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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가우디의 都市|新東亞

피카소와 가우디의 都市

  • 組成式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入力 2004-11-16 1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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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女가 많고 氣候가 좋고 藝術이 살아 숨쉬는 都市 바르셀로나. 스페인에서 가장 富裕한 이 都市 곳곳에서는 춤과 音樂과 美術을 만날 수 있다. 休日과 休暇를 最大限 즐기는 이곳 사람들은 蹴球試合이 열리는 날엔 狂亂의 도가니에 빠진다.
    바르셀로나를 찾은 지 4日째 되던 날 記者는 韓國의 서울驛에 該當하는 산츠驛에서 北쪽의 小都市 블라니스行 國鐵을 타고 바르셀로나 郊外로 나가봤다. 出發한 지 20分도 채 지나지 않아 그림 같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르셀로나를 감싸고 있는 地中海다.

    물빛만 봐서는 韓國의 東海와 비슷하지만 仔細히 보면 뭔가 다르다. 于先 東海에 비해 포근하고 便安한 느낌을 준다. 東海가 男性的이라면 地中海는 女性스럽다. 海邊의 風光도 적잖이 다르다. 海岸線이 꾸불꾸불夏至 않고 거의 直線으로 뻗어있다. 이런 海邊이 數百km에 이른다. 汽車길 발목까지 바닷물이 차오른 區間도 꽤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沙場에서 사람들은 공놀이를 하거나 日光浴을 즐긴다. 스스럼없이 입맞춤을 하고 껴안고 海邊에 나뒹군다. 더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도 보인다. 海邊엔 椰子樹같이 잎이 큼지막한 나무들이 넉넉한 품으로 서있다. 캠핑用으로 보이는 통나무집, 그리고 아주 가끔씩 카페가 눈에 띈다. 바다에서는 요트들이 커다란 새처럼 빠르고 强하게 물살을 가른다.

    바르셀로나는 해마다 여름에 人口의 5倍에 이르는 觀光客을 맞는다. 主로 中部 및 北部 유럽 사람들이다. 따뜻한 海邊이 그리운 이들에게는 바다구경이 市內觀光 못지않다. 一部 海邊엔 裸體村까지 形成돼 있다. 皮膚癌에 좋다는 所聞에 이곳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르셀로나에서 海岸을 따라 죽 올라가면 프랑스 南部地方에 닿는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貧民層을 빼고는 다들 別莊을 갖고 있거나 賃借해 쓰고 있다. 週末이나 休暇 때 家族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別莊이 密集한 地域이 바로 바르셀로나에서 블라니스에 이르는 海岸地球다. 이곳 地形은 앞에는 바다가, 뒤로는 나즈막한 山자락이 펼쳐져 있다.



    블라니스까지는 約 한 時間 半 假量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바르셀로나와 블라니스의 中間쯤에 該當하는 한 驛(Vilassar de Mar)에 내려 暫時 海邊을 거닐었다. 이미 해는 고개를 뒤로 꺾은 터였다. 바다는 저녁食事를 하듯 시나브로 노을을 베어먹고 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距離에서 바르셀로나의 밤이 고양이 눈빛처럼 반짝거리기 始作했다.

    “正말 女子들이 예쁘다”

    바르셀로나에 對한 ‘强烈한’ 느낌 다섯 가지.

    첫째, 美女가 많다. 美의 基準이 뭐냐고 따진다면 記者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저 ‘普遍的 觀點에서’라고 둘러댈 수밖에. 눈이 크고 깊고 콧날이 오뚝하며, 下體가 길고 全般的으로 늘씬한 便이다. 이런 얘기는 바르셀로나에 살거나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共通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現地에서 宿泊業을 하는 僑民 K氏,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國際貿易에 從事해온 B氏, 美國 한 言論社의 서울支局長인 D氏, 家庭主婦 L氏 같은 사람들이다. 特히 L氏는 “같은 女子가 봐도 正말 女子들이 예쁘다”고 讚歎을 늘어놓았다.

    둘째, 氣候가 그만이다. 바닷가에 位置한 이 都市는 ‘살기 좋은 氣候의 代名詞’인 地中海性氣候에 폭 싸여 年中 溫暖하다. 年平均 氣溫은 15.8℃. ‘해를 팔아먹고 사는 都市’라는 別名이 말해주듯 一年 내내 햇볕이 따뜻하다. 여름과 가을에 一時的인 雨期가 있지만 韓國처럼 장마가 지는 境遇는 없고 내리더라도 今方 그친다. 여름은 平均 25℃로 適當히 덥고 겨울은 10℃ 안팎으로 따뜻한 便이다. 그렇다고 바르셀로나에서 눈구경이 不可能한 것은 아니다. 車를 타고 한두 時間 郊外로 나가면 스키場을 만날 수 있다.

    셋째, 藝術이 살아 숨쉬는 都市다. 사그라다 패밀리아 聖堂을 비롯한 天才 建築家 가우디의 華麗한 建築物들이 都市 全體에 藝術的 生氣를 불어넣고 있으며 피카소美術館, 迷路美術館, 타피에스美術館 等 都心 곳곳에 자리잡은 大型 美術館엔 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거리마다 樂士와 行爲藝術家, 노래 부르는 사람, 춤추는 사람 等으로 늘 소란스럽고 흥겨운 雰圍氣다.

    넷째, 사람들이 수다스럽고 親切(?)하다. 電鐵에서든 버스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外國人이 말을 걸었을 때 말이 안 통하면 웬만하면 입을 다물거나 避하기 마련인데, 相對方 處地는 아랑곳하지 않고 自己네 말로 熱心히 說明한다. 空港이나 驛 案內所, 호텔과 食堂 等 몇몇 場所를 빼면 英語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다섯째, 正말 많이 먹는다. 뒤에 다시 說明하겠지만 이 사람들, 먹는 量이 장난이 아니다. 食事 回數도 많을 뿐더러 時間도 길다. 일하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지만, 何如튼 먹는 데 바치는 情熱이 대단하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北東쪽 地中海 沿岸에 자리잡은 카탈루냐주(州)의 首都다. 카탈루냐주의 人口는 스페인 人口의 15%에 該當하는 約 600萬名. 그中 70%가 바르셀로나에 몰려 있다. 카탈루냐는 面積은 스페인 全體의 6.5%에 지나지 않지만 國民總生産量의 20%를 차지할 程度로 스페인에서 經濟的으로 가장 富裕한 地方이다.

    商工業이 發達한 바르셀로나는 한마디로 카탈루냐의 寶物이다. 흔히 首都 마드리드에 이어 스페인 第2의 都市로 불리지만, 經濟的으로는 第1의 都市다. 일찍이 纖維工業이 發達해 人口가 暴發的으로 增加했으며, 化學·金屬工業도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 內亂(1936∼1939年) 後 한동안 沈滯에 빠지기도 했으나 灌漑施設이 갖춰진 에브로江 西部의 豐富한 農産物과 피레네山脈(프랑스와 警戒)의 水力으로 自動車와 航空機 産業, 食品加工業 等이 活氣를 띠면서 繁榮을 持續했다. 가죽 製造業의 發達로 구두나 가방값이 싸고, 琉璃나 세라믹, 타일 等을 利用한 工藝品도 大量으로 生産하고 있다.

    스페인에는 모두 17個의 自治政府가 있는데, 예로부터 獨立性向이 가장 强한 株價 바로 카탈루냐다. 只今도 카탈루냐주에서는 公用語로 스페인語보다 카탈루냐語를 더 많이 쓴다. 中世와 近代에 番番이 獨立을 要求하며 叛亂을 일으켰으나 失敗로 돌아가곤 했다. 19世紀 末 스페인 全域을 휩쓴 社會主義 및 無政府主義運動의 中心地였으며 스페인 內亂 當時엔 共和政府(人民戰線政府)의 마지막 據點이었다.

    內亂에서 勝利한 프랑코의 軍部勢力은 이 地域의 固有한 文化와 抵抗氣質을 徹底하게 억눌렀다. 하지만 카탈루냐地方 사람들은 1977年 終身 總統 프랑코가 죽은 直後 期於이 自治政府를 세우는 데 成功했다. 1992年에는 황영조의 마라톤 金메달 獲得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대로 올림픽을 치렀고 그後 飛躍的인 發展을 거듭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到着한 記者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鬪牛場이었다. 鬪牛 競技는 특정한 날에만 열리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는 鬪牛場이 두 군데 있다. 에스파냐 廣場 周邊에 있는 라스 아라네스와 사그라다 패밀리아 聖堂에서 가까운 某뉴멘탈이 그곳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驛인 산츠驛 내 觀光案內所 職員은 이 地域 言語가 半쯤 섞인 英語로 “라스 아라네스 鬪牛場은 閉鎖된 지 오래됐고, 某뉴멘탈은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으니 直接 찾아가 보라”고 일러줬다.

    바르셀로나에는 電鐵이 잘 發達돼 웬만한 데는 電鐵로 다 찾아갈 수 있다. 5號線까지 있는데, 市內 全區間 料金이 160페세타로 同一하다(2001년 10月 現在 1페세타는 約 7원). 10回分人 割引티켓 T10(885페세타)을 끊으면 電鐵과 버스를 다 탈 수 있다.

    카탈루냐 廣場에서 햇볕 즐기기

    電鐵 利用方法은 서울과 비슷한데, 큰 差異點은 座席 配置다. 韓國은 여러 사람이 區分 없이 앉는 集團座席 形態지만 여기선 모든 座席이 個別用이다. 2人用 椅子가 基本인데, 이것은 獨立的인 形態의 1人用 椅子 두 個를 조금 間隔을 떨어뜨려 連結해 놓은 것이다. 옆에 앉은 乘客의 엉덩이나 허리가 붙는 것을 源泉的으로 封鎖한 셈이다. 바르셀로나 電鐵에는 이런 2人用 椅子를 마주보도록 設置한 4人用 座席이 主宗을 이룬다.

    산츠驛에서 5號線을 타고 사그라다 패밀리兒役까지 간 다음 2號線으로 바꿔 한 區間만 더 가면 모뉴멘탈역이다. 驛에서 나오자 鬪牛場이 곧 눈에 들어왔다. 城壁과도 같은 巨大한 原形 體育館인데, 빙 돌아가며 鐵門이 여러 個 設置돼 있다. ‘유감스럽게도’ 鬪牛場은 門을 닫은 狀態였다. 女大生으로 보이는 行人에게 물어보니 시즌이 막 끝나 올해는 더 以上 競技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鬪牛士들은 韓國의 프로씨름꾼 以上의 待遇를 받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에서 가장 잘사는 都市인 까닭에 相當數 1級 鬪牛士가 이곳에 몰려 있다고 한다. 여기에도 韓國의 ‘演藝街中繼’ 같은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鬪牛士의 戀愛 스캔들이 主要 話題다. TV에서 競技마다 中繼하는데, 한 番 競技할 때마다 한두 名의 鬪牛士가 소에 받혀 負傷을 當하는 事故가 생긴다.

    鬪牛場 건너便 작은 廣場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大使나 노래 없이 춤으로만 進行하는 舞踊劇이다. 舞踊手는 女子 셋에 男子 하나다. 그들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音樂에 맞춰 부드럽고 優雅하게 때론 激烈한 몸짓을 보여줬는데, 臺詞가 없어서 그런지 表情 演技가 볼 만했다. 흥겨운 音樂이 흐를 때면 觀客들이 拍手로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家族 單位의 觀客이 많았다.

    이런 野外公演은 바르셀로나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 都市에는 스페인의 여느 都市가 그렇듯 廣場이 發達해 있는데, 廣場에서는 여러 形態의 野外公演을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市內는 카테드랄(대성당)을 비롯한 옛 建築物이 잘 保存된 舊市街地와 新市街地로 區分된다. 舊市街地와 新市街地의 境界를 이루는 곳이 바르셀로나 市民들의 代表的인 休息空間인 카탈루냐廣場이다.

    噴水가 뿜어져 나오고 숲으로 둘러싸인 이 廣場은 바르셀로나 觀光의 出發點이기도 하다. 外國人을 위한 循環觀光버스가 이곳에서 出發해 이곳으로 돌아온다. 카탈루냐廣場役은 國鐵과 電鐵 1號線, 3號線이 交叉하는 交通의 中心地祈禱 하다. 廣場 바로 옆에 엘 코르테 잉글레스라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百貨店이 자리잡고 있다. 數百 마리의 비둘기가 廣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사람들은 나무椅子나 步道블록에 앉아 햇볕을 즐기거나 公園을 散策한다. 한쪽에선 南美風의 樂團이 비틀스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男女 가릴 것 없이 다들 半팔 차림이다. 特히 女子들의 옷차림이 輕快하고 大膽하다. 하나같이 아랫배를 果敢하게 드러낸 것이 印象的이다. 가슴 가리개에 핫팬츠만 걸친 女子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아예 웃옷을 벗은 男子도 있다.

    바르셀로나의 10月 平均氣溫은 17.6℃. 늦가을과 겨울 날씨는 韓國의 봄과 비슷하다. 11月이 13.5℃, 12月이 10.3℃, 그리고 가장 추운 1月이 9.5℃에 지나지 않는다. 10月 下旬인데도 午前 11時만 되면 햇볕이 눈부시다. 그렇지만 땀을 흘릴 程度의 더위는 아니다.

    카탈루냐廣場에서 콜럼버스 記念塔이 세워져 있는 港口까지 곧게 뻗은 길이 바로 이 都市에서 가장 繁華街인 람블라스거리다. 電鐵 두 區間 距離다. 람블라스란, ‘물이 흐른 痕跡’이라는 뜻으로 元來 市內에 물을 供給하는 水路였다.

    서울의 大學路와 인사동을 聯想시키는 람블라스거리는 크게 3等分돼 있다. 한가운데는 幅 30m 假量의 報道가 있다. 그 兩옆으로 各各 1車線 一方道路가 뻗어있다. 道路 바깥으로는 호텔, 레스토랑, 바, 옷가게, 換錢所, 記念品 가게, 劇場 等이 줄지어 있다.

    람블라스 거리의 熱氣

    구경거리가 櫛比한 곳은 한가운데 있는 報道다. 서울의 鳴動거리처럼 사람들이 발에 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各樣各色의 마임가다. 이들은 銅像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있다가 사람들이 돈桶에 銅錢을 던지면 재미있는 몸짓을 보여준다. 例컨대 머리부터 발끝까지 金빛으로 扮裝한 마임가는 손에 트럼펫을 든 채 서있는데 돈을 건네면 約 20秒間 트럼펫을 연주했다가 다시 元來의 不動姿勢로 돌아간다. 停止動作과 瞬間動作이 워낙 精巧해 처음 보면 사람인지 彫刻像인지 헷갈릴 程度다.

    마임家들 못지않게 人氣를 끄는 것은 演奏家들이다. 이들은 모두 獨特한 姿勢로 演奏한다. 고둥 模樣의 긴 나무 樂器로 異常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원숭이나 個를 앉혀놓고 기타와 하모니카를 演奏한다. 아코디언에 맞춰 탱고를 추는 男女도 있다. 公演이 끝날 때마다 收金員이 구경꾼들에게 帽子를 내미는데, 돈 안 낸다고 引上 찌푸리는 일은 없다.

    肖像畫를 그려주는 畫家들도 눈療飢거리. 하나같이 相當한 實力을 뽐내고 있다. 그밖에 琉璃板에 그림을 그려 파는 靑年, 야바위꾼처럼 카드牌를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젊은 女子, 웃통을 벗은 채 칼을 입 속 깊이 넣는 老人 借力師의 모습이 이채롭다. 꽃가게와 노천카페度 盛業中이다. 람블라스거리는 새벽녘까지 젊은이들의 입맞춤과 抱擁의 熱氣로 가득하다.

    바르셀로나에는 유난히 거리樂士, 特히 其他 演奏家가 많다. 람블라스거리 外에도 觀光地라면 어디든 거리樂士를 만날 수 있다. 廣場과 地下道에는 늘 기타나 바이올린 소리가 울리고, 레스토랑이나 카페 또는 바 周邊에서도 기타를 연주한 후 웃는 얼굴로 돈을 要求하는 樂士를 흔히 볼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여럿이 어울려 춤추기를 즐긴다. 그 代表的인 것이 民俗舞踊인 사르다나다. 이 춤은 土·日曜日에 特定場所에서만 볼 수 있다. 記者는 ‘分數 쇼’를 보기 爲해 람블라스距離에서 멀지 않은 카테드랄地球를 徘徊하다가 偶然히 사르다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사르다나는 여러 사람이 圓을 만들어 樂隊의 伴奏에 맞춰 3拍子 스텝을 밟으며 빙글빙글 도는 춤이다. 처음엔 느리지만 漸次 速度가 빨라진다. 外國人도 所定의 ‘入場料’를 내면 隊列에 끼어들 수 있는데 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사르다나 스텝을 맞추면서 오랜 歲月 지켜온 獨立精神과 特有의 連帶感을 確認한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藝術의 都市답게 오페라나 발레, 演劇, 映畫가 盛況을 이루고 있다. 그 中心地가 바로 람블라스거리와 隣近 골목이다. 람블라스거리에서 가장 有名한 곳은 리細雨劇場이다. 國內外에서 熱誠的인 오페라 팬이 몰려들기 때문에 豫賣를 해두지 않으면 公演을 보기가 어렵다. 記者가 둘러본 날엔 ‘맥베스’가 공연되고 있었다.

    劇場이 密集해 있기로는 람블라스거리에서 한 블록 程度 떨어진 파라렐거리가 더하다. 이 距離에 있는 劇場들에서는 寸劇, 古典劇, 現代劇, 플라멩코쇼 等이 밤늦도록 펼쳐진다. 한便 映畫에 對한 關心도 커 바르셀로나 中心街에만 100餘 군데의 映畫館이 자리잡고 있다. 最近 몇 年 사이 韓國에도 부쩍 늘어난 시네마콤플렉스, 곧 하나의 建物에 몇 個의 映畫館이 있는 大型劇場이 主宗을 이루고 있다.

    스페인의 밤을 타오르게 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플라멩코쇼다. 南쪽 안달루시아地方의 세非我가 本고장이긴 하지만 솜씨 좋은 樂團과 舞踊手는 바르셀로나에 몰려 있다는 게 定評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플라멩코 音樂을 工夫하고 있는 留學生 백승구(34)氏는 “플라멩코는 元來 춤이 아니라 音樂”이라며 “우리나라의 槍과 비슷한 집시들의 노래에서 出發했는데, 拍手장단과 其他 演奏 等이 더해지고 나중에 춤이 結付됐다”고 말했다.

    白氏에 따르면 플라멩코쇼가 가장 商業的으로 發展한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다. 理由는 어느 都市보다 플라멩코 演技者들에게 待遇를 잘해 주기 때문이다. 記者는 호텔 案內臺에 備置된 플라멩코쇼 觀覽券을 사서 밤 10時 公演을 봤다. 값은 4000페세타. 로스 타란토스라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플라멩코 公演場이다. 바를 겸하고 있는 이런 形態의 公演場을 이곳에서는 타블라오라고 부른다. 公演을 보는 동안 술이나 飮料水가 無料로 提供된다.

    公演팀은 男子 기타 演奏者 2名과 女子 歌手 1名, 女子 舞踊手 2名 및 男子 舞踊手 1名으로 構成됐다. 한 時間 半 假量 進行됐는데 全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女歌手의 노래는 映畫 ‘西便制’의 한 場面을 떠오르게 했다. 팔 動作이 크고 손을 허리에 대고(여자 舞踊手의 境遇 한 손으로 치마를 쳐들면서) 발을 구르는 動作이 무척 力動的이었다. 男女 舞踊手의 神技에 가까운 탭댄스에 觀客들은 熱狂하며 拍手를 아끼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藝術을 論하면서 안토니 가우디를 빼놓는 것은 스페인의 文化를 다루면서 鬪牛나 플라멩코를 言及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比重은 絶對的이다. 太陽과 더불어 바르셀로나를 살찌우는 一等功臣이 바로 가우디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事後 80年이 다 돼가는 只今 가우디가 남긴 作品들은 바로셀로나 觀光의 核心을 이루고 있다.

    사그라다 패밀리아 聖堂. 170m 높이의 8個의 巨大한 뾰족塔으로 象徵되는 이 聖堂은 가우디 最後의 作品이자 代表作으로 꼽힌다. 가우디는 工事가 始作된 지 1年이 지난 1883年부터 關與했는데, 그때부터는 모든 工事가 가우디의 設計대로 進行됐다. 特異한 것은 只今도 建築이 繼續되고 있다는 點. 워낙 디자인이 精巧하고 複雜한 데다 敎會財團의 慢性的인 赤字로 工事가 자주 中斷되다보니 完工이 限없이 늦춰진 것이다.

    獨身으로 지낸 가우디는 半平生을 이 工事에 바쳤다. 實際로 1914年부터는 다른 일은 一切 하지 않고 作業室度 現場 事務室로 옮기고 宿食도 이곳에서 人夫들과 함께 했다. 1926年 가우디는 일터인 이 聖堂 앞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가 電車에 받혀 죽었다.

    사그라다 패밀리아 聖堂은 앞으로도 200年 後에나 完工될 豫定이다. 建築 財源은 觀光客의 觀覽料로 充當하고 있다. 1年에 約 100萬名이 이곳을 訪問하고 있다. 入場料가 850페세타이니 연 8億5000萬페세타(59億5000萬원)의 觀光收入을 올리는 셈이다.

    電鐵 2號線 또는 5號線 사그라다 패밀리兒役에 내리면 곧바로 聖堂 入口다. ‘어떻게 저렇게 奇妙하고 雄壯한 塔과 門과 窓을 돌로 빚을 수 있을까’ 하는 感歎이 절로 솟구친다. 한쪽에선 흉물스러운 鐵骨이 그물網처럼 퍼져 있고 起重機가 움직이는 等 어수선한데, 이 神祕의 聖堂은 敬畏스럽기만 하다. 塔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꾸불꾸불한 돌階段이 迷路처럼 펼쳐져 있다. 사이사이에 있는 돌窓門 밖으로 바르셀로나 市街地가 조각나 있다. 聖堂 뒤便에는 커다란 湖水가 잠자듯 누워 있다. 참으로 가우디의 靈魂이 바르셀로나 蒼空에 떠도는 듯한 느낌이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지어놓은 建築物은 市內와 近郊를 包含하면 모두 12個에 이른다. 그中에서도 特히 구엘公園에 가보면 왜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都市’로 불리는지 實感하게 된다.

    電鐵 3號線 발카라驛에서 내려 15分 假量 비탈길을 오르면 公園 뒤쪽 入口가 나타난다. 十字架가 세워진 돌塔에 올라서자 바르셀로나 全景이 한눈에 들어온다. 午後 3時.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을 뜨지 못할 程度로 햇빛이 强烈하다. 元來 이곳은 가우디의 熱烈한 後援者였던 구엘의 私有地였다. 가우디는 여기에 理想的인 田園都市를 만들 計劃이었다. 그러나 資金 不足 等의 理由로 工事에 蹉跌이 생기는 바람에 計劃한 60餘 個의 住宅 中 두 채만이 建設됐다. 以後 所有主가 바르셀로나시로 바뀌면서 1922年 市立公園이 되었다.

    이 公園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모자이크 裝飾과 洞窟 形態의 散策路다. 거기에 數十 個 기둥이 받치고 있는 巨大한 돌 錚盤 模樣의 休息空間과 人體 特徵을 考慮해 만든 돌 벤치, 妖術의 집을 聯想시키는 住宅, 알로에를 비롯한 人工樹林이 調和를 이뤄 公園 全體가 하나의 彫刻品 같은 느낌을 준다.

    午後 2時면 門 닫는 官公署

    구엘公園에서 카탈루냐廣場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갈 때와 달리 버스를 탔다. 韓國 버스와 다른 點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먼저 맨 앞자리에 兒童用 座席 2個가 따로 마련된 것. 이 座席은 一般 座席보다 작고 別途의 保護손잡이가 設置돼 있다. 座席은 電鐵과 마찬가지로 모두 1人用 椅子다. 또 障礙人 保護施設이 잘 갖춰져 있다. 휠체어를 탄 障礙人이 타고 내릴 때는 버스가 한쪽으로 若干 기울어지면서 깔板이 미끄러져 나와 便宜를 提供한다.

    그밖에 가우디의 傑作으로는 작은 宮殿과도 같은 구엘 邸宅, 建物을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놓은 듯한 카사 밀라, 骸骨 눈구멍 같은 窓門 탓에 밤이 되면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카사 바트요 等이 꼽힌다.

    가우디 外에도 바르셀로나에는 當代 最高 藝術家들의 痕跡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바로 피카소, 迷路, 달리 等이다. 안달루시아地方 말라가에서 태어난 파블로 피카소는 14歲 때 바르셀로나로 移住해 이곳에서 學窓時節을 보냈다. 最初의 個人展도 바르셀로나에서 열었다. 現代 美術의 또다른 巨匠인 湖岸 迷路圖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美術學校를 다녔다. 바르셀로나 近郊인 피게라스 出生인 살바도르 달리 또한 바르셀로나에서 美術을 工夫하며 일찍이 超現實主義的 傾向을 드러냈다.

    電鐵 4號線 하우메역에 내려 5分 程度 걸으니 住宅街 골목 안쪽에 피카소美術館이 보였다. 習作 形態의 初期作品이 많았다. 特히 人物 初喪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어둡고 沈鬱한 느낌이다. 美術館 1層과 周邊商街에는 ‘피카소 商品’을 둘러보는 觀光客의 발길이 넘친다.

    이제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生活相과 社會制度를 살펴보는 것으로 얘기를 끝맺자. 먼저 食事文化. 現地에서 言語硏修中인 僑民 박현아氏는 “스페인의 食事文化란 한마디로 많이 먹고 많이 떠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學校나 職場에서는 하루 세끼의 食事時間 外에 두 次例의 間食時間이 따로 있다. 勿論 公式的으로 認定되는 時間이다. 普通 午前 8時쯤 빵이나 牛乳 等으로 아침食事를 한다. 午前 10時∼11時는 間食時間이다. 바에서 샌드위치와 커피 等을 먹는다. 10時半이 되면 洞네 바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午後 1時에 始作되는 點心時間은 午後 4時까지 이어진다. 點心 後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라는 風習에서 由來된 것인데, 大部分 먹고 떠드는 時間으로 利用된다. 이 時間에는 職場은 勿論이고 觀光地 가게나 큰 쇼핑몰, 食堂을 빼놓고는 一般 가게도 다 門을 닫는다. 午後 대여섯時엔 다시 間食時間을 갖는다. 午後 8時半. 하루의 마지막 食事인 저녁食事가 始作된다. 저녁食事는 普通 10時 안에 끝나지만, 늦으면 11時, 12時까지도 이어진다.

    食事量도 대단하다. 點心이나 저녁 等 鄭軾은 普通 네 段階에 걸쳐 먹는다. 처음엔 野菜나 스프 또는 스파게티를 먹는다. 이어 고기나 生鮮 等의 본 料理를 든다. 그것이 끝난 다음에는 케이크나 과일을 먹고, 마지막으로 커피나 差 等 飮料를 마신다.

    바르셀로나에서 業務時間은 食事時間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一般的으로 午前 9時∼午後 1時半 또는 2時, 午後 4時∼午後 8時가 業務時間이다. 하지만 官公署와 銀行, 郵遞局은 午後 2時면 門을 닫는다.

    여기서 한 가지 疑問이 생긴다. 都大體 일은 언제 하냐는 것. 이와 關聯해 僑民 김현욱(37·새누리敎會 牧師)氏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하루에 되는 일이 없다. 代身 주어진 時間 內에 正確하고 꼼꼼하게 일한다. 電話를 申請해 設置하는 데 一週日이 걸렸다. 그렇지만 매끄러운 일솜씨를 보고 感歎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食事時間만큼은 徹底하게 지킨다. 손님이 뭘 思慮해도 門을 닫아걸고 팔지 않는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只今은 오히려 여기 사람들이 正常이 아닌가 생각한다. 韓國에선 뭐든지 서두르고 쫓기고 競爭이 熾烈하다. 그러니 삶에 餘裕가 없다.”

    食事文化 못지않게 부러운(?) 것은 休日과 休暇 使用 風土다. 土·日曜日을 뺀 年間 公休日 數는 16日이다. 聖母昇天日 主顯節 四旬節 復活節 等 基督敎 關聯 休日이 많은 것이 特徵이다. 特히 四旬節을 앞두고는 모든 學校가 10日間 放學에 들어간다. 公休日 外에 各種 祝祭 때도 쉰다. 그런데 公休日이 火曜日이나 木曜日에 걸리면 月曜日이나 金曜日도 休日로 看做한다. 따라서 그 境遇엔 土·日曜日을 包含해 4日 連休가 된다.

    出産하는 데 5000원

    여름休暇는 相當數 유럽國家에서 그렇듯 한 달間 보낸다. 또 週末 休暇는 徹底하게 지키는데, 大部分 郊外 別莊에서 家族과 함께 보낸다. 別莊이 없는 사람들은 캠핑場을 活用한다. 다시 金牧師의 얘기.

    “韓國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오면 文化衝擊을 받는다. 여기 사람들은 韓國人들이 여름休暇로 一週日만 쉬고 平素에는 休暇를 거의 쓰지 않는 데 對해 크게 놀라워한다. 어떻게 그런 式으로 일하고 사느냐는 것이다. 特히 休暇中에도 일處理하는 것은 到底히 理解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僑民 中에 跆拳道 師範 出身으로 寢房을 運營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와서 ‘내가 이 사람들처럼 살다가는 굶어죽는 것 아니냐’는 不安感에 시달렸다. 그러나 只今은 익숙해졌다. 다들 똑같이 門 닫고 쉬니 아무런 問題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福祉制度 中 가장 내세울 만한 것은 醫療制度다. 먼저 醫療保險費가 유럽 國家들의 平均値보다 싸다. 政府가 醫療保險을 管掌하는 韓國과 달리 이곳에서는 自身이 願하는 病院에 個別的으로 醫療保險을 든다. 또 國立病院을 利用하면 모든 것이 無料이고 藥값만 내면 된다. 外國人의 境遇 旅券만 갖고 있으면 各 洞네에 있는 1次 診療機關을 거쳐 어느 病院에서나 無料로 診療를 받을 수 있다.

    김현욱 牧師 夫婦의 境遇 이곳에서 둘째를 낳았는데, 入院-出産-退院에 이르기까지 各種 診察과 檢査를 無料로 받았다. 돈이 들어간 것은 週末 診察料와 處方箋에 따른 藥값뿐이었다. 다해서 우리 돈으로 約 5000원이 들었다고 한다.

    敎育制度도 눈여겨볼 만하다. 高等學校까지 義務敎育인데, 國立은 學費가 들지 않는 反面 私立은 授業料를 내야 한다. 私立大學 授業料는 韓國과 비슷하지만 국·公立大學의 境遇 아주 싼 便이다. 바르셀로나大學만 해도 1年 授業料가 10만페세타가 채 안된다. 大學에 들어가는 門은 넓으나 卒業은 쉽지 않다. 外國人도 例外는 아니다. 또 名門大·非名門大 區分에 따른 社會的 差別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얘기하면서 蹴球를 빼놓는다면 이곳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살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蹴球스타의 人氣가 一流 鬪牛士를 凌駕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널리 알려졌듯, F·C 바르셀로나라는 世界的인 강팀이 있다. 各國의 스타플레이어로 構成된 이 팀은 首都 마드리드의 看板 蹴球팀人 레알 마드리드와 더불어 스페인리그의 頂上을 다투고 있다.

    두 팀間의 京畿 熱氣는 한·일전 以上이다. 두 都市間의 傳統的인 라이벌 意識에 카탈루냐주 特有의 民族感情이 表出되기 때문이다. 競技場 곳곳에는 스페인 國旗가 아닌 카탈루냐 駐旗발(노란 바탕에 빨간 줄 4個)李 휘날린다. 競技가 열리는 날은 可히 戰爭이다. 防牌와 몽둥이를 든 武裝警察이 競技場 안팎에 配置되고 競技場 밖에는 警察버스와 應急車 10餘 臺가 待機한다. 試合에서 지기라도 하면 暴動 水準의 騷動이 일어난다. 돌과 椅子가 날아가는 等 牌싸움이 벌어지고 그 어느 示威보다 過激한 示威가 펼쳐진다.

    ‘발샤 와와와, 마드리드 우우우’

    試合이 열리는 동안 거리엔 車가 다니지 않고 市內는 閑散하다. 蹴球場에서 競技를 보려면 一週日 前에 觀覽券을 豫買해야 한다. 票를 求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洞네 바로 몰려가 應援用 숄을 두른 채 集團應援을 펼친다. 자리가 없으면 맨바닥에 新聞紙를 깔고 앉을 程度로 熱誠이다. 바르셀로나팀이 골을 넣으면 一齊히 터지는 喊聲으로 온 市內가 떠나갈 듯하다.

    首都 마드리드에 對한 競爭意識은 學校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應援 要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은 바르셀로나팀을 應援할 때는 ‘발샤(바르셀로나팀의 愛稱) 와와와’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도록 배운다. 反面 레알 마드리드팀에 對해서는 ‘마드리드 우우우’ 하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꺾는다.

    이처럼 熱情的인 바르셀로나 사람들이지만 돈 씀씀이에 있어서는 猶太人 소리를 들을 만큼 冷靜한 便이다. 韓國에서 衣類를 輸入해 파는 권태환(62)氏에 따르면 바르셀로나 富者들은 티를 내지 않는다. 옷차림이 수수하고 貯蓄을 많이 하며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車道 小型車가 많으며 10年, 20年 以上 된 車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外郭 高速道路를 利用하면 便利하지만 使用料 내는 것이 아까워 迂廻道路를 利用할 程度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權氏에 따르면 이 都市에는 寄附文化가 잘 發達돼 있다. 孤兒院이나 養老院, 아프리카 口號事業, 宣敎事業 等에 듬뿍듬뿍 寄附한다. 다른 한便으로 家族과 더불어 餘暇를 즐기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徹底하게 쉬고 즐기고 節約하고 寄附하는 風土. 이만하면 살기 좋은 都市로 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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