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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의 空間이 魔術的 空間으로 바뀌는 單 하루의 祝祭|週刊東亞

週刊東亞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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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作家의 音談樂談(音談樂談)

日常의 空間이 魔術的 空間으로 바뀌는 單 하루의 祝祭

‘우와페스티벌’을 아시나요?

  • 大衆音樂評論家

    noisepop@daum.net

    入力 2019-10-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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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2일 열린 
‘우와페스티벌’ 인포데스크와 대형 포스터, 그리고 페스티벌이 열린 골목을 대표하는 ‘커피프린스 1호점’ 앞(왼쪽부터). [사진 제공 · 김작가,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10月 12日 열린 ‘우와페스티벌’ 人胞데스크와 大型 포스터, 그리고 페스티벌이 열린 골목을 代表하는 ‘커피프린스 1號店’ 앞(왼쪽부터). [寫眞 提供 · 金作家, 원대연 동아일보 記者]

    서울 麻浦區 와우산로29길, 홍대 앞을 찾는 이들에게는 ‘커피프린스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다. 홍대 앞과 신촌의 境界에 있는 이 길은 週末에도 閑散한 便이다. 홍대 앞 인디 文化가 發芽한 1990年代에도 邊方이었다. 그때의 홍대 앞을 記憶하는 사람은 플라타너스가 茂盛한 住宅街를 떠올릴 만큼 이렇다 할 이슈가 없는 곳이었다. 

    ‘커피프린스 골목’이라는 別稱이 붙은 건 드라마 ‘커피프린스 1號店’의 撮影地였던 카페가 이 길 初入에 있기 때문인데, 이 드라마가 人氣를 끌면서 暫時 觀光地로 떠올랐던 게 全部다. 最近 연남동, 망원동으로 商圈이 擴大되면서 그나마 있던 流動人口度 많이 줄었다. ‘스트레인지 프룻’ ‘곱창전골’ 같은 音樂 술집 몇 곳이 이 洞네가 그래도 홍대 앞임을 喚起케 할 뿐이다.

    音樂 놀이터를 志向하는 祝祭

    ‘우와페스티벌’이 펼쳐진 10월 12일 하루 세탁소에서 디제잉을 하는 모습(왼쪽 위아래)과
DIY로 CD 케이스를 장식할 수 있게 제공된 소품과 수공예 도구들. [사진 제공 · 김작가, 사진 제공 · 잔다리 페스티벌]

    ‘우와페스티벌’이 펼쳐진 10月 12日 하루 洗濯所에서 디제잉을 하는 모습(왼쪽 위아래)과 DIY로 CD 케이스를 裝飾할 수 있게 提供된 小品과 手工藝 道具들. [寫眞 提供 · 金作家, 寫眞 提供 · 盞다리 페스티벌]

    번영한 적도 없기에 衰落이라는 表現을 쓰기도 語塞한 이 작은 길에서 페스티벌이 열렸다. 10月 12日 午後 2時부터 9時까지 ‘우와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홍대 앞에 있는 와우산 地名을 뒤집은 것이다. 지난해 始作된 이 페스티벌은 事實 페스티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規模다. 하지만 內容을 들여다보면 다른 페스티벌과 分明히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우와페스티벌의 指向點은 ‘音樂 놀이터’다. 이 골목에 있는 카페와 빈 店鋪는 勿論, 音樂과 상관없는 業場까지 하루 동안 音樂 空間으로 變身했다. 오래된 洗濯所에서는 디제잉이 펼쳐지고, 空室인 商街에는 노래房 機械가 設置됐다. 電報대와 建物 壁에 어지럽게 붙은 靑테이프 조각을 去來 手段으로 해 親環境 有機農産物을 살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됐다. 

    이 페스티벌을 主導한, 十센치(10cm)와 屋上달빛의 所屬社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事務室에서는 벼룩市場이 열렸으며, 뮤지션 레인보우99와 함께 卽席에서 音源을 만들 수 있는 機會도 주어졌다. 인디 뮤지션들로부터 받은 約 700曲의 音源을 바로 콤팩트디스크(CD)로 구워 주고, 參加者가 케이스를 直接 만드는 자리, 루프톱과 카페에서 열리는 公演이 주된 內容이었다. 韓國 인디音樂의 中心인 홍대 앞에서는 어떤 이벤트가 열려도 더는 新鮮하지 않지만, 音樂과 全혀 상관없는 空間이 參與型 音樂의 中心이 되는 瞬間은 分明히 新鮮했다. 



    이 페스티벌을 모르고 週末 홍대 앞을 찾은 사람도 平素라면 無心히 지나쳤을 洗濯所 앞에서 디제이가 트는 音樂에 맞춰 춤을 추고, 커피를 마시러 들른 카페에서 公演을 봤다. 平凡한 週末에 뚝 떨어진 색다른 이벤트였다. 無聊한 日常을 瞬息間에 바꿔놓은 洞네 祝祭를 구경하고 있노라니, 예전에 찾았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프랑스人 누구나 뮤지션이 되는 날

    1982년부터 매년 6월 말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  ‘페트 델 라 뮤지크’의 다양한 공연 현장들. [사진 제공 · 김작가, 뉴시스]

    1982年부터 每年 6月 末 프랑스 全域에서 열리는 ‘페트 델 라 뮤지크’의 다양한 公演 現場들. [寫眞 提供 · 金作家, 뉴시스]

    파리는 魅力的인 都市다. 이 事實을 否認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無聊한 都市이기도 하다. 24時間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의 삶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種種 그렇다. 特히 시끌벅적한 밤 文化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하다. 해질 무렵이면 商店이 大部分 門을 닫고 休日에는 마치 幽靈 都市가 된 것처럼 閑散하다. 

    이런 파리가 미쳐 돌아가는 날이 있다. 世界 各國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스의 威力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있다. ‘페트 델 라 뮤지크’가 열리는 每年 6月 末 어느 날이다. 1982年 始作된 이 페스티벌의 起源은 자못 浪漫的이다. 當時 프랑스 文化長官이던 자크 랭은 프랑스人의 文化 實態調査에서 約 500萬 名의 프랑스人이 樂器를 다룰 수 있다는 統計에 注目했다. 그래서 누구나 길거리에서 公演할 수 있는 날을 企劃했다. 그해 夏至人 6月 21日, 첫 番째 페트 델 라 뮤지크가 誕生했다. 

    이날은 프랑스 全域에서 公演이 열린다. 平素 프랑스人의 아침을 責任지는 빵집 主人, 退勤 後 저녁마다 헤드폰을 끼고 혼자 디제잉 練習을 하는 會社員이 이때는 洞네마다 設置된 舞臺에서 洞네 사람들을 對象으로 公演을 펼친다. 大多數 小都市는 廣場에 設置된 臨時舞臺에서 地域民들을 앞에 놓고 조촐한 잔치를 갖지만, 파리 같은 大都市는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샹젤리제, 생제르맹 等 繁華街는 勿論이고 파리 구석구석에 舞臺가 設置된다. 곳곳에 들어찬 舞臺에서 하루 終日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서로 다른 장르로 公演을 펼친다. 잘하는 팀도 있고 못하는 팀도 있지만 그런 건 하나도 重要하지 않다. 어딜 가나 音樂이 들리고 喊聲이 들린다. 平素라면 느릿하게 길을 걸을 現地人과 觀光客이 自己가 願하는 장르의 公演이 열리는 곳으로 줄지어 바삐 움직인다. 

    日常의 파리 안에 잠들어 있는 底力이 뿜어져 나오나 싶지만, 더 뜨거운 瞬間도 기다리고 있다. 舞臺 밖에서 時間들 말이다. 公演이 열리는 舞臺와 舞臺 사이를 傳統衣裳을 입은 채 흥겹게 行進하는 아프리카, 이슬람圈 住民을 보면 世界 어느 나라에나 있는 興의 多樣한 결이 느껴진다. 韓國에서라면 시끄럽다고 느껴졌을 게 分明한, 一種의 風物놀이가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그뿐 아니다. 住宅街 골목 스튜디오型 住宅에 사는 靑年들이 窓밖을 向해 스피커를 設置하고 房에서 디제잉을 펼친다. 담배를 피우려고 골목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그 音樂에 맞춰 춤판을 벌인다. 正式으로 舞臺를 얻지 못한 뮤지션들은 카페와 술집, 甚至於 建物 屋上에서 公演한다. 只今은 불타버린 노트르담大聖堂 周邊의 한 建物 위에서 혼자 레게를 연주하던 어떤 자메이카 靑年을 밑에서 올려다본 記憶이 생생하다. 大聖堂의 長官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밥 말리의 音樂이 그날만큼은 祝祭를 滋養分 삼아 더할 나위 없이 잘 녹아들었다.

    韓國의 ‘페트 델 라 뮤지크’를 꿈꾸며

    그동안 일이라는 핑계로 世界 여러 페스티벌을 다녔다. 來韓을 꿈꾸기 힘든 大型 뮤지션의 公演도 많이 봤다. 有名 뮤지션은 單 한 名도 出演하지 않는 페트 델 라 뮤지크의 하루가 아직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理由는 韓國의 페스티벌 또는 祝祭 文化가 나아가야 할 方向을 거기서 봤기 때문이다. 1年에 하루 程度 市民이 公演者가 될 수 있는 祝祭, 日常의 空間이 특별한 場所로 바뀔 수 있는 祝祭, 무엇보다 조금만 시끄러워도 民願을 넣는 사람 모두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音樂을 즐기고 여름의 始作을 느낄 수 있는 그런 祝祭 말이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韓國 大都市에서는 只今까지도 볼 수 없는 그런 祝祭를 파리 페트 델 라 뮤지크에서 經驗했다. 그런 祝祭를 내가 사는 洞네에서 만나보고 싶었다. 그 마음은, 바람은 다시 찾아온 서울의 삶에 묻혀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忽然히 찾아온 우와페스티벌에서 그 마음과 바람을 再會했다. 우와페스티벌이 좋은 모델이 돼 홍대 앞 귀퉁이에서 始作해 서울 全域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나아가 全國的인 祝祭의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어느 이름 모를 디제이가 洗濯所에서 트는 音樂을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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