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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쓰기가, 쓰다보면 읽기가…|신동아

읽다보면 쓰기가, 쓰다보면 읽기가…

  • 金賢美 東亞日報 出版팀 次長 khmzip@donga.com

    入力 2006-09-14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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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보면 쓰기가, 쓰다보면 읽기가…

    읽다보면 冊읽기와 글쓰기의 妙한 關係가 느껴지는 두 卷의 冊.

    ‘오래前 나는 쇼핑몰에 있는 카트를 끌고 書店의 冊들을 쓸어 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덤벙덤벙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담는 것은 곤란하다. 처음에는 兩손에 하나씩 들고 題目 程度는 確認하면서 어떤 作家의 것은 모조리, 生疏한 作家의 것은 暫時 멈추어 冊 表紙를 바라보고 느낌에 따라 選別하기도 하면서, 그러나 끝내는 재빠르게, 한 時間 남짓 카트 하나를 冊으로 가득 채워 計算을 하고 車 트렁크를 冊으로 꽈악 채우고서 豫定된 곳으로 떠나는 일을 꼭 한 番 해보고 싶었다.’(‘백수생활백서’ 박주영 지음, 민음사 펴냄)

    冊만 읽는 ‘빌어먹을’ 그女

    冊사냥꾼人 ‘나’는 이 小說의 主人公이다. ‘白手生活白書’는 민음사가 主管하는 ‘2006 오늘의 作家賞’을 受賞했다. 漫畫冊 같은 題目이지만 ‘冊이 나를 繼續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主人公의 獨白이 緊張을 자아낸다. 主人公이 作家인가, 지레 斟酌하지 말라. ‘나’는 冊을 읽고 또 읽을 뿐 쓰지 않는다. 쉽게 말해 白手다.

    ‘나’에 對해 좀더 알아보자. 只今 스물여덟 살이고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 世上을 떠나 記憶에 없다. 食堂을 하는 아버지와 줄곧 단둘이 살았다. 일도 趣味도 없는 ‘나’에게 아버지는 가끔 “빌어먹을…”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誠心誠意껏 하는 일이라곤 冊 읽기가 唯一하다. 지난 10年間 每年 平均 500卷을 읽었다. 아니 하루에 한 卷 以上의 冊을 비타민처럼 服用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래봤자 平生 5萬卷도 읽기 어렵다는 事實에 마음이 바쁘다.

    ‘나’에게 어떤 冊은 읽는 것만으로 不足하다. 1992年 出刊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1990年에 나온 레몽 醬의 ‘冊 읽어주는 女子’ 같은 冊이 그렇다. 이미 絶版된 冊에 對한 所有慾은 참기 어렵다. 인터넷 揭示板에 그 冊을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幸여 놓칠세라 連絡을 한다. 이렇게 ‘그’와 만났다.



    再建築하기 위해 곧 비워야 할 男子의 아파트에는 冊이 너무 많다. ‘나’는 그 房의 冊을 쓰다듬는다. 이미 읽은 冊들에서는 追憶이, 읽지 않은 未知의 冊에서는 好奇心이 불길처럼 일어난다. 冊을 갖고 싶다는 欲望은 낯선 男子에 對한 두려움을 앞선다.

    ‘白手生活白書’는 줄거리가 貧弱한 小說이다. 冊을 사랑하는 女子와 冊을 주려는 男子의 로맨스는 緊張이 떨어지고 그 男子의 ‘했소’체 말套는 無聲映畫 字幕을 보는 것처럼 語塞하다. ‘나’를 둘러싼 人物들-아버지, 女子親舊 채린과 遊戱, 男子親舊 警-은 어쩐지 現實性과 生動感이 不足하다.

    唯一하게 興味를 끄는 것은 ‘나’와 유희의 關係다. ‘나’는 冊 읽기를 좋아했지만 글을 써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平素 冊과 距離가 먼 유희가 어느 날 會社를 그만두더니 小說家가 되겠다고 宣言한다. “小說도 안 읽는 애가 어떻게 小說을 쓰려고” 하며 핀잔을 주는 ‘나’에게 유희는 “그럼, 小說 많이 읽는 너는 왜 小說 안 쓰냐?”고 대꾸한다.

    “하긴 그러네.”

    그 뒤로도 줄곧 ‘나’는 읽기만 하고, 유희는 뭔가를 繼續 쓴다.

    冊벌레를 위한 幻想曲

    이런 弱點에 눈감으면 이 小說은 ‘冊벌레’에게 꽤나 흥미로운 設定이 많다. 主人公이 世上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2層 全體를 아우르는 서재다. 時代를 앞서 간 에세이스트였던 外할머니의 아버지, 大學敎授였던 外할머니의 두 番째 男便(‘나’의 外할아버지), 딱 한 卷의 베스트셀러를 내고 絶筆한 小說家인 ‘젊고 아름다운’ 外할머니, 이렇게 세 사람의 컬렉션으로 꽉 찬 書齋는 想像만 해도 魅力的이다. 文學의 古典부터 媤집, 철학서, 自然科學書籍, SF小說과 探偵物, 畫集, 寫眞集…. 그곳에서 ‘나’는 얼굴도 記憶하지 못하는 엄마의 痕跡을 찾는다.

    冊만 읽으며 노닥노닥 잘 사는 ‘나’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冊 읽어서 뭐 할 거냐?” ‘나’는 “堪當하기 어려운 問題”라고 告白한다. 어떤 사람은 冊 읽는 것이 그리 좋으면 그걸 職業으로 삼으면 되지 않느냐고 忠告하기도 한다. 아무나 다 하는 冊 읽기를 職業으로 삼을 수 있을까?

    ‘나’는 主로 小說을 읽는다. 남들은 冊을 통해 戀愛하는 法, 돈 버는 法, 旅行하는 法까지 배운다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 距離가 멀다. ‘나’에겐 꼭 이뤄야 할 人生의 目標라는 게 없다. 그래서 小說을 읽는다. 小說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苦悶은 冊만 읽고 싶어서 일을 하지 않는데, 일을 안 하니 冊을 살 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짬짬이 便宜店 夜間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深夜 注油員으로 일한다. 그 程度면 冊을 사서 읽는 데 充分한 벌이가 된다.

    ‘나’의 讀書法은 이런 式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면 그의 冊을 모두 읽는다. 그러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레이먼드 카버를 읽는다. 그리고 카버가 極讚한 안톤 체호프로 넘어간다. 카버度 체호프度 죽은 作家여서 더 以上 나올 새 冊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平生 읽고 또 읽어도 좋을 만한 멋진 冊 한 卷을 만나는 일도 어렵지만, 살아갈 나머지 時間에 새로운 이야기를 膳賜해줄 한 사람의 作家를 만나는 일도 아주 어렵다. 폴 오스터는 ‘나’에게 오래된 戀人과 같다. 或是라도 그가 ‘나’보다 먼저 죽어서 언젠가는 읽어야 할 그의 새 冊이 없어질까봐 폴 오스터의 冊 中 몇 卷은 일부러 읽지 않고 모셔둔다. 그러면서도 單番에 폴 오스터를 背信할 수 있는 새로운 作家의 出現을 기다린다.

    “내가 읽은 冊들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보낸 時間이 남아 있다. 내가 그 冊을 選擇한 理由, 그 冊을 읽는 동안 或은 그 冊을 읽었을 즈음 내게 일어난 日까지. 어떤 冊은 다만 記憶으로, 어떤 冊에는 밑줄로, 어떤 冊에는 落書와 메모로.”

    읽고픈 欲望 刺戟하는 글쓰기 授業

    主人公이 “그냥 좋아하는 冊을 읽을 뿐”이라고 한 말이 어쩐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率直히 부럽기도 하다. 冊 읽는 일이 正말 職業이 되어 보라. 읽고 싶은 대로 읽어지는지. 必要에 따라 읽어야 한다.

    ‘白手生活白書’의 獨白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쓰고 싶어진다. 冊 읽는 이야기만 가지고도 이렇게 限없이 수다를 떨 수 있구나 싶고, 作家에게는 未安한 말이지만 글을 쓴다는 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럼, 이런 冊은 어떤가. ‘안정효의 글쓰기 萬步’(某멘토 펴냄)다.

    이 冊은 ‘單語에서 段落까지’ ‘이름 짓기에서 人物 만들기까지’ ‘줄거리 짜기에서 初벌 끝내기까지’ ‘始作에서 推敲까지’ ‘글쓰기 人生의 萬步’ 等 크게 5章으로 構成돼 있다. 한마디로 ‘小說 創作敎室’ 같은 冊이다.

    “小說 쓰기는 至極히 精密한 勞動이어서, 單語 하나하나에 神經 쓰기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낱單語 하나하나가 壁을 올리고 담을 쌓는 데 必要한 甓돌이다. 몇 張의 甓돌을 빼놓으면 담이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單語 하나를 疏忽히 하면 담 全體를 疏忽히 하는 셈이다. 하나의 낱單語를 疏忽히 하면, 그래서 모든 單語를 疏忽히 하는 셈이 된다.”

    小說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은 單語 하나하나를 무서워해야 한다는 著者의 警告 앞에서 내가 小說 쓰는 사람이 아닌 게 多幸이다 싶다. ‘있다’ ‘~것’ ‘~數’가 글쓰기 3炙(三敵)이라는 데는 共感한다. 緊張하지 않으면 한 文章 안에서도 數없이 ‘것, 수, 있다’가 反復되게 마련이다. 그밖에도 ‘던져진 주사위’ 같은 受動態 表現,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따위의 接續社 濫發 等이 세련된 글쓰기를 가로막는다.

    이 冊은 읽으면 읽을수록 글쓰기를 두렵게 한다. ‘小說家가 될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進度를 나가보라. 읽는 일이라면 換腸하지만 한 줄도 쓸 생각이 없는 ‘白手生活白書’의 主人公 같은 冊벌레에게 ‘안정효의 글쓰기 萬步’는 別味를 提供한다. 이 冊에 數없이 引用되는 文學作品이 바로 그 특별한 맛을 낸다.

    ‘男子가 웃었다’라는 短文으로 始作되는 존 오하라의 長篇小說 ‘웃음소리(The Big Laugh)’, 著者의 表現대로라면 單 두 單語로 이뤄진 이 文章에서 어떤 男子가 환하게 웃어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웃는 소리까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단다. 正말 그런가?

    그밖에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推理小說부터 O. 헨리의 短篇集, 브라질 作家 조르지 아마두의 ‘가브리엘라’,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江물처럼’ 같은 에세이, 著者가 典型的인 隨筆體 文章이라며 推薦한 앤 모로우 린드버그의 ‘바다의 膳物’…. 著者가 疳疾나게 보여주는 맛보기 文章만으로는 渴症이 난다. 이 冊에서 뽑아낸 必讀書 目錄만 해도 몇 달値 읽을거리로 充分하다. ‘안정효의 글쓰기 萬步’는 읽고 싶은 欲望을 더 刺戟하는 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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