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釜山의 환희 大邱의 한숨 仁川의 눈물|新東亞

釜山의 환희 大邱의 한숨 仁川의 눈물

韓國蹴球, 奇跡의 現場을 가다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入力 2004-09-06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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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競技場에서 길거리에서 TV 앞에서…. 5000萬 國民은 목이 터져라 ‘大~韓民國’과 ‘오 必勝 코리아’를 외쳤다. 그리고 奇跡이 일어났다. FIFA랭킹 40位인 韓國이 5位인 포르투갈을 깨고 待望의 월드컵 16强에 進出한 것이다. 全國의 거리는 붉은 물결로 뒤덮였고, 地球村 蹴球팬들은 驚愕했다. 2002年 6月, 韓國은 分明 世界를 놀라게 했다. 그 가슴 뭉클한 現場을 密着 取材했다.
    後半 25分. 이영표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反對쪽으로 크로스 센터링을 올렸다. 가슴으로 볼의 速度를 죽인 박지성은 오른발로 포르투갈 콘세이상의 키를 살짝 넘긴 뒤,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볼이 그라운드에 닿는가 싶더니 박지성의 왼발이 불을 뿜었다. 포르투갈 바이아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뚫는 골이었다. 敢히 58스웨덴월드컵 決勝戰에서 브라질의 펠레가 빚어낸 妙技와 94미국월드컵 準準決勝에서 네덜란드의 베르캄프가 선보인 藝術에 견줄 만한 그림 같은 슛이었다.

    優勝候補 포르투갈은 그렇게 무너졌다. 66잉글랜드월드컵에서 北韓에 뼈아픈 3代5 逆轉敗를 안겼고, 91世界靑少年蹴球大會에서도 歷代 最强의 南北單一팀을 울렸던 포르투갈. 韓國蹴球는 바로 그들을 祭物로 16强 進出의 快擧를 이룩했다. 韓國人들은 2002年 6月14日 밤의 感動을 永遠히 잊지 못할 것이다. 釜山에서 大邱로, 大邱에서 仁川으로 옮겨가며 韓半島 全域을 들끓게 했던 ‘16强 神話’의 現場을 直接 取材했다.

    釜山에서 始作된 神話

    어딘가 모르게 不安한 出發이었다. 一部 蹴球人들은 操心스럽게 98프랑스월드컵의 惡夢을 떠올렸다. 황선홍의 負傷, 選手團의 不和說, 첫 競技 逆轉敗…. 생각만해도 끔찍한 4年 前의 記憶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韓國팀은 여러 모로 成熟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中心에 거스 히딩크라는 名將이 있었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開幕展이 벌어진 5月31日, 某 스포츠新聞 1面에 ‘최용수의 負傷이 히딩크 監督에 對한 抗命日 수도 있다’는 暴露性 記事가 실렸다. 이것이 事實이라면 代表팀의 競技力을 크게 해칠 만한 엄청난 事件이었다. 히딩크 監督과 최용수는 報道內容을 强力히 否認하며 早期鎭火에 나섰다. 곧이어 살림꾼 이영표가 차두리와 부딪쳐 쓰러지는 바람에 첫 競技에 뛸 수 없다는 悲報가 選手團을 憂鬱하게 만들었다. 빨리 엔트리를 交替해야 한다는 要求가 빗발치는 渦中에 히딩크는 “그대로 간다. 이영표는 꼭 必要하다”며 選手들의 動搖를 막았다.



    慶州 訓鍊캠프를 떠나 釜山으로 移動하면서 히딩크 監督은 폴란드戰에 剛한 自信感을 보였다. 싸움을 앞둔 將帥가 勝利를 壯談하는 것은 當然한 일이지만, 히딩크의 餘裕는 여느 때와 달랐다. 그것은 韓國代表팀이 釜山에서 나이지리아와 스코틀랜드를 꺾었다는 歷代 戰績 以上의 意味를 품고 있었다. 히딩크監督은 이미 東歐圈의 强豪 폴란드의 長短點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폴란드戰을 하루 앞둔 6月3日 저녁부터 釜山 사직동은 蹴球熱氣에 휩싸였다. 6月4日 아침부터 殘餘 티켓을 팔겠다는 發表가 나온 直後 全國에서 蹴球팬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光州에서 濟州에서 달려온 사람들은 “韓國蹴球가 이番에는 48年의 恨을 풀 수 있을 것 같다”며 들뜬 모습으로 밤을 지새웠다.

    6月4日 午前 記者가 社稷洞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 到着했을 때 野球長 周邊은 長蛇陣을 이루었다. 티켓 賣盡이 時時刻刻 다가오면서 選擇받은 少數와 選擇받지 못한 多數의 喜悲가 엇갈렸다. 10m 앞에서 티켓이 끊겼다는 金泳鎭(45)氏는 “暗票라도 救하려고 30萬원이나 準備했는데” 라며 아쉬워했고, 이틀째 營業을 抛棄하고 줄을 섰다는 택시技士 우영범(38)氏는 “일찌감치 海雲臺에 가서 자리를 잡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蹴球팬들의 熱氣와는 다른 側面에서 記者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釜山의 날씨가 생각했던 것 以上으로 무더웠기 때문이다. 午前인데도 나무 그늘을 찾는 市民들의 모습에서 좋은 徵兆가 보였다. 氣象廳은 6月4日 저녁 釜山地方의 氣溫이 20℃를 若干 上廻할 것이라고 發表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釜山 競技場의 氣溫은 23.9℃(體感溫度는 28℃ 안팎)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濕度는 70%. 韓國으로서는 天惠의 要塞에서 폴란드를 만난 셈이다. 마치 諸葛孔明과 周遊家 赤壁에서 曹操의 百萬大軍을 蹂躪했던 것처럼.

    4日 午後 4時. 競技場 周邊이 붉게 물들기 始作했다. 10餘 名씩 무리를 지은 폴란드 應援團이 暫時 氣勢를 올리기도 했지만, 금세 ‘大韓民國’을 외치는 붉은 惡魔의 喊聲에 묻혀 버렸다. 野球場 앞에서는 風物牌가 雰圍氣를 돋우었고, 室內體育館으로 이어지는 道路邊에는 社會保險 勞動者들이 示威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붉은色 옷차림이어서 얼핏 ‘붉은 惡魔’처럼 보였다.

    이 무렵 社稷洞 周邊 食堂과 호프집에서는 中國 代 코스타리카戰, 日本 代 벨기에戰을 視聽하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삼성전자 代理店 앞에는 大型 멀티비전 두 臺가 日本戰을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校服 차림의 靑少年들이 性別로 나뉘어 應援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벨기에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男學生들이 拍手를 치는가 하면, 日本이 得點한 瞬間에는 女學生들의 喊聲이 터져나왔다.

    2代2. 日本과 벨기에는 끝내 勝負를 가리지 못했다. 일찌감치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 入場한 觀衆들은 日本이 비겼다는 消息에 안타까운 反應을 보였다. 사우디와 中國이 敗했기 때문에 韓國과 日本이 이겨야만 아시아 蹴球의 體面이 선다는 사람들이 意外로 많았다. 재미있는 건 어느 누구도 韓國이 폴란드에 질 것으로 豫想하지 않았다는 點이다. 韓國이 FIFA랭킹에서 한참 뒤지는 데도 韓國 蹴球팬들은 樂勝을 점치고 있었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그 解答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時間이 걸리지 않았다. 5萬4000名을 受容하는 競技場이 조그만 틈도 없이 꽉 들어찼다. 四方이 붉게 물든 가운데, ‘붉은 惡魔’가 主導하는 應援에 觀衆들이 뜨겁게 呼應했다. 本部席 건너便 오른쪽에 자리잡은 폴란드 應援席에서는 이따금씩 國旗만 휘날릴 뿐, 運動場 雰圍氣에 짓눌린 모습이 歷歷했다.

    드디어 選手團이 入場하고 兩國 國家가 演奏되는 瞬間, ‘붉은 惡魔’가 ‘Win 3:0’이라는 카드섹션을 演出했다. 곧이어 中繼放送 카메라가 貴賓席을 비추자 兩國 頂上의 모습이 妙한 對照를 이루었다. 김대중 大統領이 빨간 帽子에 應援用 머플러를 목에 걸고 拍手를 친 反面, 알렉산더 크바시니에브스키 폴란드 大統領은 自國의 國家演奏가 끝나기도 前에 應援을 始作한 붉은 惡魔를 바라보며 人相을 찌푸렸다.

    휘슬이 울리기도 前에 ‘붉은 惡魔’가 機先 制壓에 나섰다. 5萬餘 名이 同時에 ‘大~韓民國 짝짝짝 짝짝’을 連呼하는 長官이 펼쳐졌다. 폴란드는 그라운드 雰圍氣를 反轉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세차게 몰아붙였다. 폴란드의 원터치 롱패스에 韓國 守備陣이 잇따라 뚫렸다. 觀衆들은 폴란드 選手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郵’ 하고 喊聲을 질렀지만, 폴란드의 氣勢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20分이 흘러갔다.

    多少 守勢的이었던 競技의 흐름은 아주 엉뚱한 곳에서 反轉됐다. 최후방에 처져 있던 홍명보가 센터 서클을 넘어 폴란드 門前으로 치고 들어가 會心의 中距離슛을 날린 것이다. 비록 볼은 폴란드 守備手의 몸을 맞고 골문 뒤便으로 날아갔지만, 이 한放을 起點으로 韓國 選手들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홍명보가 나가면 雰圍氣가 바뀐다’는 某 放送社 아나운서의 말처럼, 韓國 選手들은 暫時 後 韓半島 全域을 뒤흔드는 ‘事故’를 치고야 말았다.

    前半 25分 이을용이 왼쪽에서 낮은 센터링을 올렸다. 폴란드 守備를 通過한 볼은 자로 잰 것처럼 황선홍의 발끝에 달라붙었다. 황선홍이 角度를 90度나 틀어 왼발로 剛하게 발리슛을 때렸는데, 그것이 폴란드 두데크 골키퍼를 뚫었다. 골이었다. 손에 가볍게 입을 맞춘 황선홍은 咆哮하는 獅子처럼 韓國팀 벤치로 뛰어나가며 골 세리머니를 演出했다. 1代0. 황선홍 個人으로서는 A매치 50番째 골이었고, 韓國이 월드컵에 挑戰한 以來 두番째로 뽑아낸 先取골이었다.

    5萬餘 觀衆이 一齊히 일어나 喊聲을 질렀다. 메인 카메라는 눈물을 글썽이는 붉은 惡魔와 두 주먹을 불끈 쥔 황선홍의 모습을 繼續해서 클로즈업했다. 히딩크 監督이 特有의 주먹 지르기 포즈를 取하는 場面도 數次例 컬러 電光板을 裝飾했다. 또다시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는 ‘大~韓民國’…. 풀죽은 모습으로 킥오프 하는 폴란드 選手들…. 勝負의 軸은 일찌감치 韓國 쪽으로 기울었다.

    무엇보다 황선홍이 得點한 點이 記者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는 建國大 時節 演習競技에서 펄펄 날다가도 實戰에서는 몸싸움이 弱해 苦戰했다.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水道가에서 물을 가득 퍼마시고 試合에 나섰다는 황선홍, 그렇게 들이킨 水道물이 몸속에서 일으키는 리듬을 따라 슛을 때렸다는 황선홍…. 그렇게 출렁거리며 골을 터뜨려 別名도 ‘황새’였던가.

    “폴란드가 얼었어”

    前半戰이 끝났다. 記者는 옆에 앉아 있는 명지대 김희태 監督에게 觀戰評을 付託했다. 金監督은 한마디로 競技內容을 整理했다. 亦是 프로는 다르다.

    “폴란드가 얼었어.”

    金監督은 골을 넣은 황선홍보다 뒤에서 熱心히 커버플레이를 한 박지성 김남일 유상철의 能力을 높이 評價했다. 特히 박지성에 對해서는 稱讚을 아끼지 않았다. 새삼 두 사람이 司祭間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성이가 高等學校 卒業하고 大學 갈 實力이 안됐잖아. 그런데 저 놈을 데리고 濠洲 轉地訓鍊 가서 프로팀과 맞붙였거든. 그리고 나서 허정무 監督이 이끌던 올림픽代表팀과 評價戰을 벌이면서 눈에 띈 거야. 許監督이 知性이를 뽑으니까 얼마나 말들이 많았다고. 나하고 親해서 뽑았다나 어쨌다나. 내가 볼 때는 韓國代表팀에서 지성이가 最高야.”

    박지성은 명지대 時節부터 “발에 모터를 달고 다니는 選手”로 불렸다. 90分 내내 쉴새 없이 뛰기 때문에 붙여진 別名이다. 하지만 부지런한 움직임에 비해 매스컴의 注目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 박지성에게 金監督은 얼마 前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너도 틈이 나면 드리블을 하고, 슛도 날려라. 그래야 스타가 될 수 있다” 金監督은 박지성이 잉글랜드戰과 프랑스戰에서 連續 골을 터뜨리자, 自身의 注文이 통한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後半戰이 始作됐다. 競技의 主導權은 完全히 韓國으로 넘어왔다. 황선홍 代身 들어온 安貞桓이 攻擊에 活氣를 불어넣었다. 폴란드 選手들은 自身들의 스타일을 全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팀이 어떻게 유럽豫選에서 노르웨이와 우크라이나를 물리쳤을까 하는 疑懼心이 들 程度였다.

    後半 8分 페널티에어리어 中央을 치고 들어가던 유상철의 오른발이 번쩍들리는가싶더니 폴란드 골문에 걸린 六角形 그물이 세차게 흔들렸다. 유상철은 ‘붉은 惡魔’가 位置한 스탠드를 向해 손바닥을 아래에서 위로 긁어 올리는 골 세리머니를 演出했다. 5萬餘 觀衆이 一齊히 자리에서 일어나 98프랑스월드컵 벨기에戰에 이어 두 競技 連續골을 터뜨린 유상철을 連呼했다.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韓國蹴球의 期待株로 떠올랐고, 日本 J리그에서는 골게터로 活躍한 柳想鐵. 그도 건국대를 나왔다. 高等學校에서 잘한다는 選手는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에 몰리던 時節, 그는 고정운 황선홍과 더불어 건국대가 輩出한 슈퍼스타다. 蹴球專門家들은 말한다. 유상철의 플레이는 거칠지만, 그의 ‘한放’은 可恐할 만하다고. 유상철은 攻擊과 미드필드, 守備能力을 두루 갖춘 멀리플레이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히딩크 監督의 남다른 信任을 얻을 수 있었다.

    後半 16分 유상철이 負傷으로 빠지고 이천수가 들어왔다. 히딩크 監督은 이천수를 사이드로 돌리고 박지성을 中央에 配置했다. 두 골 次에 滿足하지 않고 追加골을 터뜨리겠다는 計算이었다. 하지만 안정환 박지성 차두리는 決定的인 찬스를 번갈아가며 霧散시켰다. 韓國蹴球의 월드컵 징크스 中 하나인 ‘두 골의 壁’李 實感나는 瞬間이었다.

    後半 43分. ‘붉은 惡魔’는 “이겼다”를 合唱하기 始作했다. 폴란드 選手들은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力不足이었다. 패스는 番番이 끊겼고, 位置選定과 方向轉換도 유럽豫選 때와 달라 보였다. 2002年 3月28日 日本과의 評價戰에서 두 골을 失點하고 허둥대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침내 主審이 競技終了를 알렸다. 히딩크 監督은 코칭스태프와 一一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월드컵 挑戰 48年만의 첫勝을 自祝했다. 韓國 選手들이 골대 뒤便 廣告板을 뛰어넘어 ‘붉은 惡魔’ 應援席으로 달려가자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은 또 한番 狂亂의 雰圍氣에 휩싸였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觀衆들의 歡呼에 答한 히딩크, 興奮을 이기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어던진 차두리와 이천수, MVP로 選定돼 카메라에 둘러싸인 柳想鐵…. 韓國蹴球 100年 歷史를 바꾼 祝祭는 그렇게 달아올랐다.

    韓國 選手들이 라커룸으로 退場하자 이番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會長이 運動場으로 내려왔다. 鄭會長은 붉은 惡魔 應援席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鄭會長은 應援團과 함께 ‘大~韓民國’을 외치면서 運動場 트랙을 한바퀴 돌았다. ‘월드컵이 끝난 뒤 큰 꿈을 꾸겠다’며 大權挑戰의 뜻을 밝혀온 그였기에, 폴란드戰 勝利의 意味는 남달랐을 것이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周圍를 가득 메우고 목이 터져라 ‘大韓民國’을 외치는 蹴球팬들을 뒤로하고 海雲臺로 向했다. 이날 釜山에서는 10餘 個의 大型 電光板이 設置됐는데, 부산역 廣場과 海雲臺에 가장 많은 人波가 몰렸다. 海雲臺로 가는 동안 都心 곳곳에서 유럽에서나 볼 수 있던 風景들이 펼쳐졌다. ‘大~韓民國’ 拍手에 맞춰 自動車 警笛을 울리는가 하면, 大型 太極旗를 들고 道路 한복판으로 疾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避해가며 조심스럽게 車를 몰던 택시 技士는 “월드컵 開幕日 以後 無斷橫斷과 合乘 團束이 甚했는데, 오늘은 다 봐주는 것 같아요. 蹴球가 참 대단하네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6月5日 0時30分. 海雲臺는 대낮처럼 밝았다. 道路邊에서는 술판이, 海水浴場 白沙場에서는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蹴球가 끝난 지 두 時間이 지났는데도, 祝祭는 繼續되었다. 언더그라운드 歌手가 나와 ‘라밤바’를 부르자 外國人과 ‘붉은 惡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激情的인 댄스를 선보였다. 노래가 끝나면, ‘大~韓民國’ 拍手가 이어지고, 拍手가 멈추면 또 다시 춤판이 벌어졌다.

    始作이 半이라면 韓國은 5部 稜線을 突破한 셈이었다. 難敵으로 豫想했던 폴란드를 물리쳤기 때문에 16强進出 可能性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記者는 ‘포르투갈이 美國을 물리치면 餘裕있게 美國戰을 準備할 수 있을 것’이라는 希望을 품고 6月5日 水原월드컵競技場에 到着했다. 水原에 모인 蹴球팬들도 폴란드戰의 感激이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포르투갈과 美國이 몸을 푸는 中에도 韓國의 폴란드戰 골 場面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現場에서 兩 팀을 分析中인 히딩크 監督의 모습이 電光板에 나타나자 觀衆들은 歡呼했다.

    美國은 플레이메이커 레이나와 攻擊手 매시스가 빠진 反面, 포르투갈은 負傷에서 完快되지 않은 피구까지 投入했다. 때문에 베스트 11의 面面에서 포르투갈의 優勢를 점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공은 둥글고, 蹴球는 人間의 身體 中 가장 不正確한 발로 하는 스포츠인 것을….

    蹴球공은 둥글다

    競技 始作 3分 만에 美國의 오브라이언 選手가 先取골을 터뜨렸다. 唐慌한 포르투갈 守備들은 공을 걷어내기에 바빴고, 美國은 그 틈을 銳利하게 파고들었다. 前半 29分 포르투갈의 自殺골과 35分 맥 브라이드의 그림 같은 헤딩슛으로 스코어는 瞬息間에 3對0으로 벌어졌다. 이제 66잉글랜드월드컵의 에虞祭비오가 아니라면 포르투갈은 恥辱의 敗北를 當할 수밖에 없다. 果然 피구는 에虞祭비오의 뒤를 이을 것인가?

    포르투갈의 反擊은 너무 늦게 불이 붙었다. 몸이 무거운 選手들은 패스미스가 나올 때마다 神經質的인 反應을 보였고, 巧妙하게 時間을 끄는 美國 選手들의 플레이에 말려들어 쓸데없는 파울을 濫發했다. 3代2. 優勝候補 포르투갈의 데뷔戰은 초라했다. 選手들은 人事도 하지 않고 라커룸으로 退場했고, 포르투갈 應援團은 茫然自失한 表情으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1라운드 結果 當初 2强으로 꼽혔던 포르투갈과 폴란드가 나란히 1敗를 記錄하면서, D그룹도 ‘죽음의 條’로 突變했다. 水原월드컵競技場에 나온 蹴球人들은 한결같이 “포르투갈이 첫 競技에서 敗했지만 儼然한 優勝候補이고, 폴란드도 無氣力하게 3敗를 當할 팀이 아니다”라고 評價했다. 그렇다면 6月10日 韓美戰은 運命의 激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팀이든 敗하면 16强 競爭에서 밀려날 可能性이 높아진 것이다. 이番만은 ‘境遇의 數’라는 덫에 빠지지 않기를 期待했지만 D그룹의 版圖는 2次方程式을 넘어 3次方程式 水準으로 얽혀버렸다.

    韓國과 美國. 두 나라의 對決은 이미 蹴球 競技 以上의 意味를 품고 있었다. 某 大學 總學生會가 反美應援을 펼치겠다고 宣言하자, 政府는 反美應援을 規制하겠다고 發表했다. 붉은 惡魔는 記者會見을 통해 ‘反美應援은 없다’고 못박았지만, 솔트레이크시티 冬季올림픽 쇼트트랙 競技에서 美國의 懊惱 選手에게 金메달을 빼앗긴 金東成은 苦心 끝에 大邱行을 抛棄했다. ‘金東成이 나타나면 觀衆들이 興奮할 수도 있다’는 게 競技觀覽을 取消한 理由였다.

    韓美戰을 앞둔 兩팀의 神經戰도 대단했다. 特히 審判問題를 놓고 兩側은 不便한 心氣를 드러냈다. 먼저 韓國은 美國代表팀이 FIFA 審判들과 같은 호텔에 묵은 것을 問題삼았다. 이 호텔은 當初 韓國代表팀의 投宿을 拒否한 곳이어서 더욱 問題가 됐다. 結局 FIFA가 韓國의 抗議를 받아들여 審判陣의 宿所를 옮기는 것으로 波紋이 마무리됐지만, ‘美國이 돈으로 審判을 구워삶으려 한다’는 世間의 疑惑마저 잠재우지는 못했다.

    反面 美國은 韓美戰 主審 우르스 마이어氏에 對한 不滿을 迂廻的으로 터뜨렸다. 마이어氏는 98프랑스월드컵 美國 對 이란戰에서 主審을 맡았는데, 美國은 이 競技에서 이란에 敗했기 때문이다. 또한 美國 記者들은 ‘스위스 審判이 나오면 진다’는 歷代 월드컵의 징크스를 떠올리며 韓國의 홈 어드밴티지를 警戒하는 모습을 보였다.

    大邱의 날씨는 最上

    6月10日 아침 7時. 記者는 全南 木浦에서 光州로 가는 버스를 탔다. 라디오에서는 ‘손석희의 視線集中’이 흘러나왔다. 날이 날인지라 이 프로그램은 韓美戰 消息에 긴 時間을 割愛했다. 어떤 女學生이 蹴球를 꼭 보고 싶은데, 授業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하자, 손석희 아나운서는 直接 擔任 先生님과 通話하면서 “오늘은 短縮授業을 할 수 없냐”고 要請했다.

    光州에서도 蹴球의 熱氣는 대단했다. 高速버스터미널 앞에서 遊說中이던 地方選擧 候補者는 “午後 3時부터는 遊說를 中斷하고, 蹴球를 봅시다”라며 ‘蹴球는 韓國, 市場은 ○○○’이라는 口號를 외쳤다. 터미널側은 “午後 3時 以後에 出發하는 高速버스는 大邱行 外에는 티켓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大邱로 떠나는 버스에는 붉은 色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8時20分. 光州地域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始作했다. 光州에서 大邱로 넘어가는 동안 車窓에 빗물이 繼續해서 부딪혀왔다. 智異山 자락의 끄트머리인 居昌休憩所를 넘어갈 무렵에는 雨傘 없이 다니기 힘들 만큼 빗발이 굵어졌다.

    많은 蹴球專門家들이 美國戰은 더울수록 유리하다고 展望했다. 그것은 韓國 選手들이 體力的으로 앞서기 때문이다. 韓國은 歷代 월드컵에서도 惡條件일수록 좋은 競技를 펼쳤다. 最初의 無勝負를 記錄한 86멕시코월드컵 불가리아戰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水中戰이었고, 最高의 名勝負로 꼽히는 94미국월드컵 獨逸戰은 40℃의 불볕 더위 속에서 치러졌다. 그런 點에서 韓國이 午後 3時30分에 大邱에서 美國과 만난 건 幸運이었다.

    하지만 適當히 비가 내릴 境遇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長대비가 퍼붓는 狀況이라면 不利할 게 없지만, 무더위를 식힐 만큼의 比는 韓國보다 美國에 유리하다. 記者는 急한 마음에 氣象廳에 電話를 걸었다. “곳에 따라 비가 내릴 수도 있지만, 全般的으로 大邱地方은 맑겠습니다.” 氣象廳의 報道는 正確했다. 버스가 陜川터널을 지나 慶北地方으로 들어서면서 구름이 걷혔다.

    午後 2時. 대구월드컵경기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낮이다보니 6月4日 釜山의 밤 風景보다 붉은 빛깔이 더욱 鮮姸했다. 곳곳에서 星條旗를 몸에 두르고 ‘USA’를 외치는 美國人들도 눈에 띄었지만, 大型 旗발을 앞세우고 거리 出征式까지 벌인 ‘붉은 惡魔’의 相對가 되지는 못했다.

    大邱의 날씨는 亦是 韓國 便이었다. 얼굴이 따끔거릴 程度의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間間이 비가 뿌렸다. 여우비였다. 무더위를 식히는 소나기가 아니라, 더운 날씨를 더욱 후텁지근하게 만드는 이슬비였다.

    競技場 周邊에서부터 出入口까지 警察들이 촘촘히 서 있었다. 美國 選手들이 大邱競技場으로 올 때는 軍 裝甲車까지 動員됐다. 競技場 上空에서는 쉴새없이 헬리콥터가 떠다녔다. 勿論 奇襲테러에 對備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蹴球競技를 하면서 軍隊의 힘까지 빌어야 하는 美國의 身世를 불쌍하게 여기는가 하면, 政府가 美國팀을 過剩保護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美國 國家와 愛國歌가 次例로 울려퍼졌다. 붉은악마는 釜山에서는 폴란드 國家가 끝나기도 前에 應援戰을 펼쳤지만, 大邱에서는 美國 國家를 끝까지 傾聽했다. 스탠드 上段에서 暫時 ‘郵’ 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同調者는 別로 없었다. 兩國 國家 演奏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탠드 앞쪽에 우뚝 서서, 붉은色 물결을 바라보며, 宗敎的 메시지를 傳達하던 中年 男子는 結局 警察과 함께 그라운드 밖으로 사라졌다.

    히딩크 監督은 폴란드戰 멤버를 그대로 내보냈다. 美國은 포르투갈戰에서 缺場했던 미드필더 레이나와 攻擊手 매시스를 投入했다. 美國의 비슬리와 韓國의 송종국은 始作하자마자 빠른 스피드로 側面을 突破하며 緊張感을 높였다. 競技內容은 一進一退의 攻防戰이었지만, 主導權은 韓國이 잡았다.

    蹴球는 찬스에서 골을 터뜨려야 이기는 競技다. 前後半 89分 30秒를 리드해도 마지막 30秒 만에 한골을 먹으면 지는 競技다. ‘危機 뒤에 찬스, 찬스 뒤에 危機’라는 말은 蹴球에서도 그대로 適用된다. 좋은 흐름에서 得點하지 못하면 이길 確率은 떨어진다.

    美國戰에서 첫골은 重要한 意味가 있었다. 美國은 2001年 以後 先取골을 내준 8次例의 A매치에서 모두 敗했다. 反面 先取골을 따낸 22次例의 京畿에서는 16勝4無2敗로 壓倒的 優勢를 지켰다. 따라서 韓國이 먼저 得點한다면 勝算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勝利의 女神은 韓國을 비켜가는 듯했다.

    황선홍의 繃帶 鬪魂

    不吉한 事故가 터졌다. 韓國의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몸싸움을 벌이다 넘어져 눈 위가 찢어졌다. 황선홍이 競技場 밖으로 나가 治療를 받고 머리에 繃帶를 감았다. 팀의 맏兄이 빠지자 選手들이 動搖한 것은 當然한 일이었다. 곧이어 美國의 逃奴番과 비슬리가 韓國의 兩 사이드를 파고들었다. 송종국과 이을용이 잇따라 뚫렸다.

    美國은 그 틈을 正確하게 攻掠했다. 韓國팀 日子 守備라인의 밸런스가 흔들리는 瞬間, 왼쪽 中原을 치고 들어가던 오브라이언의 센터링이 매시스의 발 끝에 떨어졌다. 매시스가 왼발로 찔러넣은 슛이 그대로 골인. 美國이 먼저 得點했다. 美國 應援團의 氣勢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過去 韓國蹴球는 失點한 뒤 急激히 組織力이 허물어졌다. 하지만 이番엔 달랐다. 韓國 選手들은 剛한 壓迫을 펴며 다시 競技의 主導權을 잡아나갔다. 그 結果는 前半 38分에 나타났다. 황선홍이 美國 門前에서 守備手 제프 아구스에 걸려 넘어지자 마이어 主審은 遲滯없이 페널티킥을 宣言했다.

    問題는 키커. 박지성 代身 投入된 이천수는 공을 만지작거리며 欲心을 냈다. 하지만 그는 큰 競技에서 두 番이나 PK를 失蹴한 前歷이 있다. 選手들이 벤치 쪽을 바라보자 히딩크 監督은 이을용을 指目했다. 오래 前부터 PK는 박지성 이을용 송종국 順으로 맡긴다는 構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萬餘 觀衆이 喊聲을 지르는 가운데, 이을용이 왼발 인프런트로 살짝 감았다. 하지만 발 動作이 프리덜 골키퍼의 눈에 잡혔다. 老骨. 프리덜 골키퍼의 善防이었다. 韓國은 千金 같은 同點 機會를 날려버렸다. 觀衆席 여기저기서 “왜 이을용이 車弩” 하는 恨歎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붉은악마는 이을용에게 뜨거운 拍手를 보냈다.

    이 무렵 本部席 反對便 스탠드에서는 아슬아슬한 場面이 벌어졌다. 韓國人들 사이에서 熱心히 ‘USA’를 외치던 一群의 美國人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옮긴 것이다. 競技 初盤에는 韓國人들과 서로 菓子를 나눠먹으며 웃으면서 應援했지만, 이을용의 페널티킥이 빗나가면서 多少 險惡한 狀況이 演出됐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表情은 속일 수 없는 法. 그들은 星條旗가 펄럭이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繼續해서 ‘USA’를 외쳤다.

    後半戰이 始作됐다. 韓國은 同點골을 뽑기 위해 死力을 다했다. 찬스도 많았다. 하지만 골 決定力 不足이라는 韓國蹴球의 痼疾病이 도졌다. 後半 1分 설기현은 單獨 찬스를 맞았지만, 得點하지 못했다. 後半 10分 히딩크 監督은 鬪魂을 發揮하던 황선홍을 빼고 안정환을 投入했다. 이때부터 韓國 攻擊陣이 活氣를 찾았다. 7萬餘 觀衆들도 波濤타기 應援으로 그라운드의 熱氣에 불을 지폈다.

    안정환의 스케이팅 세리머니

    後半 34分 마침내 기다리던 同點골이 터졌다. 이을용이 미드필드 왼쪽에서 높게 올려준 프리킥이 안정환의 머리에 맞고 골문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을용은 地獄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興奮했고, 안정환은 골을 確認한 뒤 코너플래그 쪽으로 달려가 ‘準備한’ 골 세리머니를 演出했다. 월드컵 史上 最初로 펼쳐진 쇼트트랙 스케이팅 세리머니다.

    韓國 쇼트트랙 國家代表 選手 金東成과 안정환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안정환은 어릴 때 스케이팅을 했고, 金東成은 안정환의 팬이었다. 안정환이 이탈리아 프로리그에 進出했을 때, 金東成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大會에 參加한 적이 있다. 當時 金東成은 直接 運動場을 찾아 안정환을 應援했는데, 이때부터 두 사람은 가끔씩 連絡하며 지냈다고 한다.

    안정환의 골 세리머니에서 壓卷은 亦是 이천수였다. 安貞桓이 스케이팅 動作을 取하자 설기현 최용수 최진철 等도 同參했는데, 이 瞬間 이천수는 안정환의 등을 살짝 건드리고는 뒤로 넘어질 듯한 포즈를 取했다. 바로 솔트레이크시티 冬季올림픽에서 美國의 懊惱 選手가 金東成에게 했던 ‘할리우드 액션’의 複寫版이었다.

    韓國의 一方的인 攻勢가 繼續됐다. 그러나 ‘한放’李 不足했다. 後半 44分 이을용이 美國의 왼쪽 守備壁을 무너뜨리며 최용수에게 完璧한 得點찬스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負傷에서 完全히 回復하지 못한 최용수는 공을 골문 위로 날려버렸다. 98프랑스월드컵 벨기에戰에서 決定的인 逆轉 찬스를 霧散시킨 場面과 비슷했다. 이 瞬間 이을용은 그라운드에 드러눕고 말았다. PK 失蹴의 아픔이 컸던 탓일까. 이을용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더 以上 힘을 내지 못했다. 곧이어 競技終了 휘슬이 울렸다. 1代1. 韓國은 다 이긴 競技를 놓치고 말았다.

    運動場 곳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16强進出이 어려워졌다는 反應을 보였다. 韓國과 美國이 나란히 1勝1無를 記錄했지만, 포르투갈과 맞붙어야 하는 韓國보다 폴란드를 相對로 싸우는 美國이 有理하다고 본 것이다. 一部 觀衆들은 이을용의 PK 失蹴을 물고 늘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그 놈 때문에 비겼잖아. 韓國이 1勝1無 全的으로 마지막 競技를 準備한 것은 이番이 처음이야”라며 慰安을 삼았다. 이을용. 그는 6月10日 한·美戰에서 ‘天堂과 地獄을 오간’ 選手였다.

    競技場을 빠져나오는 붉은 물결 속에서 이차만 前 釜山大宇 監督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월드컵과 한番도 因緣을 맺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는 98프랑스월드컵이 끝난 直後 史上 最初로 國家代表팀 監督을 公開 選拔한 적이 있다. 候補는 김호곤 이차만 허정무 監督이었다. 公開討論會에 이은 祕密投票 結果 李監督은 3位에 그쳤고, 決選投票에서 허정무 監督이 됐다. 하지만 허정무 監督도 2000年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 國民的 期待에 副應하지 못하고 中途下車하고 말았다.

    李 前監督은 韓國選手들의 몸이 平素보다 무거웠다고 診斷했다. 날씨가 덥다보니 생각보다 빨리 지쳤다는 것이다. 李 前監督은 “우리가 先取골을 넣었다면, 3對1 程度로 이길 수도 있는 競技였다”고 美國戰 競技內容을 分析한 뒤 “포르투갈을 이기기 위해서는 精神武裝이 必要하다”고 注文했다.

    저녁 8時. 이番엔 동대구역과 高速버스터미널이 붉은 色으로 뒤덮였다. 大邱로 몰려들었던 蹴球팬들이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票를 求하느라 분주했다. 臨時列車 티켓은 일찌감치 다 팔렸고, 緊急 投入한 觀光버스度 萬원이었다. 이런 가운데 일찌감치 深夜 優等高速을 豫約해놓고 폴란드와 포르투갈의 一戰을 觀覽하는 ‘사커마니아’들이 눈길을 끌었다. 勿論 그들은 폴란드를 熱心히 應援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大~韓民國’ 口號를 외치면서.

    長대비가 퍼붓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은 폴란드를 蹂躪했다. 그들은 美國戰 敗北를 폴란드에 憤풀이하듯 初盤부터 積極 攻勢를 폈다. 反面 폴란드는 客觀的 戰力의 劣勢에도 相對 攻擊手들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바람에 大量失點을 재촉했다. 4代0. 高速버스터미널은 後半 폴란드가 反則으로 한 골을 넣었을 때 暫時 歡呼聲이 터져나온 것을 빼고, 90分 내내 沈默에 휩싸였다. 네番째 골이 터졌을 때는 여기저기서 “우리가 저런 寒心한 팀을 이겨놓고 그렇게 기뻐했단 말인가” 하는 歎息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해트트릭을 記錄한 파울레타, 剛한 壓迫으로 폴란드의 銳鋒을 꺾은 핀투, 華麗한 個人技의 피구, 競技의 緩急을 絶妙하게 調節한 후이 코스타…. 포르투갈 選手들은 美國戰과는 다른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6月11日. 포르투갈전을 사흘 앞두고 仁川 문학경기장 앞에 텐트族이 登場했다. 海外에서 팔리지 않은 入場券을 먼저 購入하기 위해서다. 一部 매스컴은 ‘仁川上陸作戰’이라며 雰圍氣를 띄웠다. 勝點으로 볼 때 韓國은 비기기만 해도 16强에 進出할 수 있는 유리한 狀況이었다. 하지만 히딩크 監督은 ‘이기는 蹴球’를 宣言했다. ‘이기는 作戰이라야 비길 수 있고, 비기는 作戰이라면 질 수도 있다’는 點에서 히딩크는 正攻法을 擇한 셈이다.

    6月11日과 12日, 韓國과 日本에서는 잇따라 異變이 發生했다. 11日엔 프랑스가 덴마크에 0對2로 敗해 豫選 탈락했고, 12日엔 아르헨티나가 스웨덴과 비기는 바람에 1라운드를 通過하지 못했다. 2002韓日월드컵이 열리기 前부터 世界의 賭博師들이 優勝候補 1順位로 꼽은 두 팀이 덜미를 잡힌 것이다.

    두 競技는 포르투갈전을 앞둔 韓國이 곱씹어볼 구석이 많았다. 特히 강팀도 窮地에 몰리면, 競技를 그르칠 수 있다는 點이 重要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반드시 이겨야만 16强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無理한 攻擊을 試圖하다가 先取골을 내주고 自滅했다. 여기에 한 가지 變數가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莫强한 守備力으로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火力을 막아냈지만, 韓國 守備陣이 果然 포르투갈의 銳鋒을 꺾을 수 있느냐다.

    6月14日. 午前 7時부터 光化門에 太極旗를 든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午後 5時30分 景氣를 3時間 앞두고는 視聽부터 世宗文化會館까지 巨大한 붉은 띠가 만들어졌다. 仁川行 地下鐵에서는 勝利를 自信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이들에게 客觀的 戰力의 差異는 無意味했다. 韓國蹴球는 1勝1무만으로도 大型事故를 친 셈이지만, 蹴球팬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16强을 向해 달려가고 있었다.

    DJ가 오면 이긴다

    仁川문학경기장 入口에서 김호곤 釜山아이콘스 監督을 만났다. 그는 現役時節 뛰어난 守備手로 活躍했지만, 한番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포르투갈戰의 勝敗가 守備에 달렸다는 點에서 金監督의 생각이 궁금했다. 뜻밖에도 그의 對答은 樂觀的이었다. “感이 아주 좋아요. 포르투갈 選手들의 컨디션이 너무 나빠요.”

    저녁 7時45分. 김대중 大統領이 競技場에 到着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몇몇 蹴球人들이 불쑥 한마디씩 던졌다. “大統領이 釜山엔 왔고, 大邱엔 안 왔습니다. 그런데 釜山에서는 이기고 大邱에서는 비겼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길 겁니다” 그러고보니 金大統領이 參席한 京畿에서는 劇的인 勝負가 많았던 것같다. 1997年 9月28日 ‘도쿄大捷’ 때도 金大統領은 野黨 大統領候補로서 玄海灘을 건넌 적이 있다. 當時 一部 國會議員들은 “日本에 敗하면 辱을 먹어야 한다”며 反對했지만, 그는 2對1 逆轉勝의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렸다.

    釜山에서 大邱로, 大邱에서 仁川으로 올라오면서 運動場의 色彩는 더욱 짙어졌다. 釜山에서는 特定 區域에 붉은 色이 集中됐지만, 仁川에서는 四方이 붉게 물들었다. 觀衆들이 ‘오 必勝 코리아’를 외치며 손을 돌릴 때는 마치 ‘FIFA 2002’ 게임에 나오는 假想 스탠드를 聯想케 했다. 釜山에서 ‘WIN 3:0’, 大邱에서 ‘Go KOR 16’을 카드섹션으로 펼쳐보인 붉은 惡魔가 이番에는 흰 종이로 ‘大韓民國’을 아로새겼다. 그러자 5萬餘 觀衆이 한 목소리로 ‘大~韓民國’을 외쳤다.

    휘슬이 울렸다. 韓國은 이영표와 송종국을 後方으로 끌어내려 守備를 두텁게 하고, 김태영을 守備型 미드필더로 내세웠다. 初盤 失點을 막기 爲한 히딩크의 防禦戰術이었다. 競技始作 3分 뒤 스탠드 곳곳에서 喊聲이 터졌다. 同時에 始作된 大田競技에서 폴란드 올리사데베가 先取골을 터뜨린 것이다. 2分 뒤 이番엔 크리샤워備置가 두番째 골을 성공시켰다. 韓國은 이제 세 골을 먹어도 16强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히딩크 VS 올리베이라

    히딩크 監督은 송종국과 이영표를 올리고 김태영을 끌어내렸다. 正常的인 스리백 시스템으로 復歸한 것이다. 戰術的으로 파울레타-피구-콘세이상 3名의 攻擊手를 막기 위해서는 포백이 適合하다. 그런데도 히딩크 監督은 勝負手를 띄웠다. 미드필드에서 송종국이 避球를, 이영표가 콘세이상을 막을 수 있다고 判斷한 것이다. 實際로 그들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世界的인 스타플레이어를 꽁꽁 묶었다.

    主導權을 잡기 위한 兩팀의 神經戰은 激烈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이 過程에 홈 어드밴티지度 作用했다. 아르헨티나 出身의 산체스 主審은 웬만한 몸싸움에는 파울을 불지 않았다. 마음이 急한 포르투갈 選手들이 審判判定에 銳敏하게 反應하기 始作했다. 그런 雰圍氣에서 前半 26分 핀투가 退場당했다. 포르투갈 選手들은 强力하게 抗議했지만, 分明한 백태클이었다. 前半 35分 포르투갈은 雰圍氣를 反轉시킬 수 있는 得點機會를 잡았지만, 파울레타의 슛은 골문을 비켜갔다.

    後半戰은 大接戰이었다. 韓國이 설기현 유상철의 날카로운 슛으로 主導權을 잡는가 했더니, 피구의 코너킥을 받아 파울레타가 백헤딩 슛을 날려 肝膽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가면 韓國과 포르투갈이 16强에 同伴 進出할 수 있는 狀況이었다. 하지만 後半 21分 포르투갈 베투 選手가 警告累積으로 두 番째 退場을 當하면서 競技의 흐름이 完全히 바뀌었다.

    大田에서 폴란드가 세番째 골을 성공시키며 勝勢를 굳힐 무렵, 포르투갈 올리베이라 監督은 果敢한 勝負手를 띄웠다. 원톱으로 뛰던 파울레타를 빼고 守備力이 좋은 안드라데를 起用한 것이다. 어쩌면 올리베이라 監督은 히딩크 監督에게 ‘사이좋게 비기자’는 메시지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딩크는 勝負師다. “6月이면 世界가 韓國蹴球를 보고 놀랄 것”이라고 豫言했던 그가 아니던가.

    히딩크 監督은 守備라인을 끌어올려 積極的인 攻擊을 注文했다. 곧이어 포르투갈의 골문이 열렸다. 박지성의 幻想的인 골이 터진 것이다. 히딩크 監督은 戰力을 다해 달려온 박지성을 끌어안았다. 이 瞬間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히딩크는 올리베이라 監督과의 歷代 戰績에서 劣勢를 보여왔다. 그런데 世界蹴球의 邊方 팀을 이끌고 깨끗하게 빚을 갚았으니 얼마나 후련했을까.

    포르투갈의 猛烈한 反擊이 始作됐다. 올리베이라 監督은 사비에르와 고메스를 投入해 同點골을 노렸다. 29分 피구의 오른발 프리킥이 골포스트를 살짝 빗나갔고, 44分 콘세이상의 슛이 크로스바를 때렸다. 45分이 다 지나고 인저리타임이 3分 남아 있었지만, 仁川문학경기장 밖에서는 爆竹이 터졌다. 大田에서는 3代1로 폴란드가 美國을 꺾었다는 消息이 들려왔다. 하지만 觀衆들은 大田競技에 關心을 두지 않았다. 韓國의 D組 1位가 確定됐기 때문이다.

    主審이 競技終了를 알렸다. 포르투갈 選手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韓國 選手들은 부둥켜안고 16强進出을 自祝했다. 世界에서 가장 華麗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피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은 채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나왔다. 히딩크 監督은 고개 숙인 피구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自身이 레알 마드리드 監督으로 있을 때 피구는 라이벌팀 바르셀로나 FC의 核心 攻擊手였다. 히딩크는 그런 사람이다. 先手를 찍으면 놓치지 않는다. 발렌시아 監督 時節엔 브라질의 胡馬리우를 空港에서 拉致한 일까지 있었다. 히딩크가 避球를 따뜻하게 慰勞하는 모습에서 그가 레알 마드리드 監督에 未練을 갖고 있다는 外信報道가 意味深長하게 다가왔다.

    野球場 쪽에서는 爆竹이 繼續 터졌다. 히딩크 監督은 本部席을 向해 特有의 어퍼컷 포즈를 다섯 番이나 선보였다. 觀衆들은 ‘大~韓民國’에 이어 ‘히딩크’를 連呼했다. 韓國 選手들은 붉은 惡魔 應援席으로 달려가 어깨동무를 한 채 발을 구르며 ‘오 必勝 코리아’를 불렀다. 그리고는 그라운드로 돌아와 選手團 全員이 손을 맞잡고 兩쪽 골라인을 오가며 다이빙 세리머니를 펼쳤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選手들 中에 홍명보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10餘 年이 넘게 韓國蹴球의 기둥 노릇을 해왔던 그가 눈물을 흘렸다. “이番만은 꼭 한番 이겨보고 싶다”며 월드컵을 기다려온 韓國代表팀의 맏兄…. 1勝을 넘어 16强進出까지 達成한 감격스런 瞬間에도 그는 後輩들을 爲한 ‘큰 膳物’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라커룸으로 찾아온 김대중 大統領에게 ‘兵役 惠澤’을 建議해, 肯定的인 答辯을 얻어낸 것이다. 그의 카리스마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競技場 入口에서부터 電鐵驛까지 곳곳에서 太極旗가 휘날렸다. 電鐵驛 乘降場에서는 ‘大~韓民國’ 口號를 슬그머니 바꿔 부르는 젊은이들이 뜨거운 拍手를 받았다. ‘大~韓民國’ ‘8~江 가자’ ‘4~江 가자’ ‘결~勝 가자’ ‘세~界 最强’….

    電動車는 富川을 지나 漢江을 건넜다. 서울驛에서부터 一群의 붉은 惡魔들이 플랫폼에 나타났다. 視聽 鐘閣 鍾路3街 鍾路5街 東大門에서 붉은 惡魔들은 繼續해서 列車에 올라탔다. 車에 탄 사람들과 車를 기다리는 琉璃窓을 사이에 두고 ‘大~韓民國’을 외쳤다. 새벽 2時 東大門 거리에는 如前히 太極旗가 휘날렸다. ‘大~韓民國’ 拍子口號에 맞춘 自動車들의 警笛 퍼레이드도 繼續됐다. 2002年 6月의 祝祭는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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