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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督敎 獨自 6人이 말하는 ‘나와 國民日報’-國民日報

基督敎 獨自 6人이 말하는 ‘나와 國民日報’

入力 : 1998-12-10
◎國民日報와 함께 한 10年/“普通 新聞 아닌 親舊”국민일보는 創刊 後 지난 10年동안 숱하게 많은 ‘基督敎 有名人士’들을 輩出했다.특히 國民日報 宣敎面을 통해 作家 김성일氏는 基督敎文學의 새 地平을 열었다는 評價를 받았으며,황성주박사는 ‘城西健康學’이라는 새로운 學問을 開拓했다.지금까지 國民日報와 苦樂을 함께해 온 牧師 作家 醫師 社會運動家 탤런트 等 基督敎 人士 6人으로부터 그들의 眞率한 뒷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주〉
○專屬모델 어울리는 國民俳優 될 것/최지우氏·탤런트
내가 ‘젊은 목소리,바른 말만 하자’라는 文句로 國民日報 專屬廣告모델로 活動한 지도 벌써 한해가 돼 간다.
처음 廣告모델로 選定되었을 때 부러워하던 많은 演藝人 同僚들의 얼굴이 아직도 記憶에 생생하다.특별히 내가 廣告모델로 選擇된 것은 主님의 사랑 德分이라고 생각된다.무엇보다 篤實한 信仰을 가진 父母님이 무척 좋아하셔서 더욱 기뻤다.
演藝人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廣告 中의 하나가 바로 言論社 CF이다.그것은 모델 自身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첫 廣告는 鬪牛 시리즈였고,두번째는 침팬지 시리즈였다.특히 올 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에버랜드에서 찍은 두番째 廣告는 永永 잊지 못할 것 같다.촬영 때 만난 침팬지가 보고 싶어 가끔 에버랜드에 혼자 가곤 할 程度다.올해 나에게 最高의 追憶거리를 만들어준 國民日報.이제 나도 國民日報에 어울리는 國民俳優가 되도록 더욱 努力할 생각이다.
○家庭 重視하는 믿음직한 同伴者/송길원 牧師·家庭使役硏究所腸
나에게 국민일보는 單純한 新聞이 아니라 함께 발로 뛰는 同僚 ‘家庭使役者’라고 할 수 있다.초창기부터 健康한 家庭文化 定着에 앞장서온 點이나 家族사랑의 價値를 일깨우는 報道로 韓國敎會에 家庭使役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點 等을 생각하면,국민일보는 또하나의 家庭使役자라는 評을 듣기에 充分하다.
7年前 基督敎家庭使役硏究所가 이 땅에 세워져 瘠薄했던 韓國敎會에 家庭使役의 씨앗을 뿌릴 때부터 국민일보는 늘 믿음직한 同伴者가 되어 주었다.당시만 해도 生疏했던 ‘家庭使役’이라는 單語를 누구에게나 익숙한 普通名詞로 바꾸어준 것도 國民日報의 功勞다.
얼마前에 어떤 讀者로부터 電話가 걸려왔다.국민일보 ‘오늘의 만나’를 읽고 離婚 直前에 이르렀던 家庭이 回復되었다는 感謝電話였다.또 어떤 職場人은 非基督敎人임에도 不拘하고 國民日報 家庭記事를 꼬박꼬박 스크랩해 두었다가 職員들과 함께 읽는다고 했다.교회를 家庭처럼,가정을 敎會처럼 만드는 일에 國民日報가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危機때 實感한 國民日報의 威力/황성주 博士·사랑義클리닉院長
國民日報와 함께 우리 病院이 成長해온 지도 於焉 5年이 되어간다.우리 病院의 重要한 役割 中 하나는 宣敎師와 어려운 牧會者들을 섬기는 일이다.그래서 많은 宣敎師와 牧會者들을 만나게 되었고 對話와 協力使役의 場을 形成했다.나는 이미 國民日報의 文化圈에 屬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요즘 들어 ‘聖經的인 觀點에서 人間을 하나님의 形象으로 보고 治療하는 病院’으로 國民日報와 더불어 影響力이 더욱 擴散됨을 느낀다.
開院 1年째 되던 해 우리 病院은 累積된 赤字로 倒産의 危機에 빠져 있었다.어려운 狀況에서 主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義를 求하라’는 말씀을 주셨다.그래서 已往이면 좋은 일이나 실컷 하자며 始作한 일이 ‘宣敎師 家族 및 牧會者 夫婦에 對한 綜合檢診 割引制度’였다.이 事實이 國民日報에 조그맣게 기사화됐다.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부터 電話가 暴注하며 많은 牧會者와 宣敎師 夫婦들이 檢診을 申請했다.
그 結果 病院이 有名해지면서 一般 患者들도 많이 찾아왔다.그때부터 사랑의 클리닉이 빛을 發하게 된 것이다.망하기로 作定하고 섬기는 일을 했더니 오히려 祝福을 누리게 됐다.국민일보의 威力을 實感한 事件이었다.
○聖經的인 社會 分析… 執筆 큰 도움/김성일 長老·小說家
10年前 國民日報가 創刊됐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던 사람이 나 自身이었다.뒤늦게 信仰生活에 불이 붙기 始作한 나는 ‘땅끝에서 오다’와 ‘땅끝으로 가다’ 等 信仰小說 執筆에 沒頭하고 있었다.새로운 小說 執筆을 위해 나는 熱心히 新聞을 스크랩했다.그러나 社會現象을 聖經的 觀點에서 說明해주는 新聞은 없었다.
그런 狀況에서 創刊된 국민일보는 마치 나를 위한 新聞 같았다.‘미션 투데이’를 비롯해 모든 面의 技士가 내게는 하나의 默示錄이었다.지금도 汝矣島를 지날 때마다 國民日報 創刊의 決斷을 내린 汝矣島純福音敎會에 感謝의 마음을 갖는다.창간 1年만에 나는 ‘땅끝의 時計塔’이라는 小說을 連載하게 됐다.이 小說은 長安의 話題가 됐다.이를 土臺로 많은 칼럼을 썼다.특히 92年 12月24日에는 ‘朝鮮總督府 建物부터 헐자’라는 글을 썼는데 곧 總督府 建物이 撤去됐다.
國民日報에 感謝한 것이 많다.우선 나는 國民日報를 통해 有名作家가 됐다.내가 劇本을 쓴 演劇 ‘건너가게 하소서’는 國民日報의 後援으로 세 次例나 앙코르公演을 했다.창조사학회의 韓民族起源大探査도 國民日報와 함께 일궈낸 業績이다.국민들이 이 新聞을 통해 하나님의 音聲을 듣기 바란다.
○靈魂을 變化시키는 使命 다해야/민호기씨·예수복음약물상담소장
나는 國民日報를 통해 큰 慰勞와 힘을 얻었다.94년 11月 相談所를 開所하고 藥물中毒 靑少年들을 둔 父母와 靑少年들을 위한 相談師役을 始作했다.또 男便과 死別한 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信念 하나로 ‘홀私募’ 相談師力道 始作했다.처음엔 너무나 漠漠했다.바로 그때 國民日報에 相談所에 關한 記事가 報道됐다.보도가 나간 後 藥물中毒으로 苦痛을 겪던 靑少年과 家族들로부터 數百通의 相談電話가 殺到했다.그들 中에는 男便과 死別하고 죽음까지 생각했다가 相談 끝에 그리스道를 迎接하고 只今은 敎會에 熱心히 出席하는 한 女性도 있다.또 男便의 알코올中毒으로 인해 苦痛 받던 한 執事는 持續的인 相談을 통해 勇氣와 慰勞를 얻은 結果 믿음의 家庭을 꾸려가고 있다.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이것이 바로 國民日報의 使命이라고 생각한다.상담소를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국민일보에서 委託했다는 생각으로 使役에 最善을 다하고 있다.
○世界飢餓現場 함께 누빈 ‘同僚’/정정섭 長老·飢餓對策機構副會長
國民日報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感謝한다.이 新聞은 韓國敎會와 1千2百萬 聖徒들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配慮와 恩惠이며,민족복음화와 世界宣敎의 貴重한 道具라고 믿기 때문이다.사실 지난 10年동안 국민일보는 하나님의 正義를 實現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擴張하며 社會의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데 앞장서 왔다.
飢餓對策機構와 ‘섬기는 사람들’은 國民日報에 얼마나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지난 91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차드 우간다 케냐 모잠비크 等 5個國의 飢餓現場을 생생하게 取材해 報道함으로써 韓國敎會와 온國民에게 新鮮한 衝擊을 던져 주었다.기아대책기구는 그 힘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活動하고 있다.그후에도 우리가 要請하는 世界 곳곳의 飢餓現場마다 國民日報의 記者들이 同行取材해 現場의 모습을 그대로 傳했다.또 굶주리는 北韓同胞와 缺食兒童들을 위한 慈善달리기를 비롯해 音樂會와 바자 等도 詳細히 報道해 주었다.기아대책기구는 國民日報와 同甲이다.사이좋은 親舊처럼 漸漸 友愛가 깊어지기를 祈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