개그맨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 박수홍이 이에 反旗를 들고 감자골을 만들었다. 올해 初엔 〈해피투게더 3〉 新年 特輯 코너에 ‘조동아리’와 ‘감자골’의 멤버들이 토크드림팀이라는 이름으로 出演하기도 했다. 27年을 꼬박 함께해온 放送쟁이들의 歸還은 視聽者들의 暴發的인 反應을 이끌어냈고, 지난 5月부터는 아예 固定 코너가 생겼다. 各自 起伏은 있었지만 2017年 只今, ‘中年의 아재’가 된 이들이 나름의 色깔대로 또다시 藝能판을 華麗하게 수놓고 있는 것이다.



朴修弘 氏가 요즘 ‘클러버’ 캐릭터로 宏壯히 핫하잖아요. 그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40代 後半에 저럴 수도 있구나 했죠 뭐. 요즘 藝能은 저런 걸로도 통하는구나 싶어서 內心 놀라기도 했고요. 우리 20代 때 같이 안 놀고, 뒤늦게 쟤가 왜 저럴까앙(박수홍 母親의 말套를 흉내내며).

往年의 멤버들과 함께 放送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다른 프로그램에 出演할 때보다 김수용 氏의 모습이 훨씬 便安해 보이고요.
各自의 스케줄 때문에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放送 德分에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지석진이랑 유재석이 第一 말이 많죠. 精神없이 떠들다 보면 時間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오래 만난 親舊라는 게 元來 그렇잖아요. 자주 보지 않아도 每日 보는 것 같고, 每日 봐도 지겹지 않고. 예전엔 順 노는 얘기만 했어요. 누구 新曲 들어 봤냐, 무슨 放送 프로그램 봤냐, 걔는 누구랑 사귄다더라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요. 그런데 요즘은 家族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意外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子女 學業에 對한 이야기를 되게 많이 해요. 敎育熱이 第一 높은 건 金龍萬이죠. 이番에 아들이 버클리 音大에 合格해서 9月에 入學하거든요. 재석이나 저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덜하고, 싱글인 朴修弘은 거기 못 끼죠. (김수용은 지난 2008年 아내 김진아 氏와 結婚해 이듬해 딸 나원 量을 얻었다.)

예전엔 멤버들끼리 클럽도 많이 다녔다면서요. 가장 人氣 많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땐 클럽이 아니었어요. 나이트클럽 世代니까요. 一週日에 한두 番씩은 꼭 갔던 것 같아요. 女子분들에게 가장 人氣 많은 건 김용만 氏였죠. 저도 理由를 모르겠어요(웃음). 포동포동하고 귀여웠나 봐요. 便安한 魅力도 있고.

개그맨은 어쩌다 하게 된 건가요.
軍隊 轉役하고 復學을 했는데 그때 KBS에서 大學生을 對象으로 개그 콘테스트를 처음으로 연다는 거예요. 元來도 主導的으로 나서서 떠들기보단 구석에 學校 後輩들이랑 옹기종기 모여서 구시렁거리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저 先輩 조곤조곤 말하는데 되게 웃겨” 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개그맨을 할 생각은 全혀 없었는데 大學生 아니면 志願 資格조차 안 되는 大會니까 한 番쯤 挑戰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願書 냈다가 떨어지면 猖披하니까 혼자 몰래 接受를 했죠.

치고 나가는 性格이 아니라면서 어떻게 수많은 競爭者들을 물리치고 奬勵賞까지 受賞했나요.
튀는 애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그들과 똑같이 해봐야 勝算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志願者의 折半이 却說이 扮裝을 했고, 나머지 折半은 女裝을 했더라고요. 個人기라고 해봐야 이週日, 심형래 先輩 따라 하는 게 全部였죠. 저는 그냥 제 얘기를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마침 中間考査를 땡땡이치고 親舊 한 名에게 代理 試驗 좀 쳐달라고 하고 나온 狀況이었는데 面接官들 앞에서 그 얘기를 했어요. 꼭 工夫 안 하고 데모하러 나온 大學生처럼 가자마자 面接官들을 向해서 ‘빽’ 하고 소리를 질렀죠. 面接官들 立場에선 그게 新鮮했나 봐요. 남들 하는 걸 그대로 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밀고 나갔던 게 좋은 評價를 받았던 것 같아요.

덜컥 개그맨이 되고 나서 그의 父母님은 그에게 “職業으로 할 건 아니지?” 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醫師 집안 出身이다. 할아버지에 아버지, 姑母까지 醫大를 나왔고 外家 쪽은 줄줄이 藥大를 나왔다. 어쨌거나 집안에서는 ‘튀는’ 축에 屬했던 그는 中央大學校 演劇映畫科에서 演出을 專攻했다.




元來는 監督이 꿈이었나요.
初等學校 때 서울 연신내 쪽에 살았는데 예전에는 그곳에 陽地劇場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映畫를 자주 봤어요. 只今도 기억나는 게 〈크레이지 보이-三銃士〉라는 프랑스 코미디 映畫예요. 映畫 中間에 트럭에 銅像을 싣고 가다가 陸橋를 만나는 場面이 나와요.

觀客은 銅像이 陸橋에 부딪쳐 곧 깨질 거라고 豫想하는데 陸橋 바로 앞에서 갑자기 銅像이 고개를 숙이는 거예요. 그 場面을 보면서 ‘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하고 感歎했어요. 發想이 正말 獨特하잖아요. 그땐 TV에서 美國 放送도 많이 해줘서 〈SNL〉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도 자주 봤어요. 그러면서 自然스레 우리나라에서 第一 재밌는 코미디 映畫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김수용의 개그 哲學이 있다면.
남한테 傷處 주는 개그는 하지 말자는 거요. 相對方을 卑下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親舊들도 많은데 저는 왠지 그런 건 拒否感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최양락 先輩님이 하신 말씀이 참 가슴에 남더라고요. “웃기는 사람이 되자, 우스운 사람은 되지 말자.” 딸 나원이에게 하는 얘기도 비슷해요. “絶對 親舊 허물을 흉보지 마라. 나중에 다 그 親舊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요즘 放送 出演이 잦아지면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家族이죠. 特히 딸 나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事實 昨年에 아내가 마음苦生을 좀 했어요.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나원이의 學校 親舊가 “너네 아빠 나쁜 사람이래. 우리 엄마가 놀지 말라고 했어” 해서 아이가 주눅이 들었다는 거예요. 같이 苦悶하다가 結局 그 親舊 엄마에게 電話를 걸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물었죠. 알고 보니 그분은 저를 나쁜 사람이라고 한 게 아니라 人氣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아이들 눈에는 人氣 없는 건 나쁜 거니까 나쁘다고 받아들였던 거죠. 人氣 없다고 말한 걸로 火를 낼 수도 없으니 알았다고 하고 끊긴 했는데 한동안 아내가 宏壯히 속상해했어요. ‘아 내가 좀 더 熱心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때예요. 나원이는 周邊에서 저를 演藝人이라고 알아봐주는 게 좋대요. 第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런닝맨〉인데 다음 週에 撮影이 잡혔어요. 熱心히 뛰어봐야죠.

大槪 개그맨이라면 固有의 캐릭터나 流行語 하나쯤은 있게 마련. 그에게는 未安한 말이지만, 누군가 “김수용의 流行語가 있나?” “代表作은 뭐지?” 하고 물었을 때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게 事實이다. 아주 未安한 表情을 지으며 “저, 근데 或是…. 代表作이…” 하며 어렵게 말을 꺼내자 그가 “다들 이런 反應이라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元來 그렇게 말이 느리셨나요? 언제 끼어들어서 다음 質問을 해야 할 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는데요(웃음).
元來도 빠른 便은 아니었는데 나이 들면서 漸漸 더 느려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김수용이 가끔 치는 멘트는 주옥같다”고 하니까 그 말을 의식해서 그런가 봐요. 그나마 예전엔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中間에 치고 들어가는 게 只今보단 훨씬 덜했어요. 오디오가 겹치면 안 되니까 다른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줬는데 요즘엔 그게 아니잖아요. 後輩 개그우먼 송은이와 김숙은 남들에게 讓步하지 말고 막 치고 들어가래요. 그래야 藝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요. 실은 讓步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린 건데….

김수용 氏가 생각하는 自身의 캐릭터는 뭔가요.
한결같이 便安한 캐릭터요. 개그맨인데 말 많이 안 하는 걸로 有名했어요. 댓글 中에 ‘김수용 氏는 왜 말을 안 하나요. 一般人인가요?’ 하시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어떤 팬에게 “제가 어디가 좋아요?” 하고 물으니 “裸垈地 않잖아요” 하고 시크하게 對答하시더라고요. 職業이 개그맨인데 裸垈地 않는다…. 남들이 안 하는 애드리브를 치는 것도 妙하게 웃기대요. 배꼽 잡고 웃진 못해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어이 없이 웃긴 사람이래요.

선뜻 自身의 代表作을 紹介하진 못했지만, 에디터가 ‘發見’韓 그의 代表作은 뭐니 뭐니 해도 〈김수용의 구경〉이라는 웹 藝能 프로그램이다. 지난 6月까지 總 26回에 걸쳐 公開된 이 프로그램은 題目이 說明하는 것처럼 김수용이 무언가를 구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난다 긴다 하는 藝能人들과 함께 放送에 出演하며 ‘구경꾼’처럼 앉아만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映像을 클릭下祈禱 前에 웃음이 터지는 理由다. 그가 구경했던 場所는 다양하다. 첫 篇에서는 KBS2 〈뮤직뱅크〉 出演을 위해 放送局으로 向하는 아이돌을 구경하는 모습이 公開됐고, 以後 人形 뽑기방, 俳優 공유 팬사인會, 모터쇼 等을 구경 다니며 그의 魅力을 十分 發揮했다.

저는 얼마 前까지 〈김수용의 구경〉을 재미있게 봤어요(웃음).
그거 보셨어요? 저한테 眞짜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미팅 때 製作陣이 “이걸 해낼 사람은 김수용 씨밖에 없어요” 하면서 企劃 意圖를 說明하더라고요. 放送에서 말도 잘 안 하고, 리액션도 없고, 멍하니 구경하는 걸로는 제가 最高라면서요. 핀란드에는 소가 풀 뜯어 먹는 場面만 보여주는 放送도 있다면서 말없이 구경만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구경 간 곳이 〈뮤직뱅크〉 아이돌 出勤길이었는데, 나에겐 關心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추운 날 구경만 하라니까 率直히 갸우뚱했죠. 平素 하던 대로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구경하다 왔는데, 나중에 編輯된 映像을 보니 어이없이 웃기더라고요. 나중엔 이곳저곳 여러 業體들로부터 自己네 구경 와달라는 電話도 많이 받았어요.

〈김수용의 구경〉 마지막 便에 自己 팬 카페를 直接 開設하고 팬 미팅을 하는 場面이 나오더라고요. 인터뷰 準備를 하려고 카페를 찾아봤는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던데요. 제가 못 찾은 건가요.
아, 팬 카페 없앴어요. 어떤 女性 會員분이 쪽紙로 “오늘 팬들과 번개 있다는데 正말인가요?”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어떤 男子분이 自己가 電話하면 김수용 氏가 바로 나온다면서 女性 會員에게 먼저 寫眞을 좀 보내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러다 무슨 事故 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부랴부랴 閉鎖를 決定했죠. 그런데 카페를 閉鎖하려면 運營者가 會員들을 全部 强退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急한 마음에 一一이 클릭해서 强制로 쫓아냈어요. 팬들이 영문도 모르고 强退當했죠. 인스타그램에 怨望 어린 다이렉트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김수용 氏, 제가 熱心히 活動 안 한 건 事實이지만 强退를 시키시다니 正말 失望이네요’ 하는 內容으로요. 이 자리를 빌려 罪悚하다는 말씀을 傳하고 싶네요(웃음).

요즘은 아내 김진아 氏와 함께 〈同牀異夢 2〉에도 出演 中이시잖아요. 선뜻 나서는 타입이 아닌데 어떻게 戀愛를 始作하고 結婚까지 하게 됐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웃음). ?
(느렸던 對答이 훨씬 느려졌다) 잘~ 했습니다. 하하. 같은 大學院에 다녔는데 제가 작은 애드리브 하나만 쳐도 잘 웃어주더라고요. 대시는 文字로 했어요. ‘나와 사귀지 않을래’ 하고요. 그랬더니 答狀이 ‘몰라몰라요’ 하고 왔어요. ‘알았다. 끝나고 밥 먹자’ 하고 그때부터 만났죠, 뭐. 戀愛 때도 비슷했어요. 大邱로 講義를 나갈 때였는데 서울에 있던 아내가 ‘오빠, 여기 눈 와!’ 하면서 文字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응, 여긴 안 와’ 하고 答狀을 했죠. 저 같은 男子는 처음 봤대요. 아내와는 살면서 甚하게 다툰 적도 없어요. 늘 곁에서 저를 應援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죠.

요즘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廢止되면서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고들 해요. 先輩 개그맨으로서 어떤 마음인가요.
안타깝죠. 只今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해봐야 KBS에 하나, tvN에 하나뿐이잖아요. 수많은 개그맨들이 全部 藝能 프로그램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마음 같아서는 放送 3社에라도 코미디 프로그램 두 個씩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個人的으로는 公開 코미디 프로그램 말고, 過去 放映했던 〈유머 一番地〉처럼 中·壯年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생겼으면 좋겠고요. ?

最近 김수용 氏의 活動에 對한 가장 氣分 좋은 피드백은 뭐였나요.
‘이제 數드래곤의 時代가 왔다’ ‘나만 알고 있었던 김수용의 眞價를 이제야 大衆이 알아준다’ ‘그동안 팬이라고 선뜻 나서기 힘들었는데 이제야 좀 숨筒이 트인다’ 같은 댓글요.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認定받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幸福이니까요.

튀는 사람들 사이에서 默默히 自己 길을 간다. 옆 사람이 숨 가쁘게 뛰어가도 김수용은 그저 걷는다. 그렇게 꼬박 27年 동안 우리 곁을 지켜온 男子. 우린 그저 김수용을 구경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풉’ 하고 웃음이 터질 테니까.

寫眞
조영철 記者 디자인 김영화 衣裳協贊 다크몬스터 bigsizeclub raw to raw 디阿道라 헤어 진아(끌림 갤러리點) 메이크업 松煙(끌림 갤러리點) 스타일리스트 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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