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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資本家를 싫어하고 나의 夜勤을 싫어하지만 匠人의 일欲心을 좋아한다. 민희진의 記者會見은 탐욕스런 資本家 vs 無私無欲韓 丈人의 對備를 만들어냈다. 肉頭文字를 濫發하고도 민희진이 倫理的 勝利를 거둘 수 있었던 構圖다. 사람들은 하이브의 매끈한 立場文보다 민희진의 너덜너덜한 記者會見에 說得됐다.
資本家의 힘은 投資金에서 나오고 丈人의 權威는 그가 保有하는 機能의 品質에서 나온다. 資本家의 立場에서 카피作의 量産은 勸奬할 만한 일이다. 丈人의 立場에서 카피作이란 含量을 속인 模造品에 不過하다. 80點짜리 工産品을 찍어내는 工場主 立場에서 100點짜리 手製品을 追求하는 丈人은 골칫거리다. 資本家는 資本(持分, 經營權)을 탐내는 것은 容納할 수 없고 丈人은 나의 製品이 망가지는 걸 容納할 수 없다. 資本倫理와 丈人倫理의 對立, 어제 記者會見에서 表面的으로 發見되는 唯一한 論理性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刺戟한 대목은 "내가 너네처럼 記事를 두고 車를 끄냐 술을 쳐마시냐 골프를 치냐!"는 鬱憤이었다. 내 能力으로 돈벌어서 골프치는 건 資本의 倫理에서 勸奬되는 일이다. 그러나 丈人의 法카內譯에는 夜勤 택시費와 配民 뿐이다. 사람들은 이 對備에서 親密感을 넘어 어떤 崇高함마저 느낀 것 같다.
개저씨 資本家들은 오히려 같이 일하기에 나이스韓 面이 있다. 이들은 緻密하게 利潤을 追究하지만 利潤 外的인 面에서는 느슨한 最小滿足主義者들이다. 이윤만 保障된다면 製品의 品質도 일하는 態度도 完璧을 追求하지 않는다. (ex: 돈만 벌면 되지, 音源만 잘 팔리면 되지) 丈人과 일하는 건 疲困하다. 다른 모든 面에서 最小滿足主義者인 이들은 오직 品質에서만 絶對主義者다. 대충 자고 대충 먹고 살아도 되지만 내가 만드는 製品의 品質은 完璧을 追求해야 한다. 개저씨 資本家는 골프를 못치면 죽지만 丈人은 내 式대로 일을 못하면 죽는다. 민희진이 實際로 그런 사람인가는 알 수 없다. 重要한 것은 本人이 그렇게 主張하자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點이다.
리처드 세넷은 “丈人은 討論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옳다는 排他的 斷乎함이 匠人意識을 構成한다. 말로 따지는 것은 意味없다. 그저 내가 옳을 때까지 만들 뿐이다. 민희진은 討論하지 않는다. 다저스 帽子를 쓰고 나타나서 “나는 일하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說得한 건 無謀한 걸크러시가 아니라 肉頭文字 속에서 새어나온 丈人의 아우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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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사이에 實際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法的 結論이 어떻게 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는 저런 사람과 일할 수 없다는 거다. 丈人은 멀리서 볼 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