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萬원 差異와 7分 論難…‘世紀의 離婚’ 勝敗 갈랐다

入力
修正 2024.06.15. 午前 10:24
記事原文
本文 要約봇
性別
말하기 速度

移動 通信網을 利用하여 音聲을 再生하면 別途의 데이터 通話料가 賦課될 수 있습니다.

[한겨레S] 김수헌의 投資 ‘톡’
崔泰源-노소영 財産分割 訴訟

崔泰源 會長, 아버지 贈與金 主張
入出金 5個月 時差에 金額 달라
2億餘원 석관동 地點서 引出 뒤
7分 만에 光敎地點 手票 들어와
지난 4月16日 최태원 에스케이 會長(위쪽 寫眞)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館長이 離婚訴訟 抗訴審 裁判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高法에 各各 出席하는 모습. 聯合뉴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會長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館長 사이의 離婚訴訟 抗訴審 判決이 지난달 末에 있었다. 裁判部는 崔 會長이 盧 館長에게 넘겨줘야 할 財産分割額을 1兆3800億원으로 判斷했다. 崔 會長이 保有한 財産 4兆餘원 가운데 35%를 노 館長 몫으로 認定한 것이다. 1審 決定額은 660億원에 不過했다.

抗訴審에서 財産分割額이 20倍 넘게 늘어난 가장 큰 理由는 崔 會長이 保有한 그룹 持株社 에스케이 持分 17.7%(6月12日 終價基準 約 2兆4千億원)를 分割 對象으로 判斷했기 때문이다. 甚至於 崔 會長이 過去 親族들에게 贈與했던 에스케이 持分(藥 9千億원)도 包含됐다. 1審 裁判部는 이들 持分을 모두 分割 對象에서 排除했다.

두 裁判部는 에스케이 持分을 이른바 ‘特有財産’으로 認定할지 與否에 對해 完全히 見解를 달리했다. 特有財産은 쉽게 말해 夫婦가 婚姻 前부터 各自 가지고 있었거나 婚姻 以後 各自의 집안으로부터 相續·贈與로 물려받은 財産을 말한다. 特有財産은 原則的으로 離婚 時 分割 對象에서 排除한다. 그러나 夫婦 生活 過程에서 特有財産 價値 增加에 다른 配偶者가 오랫동안 寄與한 事實이 認定되면 分割 對象이 될 수도 있다.

裁判部, 不特定 計座 召命 要求했지만
崔 會長은 只今의 에스케이 持分이 아버지(1998年 作故한 최종현 會長)로부터 贈與받은 資金으로 買收한 大韓텔레콤 持分에서 비롯되었다고 主張했다. 大韓텔레콤은 1991年 에스케이그룹이 移動通信事業에 進出하기 위해 設立했던 會社다. 에스케이그룹은 3年 지난 1994年 公企業이었던 韓國移動通信 民營化 競爭入札에 參與해 耳痛事業에 進出했다. 이때 構成된 에스케이그룹컨소시엄에 大韓텔레콤은 빠져 있었다. 그해 崔 會長은 아버지로부터 贈與받은 돈 2億8千萬원으로 유공이 保有한 大韓텔레콤 持分 70%를 買入해 最大株主가 됐다. 大韓텔레콤은 4年 뒤인 1998年 에스케이컴퓨터通信과 合倂한 뒤 社名을 에스케이씨앤씨(SK C&C)로 바꿨다. 에스케이씨앤씨는 2001年까지 에스케이(유공이 使命을 變更한 會社) 持分을 10.8%까지 確保해 最大株主가 됐다. 에스케이는 그룹 主要 系列社를 子會社로 둔 事實上 持株社였다. 이로써 그룹 支配構造는 ‘최태원→에스케이씨앤씨→에스케이→主要 系列社’라는 고리를 形成하게 됐다. 以後 에스케이씨앤씨와 에스케이가 合倂했고, 合倂 會社는 社名을 에스케이로 定했다. 2015年부터 支配構造는 ‘최태원→에스케이→主要 系列社’로 定立됐고, 只今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崔 會長 쪽은 아버지 贈與金 2億8千萬원으로 사들인 大寒텔레콤이 結局 只今의 에스케이 持分을 形成하였기 때문에 特有財産 性格이 있다는 論理를 폈다. 또 盧 館長이 이 過程에 關與하거나 以後 에스케이 持分 價値 增加에 具體的으로 直接 寄與하지 않았으므로 財産分割에서 除外하는 게 마땅하다고 主張했다. 1審 裁判部는 이 主張을 受容했다. 抗訴審 裁判部는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1994年으로 돌아가 보자. 當時 최종현 會長의 조흥은행 計座에서 2億8690萬원이 引出됐고 崔泰源 會長의 第一銀行 計座로 2億8697萬원이 들어갔다. 그리고 崔泰源 會長은 조흥은행 有功 計座로 2億8千萬원을 送金해 大韓텔레콤 株式 代金을 決濟했다. 崔泰源 會長 쪽은 이 같은 資金 흐름을 主張하면서, 에스케이그룹 經營企劃室 職員들이 實務를 遂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抗訴審 裁判部는 최종현 計座의 引出金과 최태원의 株式 代金 決濟額 사이의 同一性을 認定하지 않았다. 裁判部는 최종현 計座 引出(5月)과 崔泰源 計座 入金(10月) 사이의 5個月 時差, 그리고 金額 差異(7萬원)를 指摘했다. 崔泰源 會長 쪽은 “최종현 會長 指示에 따라 引出 資金은 最初에 에이(A)은행 計座로 보내졌다”며 “여기서 5個月 머물렀던 理由는 系列社와 特殊關係인 간 非上場株式(大韓텔레콤) 去來에 對한 是非 素地를 없애기 위한 追加 評價 作業 때문이었다”고 解明했다. 裁判部는 不特定 計座(에이은행 計座)에 對한 情報를 疏明할 것을 要求했다. 하지만 崔泰源 會長 쪽은 30年 前 一時的으로 活用된 計座에 對한 情報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S 뉴스레터 購讀하기. 檢索窓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新聞 定期購讀. 檢索窓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2億8千萬원 現金 係數와 7分
最大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資金 同一性을 裁判部가 否認한 두番째 理由는 이른바 ‘7分 論難’ 때문이었다. 1994年 11月21日, 崔泰源 會長이 제일은행 서울 석관동 支店에서 2億8697萬원을 全額 現金으로 引出한 時刻은 午後 4時27分이었다. 그리고 7分 뒤 조흥은행 서울 광교支店에서 有功 計座로 自己앞手票 2億8千萬원이 송금됐다. 裁判部는 紙幣 計數器의 能力을 考慮하면 이 過程이 7分 만에 이뤄질 수 없다고 봤다. 巨額의 現金을 入出金할 때 銀行이 使用하는 紙幣 計數器는 盆唐 1800枚 以上을 셀 수 없고, 當時 5萬원券 紙幣도 없었기 때문에, 11㎞ 떨어진 두 支店에서 去來價 7分 만에 完了되는 것은 不可能하다고 判斷했다. 그러나 銀行에서 30年間 窓口出納 業務를 擔當했던 職員을 내세운 崔 會長 쪽의 抗辯 論理는 이랬다.

“석관동 支店에서 現金 解約을 한 뒤 計數 없이 비(B)銀行 광교支店으로 無通帳 送金을 하고, 非銀行에서 待機 中인 職員이 自己앞手票를 發行받는다. 이어 조흥은행 광교支店으로 移動하여 有功 計座로 手票 送金할 境遇 7分이면 充分하다.”

裁判部는 非銀行 計座를 特定해 提出할 것으로 要求했다. 하지만 崔 會長 쪽은 30年 前 特定 目的으로 一時 使用한 計座에 對한 情報가 에스케이그룹이나 銀行에도 남아 있지 않아 計座 情報 提出이 不可能하다고 밝혔다. 裁判部는 計座 特定이 어렵다면 資金의 同一性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判示했다.

그렇다면 崔 會長이 第一銀行 計座로 入金받은 2億8697萬원의 根源은 어디일까? 노 館長은 이 裁判에서 最初로 노태우 祕資金 300億원의 存在를 主張했다. 1991年쯤 當時 아버지 노태우 大統領이 300億원의 祕資金을 최종현 會長에게 傳達했다는 것이다. 이에 對한 證明으로 어머니 김옥숙 女史가 保管 中인 메모 內容(선경 300億원)과 當時 선경그룹 名義로 發行된 約束어음 50億원券 6張 等을 提示했다.

裁判部는 이 300億원이 에스케이그룹 事業 資金으로 使用되었고, 一部는 崔泰源 夫婦의 生活 資金으로 支援됐다고 判斷했다. 大韓텔레콤 持分 買收 代金은 최종현 會長의 조흥은행 計座에서 나온 贈與金으로 斷定할 수 없고, 夫婦의 共同 生活 資金이 出處日 可能性이 높다는 것이다. 裁判部는 崔泰源 會長의 經營 活動으로 價値가 增加한 에스케이 持分에 盧 館長의 內助 寄與分을 認定해야 한다며, 財産分割 對象 持分으로 決定했다. 에스케이그룹은 資金 同一性 夫人 等 抗訴審 判斷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大法院의 正確한 判斷을 期待한다는 立場을 밝혔다.

MTN 企業經濟센터長

‘企業公示完全征服’ ‘이것이 實戰會計다’ ‘하마터면 會計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日 3分 1會計’ ‘1日 3分 1公示’ 等을 著述했다.
이 記事는 言論社에서 經濟 섹션으로 分類했습니다.
記事 섹션 分類 안내

技士의 섹션 情報는 該當 言論社의 分類를 따르고 있습니다. 言論社는 個別 記事를 2個 以上 섹션으로 重複 分類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記事를 推薦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