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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族의 소리 동아방송(DBS)
民族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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招待席 : 金壽煥 樞機卿
金會長은 입을 다물었고 理事長이 反論을 폈다.

“公營化는 좋은 點도 있지만 나쁜 點도 있는 거요.”

“우리는 그런 거 모릅니다. 政府 方針입니다.”

“우리로서는 株主總會 決意가 없이는 署名할 수 없소. 萬一 우리 마음대로 圖章을 찍는다 面 背任이 되는 것이오.”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抛棄하셔야 합니다.”

昇降이는 繼續되었다. 그러면서 3時間 半이 지났다. 暫時 밖에 나갔다 들어온 이대령이 金會長에게 종이 한 張을 내밀었다.

“이것 보시오. 三星도 TBC를 내놓았습니다. 抛棄覺書를 쓰지 않더라도 於此彼 동아방송은 거덜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會社 社長들은 이미 提出하고 나갔습니다.”

그가 내보인 것은 삼성그룹 이병철 會長이 署名한 東洋放送 抛棄覺書였다. 그때까지 줄곧 말이 없던 金會長이 理事長을 向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소. 쓰지.”

이대령이 準備하고 있던 抛棄覺書를 불러주었다. 理事長이 그대로 받아 썼다. 6個項으로 된 동아방송 抛棄覺書였다. 理事長과 金會長이 次例로 署名하고 拇印을 찍었다.

言論 統廢合을 어떻게 進行했는가. 80年 當時 文化公報部 所屬 公務員으로 ‘言論對策班’ 에 勤務했던 김기철이 펴낸 ‘合搜部 사람들과 오리발 覺書’에 當時 過程이 比較的 仔細히 整理돼 있다. 80年 3月 保安司 情報處長 권정달(權正達) 大領의 指示로 構成된 言論對策班이 文公部에서 起案한 ‘言論 逆機能 刊行物 淨化計劃’을 土臺로 ‘健全言論育成案’을 作成 했다. 이를 허문도(許文道) 靑瓦臺 祕書官이 ‘言論暢達計劃(案)’으로 最終確定해 전두환 大統領의 決裁를 받아 執行했다는 것이다.

노태우 保安司令官에게서 言論社 社主들의 抛棄覺書를 받으라는 指示를 받은 이상재 保安司 言論對策班長은 이들을 保安司 2, 3層에 있는 各 處長 事務室에 分離 受容해 抛棄覺書를 받았다. 保安司는 言論社 社主들을 脅迫 懷柔하기 위해 西氷庫 分室의 有能한 搜査官 13名을 保安司 食堂으로 불러 抛棄覺書를 받는 方法을 敎育까지 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진다. 抛棄覺書 原案은 當時 文公部 公報局長 허만일이 만들었다. 이 原案에 ‘보기’로 써 넣은 言論媒體는 ‘株式會社 東亞日報’ ‘株式會社 동양방송’ 等 2個社. 當時 新軍部가 國民의 입과 귀를 틀어막기 위해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을 代表的인 統廢合 對象으로 삼았음이 드러 나는 대목이다.

全國의 63個 言論社(新聞28, 放送29, 通信6) 가운데 3分의 2街 넘는 44個社(新聞11, 放送27, 通信6)를 對象으로 한 統廢合 措置에 따라 東亞放送 東洋放送 서해방송 全日放送 韓國FM放送이 KBS에 吸收統合되고 기독교방송은 福音放送에만 專念하게 됐다. 反面 문화방송은 21個 地方放送의 株式 51%를 引受해 全國 放送網을 갖추게 된다.

# 歷史 속으로 지다

統廢合措置는 동아일보社에 靑天霹靂이었다. 10·26과 12·12事態, 改憲論議와 3金의 登場으로 이어지는 政局 속에서 80年代를 맞아 地方局과 TV國을 設置할 絶好의 機會로 생각한 東亞방송이기에 더 그랬다.

當時 東亞放送은 技術部와 送信所 幹部들로 構成한 技術對策팀을 釜山, 大邱, 大田, 全州, 光州, 春川, 江陵, 濟州 等 8個 都市에 보내 現地踏査케 했고 80年 1月4日에는 金相万 會長과 이동욱 社長, 김상기 副會長이 최규하 大統領을 訪問해 地方局과 TV國 設置를 許可해달라고 要請했다. 동아방송의 새 키스테이션이 될 汝矣島別館 增築工事度 活潑히 進行돼 會社 全體가 限껏 期待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以後 展開된 事態는 모든 希望을 앗아가 버렸다.

政治 社會的 混亂에 對處한다는 美名下에 5月17日 非常戒嚴을 全國으로 擴大하고 戒嚴布告令 10號에 따라 政治活動을 禁止하고 言論檢閱을 强化하면서 狀況이 돌이킬 수 없을 程度로 나빠진 것이다. 11月15日 言論社 統廢合 方案이 發表되자 동아일보사 任職員들은 치솟는 憤怒와 虛脫感으로 茫然自失했다. 放送局 各 部署에서는 激昂된 나머지 冊·걸床이 뒤집어지고 이곳 저곳에서 痛哭이 터져 나왔다. ‘統廢合酒’라는 새 이름의 飮酒 風景이 나타난 것도 이 무렵이다. 言論人들은 虛脫感을 잊고 빨리 漫醉하기 爲해 燒酒에 막걸리를 타거나 麥酒에 洋酒를 타 들이켰는데 이를 統廢合酒라고 불렀다. 요즘의 ‘爆彈酒’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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