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暴徒의 汚名 벗어 마음 후련”… 사북勞動抗爭 主役 이원갑氏

入力
本文 要約봇
性別
말하기 速度

移動 通信網을 利用하여 音聲을 再生하면 別途의 데이터 通話料가 賦課될 수 있습니다.

“오랜 歲月 暴徒로 罵倒됐던 抑鬱함과 限이 이제나마 풀려 속이 시원합니다.”

1980年 사북勞動抗爭을 이끌었던 이원갑(66·講院 旌善郡 고한읍)氏는 同僚 神經(64)氏와 함께 이番 光復節에 民主化運動者로 認定받아 感激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북抗爭이 發生한 지 25年,名譽回復을 申請한 지 5年 만이다.

李氏는 “當時 政府는 사북地域을 無識한 鑛夫들이 亂動을 부리고 있는 無法天地로 몰아세웠고 國民들은 只今까지 우리를 ‘暴徒’로만 記憶하고 있었다”며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歲月 數없이 努力했는데,마침내 우리 鬪爭도 再照明 받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番 決定은 政府가 1980年 發生한 사북事態가 當時 炭鑛會社와 御用勞組의 構造的 搾取와 蠻行에 反撥해 일어났던 正當하고 의로운 抗爭임을 公式的으로 認定한 것이다.

그는 “잡혀간 鑛夫들은 調査 過程에서 엄청난 拷問과 暴力에 시달려 只今까지 後遺症으로 正常的인 社會生活을 못하고 있다”며 “이런 事實을 알리고 싶어 國會 앞에서 1週日間 斷食을 하는 等 百方으로 努力했지만 光州抗爭처럼 든든한 後援會나 國民들의 支持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回顧했다.

2000年 李氏와 함께 名譽回復 申請을 했던 조행웅氏가 2年 前 먼저 世上을 떠나는 바람에 名譽回復 對象에서 除外된 點에 對해 李氏는 “비록 世上은 떠났지만 子息들이 아버지가 暴徒라는 汚名 속에 살지 않도록 民主化運動者로 認定해 주어야한다”며 “앞으로 住民和合을 위한 記念塔 建立,抗爭記念日 制定,勞動抗爭 精神을 繼承할 文化祝祭 等을 위해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사북勞動抗爭은 1980年 4月21∼24日 會社側의 搾取와 御用勞組에 反撥해 旌善郡 사북읍 一帶에서 發生한 炭鑛勤勞者들의 總罷業 事件으로 當時 警察 1名이 死亡하고 80餘名이 中·輕傷을 입었으며 總罷業 主謀者 等 81名이 戒嚴布告令法 違反 等의 嫌疑로 拘束돼 李氏 等 7名은 實刑을 宣告받고 21名은 執行猶豫로 釋放됐다.

旌善=변영주記者 yzbyoun@kmib.co.kr

이 記事는 言論社에서 社會 섹션으로 分類했습니다.
記事 섹션 分類 안내

技士의 섹션 情報는 該當 言論社의 分類를 따르고 있습니다. 言論社는 個別 記事를 2個 以上 섹션으로 重複 分類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