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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運動, 山林綠化, 統計標準化…|新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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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運動, 山林綠化, 統計標準化…

金正恩, ‘北의 朴正熙’ 될 수 있을까

  • 入力 2018-08-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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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外資誘致-經濟開放” 金 “自力更生-經濟改革”

    • 朴 “民生 于先 經濟政策” 金 “國防 于先 經濟政策”

    • 朴 “核 抛棄로 經濟發展” 金 “核 抛棄 머뭇…” 決定的 差異

    北韓은 2017年 11月 火星-15型 發射로 ‘核武力 完成’을 宣言한 以後 以前과는 完全히 다른 行步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變化를 가리켜 專門家들은 이제 核을 抛棄하고 經濟成長을 위해 모든 力量을 集中하겠다는 金正恩 委員長의 ‘戰略的 決斷’으로, 過去와 다른 ‘根本的 變化’라고 評價했다. 特히 올해는 2016年 7次 黨大會에서 ‘國家經濟 發展 5個年 戰略’을 宣布한 지 3年次가 되고, 建國 70周年이 되는 해다. 金正恩 委員長으로서는 可視的인 經濟 成果를 내야 하기 때문에 經濟 行步를 할 수밖에 없다는 說明까지 더해지면서 北韓의 經濟 發展 意志에 對한 信賴性은 높아 보였다. 더욱이 金正恩 委員長은 2次例 南北 頂上會談, 3次例 北·中 頂上會談, 最初의 北·美 頂上會談 等을 통해 外交的 孤立을 脫皮하는 한便 經濟協力과 支援에 拍車를 加하고 있다.

    ‘朴正熙의 길’ 걷는 듯하지만…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박정희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最近 김정은 委員長의 行步가 朴正熙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評價가 나온다.

    이러한 變化를 두고 一角에서는 金正恩 委員長이 ‘김일성의 길’을 버리고 ‘朴正熙의 길’을 걸으려 한다는 評價까지 나오고 있다. 몇 가지 側面에서 닮아 보인다. 

    첫째, 經濟開發에 國家의 모든 力量을 집중시키겠다는 政策 變化다. 金正恩 委員長은 2016年 5月 36年 만에 開催한 7次 黨大會를 통해 ‘우리式 經濟管理方法’의 全面的 實施와 더불어 ‘國家經濟發展 5個年 戰略’ 宣布 및 ‘輝煌한 設計圖’를 提示한 바 있다. 以後 지난 4月 20日 第7期 3次 全員會議를 통해 “核經濟 竝進路線下에 核武器 兵器化를 完結했으므로, 體制 全般 事業을 社會主義 經濟 建設에 總集中”하겠다는 政策 變化를 提示했다. 이는 마치 朴正熙 大統領 時節 1962年부터 始作한 經濟開發 5個年 計劃을 통해 國力을 經濟開發에 總集中시키며 全 國民을 結束시킨 點과 類似해 보인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가 경제에 집중되고 있다.

    最近 김정은 委員長의 現地 指導가 經濟에 集中되고 있다.

    둘째, 1960年代 後半 2次 5個年 經濟計劃에 따라 實施한 새마을運動과 비슷한 形態의 經濟活動을 北韓이 推進한다는 點도 그러하다. 北韓은 道路, 鐵道, 港灣, 通信, 電力, 公共서비스 等 社會間接資本에 對한 投資와 施設 擴充을 위해 努力하고 있다. 特히 板門店 宣言 以後 南北 道路鐵道 協力 事業에 積極的이며 高速電鐵에 對한 關心을 露骨的으로 표했다. 金正恩 委員長의 現地指導 相當 部分이 經濟 分野에 集中되고 있다. 漁郞川 發電所 建設 現場에서 形式主義나 卓上行政式 態度에 對한 境界를 剛하게 要求하는가 하면, 6月 北·美 頂上會談 以後 金正恩 委員長의 本格的인 經濟 現場 視察에 발맞춰 北韓은 새로운 大衆運動인 ‘增産突擊運動’을 벌이고 있다. 

    셋째, 北韓의 나무심기 運動이 朴正熙 大統領의 山林綠化 事業과 類似해 보인다. 金正恩 委員長은 山林 復舊를 김일성, 김정일의 遺訓이자 後代에게 물려줄 財産으로 現 時期 가장 重大하고 優先的인 政策 推進 課業이라는 點을 强調하고 있다. 金正恩 委員長은 2015年 ‘全黨, 全軍, 全民이 山林 復舊 戰鬪를 힘 있게 벌려 祖國의 山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자’는 著書를 發表한 바 있다. 北韓은 올 2月, 지난 3年間 山林復舊戰鬪 1段階 成果로 全國的으로 數十億 그루 나무모를 生産했다고 發表하고, 植樹節(3.2)을 맞이해 全國 各地에서 蹶起모임과 나무心氣를 進行했다고 發表하는가 하면, 山林 復舊와 國土環境을 위한 山林硏究院 着工(4.19) 等 山林 復舊에 功을 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全體 人口調査를 통해 社會 全般에 對한 計劃과 管理를 效果的으로 進行하고자 한 點도 類似해 보인다. 北韓은 2018年 全體 人口調査에 앞서 2017年 全國的으로 世代, 어린이, 女性들의 生活條件과 보건, 敎育, 營養, 衛生室에 對한 示範調査를 國際 統計 標準에 맞게 實施하는 等 統計 國際標準化 政策도 施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類似點은 朴正熙 時節 韓國의 壓縮的 經濟成長의 原動力과 比較해볼 때 一部에 不過하다. 經濟成長의 主要 原動力에서 김정은 委員長과 朴正熙 大統領은 다음과 같은 根本的 差異가 있다. 

    于先, 北韓은 김일성 時代부터 經濟가 어려울 때마다 改革開放을 推進해왔지만, ‘開放’에 매우 制限的 措置를 施行해왔고, 이러한 推移는 現在에 이르기까지 持續되고 있다. 金正恩 委員長은 2013年부터 經濟開發區 政策을 意欲的으로 推進하며 21個의 經濟開發區 設置로 外部 投資를 誘致하고자 했지만 效果는 없었다. 오히려 戰略的 挑發 增大에 따른 對北制裁 强化로 經濟開發區 政策은 事實上 動力을 잃고 漂流해왔다. 

    또한 2016年과 2017年 北韓의 잇따른 核實驗 및 中長距離 미사일 試驗發射로 유엔安保理 對北制裁 決意도 더욱 强勁해졌다. 北韓의 貿易總額은 2015年을 起點으로 2012年 執權 때보다 減少하기 始作했고, 2017年 火星-14型 試驗發射에 따른 安保理 決議案 2371號와 6次 核實驗에 따른 2375號로 石炭, 鐵鋼, 水産物, 纖維製品 等 北韓의 5代 輸出品 輸出이 禁止되었다. 火星-15型 試驗發射에 따른 安保理 決議案 2397號는 海外에서 일하는 北韓 勞動者들이 24個月 내 復歸하도록 措置함으로써 北韓의 外換 流入은 最大限 遮斷되는 狀況이 造成됐다. 그 結果 2017年 北韓 經濟는 20年 만의 最惡인 마이너스 3.5% 成長에 그쳤다.

    非核化 外面 對北制裁 自招

    더욱이 올해 南北 頂上會談과 北·美 頂上會談을 통해 完全한 韓半島 非核化를 하겠다고 했지만 北韓은 아직 非核化를 위한 履行措置를 하지 않고 있어서 對北制裁는 그대로 維持되고 있다. 오히려 美國은 追加 對北制裁까지 내놓았다. 올 上半期 金正恩의 華麗한 外交戰 데뷔가 北韓의 經濟 改革·開放으로 이어질 것으로 期待했지만, 北韓은 오히려 字强力 第一主義를 내세우며 生産性 增大에만 熱을 올리고 있다. 이는 ‘우리式의 現代化’ ‘國産化’로 2016年의 ‘70日 戰鬪’ ‘200日 戰鬪’ ‘萬里馬 運動’ 같은 生産性 增大 運動이 2018年 下半期에는 ‘增産突擊運動’으로 이름만 바꿔 이어진 것이다. 北韓 經濟는 內需 中心의 生産 增大 速度戰에 依存하고 있다. 

    이는 朴正熙 大統領이 1964年 12月 西獨 訪問을 통해 에르하르트 總理와의 會談에서 西獨이 發展할 수 있었던 契機를 理解하고 忠告를 받아들여 實質的으로 履行한 것과 큰 對照를 이룬다. 當時 에르하르트 總理는 獨逸의 經濟成長이 道路, 港灣 等 基幹施設의 整備, 工業 投資, 市場經濟 復舊와 더불어 프랑스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며, 朴正熙 大統領에게 日本과 손을 잡고 經濟 發展을 하라는 忠告와 함께 擔保가 必要 없는 財政借款 2億5000萬 마르크(藥 4770萬 달러)를 줬다. 이에 朴正熙 大統領은 激烈한 反對에도 不拘하고 1965年 6月 韓日基本條約을 통해 確保한 無償資金과 借款을 經濟 發展의 種子돈으로 使用했다. 

    그러나 金正恩 委員長은 經濟 發展의 種子돈을 얻기 위한 決定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지난 6月 트럼프 大統領은 頂上會談에서 金正恩 委員長에게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單 한 番의 機會가 왔을 때 무엇을 選擇하겠냐”며 向後 北韓의 繁榮된 모습과 核이 發射되는 場面이 交叉 編輯된 映像物을 보여줬다. 完全한 非核化를 斷行할 境遇 北韓의 經濟 繁榮과 發展을 위해 美國을 비롯해 周邊 國家들이 投資와 支援을 할 것이라는 點을 示唆했지만, 金正恩 委員長은 積極的 非核化 措置를 통해 對北制裁를 解除하며 國際通貨基金(IMF)이나 世界銀行(World Bank)을 통한 借款이나 北·日關係 改善을 통한 開發費用을 積極的으로 誘致하기보다는 北·中關係 改善 및 南北關係 改善을 통한 經濟協力과 支援에 依存하고자 한다. 社會主義 經濟 建設이라는 美名 아래, 自力更生과 自給自足, 國産化를 외치며 過去의 經濟 建設 方式을 踏襲하는 셈이다. 工場과 農業 分野에서의 制限的인 改革 措置와 北·中 接境地域 및 南北輕俠을 통한 部分的 開放은 情勢 變化에 따라 脆弱性을 보여왔고 制限된 利益 創出에 머물러왔다는 點을 認識하지 못하고 있다.

    如前한 國防 優先 政策

    박정희 대통령은 차관 등을 통해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사진은 1970년 포항제철 착공식 모습.

    朴正熙 大統領은 次官 等을 통해 經濟開發의 礎石을 다졌다. 寫眞은 1970年 浦項製鐵 着工式 모습.

    北韓의 經濟 問題 深化는 國防 中心의 經濟政策을 抛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1960年代 北韓은 2次 5個年 計劃이 失敗하자 經濟 發展에 總力을 集中하기 위해 ①經濟·國防 竝進路線의 廢棄 乃至 緩和와 ②外資 誘致 中 하나를 選擇해야 했다. 北韓은 經濟·國防 竝進路線은 維持하면서 同時에 蘇聯 및 西方 次官 導入을 積極 推進했다. 對外的으로 國防豫算의 規模를 줄이기 위해 第2經濟委員會를 만들어 國防費를 二元化하고 軍需經濟 部分은 公開하지 않았다. 國防豫算을 줄이지 않고 國家 全體 豫算 안에 相當 部分을 숨겨서 維持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結果 北韓은 合營法 等을 통해 改革開放을 追求했지만, 1987年 8月 140個 西方 債權銀行團으로부터 債務不履行 國家로 指定되면서 西方에서 資本을 誘致하기가 不可能해졌다. 

    苦難의 行軍 以後 김정일 委員長 亦是 經濟 問題를 克服하기 위한 方案으로 于先 軍隊를 動員해 經濟 活動이 痲痹된 協同農場, 企業所 等을 正常化하고 土地 整理事業, 道路·發電所 等 社會間接資本 分野의 建設을 始作해 經濟를 活性化하고자 했다. 또한 軍需工業을 經濟 回復의 出發點으로 삼아 漸次的으로 人民經濟 部門의 正常化를 推進하고자 했다. 나아가 7.1 經濟管理改善 措置와 더불어 南北關係와 北·中關係 改善에 따른 南北輕俠과 支援, 中國으로부터 輸入 擴大 等으로 마이너스 經濟成長에서 플러스 經濟成長으로 轉換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1次 核實驗을 斷行한 2006年부터 市場抑制措置를 取하며 北韓 經濟를 다시 마이너스 成長勢로 전환시켰다. 그 結果 北韓經濟는 2006年 以後 2017年까지 平均 經濟成長率이 年 0.25%로 10年 넘게 低成長에 머물고 있다. 

    金正恩 委員長은 愛民注意를 내세우며 農業·輕工業 中心의 政策을 推進하고 있지만, 執權 以後 2017年 11月 核武力 完成 宣言에 이르기까지 4次例의 核實驗과 스커드, 勞動, 舞水端, 北極星-1·2型, 火星-12·14·15型, 銀河 3號·光明星에 이르기까지 41回에 걸쳐 61發 發射로 軍事費 支出을 增大시켰다. 이는 김정일 時代와 比較해볼 때 約 4倍 많은 數値이고, 金日成·김정일 時期에 發射한 彈道미사일의 總合보다 約 2倍 많은 數値다. 卽 김정은 時代도 如前히 國防 于先 經濟政策이 進行된다고 볼 수 있다. 特히 김일성 時代의 經濟·國防 丙辰政策이 김정은 時代에 와서는 核·經濟 丙辰政策으로 持續 發展해온 點을 봤을 때, 北韓 經濟는 對外宣傳과 달리 民生 優先의 經濟政策으로 轉換됐다고 볼 수 없다.

    ‘核 保有’ ‘國防 于先’ ‘內需 依存’ 限界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북한은 이곳을 폐쇄했지만 비핵화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平安北道 鐵山郡 東倉里 西海衛星發射場. 北韓은 이곳을 閉鎖했지만 非核化에서 進展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닉슨과 카터 行政府의 駐韓美軍 撤收 發言은 朴正熙 大統領의 自主國防 必要性을 增大시켰고, 核 開發은 自主國防 達成의 核心 要素로 看做됐을 것이다. 그러나 祕密裏에 核 開發을 進行한 事實이 알려지자 美國은 核 開發 中斷을 要求했다. 美國은 韓國에 北韓의 어떠한 攻擊에도 南韓을 保護할 것이라며 核武器 保有의 不必要性을 再確認해줬다. 韓國은 韓美聯合司 創設과 核雨傘 提供으로 核 開發을 中斷하고 經濟 發展에 集中하며 短期間에 高度成長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金正恩 委員長은 朴正熙 大統領이 選擇한 길을 아직 따르고 있지 않다. 지난 4月 戰略的 決斷을 내렸다는 全員會議에서 그가 한 말은 ‘核 保有를 抛棄하고 完全히 經濟 發展에 集中’하겠다는 게 아니라 ‘核 開發에 完全히 成功했기 때문에 經濟 發展에 集中’하겠다는 것이다. 核經濟 ‘丙辰政策’에서 核經濟 ‘先後政策’으로 變化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强力한 經濟 建設 意志에도 不拘하고 촘촘한 對北制裁로 對外投資 誘致나 南北輕俠을 비롯해 周邊 國家들과의 經濟協力이 쉽지 않다. 北韓은 非核化 意志만 보이고 履行하지 않는다면 人道主義的 支援에 기초한 現狀 維持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北韓이 短期間에 壓縮的인 經濟成長을 위해서는 非核化 問題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綜合해보면 金正恩 委員長의 行步가 朴正熙 大統領의 經濟政策을 닮은 듯하지만 3가지 分野에서 根本的인 差異를 보이고 있다. 核 保有, 國防 優先 政策, 內需에만 依存하는 自力更生은 期待만큼 北韓의 經濟成長을 가져올 수 없다. 돌이켜 보면 北韓이 經濟 發展을 앞세우며 對話로 나온 것이 이番이 처음은 아니다. 1970年代 初부터 北韓은 經濟 問題를 克服하기 위해 挑發 局面에서 對話 局面으로 轉換하며 改革·開放을 積極 推進하고자 했지만 經濟 改革·開放은 制限的으로 進行되었고, 軍需工業을 비롯해 國防 分野에 對한 支出을 줄이지 못했다. 

    더욱이 經濟改革을 통한 變化가 나타나면 다시 統制하는 政策을 反復함으로써 根本的으로 斷行하지 못했다. 特히 1980年代 北韓은 中國과 類似한 改革·開放을 始作했지만 中國은 開放政策을 積極的으로 推進하며 輸出主導型 高度經濟成長으로 나갔지만, 北韓은 制限된 ‘모기帳’式 開放과 消極的 改革으로 現在 完全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北韓 經濟 體質 改善이 前提

    北韓이 經濟 問題 深化로 番番이 對話 局面에 나와 經濟協力과 支援을 要請했지만 이러한 要請은 北韓 社會 內部의 果敢한 經濟 改革·開放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北韓 經濟는 겉으로 成長한 듯 보이나 實質的으로는 低成長 늪에 빠져 있는 結果를 가져왔다. 

    따라서 北韓이 對話 局面에 나올 때마다 要求하는 輕俠 問題에 對해 우리를 비롯해 周邊 國家들은 輕俠과 投資에 根本的 變化를 追求해야 한다. 只今과 같이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協力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重化學 및 軍需工業 中心의 北韓 經濟에 對한 構造的 變化를 前提로 한 經濟協力과 投資가 進行돼야 한다. 北韓 經濟의 體質 改善이 前提되지 않는다면 外部의 投資나 經協은 枝葉的일 수밖에 없고, 北韓의 非核化 推進에 對한 動力 役割도 減少할 수밖에 없다. 

    經濟改革과 經濟開放에 對한 積極的 要求를 통해 先代의 失敗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卽 김일성 時代는 丙辰政策을 持續하는 가운데 外換 導入을 통해 經濟를 회생시키고자 했고, 김정일 時代는 郡守經濟를 中心으로 經濟 活性化 措置를 하려고 했지만 모두 失敗했다는 點을 金正恩 政權에 刻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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