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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에 ‘空짜 點心’은 없다|신동아

그린에 ‘空짜 點心’은 없다

  • 유현종 < 작가="">

    入力 2004-09-07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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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를 치러 다닌 지도 벌써 20餘 年이 넘었다. 平均 한두 週日에 한番 程度는 필드를 나가지만, 골프 約束만 잡으면 아직도 前날 밤엔 逍風 가는 初等學生처럼 興奮이 되어 잠을 설친다. 아무리 골치 아픈 일이 山積해 있어도 一旦 골프場을 向해 길을 나서면 온갖 시름과 苦悶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製造業을 하고 있는 내 親舊 이야기. 前날 收金한 돈을 銀行에 넣지 못하고 이른 아침 미리 부킹한 골프場에 나갔다. 게임이 끝난 뒤에 넣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웬걸. 그날 따라 골프가 잘되는 바람에 幸福에 젖어 있던 이 親舊, 그만 銀行에 가는 걸 까맣게 잊어먹고 일次不渡를 내고 말았다. 勿論 돈은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골프가 좋아서 저지른 失手다.

    이토록 골프에 熱狂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골프競技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景致 좋은 골프 코스 때문일까.

    사바나의 草原을 본 일이 있는가. 사바나는 中央 아프리카의 툭 터진 아름다운 草原이다. 人類의 元祖는 이 사바나의 草原에서 태어나 世界 各處로 흩어지며 여러 民族이 되었다는 것이 進化論者들의 主張이다. 사바나 附近 드넓은 정글 속에 人間의 始祖인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中 사바나의 草原으로 나온 種族들은 人間으로 進化하여 世界 各處로 移住해 갔지만 남은 무리들은 정글을 벗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그냥 원숭이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바나의 草原’李 人類의 故鄕인 셈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트인 平原이나 草原을 좋아하는 理由는 다름아닌 歸巢(歸巢)本能 때문이리라.

    월드컵이 열리는 競技場을 찾았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푸른 잔디밭은 물氣를 머금어 玲瓏하게 빛나고 있었고, 얼룩말처럼 유니폼을 입은 검은 皮膚의 아프리카 選手들과 白人 選手들이 뒤엉켜 공을 차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마치 나도 사바나의 平原에 와 選手들과 함께 ‘사냥감(蹴球공)몰이’를 하고 있다는 錯覺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스포츠 中에서 이 歸巢本能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種目은 골프가 아닌가 한다. 골프는 가장 넓은 競技場이 必要하다. 거리로만 따지자면 約 10km, 坪數로 따지자면 30萬坪 程度의 草原에서 試合을 한다.

    이 草原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푸르른 언덕이 있는가 하면 숲이 우거진 골짜기도 있으며 시냇물도 흘러가고 여기저기 모래밭(벙커)과 작은 蓮못(워터 해저드)도 있다. 이처럼 完璧하게 사바나 草原을 옮겨 縮小해놓은 競技場이 또 있으랴.

    골프 競技의 規則을 만들고 코스를 設計한 사람들은 英國人들이다. 그래서인지 골프를 가리켜 紳士의 스포츠라 한다. 相對方이 티샷을 날리면 굿샷이라 一齊히 외쳐주고,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할 때면 옆 사람들도 꼭 들어가달라고 祈禱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한다. 안 들어가면 모두 슬픈 얼굴을 하고 一齊히 아깝다는 歎聲을 發한다.

    “그거야말로 僞善이며 狡猾함이 아니냐. 마음 속으로는 오비나 났으면 바라면서도 굿샷이라 외치며 歡聲을 질러주어야 한다니. 相對方이 안 들어가면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웃기는 소리 말아라. 내기 게임에서 한 타 지고 있기라도 하다면, 퍼팅을 하려고 셋업에 들어간 相對를 위해 제발 넣어주기를 祈禱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或 제발 들어가지 말고 ‘설거지’만 하고 나와달라고 빈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大部分이다. 勿論 나도 그랬다. 그러나 골프에 맛을 들이고 나니 이제야 왜 紳士의 스포츠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골프場에서는 내가 곧 審判이다. 自身과 싸워 이겨야 하는 競技가 바로 골프다. 修道하는 姿勢로 마음 속에 이는 葛藤을 다 겪어내고 ‘解脫’해야 비로소 眞짜 紳士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매너와 에티켓만 그런 게 아니다. 18홀 하나하나는 藝術作品처럼 아름답게 設計돼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갖가지 障礙物과 陷穽이 도사리고 있는 荊棘(荊棘)의 길이다. 한 고비 넘어가면 또 한 고비, 어쩌면 그렇게 삶의 길과 닮아있는지.

    앞에서 말한 내 親舊는 나와 오랫동안 필드를 누벼왔고 實力도 제법 좋은 便이다. 그렇지만 꼭 같은 홀에서 恒常 똑같은 失手를 反復하곤 한다. 그 홀에서 그가 치는 티샷은 언제나 똑같은 方向으로 날아간다. 세컨드샷을 하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린 앞의 벙커에 빠지거나 아니면 왼쪽 러프에 들어간다. 攻擊 方法(事業 方法)李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잘못된 攻擊 方法을 깨닫고 새로운 戰略을 緻密하게 세워 挑戰해야 할 텐데, 늘 ‘失手’라고만 할 뿐 고치려는 意志가 弱하다.

    그러면서도 ‘서비스 홀’에만 오면 거저 먹으려고 잔뜩 벼른다. 어느 골프場에나 있는 서비스 홀은 페어웨이도 시원하게 넓고 반듯한 데다 距離도 짧고 그린의 難易度도 平易하다. 온갖 試鍊에 지친 골퍼들을 慰勞해주기 위해 클럽에서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다.

    “서비스 홀이니까 맘 놓고 잘 치세요.”

    캐디의 그 한마디에 그 동안 쌓인 온갖 짜증이 一時에 다 날아간다. 서비스 홀, 얼마나 멋진 말인가. 前 홀에서 까먹은 點數는 여기서 單 한番에 挽回할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내 親舊 亦是 이곳에서는 반드시 버디를 잡고야 말겠다며 있는 힘을 다해 휘두른다. 그런데 結果를 보면 늘 ‘亦是나’다. 다른 홀보다 서비스 홀에 와서 더 粥을 쑤는 理由는 무엇일까. 親舊는 알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지만 나는 알 듯하다. 世上에 거저 먹을 홀이 어디 있는가. 다른 홀보다 難易度가 좀 낮다는 것일 뿐, 갖추고 있는 艦艇은 똑같다. 어떤 서비스 홀은 距離도 속인다. 세컨드샷 支店에서 그린까지의 距離가 120yd가 넘는데도 100yd 말뚝을 박아놓아, 公이 恒常 앞에 있는 벙커에 빠지게 만들어놓은 境遇다.

    사바나 草原의 獅子도 열 番 試圖하면 사냥 成功率이 서너 番을 넘지 못한다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탁 트인 골프場이 주는 歸巢本能과는 또 다른 種類의 ‘데자뷰(旣視感)’가 떠오른다. 사바나의 草原이나 世上살이나 골프나 모두 매한가지가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나는 親舊에게 시카고 經濟學派의 金言 한마디를 들려주었다.

    “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世上天地 空짜 點心은 없는 法이니라).”

    사바나에서 眞理面, 삶에서도 眞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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