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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의 康京和’ 注目받는 최지은의 또 다른 이름 ‘꿈꾸는 IMF키즈’ [汝矣島 人物探究] | 世界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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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의 康京和’ 注目받는 최지은의 또 다른 이름 ‘꿈꾸는 IMF키즈’ [汝矣島 人物探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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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力 : 2020-02-11 06:00:00 修正 : 2020-02-11 00: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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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銀行 選任이코노미스트 최지은(40)은 與野를 莫論하고 21代 總選 迎入人材 中 斷然 最高의 期待株다. 美國 하버드大學, 英國 옥스퍼드대학에서 學位를 받고 아프리카개발은행, 世界銀行에서 活動한 그의 履歷은 누가 봐도 華麗하다. 하지만 그가 期待株인 理由는 젊은 나이에 國際舞臺에서 이룬 성공이나 스펙 때문만이 아니다. 최지은은 華麗한 스펙이 아니라 平凡한 스토리, 特別한 成功談이 아니라 80年代生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普遍性에 더 눈이 가는 ‘反轉’의 人物이다. 지난 6日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그를 만났다.

 

◆‘IMF키즈’, 政治에 들어서다

 

지난 달 16日 최지은이 더불어民主黨 아홉 番째 迎入人材로 紹介되던 날, 그가 읽어 내려간 A4用紙 두張짜리 會見文에는 IMF가 登場한다. “IMF때 아버지의 會社가 倒産해 家族이 經濟的으로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經驗이 제가 熱心히 사는 原動力이 됐습니다. 집안의 經濟的 도움 없이, 콩글리시를 驅使하는 土種으로 美國과 英國에서 學位를 받았습니다.”

民主黨 迎入人材 9號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최지은 博士. 뉴시스

IMF는 80年代生들의 學窓時節을 규정하는 集團經驗이다. 國際機構에서의 自己만의 獨步的 成就 못지 않게 자신의 世代를 說明하는 키워드에 相當 部分을 할애한 최지은의 自己紹介는 새로운 한 世代의 보편적 經驗을 旣成政治에 반영시키고, 自身의 世代와 共感하는 政治를 시작할 것이라는 期待를 하게 한다. 그는 自身의 세대가 旣成 政治에 對해 어떤 立場을 取할 것인가, 政治에 어떻게 參與할 것인가에 對한 苦悶을 풀어놨다.

 

그는 自身의 世代가 “엄청난 潛在力이 있는 世代”라고 말했다.

 

“우리 世代가 어떤 世代일까 생각해보면, 베이비붐으로 엄청난 競爭에 시달렸고, IMF로 父母님의 倒産과 失職, 自身의 就業難을 겪었어요. 非運動圈이 主流였지만 월드컵, 촛불 等 必要하면 뭉칠 줄 알고 또 즐겁게 뭉쳐서 이기는 經驗을 해봤죠. 86世代처럼 거리에서 뭉치지 않았지만 큰 일이 있을 때면 인터넷을 통해 뭉쳤던 거예요. 背囊旅行 첫 世代, 個人 重視, 水平的이고 自由奔放한 文化를 가지고 있었고요. 只今 周圍를 둘러보면 우리 世代가 職場에서 치이고 家庭에서 아이 키우며 살기 한창 바쁘니 政治에서 밀려나있는 側面이 있는데, 그럼에도 生活에서 敎育, 住居, 納稅 等 모든 領域에서 정치와 가장 關係가 깊은 時期를 지나고 있어요. 우리를 잘 代表할 수 있는 政治가 꼭 必要하단 것도 알고 있고요.”

 

그는 自身의 世代를 ‘代表’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接點’李 되고싶다고 말했다.

 

“제가 있던 워싱턴에는 政治를 하고 싶어 하는 꿈나무가 많고 그 親舊들이 大學生이건 누구건 政治를 해야겠다 決心하면 어디에서 始作해서 뭘 해야할지 커리어 코스를 다 알아요. 우리 世代를 비롯해 韓國의 靑年들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죠. 그만큼 다가가기 힘들고요. 門턱도 있고 嫌惡도 있죠. 하지만 그걸 克服해야 우리 世代도, 또 政治的으로 목소리 없던 集團들이 포용되는 政治가 可能하다고 생각해요. 特定 世代가 過剩代表, 過小대표되는 것을 막기 爲한 制度的 裝置도 必要하다고 보고요. 전 정당이 우리 世代와 더 疏通할 수 있게 하는 접점이 되고 싶어요.”

 

IMF키즈, 女性, 싱글 等, 그는 여러 範疇에서 韓國社會에서 過小대표되면서도 政治的 代表性을 附與함에 있어 가장 論爭的인 그룹에 屬한다. 잘나가던 國際機構 專門家 生活을 접고 汝矣島 政治 入門이라는 인생의 큰 選擇 앞에서 ‘傲氣’가 作動한 듯 했다.

 

“美國에서 몇次例 迎入 提案 電話를 받은 뒤,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해서 上司나 가까운 몇분과 議論을 했어요. 미국인은 꼭 하라고 했고, 韓國人은 말렸어요. 남자동료는 하라고 했고 女子同僚는 하지 말라고 했고요. ‘아, 내가 ‘韓國人 女子’구나, 그렇다면 오히려 더 해야겠다, 克服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代表가 아홉番째 迎入人材人 최지은 世界銀行 選任이코노미스트에게 黨員 敎科書 等을 傳達하고 있다. 聯合뉴스

◆‘87體制’ 以後, 代案을 위한 政治

 

그가 國際舞臺에서 쌓은 專門性을 어떻게 發揮할지도 關心이다. 87體制 以後 巨大兩黨을 軸으로 하는 국회의 ‘대립의 政治’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知識의 힘보다 陣營 間 勢對決, 代案提示보다 鮮明性이 點數를 땄기 때문이다. 選擧法 改正으로 21대국회에서는 변화가 豫想되면서, 최지은과 같은 專門家가 내놓을 代案이 國會를 協値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期待하게 된다.

 

假令 그가 꿈꾸는 南北의 經濟統合 비전은 旣存 政治權의 문법과 相當히 다르다. 그는 迎入 會見때, “南北間 平和의 밑바탕이 될 經濟統合에 必要한 일을 하겠다”는 抱負를 밝힌 바 있다. 南北, 北·美 間 政治的 關係가 只今처럼 풀리지 않는 狀況에서도 果然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었더니, 政治的 問題부터 解決하고 난 뒤 實務的인 準備에 들어간다는 順序 自體가 固定觀念이라는 對答이 돌아왔다.

 

“政治的 葛藤關係를 풀고 政治的 合意 決定을 다 내린 뒤 實務的인 準備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假令 國民이 統一이 싫다고 하면, 그 어느 政權이 들어와도 北韓 問題를 解決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國民이 統一이 싫다는 理由가 統一費用때문이라면요? 거꾸로 實務的인 準備를 해나가면서 統一費用이 들지 않는 解法을 만들면 오히려 政治的 合意를 하기 쉬워지죠. 그래서 둘 다 同時에 進行해야 합니다.”

 

그는 國際機構에서 구소련 國家들, 베트남, 中國 等 體制轉換 國家의 企業을 民營化하고 貿易을 開放하며 革新 産業을 注入하는 等의 일을 해왔다.

 

“世界銀行에서 여러 體制轉換 國家들에 對한 諮問을 맡았고, 저를 包含, 그 機構들에 노하우가 蓄積돼 있습니다. 그런 노하우를 北韓에 줄 수 있고, 빌려줄 資金도 마련돼 있죠. 통일 費用이라는 게 韓國과 北韓의 所得水準이 크면 클수록 커지는 건데, 北韓의 所得水準이 올라간다면요? 北韓 經濟를 開發하고 民間 投資를 誘致하고 國際機構의 借款을 받게 하는 일에는 한국사람이 稅金을 낼 必要가 全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獨逸을 봐라, 統一費用이 莫大夏至 않느냐라고 하는데, 우리는 獨逸처럼 어느 날 갑자기 障壁을 무너뜨리는 統一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통일을 只今부터 어떻게 準備해나가느냐에 따라 費用과 利得이 달라집니다. 통일은 좋고 싫고의 問題가 아니고, 북한을 넘어 中國, 北方으로 뻗어나기기 위한 韓國, 韓半島의 未來가 걸린 問題죠.” 具體的인 知識은 抽象的인 理念對立의 쳇바퀴를 벗어나게 할지 모른다.

 

◆‘第2의 康京和’, 虎狼이窟에 들어가다

 

英語, 中國語, 프랑스語 能力과 國際舞臺 經歷은 ‘第 2의 康京和’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黨員들과의 行事에서도 康京和 外交部 長官과 比較하는 質問이 나왔다고 한다. 이 타이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個人的으로 姜 長官을 알지 못하지만 國際機構에서 일한 韓國人 女性으로서, 또 海外에서 活動하다 韓國에 와서 일하는 先輩로서 앞으로 共通點, 배울점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個人的 親分은 없지만 이미 뜻을 함께한 적이 있다. 그는 2017年 6月 康京和 유엔事務總長 特報가 大韓民國 外交部 長官으로 指名됐을 때, 國際機構에서 일하고 있는 韓國人들의 支持宣言을 이끌어낸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代表가 지난 1月 16日 아홉番째 迎入人士인 최지은 世界銀行 選任이코노미스트와 記念撮影을 하고 있다. 聯合뉴스

“人事聽聞會를 앞두고 韓國에서 反對가 많다는 消息을 들었어요. 國際機構 內에서 얼마나 熾烈한 싸움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고, 非英語圈 國家의 女性으로서 얼마나 많은 偏見의 障壁을 넘어 그 자리에 갔을지 充分히 推論할 수 있었어요. 國際的 네트워크는 우리나라의 外交懸案을 생각했을 때 꼭必要한 資産이라고 봤고, 촛불革命으로 들어선 政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죠. 市民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성명서를 제 SNS에 올렸어요. 출장가는 길이라 워싱턴 空港에서 올렸는데, 오스트리아 빈에 내려 確認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共有하고 署名을 했더라고요. SNS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地球 反對便의 사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구나 깨달았고, 市民으로서도 즐거운 政治經驗이었어요.” 當時 20個 가까운 世界 各地의 國際機構에서 일하는 韓國人 60餘 名이 支持宣言에 同參했다.

 

文在寅政府에는 江 長官, 金鉉宗 靑瓦臺 國家安保室2次長 等 海外에서 일하다 故國의 政府로 돌아와 役割하는 이들이 있지만, 최지은처럼 國會로 直行한 境遇는 없다. 국제기구 出身이 여의도 政治에서 얼마나 役割을 해낼 수 있을지 아직 물음標다. 최지은의 世界銀行 名銜 뒤에는 ‘强力한 影響(impact), 眞實性(integrity), 尊重(respect), 팀워크(teamwork), 革新(innovation)’이라는 世界銀行 組織의 5大 核心價値가 새겨져 있다. 市民들이 國會나 政黨을 떠올릴 때 聯想하는 이미지들과는 距離가 먼 單語들이다. 自己 自身도 처음에는 과연 얼마나 適應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迎入 提案을 받았을 때에는 몸살을 앓을 程度로 苦悶에 또 苦悶을 했고 걱정도 많았어요. 그런데 歸國한 뒤 제가 平素 갖고있던 問題意識을 꺼내놓으면서 自信感이 생겼어요. 해외에 있었지만 韓國社會에 對해 갖고 있던 問題意識이 많았는데, 假令 제가 생각하는 韓國社會 問題는 旣得權의 生産性이 너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 이야길 했더니 黨員들께서 맞장구를 쳤어요. 國會로 들어가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니 그 義務感이 不安이나 두려움을 쫓아내더라고요.”

 

總選을 60餘日 앞둔 요즘 함께 迎入된 이들과 틈틈이 만나 다양한 工夫를 하면서 ‘政治 豫習’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政治活動은 이미 始作된 게 분명했다. 마침 그를 만난 날, 한 新聞이 최지은이 釜山 江西乙 地域區에 投入될 수 있다는 報道를 내놨다. 그가 迎入된 뒤 첫 政治 記事였다. 그의 電話機가 자꾸 울렸고 決定된 바 없다는 說明을 하느라 바빴다. 인터뷰를 마치고 國會를 빠져나가면서 生前 처음 하게 될 選擧運動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궁금症을 쏟아냈다. 다음 行先地로 바삐 움직이는 意欲 넘치는 발걸음이 ‘최지은은 단단한 覺悟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김예진 記者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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