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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상고 時節의 김건우, 左側은
박노준
선린상고
在學 時節
李榮敏 打擊上
을 受賞하는 等 投打에서 頭角을 나타내며 1980年代 初盤 선린상고의 全盛期를 이끈 主役 이었지만, 人氣 面에선 정작 同級生인
박노준
에게 밀려 2人者 자리에만 滿足해야 했던 悲運을 맛본 적이 있었다.
[3]
1981年에는
大韓民國 U-18 野球 國家代表팀
에
선동렬
[4]
,
조계현
等과 差出되어 1981年 第1回
IBAF 靑少年野球大會
의 初代 優勝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親舊이자 라이벌인 그 둘의 그해 成跡은 하늘과 땅 差異였다.
김건우
| 37競技, 18勝
[8]
6敗, 平均自責 1.81, 脫三振 102個
|
박노준
| 33競技, 5勝 6敗 7세이브, 平均自責 2.28(投手)
17競技, 打率 0.173, 1打點(他者)
|
靑龍과 OB로 各各 指名되었고, 데뷔 첫해 新人王은 김건우가 차지..
김건우는
大峙洞
牛星아파트 앞에서 女子親舊를 집으로 바래다 주려 橫斷步道를 건너다
뺑소니
車輛에 치여 兩 팔이 부러지는 重傷을 입고 말았다.
[11]
MBC가 이 事件의 餘波로 지난해에 이어 플레이오프 進出이 霧散된 것은 論外로 하더라도, 김건우에겐 殘餘시즌은 勿論이고 選手生命을 威脅하는 致命的인 負傷이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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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龍-엘지 올드팬들은 記憶하시는 분 많으실듯..
交通事故 後 打者로 轉向... 4番打者로 버닝했으나... 다시 衝突 浮上後 隱退..
才能으로도 歷代級으로 記憶되는 選手..
悲運의 選手 김건우라고 新聞에도 자주 나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