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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絶望|新東亞

‘男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絶望

“아들 같은 사위? 머슴, 액세서리, 種馬(種馬) 身世도…”

  • 최호열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honeypapa@donga.com

    入力 2007-08-08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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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으로 사위를 쇼핑한다
    • 財産管理, 딸 保護, 家系 承繼가 데릴사위 目的
    • 基本條件은 ‘平凡한 집안 막내’ ‘專門職 從事’ ‘學閥’
    • ‘든든한 後援者+믿음직한 後繼者’ 共生 꿈꾸지만…
    • 專門職 男性 46% “데릴사위? 可能하다”
    • 妻家 入寂하는 立部魂(入夫婚) 한 해 80餘 名
    • “피 안 섞인 兩者보다 딸 통해 대 잇겠다”
    ‘남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절망
    올가을 開封을 앞둔 映畫 ‘用意周到 미스申’(假題)은 ‘女子가 男子를 쇼핑한다’는 게 콘셉트다. 專門職에다 예쁘고 돈까지 많은 女主人公(韓藝瑟)李 百貨店 陳列臺에서 物件 고르듯 여러 男子 中에서 結婚 相對者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男子들이 美貌와 財力, 實力을 두루 갖춘 女子가 내놓은 琉璃구두(結婚 資格)에 自身의 발을 맞춰 신데렐라가 되려고 孤軍奮鬪해야 하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女性만의 꿈은 아닌 模樣이다. 아내의 內助를 받아 成功하는 ‘溫達族’, 아내에게 빌붙어 便安하게 사는 ‘셔터맨’을 꿈꿔보지 않은 男子가 얼마나 될까. 지난 6月 ‘男子 신데렐라를 뽑는다’는 公募가 있어 話題가 됐다. 1000億臺 財産家가 自身의 외동딸 配偶者를 찾는다니 많은 男性이 귀가 솔깃할 이야기였다.

    結婚情報業體 (週)좋은만남 선우가 홈페이지에 發表한 內容에 따르면 1000億원臺 財産家의 외동딸은 38歲로 키는 조금 작지만(158cm) 얼굴은 ‘A級’이라고 한다. 海外 留學을 마치고 돌아와 現在 大學 講壇에 서고 있는데, 本人의 財産만 20億원이 넘는다고 한다.

    配偶者의 條件은 집안에 아들이 없는 만큼 아들 노릇을 하면서 집안을 이끌어갈 ‘데릴사위’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外貌가 斷定하고 宗敎가 같아야 하며 올바른 家庭敎育을 받고 자란 專門職 從事者나 그에 準하는 똑똑한 男性을 願했다. 이 밖에도 長男이 아니어야 하고, 最小限 自身의 딸에 準하는 學閥을 갖춰야 하며, 不必要한 自激之心이나 自尊心이 없어야 할 것도 條件으로 내걸었다.

    데릴사위 公募 이틀 만에 270名 몰려



    선우는 當初 데릴사위 候補者 接受期間을 2週 程度로 豫定했지만 이틀 만에 270名이 몰리자 서둘러 마감했다. 支援者는 大部分 30代 後半∼40代 中盤의 意思, 公認會計士, 不動産業者, 大企業 職員, 벤처企業 副社長 等 專門職이라고 한다. 선우는 志願者들 가운데 5名을 推薦해 一週日에 한 名씩 맞선을 보게 할 豫定이라고 傳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끈 것은 데릴사위 公開募集 公告가 나간 後 “내 데릴사위도 찾아달라”는, 딸만 가진 父母들의 注文이 殺到했다는 것. 선우에 따르면 보름 사이에 100餘 名이 申請을 했는데, 相當數가 적게는 50億원, 많게는 1000億원臺 財産을 가진 財力家라고 했다. 鮮于 이웅진 代表는 “過去에도 데릴사위에 對한 需要가 있기는 했지만 드러내지 않고 쉬쉬하는 雰圍氣가 剛했다”며 “그동안 숨어 있던 欲求가 1000億원臺 甲富의 데릴사위 公開募集을 契機로 水面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分析했다.

    몇몇 結婚情報業體에서는 “財産家일수록, 더구나 데릴사위를 얻으려 할 때는 더욱 徹底하게 祕密에 부치고 隱密하게 配偶者감을 찾는다. 그렇게 公開的으로 救할 理가 없다”며 公開募集의 眞僞에 疑惑을 提起하기도 했다. 그러나 딸만 가진 父母들 가운데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欲求가 있다는 것 自體는 大部分 認定했다.

    結婚專門業體 비에나래의 손동규 代表는 “넓은 意味의 데릴사위를 골라달라는 要請이 最近 2~3年 사이에 많이 늘었다. 요즘은 한 달에 10件 程度에 達한다”고 했다. 이곳에 加入하는 女性 會員이 한 달 平均 200名 程度라고 하니 全體의 5%인 셈이다.

    鮮于 이웅진 代表는 “最近에는 經濟力 없는 사위가 妻家에 기대어 산다기보다는 아들 없는 집안에서 아들을 맞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앞으로 데릴사위가 主要 結婚風俗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豫想했다.

    “4年 前에 調査할 때만 해도 妻家에 들어가 사는 境遇가 100雙에 1雙꼴이었지만 只今은 普遍的인 傾向이 됐다.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맞벌이 夫婦가 늘면서 育兒와 歌詞 負擔을 解決하기 위해 妻家에 依存하는 境遇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大家族制度가 解體되고 子女의 數도 크게 줄어들면서 새로운 現代的 家族賞이 定立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딸 같은 며느리’와 ‘아들 같은 사위’를 찾는 게 이미 普遍化하고 있다. 特히 딸만 있는 家庭에서 ‘아들 노릇도 해주면 더없이 좋을 든든한 사윗감(新 데릴사위)’을 찾는 게 現實이다.”

    妻家살이≠데릴사위

    ‘남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절망
    實際로 妻家에 들어가 살거나 妻가 近處에 살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는 家庭이 急激히 늘었다. 統計廳의 2006年 社會統計調査를 보면 全體 10家口 中 4家口가 父母를 모시고 사는데, 이 中 長男과의 同居는 2002年 24.6%에서 4年 만에 21.8%로 下落했다. 反面 딸과 사위가 모시고 사는 比率은 3.6%에서 5.7%로 늘어났다. 아내 動機(同氣)와의 紐帶感도 높아 妻家 中心으로 家族關係가 再編되는 傾向이 뚜렷하다는 게 專門家들의 이야기다. ‘겉보리 서말이어도 妻家살이하랴’는 俗談도 요즘 時代엔 通用되지 않는 模樣이다. 梨花女大 함인희 敎授(社會學)는 “딸이 아들보다 父母와 情緖的으로 가깝고, 男子들도 靈惡해져 家事와 育兒는 勿論 住宅 問題까지 ‘원스톱’으로 解決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指摘했다.

    勿論 妻家살이를 한다고 다 데릴사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妻家살이를 하는 사람들 中에는 自身을 데릴사위로 보는 것에 火를 내는 사람도 있다. 妻家살이를 하고 있는 유인혁(37)氏는 “데릴사위는 結婚 前提부터 從屬的인 關係라고 할 수 있지만 妻家살이는 그렇지 않다. 妻家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건 選擇이지 結婚의 必須條件이나 前提가 아니다. 사위에게 언제든 도움을 拒否할 權利가 있기에 사위와 妻家가 對等한 關係”라고 差異點을 强調했다.

    그렇다면 데릴사위의 正確한 意味는 무엇일까. 國語辭典에는 ‘妻家에서 데리고 사는 사위’라고 되어 있다. 妻家에 從屬돼 있다는 뜻을 內包하고 있다. 데릴사위의 歷史를 살펴보면 高麗時代까지 사위養子(壻養子, 壻養子)라는 게 있었다. 집안에 딸만 있는 境遇 家計 繼承을 위해 사위를 맞으면서 養子 노릇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朝鮮時代에 들어서면서 父系血緣의 家系 繼承만 認定해 ‘四圍는 사위일 뿐’이 됐다. 같은 姓氏의 血族에서 養子를 入籍해 家系를 繼承하는 한便, 사위는 歌詞를 돌보게 했다. 이게 率壻(率壻)魂이다.

    韓國엔 데릴사위가 드문 反面 日本에는 흔하다. 結婚하는 男性 10名 中 1名꼴로 데릴사위일 程度다. 家業을 重視하기 때문에 아들이 없거나 시원찮으면 데릴사위가 妻家의 姓으로 바꾸고 日課 財産을 물려받는다. 죽어서도 妻家의 墓地에 묻힌다고 한다.

    日本 마쓰이證券의 마쓰이 미치오 社長은 1987年 마쓰이證券 社長의 외동딸과 結婚하면서 데릴사위가 됐다. 그는 平凡한 샐러리맨에서 日本 證券業界에 突風을 일으킨 主人公으로 急成長해 눈길을 끌었다. 다나카 나오키 自民黨 參議員度 데릴사위로 成功한 事例다. 元來 城이 ‘스즈키’였던 그는 1969年 다나카 마키코 前 日本 外務長官과 結婚하면서 다나카 가쿠에이 前 總理의 데릴사위가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前 總理의 아버지 亦是 데릴사위가 되면서 ‘고이즈미’로 性을 바꿨다.

    韓國에서도 法的으로 데릴사위가 可能하다. 民法에 ‘壻養子’와 비슷한 ‘立部魂(入夫婚)’第 規定이 있다. 民法 826兆 3項에 ‘妻(妻)는 部(夫)에 入寂한다. 그러나 妻家 親家의 戶主 또는 戶主 承繼人인 때에는 富가 妻의 가(家)에 入寂할 수 있다. 前項 但書의 境遇에 夫婦間의 者(子)는 某(母)의 姓과 本을 따르고 毛의 가에 入寂한다’고 되어 있다. 이 條項은 2005年 8月31日 削除됐지만, 戶主制가 廢止되는 올해 12月31日까지는 有效하다.

    大法院 司法年鑑統計資料에 따르면 男便이 妻家의 戶籍으로 들어간 境遇는 2002年 12件, 2003年 197件, 2004年 64件, 2005年 75件에 不過했다. 해마다 平均 32萬雙이 結婚하는 것에 比하면 없다고 봐도 될 程度이지만 分明 存在한다.

    데릴사위로 妻家에 入寂한 境遇와, 그렇지는 않더라도 單純한 妻家살이를 넘어 妻家의 家業을 이어받아 長子 노릇을 하는 境遇로 限定시켜 이들의 名(明)과 癌(暗)을 取材했다.

    妻家의 家業을 이어받은 代表的인 事例로는 故(故) 이양구 東洋오리온 會長의 두 딸과 結婚한 현재현 東洋그룹 會長과 담철곤 오리온그룹 會長을 들 수 있다. 딸만 둘을 둔 LG그룹 구본무 會長은 血族에서 養子를 들였으니 맏사위人 尹瓘 블루런벤처스 社長 亦是 朝鮮時代 意味의 데릴사위라고 할 만하지만, 그는 妻家의 家業인 LG그룹과는 無關한 길을 가고 있다.

    妻家 일에 專念하라

    데릴사위를 願하는 사람들은 왜 데릴사위를 얻으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사윗감을 願할까. 선우, 비에나래, 듀오, 에스노블, 方背結婚硏究所 等 上流層 子弟와 專門職 從事者들의 結婚을 主로 周旋하는 것으로 알려진 結婚情報會社들의 도움을 얻어 當事者들을 電話, 書面 또는 直接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에나래 이경 室長은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사람은 大部分 똑똑한 사윗감을 願한다”고 했다. 自身이 힘들게 蓄積한 財産을 제대로 保存하고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妻家 일에 專念할 수 있도록 相對的으로 本家에 神經을 덜 써도 되는, 兄弟가 많은 平凡한 집안의 次男이나 막내를 選好한다고 했다.

    “내가 平生 일군 게 딱 두 가지 있다. 남부럽지 않은 財産과 딸 하나다. 率直히 딸이 財産을 잘 管理할 수 있을지 不安하다. 딸을 幸福하게 해줄 男子를 만날지도 걱정이고. 이 둘을 책임져줄 사위였으면 좋겠다. 나로서도 아들 하나 더 얻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사위였으면 좋겠다.”

    ‘남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절망

    데릴사위를 고르는데 정작 結婚 當事者인 딸의 목소리는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最近 結婚情報會社를 찾은 백광현(57)氏는 데릴사위의 條件으로 처음엔 착한 男子, 家庭的인 男子, 自身과 바둑을 둘 수 있는 男子 等을 내걸었지만 結局엔 稅務士든 醫師든 辯護士든 相關없이 專門職이었으면 좋겠다는 希望을 披瀝했다. 그러면서 病院이나 事務室을 내주는 等 物質的인 投資는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結局 돈으로 사위를 사겠다는 것 아니냐고 하자 “能力은 있는데 經濟力이 不足한 男子는 조금만 도와주면 크게 날아오를 수 있다. 내가 自手成家해서 안다. 나로서도 든든한 後繼者가 생기는 것이니 서로 좋은 것 아닌가”라고 反問했다.

    듀오 李美卿 室長은 “딸만 있는 집안이라 해도 名門家와 猝富가 願하는 사윗감이 서로 다르다”고 했다. 社會的 地位와 富를 함께 지닌 名門家는 自手成家한 엘리트를 選好하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는 學歷이나 外貌가 조금 떨어져도 제대로 된 집안의 子弟를 찾는다. 反面 猝富들은 名門家보다는 自手成家한 엘리트를 願한다. 自己들에게 없는 專門職을 願하는 面도 있지만, 무엇보다 査頓 집안의 名聲에 밀려 自尊心 傷하고 싶지 않다는 心理 때문인 것 같다고.

    “江南에 한 財産家가 있었어요. 딸이 셋인데 큰딸을 社會指導層 집안에 보냈다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나봐요. 둘째사윗감은 못사는 집안 出身의 專門職 從事者였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골에서 農事짓는 父母를 둔 한의대生을 紹介했는데 韓醫院 開業시켜주고, 아들처럼 여기며 잘 지내요. 얼마 前에 찾아와서는 막내에게도 둘째사위 같은 男子를 紹介해달라고 하더군요.”

    에스노블 이윤희 代表도 “上流層은 自己 아들을 돈으로 데릴사위 삼아 데려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2000億원 가까운 財産을 가진 한 紡績會社 會長이 데릴사위를 찾는데, 學者 집안 出身의 辯護士가 積極的인 反應을 보였다. 自身이 로펌을 차릴 수도 있고 丈人 會社를 물려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兩家 相見禮 後에 어머니가 剛하게 反對해 結婚이 霧散되고 말았다. “네가 뭐가 아쉬워 돈에 팔려 가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

    또한 猝富가 아닌 上流層의 境遇 데릴사위냐 아니냐에 큰 意味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딸이 잘 되는 게 더 重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名門家 딸에게 平凡한 집안의 外務考試 合格者와, 집은 富裕하지만 學歷은 別로인 男子를 同時에 紹介했더니 自身도 돈이 많은 집안임에도 富裕한 집 男子를 選擇하더라고요.”

    한 結婚情報會社에서 만난 顧客은 數百億원臺의 財産을 管理해줄 사위가 必要하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겐 아들이 있지만 聖職者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 財産管理를 딸이 맡으면 되지 않냐고 하자 “그럴 能力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사위를 얻더라도 財産의 名義는 딸 앞으로 할 것”이라고 分明히 했다.

    “外孫子에게 姓 물려주고 파”

    有利業體를 經營하는 女社長은 일찍 男便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事業體도 키워왔다. 올해 29歲인 딸도 美國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와 經營修業을 받고 있다. 그런데 經營을 하면서 女子이기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切感한 그는 딸을 도와줄 사위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는 必要하면 사위에게 留學 等 모든 支援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勿論 “經營權은 無條件 딸에게 물려줄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隱然中에 結婚 後 아이를 낳으면 妻家 쪽 姓(姓)을 따르는 것도 사위에게 提案할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來年부터 戶主制가 廢止되고, 새 家族關係登錄法이 施行됨에 따라 子女에게 父母 가운데 어느 한쪽 性을 選擇해 물려줄 수 있다. 따라서 이 女社長처럼 姓을 이어가기 위해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事例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上流層 仲媒를 많이 하는 것으로 有名한 方背結婚相談所 차일호 代表는 특별한 條件을 내건 事例를 들려줬다.

    “몇 해 前에 2000億원臺 財産을 가진 집안의 외동딸 仲媒를 선 적이 있다. 아버지는 慶北의 한 小都市에서 손꼽는 富者 집안이고, 어머니도 京畿道 新都市에 많은 땅을 가진 地主의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데릴사위를 求하면서 첫 째로 내건 條件이 男子의 姓氏였다. 女子가 金氏니까 金氏인 男子면 된다는 것이었다. 間接的으로라도 自己의 性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素朴하게 딸子息 夫婦와 함께 사는 게 꿈인 境遇도 있다. 한 女性이 自身과 딸 앞으로 된 1000億원臺 財産證明書를 들고 車 代表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準財閥과 再婚했으며 男便과 死別한 後 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前妻 所生 아들들이 있지만 自身을 챙겨줄 理 萬無했다. 그가 사윗감에게 願하는 條件은 單 하나, ‘寂寂하지 않게 나와 함께 살아달라’는 것이었다.

    신데렐라 꿈꾸는 男子들

    財産家들이 돈을 앞세워 데릴사위를 얻으려 하는 것에 對해 ‘돈으로 사람을 사겠다는 것’이라는 世間의 非難이 높기는 하다. 中央大 주은우 敎授(社會學)는 “條件을 맞춘다는 名目으로 돈 많은 妻家가 男性을 컨트롤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차라리 入養을 하는 것이 率直한 態度”라고 批判했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長도 “데릴사위制는 能力 있는 딸을 키워 家計를 繁昌시키는 게 아니라 男子인 사위에게 이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結局 男子가 집안의 中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家父長的 思考나 다름없다”며 데릴사위의 肯定, 否定을 따지기에 앞서 能力 있는 딸에게 家業을 물려주겠다는 思考의 轉換이 必要하다고 말했다.

    ‘남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절망

    猝富들이 願하는 데릴사위의 첫째 條件은 專門職이다. 現職 醫師와 辯護士가 아니더라도 醫師나 辯護士가 되도록 支援을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開業까지 保障한다.

    反面, 設令 財力을 보고 申請者가 몰렸다고 해도 資本主義 社會에서 이는 ‘選擇의 問題’일 뿐이라는 意見도 있다. 고려대 현택수 敎授(社會學科)는 “사랑은 人品, 學歷, 財産 等이 어우러져 다가오는 總體的인 느낌인데, 우리 社會는 돈이 介入되면 無條件 純粹하지 않다고 보는 傾向이 있다”며 데릴사위에 對해 “財力家가 돈이라는 自身의 强點을 活用해 不足한 部分을 메워줄 사람을 選擇하겠다는 것”이라고 解釋했다.

    젊은 層에서는 데릴사위에 對해 그다지 꺼리지 않는 雰圍氣다. 結婚情報業體 웨디안이 專門職 男性 200名을 對象으로 ‘데릴사위 提案을 받아들이겠느냐’는 設問調査를 한 結果 54%가 ‘財力이 뛰어나도 데릴사위는 關心 없다’고 應答했다. 反面 ‘財力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決定하겠다’(32%)와 ‘데릴사위라도 相關없다’(14%)는 反應도 적지 않았다.

    한 結婚專門業體에서 만난 커플매니저는 “專門職 男性의 境遇 데릴사위 與否와 相關없이 經濟的 支援을 念頭에 두는 境遇가 많다”고 했다. 當事者가 要求하는 境遇도 있고 어머니가 찾아와 具體的인 額數까지 이야기하는 境遇도 있다는 것.

    “露骨的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다들 內心 바라는 것은 分明해 보여요. 그런 要求가 없기에 平凡한 집안女性을 紹介해줬다가 婚需를 準備하는 過程에서 깨지는 境遇도 여럿 봤어요. 그러면서 ‘그런 건 말 안 해도 다 아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이런 境遇도 있다고 한다.

    “돈을 바라는 會計士가 있었어요. 웬만한 女性들은 紹介해도 시큰둥해하는 사람이었죠. 500億원臺 財産家가 自身의 財産을 管理해줄 데릴사위를 願한다기에 그 會計士를 紹介했어요. 그런데 女子를 만나기 前에 그 女子 집안의 財産을 調査했나봐요. 女子의 外貌도 性格도 學歷도 다 別로였는데 무척 積極的으로 나서더라고요. 그렇게 신데렐라를 꿈꾸는 男子가 많아요.”

    “支援은 確實하게 해준다”

    꼭 財閥家나 猝富들만 데릴사위를 찾는 것은 아니다. 男子들도 꼭 財産만 보고 데릴사위로 가는 것만도 아니다. 江南에서 20年 넘게 ‘마담뚜’ 노릇을 하고 있는 金某氏는 7年 前쯤 맺어준 事例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神父 아버지는 제법 有名한 畫家였지만 그렇게 富者는 아니었어요. ‘江南 中産層’이라는 말이 딱 맞을 程度였죠. 그런데 딸이 어려서 事故를 當해 다리를 절었어요. 게다가 외동딸이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仲媒 要請을 받고 難堪했죠. 障礙가 있는 女子와, 그것도 가진 것 別로 없는 집안에 데릴사위로 갈 男子가 있겠나 싶었어요. 어떻게 해서 中堅企業에 勤務하는 靑年을 紹介했어요. 집안도 나쁘지 않은 靑年이었죠. 그런데 맞선을 보고는 女子에게 반한 模樣이에요.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6個月 만에 結婚式을 올렸죠. 只今 妻家에 들어가 살고 있는데, 神父 아버지가 나를 만날 때마다 ‘좋은 新郞감 救해줘서 고맙다’고 할 만큼 사위가 잘한다고 하네요.”

    데릴사위로 結婚해도 大槪는 이렇게 잘 산다. 다음은 한 結婚情報會社에서 들은 이야기다.

    神父 아버지는 신촌에서 큰 規模의 産婦人科를 運營하고 있는 醫師다. 그런데 어머니가 대단한 女傑이라고 한다. 男便의 收入을 잘 굴려 모텔 等 10餘 個의 建物을 所有하고 있고 大型 사우나를 運營하는 等 相當한 經濟力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머니의 目標는 세 딸과 사위가 모두 醫師인 醫師 집안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딸 셋을 모두 醫大에 進學시켰다. 어머니는 큰딸을 結婚시키기 위해 結婚情報會社에 찾아와 “醫師면 좋지만 只今 꼭 醫師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醫師의 길을 걷겠다면 積極 支援하겠다”고 했다. 條件은 반드시 醫師가 되어야 하고 妻家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사위가 病院과 집안을 責任져주길 願했다. 結婚情報會社에서는 서울對 工大를 卒業하고 大企業 社員으로 勤務하던 男子에게 意向을 打診했는데, 마침 그는 醫師가 되길 바랐지만 어려운 家庭形便 때문에 꿈을 접은 아픔이 있었다.

    “父母가 願하는 데릴사윗감과 新婦가 願하는 配偶者감이 달라 中間에서 困難을 겪는 境遇가 많아요. 어머니의 影響力이 剛하니까 딸이 엄마가 골라주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結婚했다가 葛藤을 겪기도 하죠. 그런데 이 男子 外貌가 俊秀해서인지 딸도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었고, 어머니도 사윗감의 積極的이고 進取的인 性格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 男子도 自身의 꿈을 이루기 위해 妻家에 잘 보이려고 熱心히 했겠죠. 結婚이 成事돼 只今 男子는 醫大에 編入해서 工夫 中인데, 妻家 食口들과 아주 잘 지낸다고 들었어요.”

    데릴사위가 다 幸福한 것은 아니다. 잘 살고 있는 大部分의 데릴사위는 所聞이 나지 않는 反面, 破鏡에 이른 境遇는 所聞이 나게 마련이어서인지 失敗事例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丈母의 입김과 忽待

    데릴사위들이 結婚生活에 失敗하는 理由에 對해 서울地方家庭法院 김영희 調整委員長은 “匠人이나 丈母가 딸의 結婚生活에 剛하게 介入하는 等 妻家의 입김이 剛할 수밖에 없다. 사위로선 妻家에 고마움도 느끼지만 忽待받거나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反撥이 생기게 된다. 自己가 妻家에 하는 만큼 아내가 媤집에 잘하지 못하는 것도 不滿이 되기 쉽다. 그런 게 쌓여 葛藤이 생기는데, 大部分 妻家 食口들과 아내가 한便이 되어 男子는 孤立된다. 結局 밖으로 나돌다 外道를 하는 게 普遍的인 順序”라고 說明했다.

    ‘남자 신데렐라’ 데릴사위들의 꿈과 절망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相談委員度 “妻家살이하는 男子가 늘어나면서 丈母와의 葛藤, 妻家와의 葛藤을 呼訴하는 事例도 늘고 있다”며 “個中엔 데릴사위로 살다가 離婚 方法을 묻는 相談도 몇件 있었다”고 했다.

    40代 初盤인 A氏는 13年 前, 銀行 同僚 職員의 紹介로 結婚했다. 妻家는 私債業으로 어느 程度의 現金과 不動産을 가진 집안이었다. 丈母는 그에게 銀行을 그만두고 自身의 財産을 管理해줄 것을 要求했고, 그는 妻家에 들어가 살면서 熱心히 일을 도왔다. 그의 努力 德分에 妻家 財産은 크게 불어나 只今은 1000億원에 가깝다.

    하지만 時間이 지날수록 丈母에게 그는 머슴, 기껏해야 部下職員日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괄괄하고 直說的인 丈母는 잔소리도 甚했고 人間的인 侮辱을 주기도 했다. 甚至於 사위에게 무릎 꿇고 잘못을 빌게 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그를 慰勞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아내는 媤宅의 ‘詩’字가 들어간 것은 다 싫어했다. 媤父母 生日에조차 職員 손에 꽃과 돈封套를 들려 보내곤 親庭食口나 親舊들과 外出하는 게 茶飯事였다. 兄弟들 보기도 憫惘했다. 時間이 지날수록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지고, 妻家食口와의 葛藤도 깊어졌다. 結局 그는 結婚生活을 淸算하고 싶다며 韓國家庭法律相談所에 方法을 물어왔다.

    앞으로 妻家살이와 데릴사위가 늘어나면 사위들의 이 같은 ‘妻가 反論’도 거세질 것이다.

    某 大學病院 科長도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離婚했다. 레지던트 時節 仲媒로 만난 아내는 地方에 골프場을 가진 甲富 딸이었다. 匠人의 財産은 事業體와 不動産을 合쳐 500億원을 족히 넘었는데, 딸만 셋이 있고 아들이 없었다. 딸들은 모두 地方大學을 나왔다. 丈人에겐 周邊에 자랑스럽게 紹介할 새로운 家族이 必要했다. 丈人은 그에게 結婚하면 生活費 等을 다 대줄 테니 大學病院에 남아 社會的 名聲을 쌓기를 要求했다. 外國 留學도 보내줬다. 고마움을 느낀 그는 最善을 다해 맏사위 노릇을 했다. 妻家의 大小事를 自己 일처럼 다 챙기며 丈人과 丈母를 補佐했다.

    ‘콤플렉스’와 ‘背恩忘德’

    하지만 데릴사위는 데릴사위였다. 모든 일에서 妻家가 優先이었다. 週末이면 언제나 妻家 食口들과 時間을 보내야 하고, 여름이면 妻家와 함께 海外旅行을 떠나고, 겨울에는 스키場, 봄가을이면 妻家의 別莊에서 時間을 보내게 됐다. 親舊나 本家의 四寸 結婚式이 있다고 할지라도 妻家의 査頓에 八寸 結婚式이 있으면 그것이 于先이었다. 歲月이 꽤 흘렀지만 家族의 構成員으로 인정받기는커녕 妻家의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周邊의 따가운 눈총, 父母의 不滿, 兄弟들의 곱지 않은 視線을 느끼며 그는 漸漸 自身의 處地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家庭에서도, 本家에서도, 親舊들 사이에서도 幸福을 느끼지 못하던 그는 病院에서 함께 일하던 看護師에게서 慰安을 얻고, 사랑하게 되었다. 妻家에 이 事實이 알려져 慰藉料 한푼 받지 못한 채 빈 몸으로 나왔지만 마음만은 便하다고 했다.

    아내 쪽에서는 아내대로 不滿이 많았다. 비록 서로의 돈과 能力을 보고 結婚했지만 남부럽지 않은 結婚生活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幸福했다. 그런데 時間이 지날수록 男便은 妻家에 對해 콤플렉스를 갖기 始作했다. 다툴 때 튀어나오는 男便의 말에서 그것을 確認할 수 있었다. 아내는 漸次 그런 男便의 눈치를 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平素에도 말을 아끼고 操心하게 됐다. 두 사람 사이엔 漸漸 對話가 사라져갔다.

    아내는 當然히 男便이 親庭父母님이 베풀어준 配慮에 感謝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에 不滿을 품고 있다는 게 섭섭했다. 고마움을 모르는 背恩忘德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면서 不信의 壁은 더욱 높아갔다. 特히 親庭父母에게 비뚤어진 態度로 對하는 것을 보면 火가 치밀어올랐다. 그러다 男便의 外道 事實을 알게 됐고, 더 以上 되돌릴 수 없을 만큼 信賴가 깨어졌다고 생각했다.

    自身이 直接 目擊한 위의 事例를 들려준 비에나래 이경 室長은 “데릴사위의 惠澤은 新婚 때나 달콤한 沙糖으로 느껴질 뿐, 時間이 지날수록 그 意味가 漸次 退色한다. 自身의 處地에 對해 漸次 不滿이 생기고, 숨 막히는 狀況이라고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 自身이 삶의 主人公이 아니라는 생각에 正體性을 잃고 彷徨하는 境遇가 있는 것 같다”며 이에 對한 解決方法을 夫婦와 妻家 食口들이 함께 摸索해야 한다고 忠告했다.

    서울 某 大學敎授인 B氏는 데릴사위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4年 前 離婚의 아픔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妻家의 條件을 보고 結婚한 것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家庭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 相對를 나와 國費奬學生으로 留學을 다녀온 뒤 젊은 나이에 正敎授로 任用된 엘리트였다. 同僚 留學生이던 아내와 7年 前 結婚했다.

    ‘씨내리’用 種馬?

    丈人은 當時 잘나가던 政治人이었다. 丈人에겐 아들이 있었지만 期待에 미치지 못했던지, 아내보다 먼저 學位를 마치고 歸國한 사위를 自身의 집에서 生活하게 했다. 그리고 自身의 後繼者로 키우려고 여러 가지 注文을 했다. 學者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그에게 司法試驗을 보라고 勸하는가 하면 政官界 人士들과의 만남에 그를 帶同하기도 했다. 選擧 때는 總參謀 노릇을 맡기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는 丈人의 期待에 미치지 못하는 自身의 限界를 切感하고 挫折했다.

    匠人의 期待가 버거웠던 그는 結局 離婚을 決心했다. 決定的인 契機는 匠人이 不法 政治資金을 받은 嫌疑로 困境에 處하자 責任을 自身에게 떠넘기려 한 것이었다. 사위는 亦是 남일 뿐 決코 아들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충식(36)氏도 現在 離婚 手續을 밟고 있는 데릴사위다. 某 大企業에 勤務하던 그는 同僚 硏究院이던 아내와 2000年 結婚했다. 匠人이 公企業 社長 出身으로 어느 程度 財力도 있는 집안이었다. 結婚을 決心하고 妻家를 찾았을 때 丈人은 操心스럽게 宗孫(宗孫)인 自身의 處地를 이야기하며 妻家로 戶籍을 옮길 것을 付託했다. 本家에서 剛하게 反對했지만 그는 立部魂을 强行했다.

    丈人은 妻家집 바로 옆에 아파트를 얻어주고 條件이 더 좋은 會社로 옮겨줬다. 달콤한 新婚生活이 이어졌다. 그러나 時間이 지날수록 幻想이 깨어지기 始作했다. 妻家는 社會的 地位나 經濟力이 顯著히 떨어지는 本家를 無視하는 것은 勿論, 自身도 無視했다. 그는 失望을 넘어 憤怒를 느꼈다. 特히 아이를 本家에 데려가는 것을 極度로 싫어했다. 생각해보니 自己 이름으로 된 財産은 하나도 없었다. 甚至於 自身의 名義로 된 信用카드도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게 했다.

    이런 不滿을 丈人에게 털어놓자 丈人은 “내가 자네 집안이나 자네의 비전을 보고 내 딸을 준 건 아니다. 健康하고 健壯한 자네의 몸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瞬間 그는 自身이 妻家에서 씨를 얻기 위해 飼育되는 種馬(種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事實은 집안을 이을 後孫을 얻기 위한 政略的 結婚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離婚을 決心하고, 現在 아들을 되찾기 위한 方法을 찾고 있다.

    來年부터 子女가 어머니 姓을 따를 수 있게 한 家族關係登錄法이 施行되면 이처럼 財力家가 自身의 企業이나 財産을 包含해 姓까지 물려줄 수 있는 ‘아들 같은 사위’를 얻고자 하는 事例가 늘어날 展望이다.

    이명숙 辯護士는 “피도 살도 안 섞인 南(量子)보다는, 딸의 피가 섞인 아이에게 代를 잇게 하겠다는 것인데, 直系家族에게 가(家)를 繼承시키겠다는 思考 自體가 이젠 버려야 할 家父長制의 殘滓”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條件’李 結婚의 主體?

    데릴사위의 무엇보다 큰 問題는 結婚이라는 人生의 큰 決定에 丈人, 丈母의 목소리만 있고 정작 結婚 當事者인 딸의 목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當事者는 빠진 채 父母가 내건 ‘條件’李 結婚의 主體가 되는 境遇가 大部分이었다. 鮮于 이웅진 代表는 “데릴사위로 들어가더라도 그 집안의 經濟力이 結婚 目的이어선 안 된다”고 指摘했다.

    이명숙 辯護士는 “過去 女子가 男子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槪念이나 男子가 데릴사위로 妻家에 들어가는 것이나 ‘한쪽에 從屬된다’는 것은 같다. 只今은 獨立된 男女가 만나 새로운 家庭을 꾸리는 時代다. 두 사람이 어떻게 家庭을 꾸릴지는 徹底하게 그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結婚 當事者들도 妻家든 市價든 父母의 財産은 別個라는 認識을 가져야 한다”고 强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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