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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健熙 會長 말 듣다가 우리 亡하는 거 아닌가” [經濟思想家 李健熙 探究 ⑦]|新東亞

“李健熙 會長 말 듣다가 우리 亡하는 거 아닌가” [經濟思想家 李健熙 探究 ⑦]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1-02-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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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꿔야할 것은 三星이 아니라 三星人

    • 같은 값이면 소니를 사지 三星을 사겠나

    • 會長 말 듣다가 會社 亡할 수 있다

    1993년 3월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들어서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3개월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했다. 
[동아DB]

    1993年 3月 22日 서울 올림픽公園 體操競技場에 들어서는 李健熙 會長. 李 會長은 3個月 뒤 獨逸 프랑크푸르트에서 新經營을 宣言했다. [東亞DB]

    손욱 前 三星電子 綜合技術院長은 三星電子가 막 걸음마를 떼기 始作한 1970年代 初盤을 이렇게 記憶하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얼마나 가난하고 劣惡한 環境이었는지를 알면 믿어지지 않을 겁니다. 初期 工場 建物을 보면 甓돌로 쌓은 本部 桐(棟) 斷層짜리 하나에 冷藏庫 工場이 있었고, 오디오나 電子製品 쪽은 美軍 部隊에서 나오는 洋鐵을 동그랗게 말은 퀀셋(Quonset)을 拂下 받아 工場을 지었습니다.” 

    當時 三星電子는 只今으로 따지면 ‘벤처企業’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三星보다 10年 앞서 創業한 競爭社인 금성사는 이미 全國의 代理店 網을 掌握하고 있었다. 

    “事業을 始作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採用한 三星電子 職員들은 ‘外人部隊’ 같은 組織이었습니다. 그야말로 製品 만들기에만 汲汲했지 ‘品質’을 苦悶한다는 것은 奢侈나 다름없었지요. 當時 이병철 會長은 三星電子를 쳐다볼 餘裕가 없을 程度로 바빴기 때문에 主로 李健熙 副會長이 챙겼습니다.” 

    엎친 데 덮친 格으로 삼성전자가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무렵인 1979年 末 2次 午日쇼크가 韓國을 强打했다. 赤字의 늪에 빠진 三星電子는 사람도 제때 뽑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不良製品이 量産되는 惡循環의 덫에 걸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8月로 記憶합니다. 李健熙 副會長이 남궁석 部長(後날 情報通信部 長官)만 데리고 水原 칼라TV 工場을 갑자기 訪問한 거예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수원역에서 職員들 通勤버스를 타고 온 거지요.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서 선 채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끝에 到着한 이 副會長은 工場 內部는 勿論 構內食堂 化粧室까지 샅샅이 둘러봤습니다. 곳곳마다 部品들과 박스들이 먼지와 뒤엉켜 말도 아니었습니다. 

    化粧室 便器는 막혀있고 休紙조차 제대로 없었으니 엉망진창이었지요. 副會長은 職員들을 모아 놓고 ‘어떻게 이런 環境에서 質 좋은 製品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火를 많이 냈습니다. 그리고는 側近으로 알려졌던 한 任員을 全 職員들 앞에서 불러 일으켜 세우더니 ‘내가 이렇게 하라고 當身을 여기 보냈느냐, 當場 나가라’고 호되게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職員들은 두려워하면서도 ‘副會長의 호통이 但只 말에 그치는 게 아니구나’ 하는 確信을 갖게 됐죠. 저는 그날 副會長을 처음 보았는데 正말 카리스마가 대단했습니다.” 

    以後 工場은 天地開闢이 無色할 程度로 바뀌었다고 한다. 化粧室은 ‘新羅호텔級’으로 變했고 工場 바닥에는 비닐壯版이 깔렸다. 孫 前 院長은 會長의 質(質) 重視 經營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이처럼 오랜 時間에 걸친 改革過程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바꿔야할 것은 三星이 아니라 三星人

    李健熙 會長의 新經營 宣言을 한마디로 ‘質(質) 經營 宣言’이라고 할 때 注目해야할 대목은 앞서 에피소드에서도 斟酌할 수 있다. 但只 品質改善에 對한 注文이 아니라 精神改造에 對한 注文이었다는 것이다. 

    會長은 製品의 不良은 그 製品을 만드는 사람들의 意識의 不良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가 始終一貫 變化를 强調했던 것은 ‘三星製品의 質’이 아니라 ‘三星人의 質’이었다. 生前 故人의 말이다. 

    “버젓이 不良品을 내놓고도 未安한 마음이 없는 良心不良, 三星 이름이 들어간 不良品을 보고도 분한 마음이 들지 않는 道德的 不感症, 일하는 사람 뒷다리 잡는 風土와 集團 利己主義 等 精神文化의 不良이 가장 重要하고 深刻한 問題다. 質 좋은 物件을 만들려면 會社 組織도, 三星組織 全體도 質로 가야하고, 여러분 個個人의 人生도 質을 追求해야 한다. 子女 敎育도 質로 가야 이 나라가 質的인 一流가 되며 質的인 삶의 槪念을 確保할 수 있게 된다.” 

    삶의 質이 바뀌어야 製品의 質이 바뀐다는 그의 말은 매우 本質的이다. 生前의 그가 企業의 目的을 但只 利潤追求에만 두지 않았다는 思想家的 側面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李健熙 會長은 冊 ‘생각 좀 하며 世上을 보자’에서 無慮 세 챕터에 걸쳐 ‘質 經營’에 對한 哲學을 說破한다. 于先 그가 왜 質 經營 宣言을 하게 됐는지 밝힌 背景은 이렇다. 

    ‘1970年代 初盤까지만 해도 企業들은 없어서 못 八正道로 物件 만들기에 바빴다. 三星 亦是 무슨 物件이든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 雪糖이나 옷감 같은 品目은 先金을 받고 파는 境遇도 많았다. 正말 그때는 不良品 따위에 神經을 쓰지 않았다. 좀 瑕疵가 있어도 消費者나 生産者 모두 別 不滿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事情이 바뀌었다. 高成長 時代가 低成長 時代로 바뀌고 市場開放으로 世界的인 無限競爭 時代가 열리면서 物件이 없어서 못 파는 生産者 爲主 市場은 想像도 할 수 없게 되었다. 顧客의 要求가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生産者는 이를 受容해야 生存이 기능한 消費者 爲主 市場이 된 것이다. 

    問題는, 時代가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如前히 不良 不感症을 把握하지 못하고, 量的 思考의 慣性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新經營 모토를 ‘質 經營’ 으로 定한 것은, 이처럼 時代 變化에 발 빠르게 適應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여러 弊害를 一掃하기 위해서다.’


    같은 값이면 소니를 사지 三星을 사겠나

    2011년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2011年 三星그룹 新年賀禮式에 參席한 李健熙 會長. [三星電子 提供]

    그의 생각을 읽다보면 사람의 人生이든 組織의 改革이든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想像力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改革이란 結局 旣存까지 옳다고 믿었던 固定觀念과 價値觀을 허무는 일 아닌가. 

    하지만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아무리 리더가 改革의 旗발을 높이 들어도 수많은 改革이 失敗로 돌아가는 理由는 結局 構成員들의 생각 바꾸기에 對한 失敗 때문 아니던가. 이것은 企業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三星 亦是 職員들이 처음부터 會長 말에 모두 首肯했던 것은 아니었다. 甚至於 大部分이 疑懼心을 가졌다는 것이 前職 三星맨들의 一致된 證言들이다. 원대연 前 제일모직 社長 말이다. 

    “當時만 해도 韓國에서는 量(量) 經營이 最高의 價値였습니다. 많이 만들어 輸出하면 各種 惠澤이 주어졌고 銀行에서도 돈을 마음대로 빌려주었으니까요. 損害가 나서 赤字가 나도 帳簿上으로 賣出만 높으면 銀行 借入이 얼마든지 可能한 時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하루아침에 다 버리고 質 經營으로 가라고 하니 다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衝擊에 휩싸였습니다.” 

    현명관 前 祕書室長 말은 더 具體的이다. 

    “서울로 歸國한 뒤 녹초가 된 任員들은 新經營 實踐을 위한 緊急會議를 열었습니다. 다들 어떻게 하면 會長의 생각을 現場에서 잘 具現할 수 있을 것인가 汨沒했지만 率直히 마음 한구석에는 섭섭함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每日 每日 戰鬪를 치르듯 뼈 빠지게 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태까지 했던 건 다 잘못됐으니 확 바꾸라는 말이 좋게 들릴 理가 없었지요. 都大體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感도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자칫 旣存 顧客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아무리 品質을 높인다 해도 日本 製品보다 싼 게 三星의 競爭力이었는데 잘해봐야 日本産과 비슷해지는 것 아닌가, 泄瀉 品質改善에 成功한다 해도 物件이 팔리는 것과는 또 다른 別個 問題 아닌가, 같은 質에 같은 價格이면 소니를 사지 왜 三星 것을 사겠나, 이런 생각들이 많았지요. 

    잘못하다가는 改革이고 뭐고 會社가 亡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알 만한 會長이란 사람이 先鋒에 서서 그렇게 하자고 하니 참 難堪한 노릇이었습니다. 企業 運命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狀況에서 理想的 價値만 내세우는 薔薇빛 樂觀이란 것이 잠꼬대와 다를 바 없는 거 아닙니까. 會長의 命令은 任員陣들에게는 어쩌면 거의 賭博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社長들은 苦悶이 많았고 저 亦是 마찬가지였습니다.” 

    흔히 企業이란 것이 오너가 改革을 注文하면 一絲不亂하게 움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理由 中 하나가 오너와 月給쟁이들이 생각하는 ‘時間’의 差異가 크다고 본다. 最近에 國內 10代 財閥에 드는 한 任員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너는 10年 뒤, 20年 뒤를 내다보라고 하지만 任員들에게 남은 時間은 길어봐야 3, 4年이다. 當場 成果를 내는 게 急하지 내가 會社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10年 뒤 20年 뒤를 생각하며 巨創한 計劃을 세우라는 것은 現實的이지 않다.” 

    1993年 新經營 宣言과 맞닥뜨렸던 三星의 系列社 社長들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모든 걸 바꾸자는 會長 말이 맞긴 맞지만 當場 그걸 따랐다가 實績이 떨어지면 그 뒷堪當은 누가 해줄 것인가 하는 걱정과 憂慮는 月給쟁이 立場에선 當然한 것이었으리라. 及其也 社長團들은 李健熙 會長에게 公開的인 ‘抗命’을 하게 된다.


    會長 말 듣다가 會社 亡할 수 있다

    三星맨들 사이에서 新經營 宣言과 關聯해 빠지지 않고 登場하는 에피소드가 ‘스푼 事件’이다. 이 에피소드에는 會長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當時 任員陣들의 現實的인 苦悶과 남들이 뭐라고 하든 뚫고 나가겠다는 會長의 孤獨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황영기 前 KB金融持株 會長 말을 들어보자. 

    “會長이 프랑크푸르트 첫날 特講을 마치고 새벽에 社長團 10餘 名을 房으로 불렀어요. 社長團 意見을 들어보고 싶다면서 말이죠. 會長은 ‘내가 그렇게 質(質)로 가라고 해도 洗濯機 같은 量(量)떼기 짓을 하고 있는가, 이래 갖고는 그룹 亡한다’는 말을 再次 反復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수빈 祕書室長이 ‘罪悚합니다’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뗀 뒤 ‘그런데 會長님, 量이 받쳐줘야 質이 올라가는 거 아닐까요. 아직은 羊을 抛棄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는 거에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室長 말이 끝나기도 前에 갑자기 ‘쨍그렁’ 소리가 났습니다. 會長이 커피盞 받침臺에 올려져있던 티스푼을 냅다 내려놓은 거였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뒤에서 꾸벅꾸벅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놀라 氣絶초風을 했습니다.” 

    當時 會議는 그대로 錄音되고 있었는데 바로 이튿날 프랑크푸르트에 모인 任職員들에게도 그대로 公開된다. 錄音을 들었던 박근희 前 三星生命 副會長도 當時를 생생하게 記憶하고 있었다. 

    “當時 이수빈 室長은 ‘우리 그룹은 거의 製造業인데 量이 前提되지 않는 膣이란 게 무슨 이야기인가? 祕書室長이 會長께 直接 말씀을 좀 드렸으면 좋겠다’는 社長團 意見을 代身 傳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티스푼 하나 내려놓은 것 갖고 뭐 그렇게 銳敏하게 反應하는가 할 수도 있겠지만, 平素 火를 잘 내지 않던 會長이었기에 그런 行動은 正말 드물게 過激한(?) 行動이었습니다. 

    여기에는 當身의 메시지를 斷乎하게 傳達하겠다는 意圖도 있었겠지만 이참에 ‘社長團 軍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보여 집니다. 當時는 會長으로 就任한 지 5年째였는데도 周邊에 選對 會長과 같이 일했던 社長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會長이 火를 낸 相對가 當時 三星 內 2人者이자 會長의 最側近으로 통하던 이수빈 祕書室長이었기에 衝擊은 더 컸다고 한다. 다시 황영기의 말이다. 

    “이 室長은 서른여덟 살인가부터 제일毛織 社長을 했고 人品이나 能力이 매우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會長이 卒業한 高等學校(서울사대부고) 4年 先輩이기도 했으니 더욱 각별했지요. 選對 會長이 가장 寵愛했던 사람 中 하나였고 李健熙 會長도 가장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會長 處地에서는 이 室長이야말로 三星에서 第一 똑똑하고 經驗이 많은 분이니까 當身 뜻을 第一 잘 알아듣고 ‘잘 알겠습니다. 제가 잘 추스려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 말하리라 期待했는데 뜻밖에 反對 意見을 내니 ‘아니, 그렇게 똑똑한 이수빈이도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구나’하는 생각에 失望이 컸으리라 斟酌됩니다.” 

    이 ‘스푼 事件’以後 結局 이수빈 室長은 祕書室長職에서 물러나고 현명관 祕書室長 體制로 바뀐다. 現在 三星顧問으로 있는 이 前 室長은 지난해 10月 28日子 동아일보에 실린 李健熙 會長 追悼辭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社長團 會議를 하실 때 제가 社長團의 意中을 모아 ‘質도 重要하지만 讓渡 重要합니다’라고 했다가 혼난 記憶은 아직도 생생합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李 前 室長이 追悼辭에서까지 當時 에피소드를 言及한 것은 그 일이 當事者에게나 三星맨들 사이에서 얼마나 重要한 事件이었는지를 새삼 斟酌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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