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詩人들의 社會
그들은 둘러앉아 雜談을 했다
담배를 피울 때나 뒤통수를 긁을 때도 그들은 詩的이었고
拍手를 칠 때도 拍子를 맞췄다
受賞作에 對한 論難은 애初부터 없었고
술자리에서 事故 치지 않았으며
夭折한 詩人들을 따라가지 않는 理由들이 분명했다
더 以上 믿을 수 없는 戀愛 事件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버릴 테다
이 文章을 愛用하던 그는
外國으로 나다니더니
旅行冊子를 出刊해 한턱 쏘았다 난 안 醉할 만큼 마셨다
重要한 건 그 자리에 빠진 이들
그 詩人들은 제 밥그릇 앞에서 祈禱를 하고 있는지
신촌의 作業室에서 애들이 기어다니는 房구석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지고 있는지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손끝에서
줄기와 꽃봉오리가 환해지는지
重要한 건 그런 게 없다는 것
아무도 안 죽고 난 哀悼의 詩도 쓸 수 없고
手術을 받으며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戀愛는 없고 사랑만 있다
重要한 건 아무것도 없다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詩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
―金이듬 ‘죽지 않는 詩人들의 社會’(‘말할 수 없는 愛人’ 文學과知性社, 2011 中에서)
詩가 밥 먹여주지 않지만…
詩가 밥 먹여주니? 가끔 故鄕에 내려가 마감한답시고 밤늦게까지 끙끙대는 나를 보면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신다. 아들 몸이 축나는 걸 보기 싫으신 것이다. 詩가 밥 먹여주지 않으므로, 어머니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間食을 가져다주신다. 時 代身 밥 먹여주기 위해. 나는 不得不 그것을 입에 넣는다. 맛있다. 글 쓸 맛이 난다. 눈에 힘이 들어간다. 열 個 손가락이 춤추기 始作한다. 밤이 깊어간다. 그 殊常함이 나를 다음 文章으로 데려간다.
다음 날, 上京해서 詩人들이 모인 술자리에 갔다. 한 詩人의 文學賞 受賞을 祝賀하는 자리였다. 놀랍게도, 或은 當然하게도 다들 詩人처럼 생겼다. 나는 좀 부끄럽다. 아직도 사람들은 내가 詩를 쓴다고 하면 ‘네가 무슨 詩를 써?’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뒤통수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줄기”가 시들고 “꽃봉오리”가 닫히는 것 같다.
우리는 生麥酒와 치킨을 注文하고 걸어 들어오는 受賞者를 반가이 맞이했다. 嫉妬와 시새움은 “애初부터 없었”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詩人이 무슨 奇人인 줄 안다. 혼자 漢江에 가서 독한 술을 甁째 마시는 줄 안다. “믿을 수 없는 戀愛 事件”에 連累되어 온몸으로 드라마를 쓰는 줄 안다. 아니다. 우리는 그저 “拍手를 칠 때도 拍子를 맞”출 程度의 센스를 갖춘 者들이다. 가끔 만나서 懷抱를 풀고 다음 날부터는 또다시 自己만의 詩를 쓰며 외로워지는 者들이다. “제 밥그릇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지는 者들이다. 이것을 謙虛히, 기꺼이 하는 者들이다.
한밤中에 原稿를 쓰다 말고 문득 想念에 잠긴다. 詩가 大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目的이 없다는 點에서,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點에서 詩는 빛을 發한다. 그것은 애初 무엇을 바라고 始作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스스로 바람 하나, 바람 한 點으로 完成되었다 사라지는 것이므로. 詩人은 “戀愛는 없고 사랑만 있”다는 걸 쓰면서 깨닫는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 잡을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바보같이, 그러나 바보라는 事實에 이따금 感動하기도 하면서.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손끝”을 想像한다. 손끝이 銳敏해지는 바로 그 瞬間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瞬間만큼은 어떻게든 품어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詩, 밥을 먹여주지는 못해도 밥풀이 되어 우리 소매 끝에 딱 달라붙는 時, 쓸모없어서 더 아름다운 詩,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사람들 가슴에 劃을 긋는 詩, 그 가슴속에서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詩. 世上에 하나밖에 없는 姿勢로 어룽지는 詩.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우리 詩는 더 오래 살 것이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