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伊桑

위키認容집 - 引用 모음집.

尹伊桑 (尹伊桑, 毒文明: Isang Yun, 1917年 9月 17日 ~ 1995年 11月 3日)은 西獨과 統一 獨逸에서 活動한 大韓民國 出身의 바이올리니스트, 기타리스트 첼리스트 兼 現代 音樂 作曲家이다.

自身의 말 [ 編輯 ]

  • 萬一 土曜日에 當身 便紙를 받지 못하면 日曜日은 나에게 퍽 憂鬱한 날이 되오. 當身의 便紙가 늦으면 그만치 나의 便紙도 늦을 수밖에 없소. 왜냐하면 當身의 便紙 받고 答할 거 하여서 띄워야 하니까... 當身은 내가 當身의 便紙를 기다리지 않을 만큼 當身에게 無關心하기를 바라오?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作品에 關한 苦悶과 將來의 여러 가지 計劃 때문에 골치 아픈 나에게 더욱 精神的인 苦惱를 주고 싶어서 하는 짓이오?
1956年 프랑스 留學 中 서로 떨어져 있던 夫人 履修者 女史에게 보낸 便紙 中
  • 나의 音樂은 曺國의 藝術的·哲學的·美學的 傳統에서 태어났고, 故鄕은 나의 創作에 다시없이 貴重한, 情緖的인 源泉이 되었으며 曺國의 不幸한 運命과 秩序의 破壞, 國家權力의 橫暴에 刺戟을 받아 音樂이 가져야 할 格調와 純度 限界 內에서 可能한 最大의 言語 表現을 驅使하려고 했다.
  • 내 音樂은 韓國 人이 연주할 때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 [ 編輯 ]

  • 윤이상은 큰 人物이다. 그래서 그 全體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統一運動家로서의 그를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作曲家로서의 그를 얘기한다. 또 다른 사람은 現代作曲家人 그를 注目하고, 다른 사람은 民族音樂家人 그를 注目한다. 그의 大綱을 斟酌하기 위해서는 그러저러한 여러가지 關心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全體를 이룰 때에야 可能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는 크다.
韓國藝術綜合學校 이건용 總長
위키백과
위키百科
위키百科 에 이 글과 關聯된 資料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