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을 制霸하던 1936年은 日帝가 朝鮮民族의 얼과 뿌리를 송두리째 뿌리 뽑으려던 結晶基 였다. 內鮮一體 神社參拜 日本語 常用 創氏改名 等이 바로 그 좋은 例였다. 이에 맞선 朝鮮民衆의 抗日意識度 활시위만큼이나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朝鮮人과 日本人의 運動競技는 바로 이러한 兩 極點의 接點이라 할 수 있었다. 朝鮮民衆들은 蹴球 籠球 力道 마라톤 等 日本人과의 各種 運動競技에서 日本人들을 痛快하게 이김으로써 心理的 補償과 함께 民族意識을 드높이려 했다.
동아일보의 日章旗 抹消事件은 植民地 支配政策에 對한 正面 對決한 것이다. 30年代 後半의 抗日 民族鬪爭에 불을 지폈다고 할 수 있다. 손기정은 後날 日章旗抹消를 主動한 이길용記者를 "그분은 新聞 記者라기 보다 獨立志士 같은 人物이었다"고 回顧 했다.
이길용 記者의 3男인 이태영氏도 "韓國獨立鬪爭史에서 높이 評價되고 있는 이 義擧는 決코 한두名 記者의 個人的인 正義感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以心傳心으로 이뤄진 言論人 모두의 抗爭" 이라고 했다.
社會學者인 신용하 博士는 "올림픽 優勝의 榮光을 日本이 아닌 韓國民族의 것으로 確認하기 위한 勇敢한 言論의 代表的인 鬪爭"이라고 말했다.
손기정은 當時 베를린으로부터 歸國하는 途中 싱가포르에서 이 事件을 듣고 "나의 心境을 默示的으로 代身 表現해준 그 분들게 感謝하고 그 분들이 苦楚를 겪고 있어 罪悚한 마음이었다"고 述懷한바 있다.
1936年 12月에 作成된 當時 日帝의 政府文書 '쇼와 11年 執務報告' 에서도 이러한 事實은 確認되고 있다.
極祕로 分類된 이 文書의 '朝鮮民族이 마라톤 優勝選手로 인해 받은 衝動' 이라는 項目에서 "손, 男 두 選手의 勝利가 朝鮮民族의 民族的 覺醒과 團結을 부추겨 無視할 수 없는 事態로 發展될 可能性이 있다. 그리고 동아일보 社說에서 두 勇士의 優勝이 朝鮮의 피를 끊게 했고 한 番 일어서면 世界도 손안의 것이라는 信念과 氣魄을 가지게 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손選手 유니폼의 日葬마크를 故意로 抹殺한 寫眞을 揭載했다. 이로써 朝鮮이 日本에 勝利, 朝鮮獨立의 基礎가 이루어 진 듯이 생각하는 傾向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고 記述했다.
손기정 가슴에서 日章旗를 지운 寫眞은 1936年 8月 25日 午後 3時 東亞日報 2板부터 실렸다. 동아일보는 卽刻 武器停刊 되었다. 또한 現在 女性東亞 前身인 '新家庭'은 日章旗를 避하기 위해 손기정의 다리 部分 寫眞만을 싣고 "이것이 베를린마라톤 優勝者, 偉大한 우리의 아들 손기정의 다리'라는 說明을 붙인 것이 發覺되어 '신동아'와 함께 廢刊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