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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故鄕, 알타이와 몽골 草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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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期後援

아리랑의 故鄕, 알타이와 몽골 草原

<기황후>, 한·몽 關係를 歪曲하다 ⑧

드라마 <기황후> 25部에서는 기양의(후일 기황후)가 皇帝(順帝 : 惠宗)에게 "저의 復讐가 바로 陛下의 復讐"라고 하면서 엘테무르(連綴)의 除去에 積極的으로 나선다. 그리고 後宮(後宮) 揀擇의 過程에서 "百姓들은 皇帝 陛下의 올바른 政治와 따뜻한 關心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陛下, 모든 飮食에 必要한 소금처럼 부디 百姓들의 마음에 녹아드는 黃은(皇恩)을 베푸소서."라고 아뢴다. 어쩌면 元나라와 高麗의 關係로 보면, 奇皇后와 順帝의 關係가 事實에 가깝다.

韓國과 몽골은 一般的으로 알려진 많은 文化的·心理的 共通性뿐만 아니라 매우 獨特한 慣習들度 共有한다. 예컨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한 살을 먹는다든가(중국과는 分明히 다르다), 食堂이나 가게 等에 가면 韓國에서는 '姨母', '阿弟'라고 하듯이, 몽골에서는 '兄', '동생'이라고 부른다거나(의제가족) 아이들이 오래 살라고 貴할수록 '개똥이' 等으로 이름을 卑下하여 부른다거나 한다. 또 유난히 흰色을 많이 使用한다.

뉴밀레니엄(2000年) 以後 그 동안 韓國과 몽골의 親緣性(親緣性)에 對해서는 수많은 著書들이 있었고 放送에서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새삼 여기서 다시 擧論할 必要는 없다. 그러나 왜 몽골人들이 過去부터 高麗人(韓國人)들을 좋아했는지에 對해서 徹底히 밝혀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의 비슷한 風習들과 民譚, 神話, 民畫, 아이들의 놀이 文化, 思考方式, 씨름 文化, 葬禮 文化 等等의 수많은 共通要素들이 있어도 그것으로는 不足하다. 왜냐하면 그 文化들을 千年 前의 것과도 比較할 수 있어야 하는데, 遊牧民들은 基本的으로 記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不可能하다. 그러나 우리 周邊을 돌아보면, 몽골 草原과 알타이의 痕跡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아리랑(Arirang)'만 해도 그렇다.

아리랑의 故鄕, 알타이와 몽골 草原

아리랑은 기나긴 歲月 동안 韓國 情緖의 原形質이었다. 韓國에는 各 地域마다 '아리랑'이 있다. 아리랑은 韓國의 마음이요 韓國의 歷史다. 그러나 이 말의 뿌리에 對한 定說이 없다. 滿洲語와 關聯하여 산(山)의 滿洲語는 '아린(阿隣)' 또는 '아리라'이므로 이 말과 關聯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말은 퉁구스어(아리라)나 터키어(알리, 알린, 알리라)와도 一致한다. <金絲(金史)>에는 滿洲人들이 自身의 本館을 말할 때 某(某) 산(山) 사람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리라'는 故鄕(故鄕) 또는 本館(本貫)이라는 意味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아리랑은 故鄕, 卽 마음의 故鄕(Heimat des Herzens)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2005年 한·러 유라시아 文化포럼에서 우실하 敎授는 "바이칼 周邊의 民族들이 '아리랑'이나 '쓰리랑'이라는 單語를 使用한다."고 밝혔다. "'아리랑'과 '쓰리랑'은 古代 北方 샤머니즘(shamanism)의 葬禮文化에서 '靈魂을 맞이하고 離別의 슬픔을 참는다.'는 意味였을 것으로 推定된다."고 强調했다.(주1)

나아가 董狐의 代表 民族인 선비족 先祖들의 故鄕으로 널리 알려진 카셴둥(?仙洞 : 알煽動) 洞窟에 接하여 西쪽에 있는 江 이름이 아리하(阿里河)이기도 하고, 껀許施(根河市 : G?nhe Shi)에 있는 아룡산(阿龍山)에도 아리令(阿里嶺)이 있어, '아리랑'은 이 地域과의 關係도 있을 것으로 推定되기도 한다. 이 두 地域은 모두 現在의 네이멍구自治區(?蒙古自治?) 후룬베이얼視(呼???市) 隣近에 있는데, 카셴둥은 후룬베이얼 東쪽으로 헤이룽장省에 가까운 어룬춘자稚氣(鄂?春自治旗) 아리허진(阿里河?)의 都市이고 아리令은 東北部, 따싱안령(大?安?) 北端 西쪽 비탈에 位置하고 있다. 이 地域은 高句麗의 遺跡地와도 매우 가까운 距離에 있다.


따라서 '아리랑'의 正確한 意味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이 말이 알타이와 그에 隣接한 몽골 草原과 滿洲 땅(시베리아)과 關聯이 있다는 것이다.

이홍규 敎授(서울大)는 "시베리아 原住民들의 遺傳子와 韓國人의 遺傳子型을 分析한 結果 70% 假量이 典型的인 몽골로이드의 遺傳型을 보였다 … 父系(父系)를 알려주는 Y染色體의 境遇 시베리아 原住民은 主로 O型, 南아시아 原住民은 C·D型인데 韓國人은 O型과 C·D兄이 섞여있다"며 "韓國人은 北方 몽골로이드와 南方 原住民의 피가 섞여 形成된 民族"이라고 主張했다.(2005 한·러 유라시아 文化포럼)

韓國과 몽골은 北方 그룹, 韓國人의 70%는 北方系

動物地理學的 分布圖(map of the terrestrial zoogeographic realm)를 보면, 韓國은 北方系다. 動物地理學的 分布圖는 世界에 퍼져있는 모든 生命體들을 遺傳子의 特性에 따라 大別한 것이다. 이것은 地上의 動物地理學的 領域과 世界의 地域을 表示한 것인데, 이를 보면 韓國은 中國과 달리 北方과 直接的인 連繫를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卽 韓國은 北方 그룹(Palearctic group)에 屬한다.

▲ 遺傳子의 特性에 따른 動物地理學的 分布圖. (關聯 論文 : B.G.Holt et) ⓒ김운회


新石器 文化를 보면, 韓國人들은 알타이 ― 몽골 ― 대흥안령 ― 아무르江 ― 滿洲 等으로 이어지는 北方 라인과 直接 連繫되어 있다. 이 分野의 專門家인 정수일 敎授에 따르면, 韓國人들의 代表的인 新石器 土器人 櫛文土器(櫛文土器 : 빗살무늬土器 - comb marked pottery)는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거쳐 한便으로는 黑龍江과 松花江 流域을 지나 豆滿江 쪽으로 다른 한便으로는 遼河(遼河)를 지나 韓半島 西北部로 流入되었다[정수일 <古代文明交流史>(四季節 : 2001) 95쪽].


▲ 櫛文土器 文化圈.(정수일, 2001 : 70) ⓒ김운회

漢族(漢族)의 境遇 허난省(河南省)의 量샤오[仰訴(仰韶)]에서 最初로 채도(彩陶 : design pottery)가 發掘되었는데 彩度는 主로 그리스, 이라크, 이란, 인디아의 下라빠 等地에서 나타나고 있어서 이들의 文化가 南方에서 인디아를 거쳐 中國으로 傳來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中國은 펄쩍 뛰면서 이를 反駁하고 핏대를 올리며 中國에서 獨自的으로 發生했다고 主張한다.

遺傳形質의 側面에서도 이 點은 明確하다. 이홍규 博士(서울大)는 糖尿硏究를 하는 過程에서 民族의 起源을 밝히는 重要한 硏究 結果가 나타났다고 한다. 細胞에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라는 에너지 工場이 있고 그 에너지의 量은 그 사람의 遺傳形質로 決定된다. 미토콘드리아의 遺傳形質은 代代로 遺傳되는데, 北方人들은 A, C, D, G, Y, Z 兄 等이 많고 南方人들은 B, F, M 兄 等이 많다고 하는데 이홍규 博士는 韓國人들의 70%는 이 北方形質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南方系는 大略 30% 程度 된다. 김욱 敎授(단국대)는 1200餘 個 以上의 油田 샘플을 調査하여 韓國人들의 遺傳的 特性을 硏究 發表하였는데, 南方人들이 韓半島에 流入된 時期는 大體로 벼農事의 流入時期와 一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卽 南方의 遺傳子型이 쌀農事가 들어온 時期와 一致한다는 말이다.(주2)

고기석 敎授(건국대학교 解剖學敎室)에 따르면, "韓國과 가장 닮은 이들은 카자흐(Казах : 알타이 隣近 서몽골) 民族"이라고 한다. 頭蓋骨의 構造는 人間의 起源과 冬季(同系) 與否를 判別할 수 있는 主要한 對象으로 頭蓋骨 構造와 關聯된 調査項目은 60餘 個나 된다고 한다. 例를 들면 머리뼈의 縫合線이라든가, 구멍의 有無 等으로 頭蓋骨 連結部에 있는 구멍은 韓國人들 75%가 나타나는데 이 調査를 통해보면 韓國人들은 카자흐 民族(東 카자흐스탄) 卽 過去 몽골 西部地域과 同一하고 다음으로는 몽골, 부리야트(Burya-tu : 몽골의 바이칼 湖水 隣近에 居住) 等과 恰似하다고 한다.(주3)

韓國과 몽골은 靑銅器 文化의 主役

北方人들은 東아시아 地域의 靑銅器 文明의 主役이었다. 中國의 양쯔江 流域에서 高度의 新石器 文化가 있었지만 그것이 靑銅器·鐵器로 發展하지 못하고 北方에서 輸血(輸血)을 받아서 黃河文明이 形成되었다. 그 동안 中國 政府는 日本과 함께 各種 手段을 動員해서 양쯔江 流域에서 靑銅器 遺跡들을 찾으려 했지만 失敗했다. 그러면 東아시아 地域에 靑銅器 文化의 輸血이 어떤 方式으로 되었을까? 이것은 靑銅器의 遺跡 또는 遺物 分布圖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新石器, 靑銅器 遺跡地 分布圖.(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歷史 部分.) ⓒ김운회

新石器와 靑銅器의 遺跡 分布圖를 보면, 靑銅器 遺跡의 分布가 櫛文土器仁義 移動路(韓國人들의 移動路)와 거의 一致한다. 靑銅器 遺跡은 萬里長城의 南쪽 卽 한족(漢族)의 領域에는 殷墟(殷墟)를 除外하고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殷墟에서 發掘된 靑銅器는 完成品밖에 없다. 정수일 敎授를 따르면 中國의 安養(安陽) 殷墟(殷墟) 等地에서 나타나는 靑銅器는 그 成型法이나 素材, 文樣 等을 보건대 이미 相當히 發達한 靑銅器로 여러 가지 側面에서 유라시아 靑銅器나 西아시아 靑銅器와 類似하다는 것이다.(주4) 卽 殷나라의 靑銅器 文化는 다른 地域으로부터 殷나라 쪽으로 輸入되었다는 말이다. 萬若 殷나라에서 靑銅器 文化가 發生했다면, 初期 靑銅器 痕跡이나 中間 過程의 形態나 加工品들이 出土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殷나라는 靑銅器의 最終 消費者에 不過했다. 뿐만 아니라 <詐欺>에 "殷나라는 오랑캐의 나라(殷曰夷)"라고 하여 殷나라는 한족(漢族)이 아니라 韓國人을 表現하는 말인 오랑캐[夷]로 나타난다.

▲ 靑銅器 遺跡 및 遺物 集中 地域.(정수일, 2001 : 123 再構成) ⓒ김운회

靑銅器 遺跡 및 遺物 集中 地域을 地圖 위에 標示해보면, 古朝鮮을 包含한 北方人들은 靑銅器의 主要 傳播者였을 뿐만 아니라 靑銅器 文明의 實質的인 主體였음을 알 수 있다.

韓國과 몽골, 눈 작고 숏다리

韓國人들의 모습을 보면, 大體로 추운 氣候에 適應하기 위해 눈이 작고 上體가 잘 發達해있는 反面 下體가 짧다. 콧대가 相對的으로 길며, 눈썹이 津하지 않고 입술이 가늘고 콧구멍이 적다(콧구멍이 크면 北滿洲에서는 肺炎이 걸린다.) 이것이 大體的인 韓國人의 모습인데 요즘은 成形手術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狀況이 많이 달라졌다. 問題는 바로 짧은 下體 이른바 '숏다리(short leg)'인데, 이것을 各種 言論에서는 마치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처럼 放送하는 境遇가 많은데 이것은 分明히 韓國人(알타이人)을 冒瀆하는 것이다.

이제 韓國人(Koreans)의 모습들에 對해 좀 더 具體的으로 分析해 본다.

數十 年間 韓國人들의 體質, 體型, 얼굴 等을 硏究해온 조용진 敎授는 韓國人의 特徵을 매우 재미있게 描寫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朝鮮무다리'이다. 卽 韓國人들의 짧은 허벅지를 '朝鮮무다리' 로 表現했는데 몽골―滿洲―韓半島―日本에 이르는 地域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들 地域 사람들의 體質(physical constitution)도 大同小異하다.

▲ 짧은 허벅지(左)와 體質 分布(郵). 資料 : 조용진(1999 : 85) ⓒ김운회

다리가 짧은 것은 춤을 安定的으로 추기에 가장 適當하다. 그래서 金姸兒 選手가 世界의 피겨女王으로 登極한 것도 偶然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작아진 눈은 遠距離를 쉽게 應試할 수 있기 때문에 世界 女性 골프界를 席卷하는 要素가 되었다. 洋弓(洋弓)은 말할 것도 없다. 韓國人이나 몽골人은 활을 잘 쏘는 民族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하였다.

조용진 敎授에 따르면,(주5) 現在 韓國人의 身體 構造는 시베리아라는 특수한 環境에 徹底히 適應할 수 있는 構造로 進化한 것이라 한다. ① 눈[目]李 작고, 털[毛]은 적고, ② 콧망울은 작지만, 코의 길이는 相對的으로 길며, ③ 齒牙는 크고 다리는 짧은데 허벅지 筋肉은 發達하였고, 斗이고(頭耳高)는 世界 最高이며, ④ 미는 힘은 유럽人들의 折半 程度지만 당기는 힘이 剛하고, ? 시베리아의 눈 속에서 발을 빨리 뺄 수 있도록 발꿈치가 길고, 낮은 溫度에서도 잠을 잘 수 있다(그래서 韓國人들은 比較的 溫度가 낮은 狀態에서도 잠을 잘 잔다). 시베리아라는 특수한 環境에 徹底히 適應할 수 있는 것만 重要한 事案이었으므로 韓國人의 얼굴은 男女 差異가 가장 적다.

좀 더 살펴보면, 北方系는 이빨도 큰데 그中에서도 韓國人이 世界에서 이빨이 가장 큰 民族이라고 한다. 따라서 턱도 크다. 이것은 農事나 과일 採取가 不可能하니 고기를 언 채로 씹거나 말려 먹느라 이빨이 커졌고 덩달아 턱도 커진 것이라고 한다. 코와 입술이 작은 것은 코가 길면 코끝이 커져 銅像(凍傷)에 걸리기 때문이고 입술도 크면 熱(熱) 損失이 많기 때문에 北方系는 입술이 작다고 한다. 또 속눈썹 길면 고드름이 달리니 시베리아에서는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北方系는 눈썹이 짧고 軟하다.

北方系는 情緖的으로 主로 右腦(右腦)가 發達하였는데 그 理由는 遊牧과 사냥이 重要한 業務이다 보니, 空間 感覺이 發達하였기 때문이다. 또 시베리아의 눈 속에서 孤立될 境遇에도 生存하려면, 分析的인 것보다는 全體的으로 判斷하여 直觀的으로 危機를 벗어날 수 있는 力量이 必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른쪽 눈이 큰데, 韓國人 가운데 4分의 3이 오른쪽 눈이 크다고 한다. 韓國人과 마찬가지로 몽골印度 大部分 右腦型인데 名分論(名分論)李 强하다. 右腦가 極度로 發達한 사람이 바로 샤먼(shaman)이다. 韓國人이나 몽골人은 腦幹(腦幹, brain stem)李 弱하기 때문에 覺醒 水準이 낮아 이른바 '냄비根性'이 强하다. 그래서 實質的인 에너지가 弱하고 授業 時間에 자주 졸거나 비즈니스도 龍頭蛇尾(龍頭蛇尾)가 많이 나타난다.

民族 起源에 關한 日本의 硏究들

日本 學者들의 硏究들을 살펴봐도 民族들의 分布 狀態를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귀지(ear wax)는 젖은 귀지(濕型)와 마른 귀지(건형)가 있는데 그 比率이 韓國과 滿洲, 日本, 몽골 等이 類似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肝炎의 抗原(Antigen Type of Hepatitis) 分布圖를 봐도, 韓國을 基準으로 보면 韓國과 滿洲 몽골地域, 日本 地域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 貴紙의 分布圖 [尾本 (1986)]와 肝炎의 抗原 分布圖[西岡(1982)]. ⓒ김운회

韓國과 몽골은 文化的으로 많은 共通點을 가지고 있는데 그 理由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說明되고 왔고 이를 言語的으로 支持하는 理論이 알타이語族說이다. 알타이語族說을 支持하는 學者들은 韓國과 몽골이고 이에 對해 反對하는 學者들은 主로 日本과 터키이다. 그러나 只今까지 알타이語族 理論을 代替할만한 學說은 없다.(주6)

산타페 言語硏究所(Santa Fe Institute)가 만든 世界 人類 言語進化 基本地圖에 따르면, 韓國語는 유라시아界(인도유럽어, 우랄어, 알타이語)의 言語이며, 그 가운데서 알타이語에 屬한다. 알타이語는 相當히 오래前에 터키語 · 몽골語?韓國語 等으로 分化되었고, 다만 特記할 것은 韓國語는 日本語와 너무 類似하기 때문에 分化된 時期가 가장 늦을 것으로 推定된다. 古代 中國語와 古代 알타이語에는 共通된 말들이 많은데 이것은 元나라와 淸나라의 中國 支配에서 보듯이 北方人들이 中國을 占領·統治하는 過程에서 많이 收容된 것으로 보인다.


▲ 世界 言語의 基本 鎭火 地圖.(산타 페 硏究所 資料 再構成) ⓒ김운회

韓國語는 一部 農業 關聯 單語들을 除外하고는 알타이語의 影響을 많이 받았다. 比較言語學의 權威者인 日本의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敎授의 硏究에 따르면, 韓國語는 北方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을 大陸漢語(몽골, 滿洲語) → 반도한어(한국어) → 列島漢語(日本語) 等으로 分類하였다. 大部分의 日本語는 韓國語를 語根으로 하는데 5千餘 個의 類似한 單語가 있다고 한다. 大陸漢語는 시베리아에서 出發하여 반도한어 → 列島 漢語가 되었다는 것이다.(주7)

韓國語는 원알타이語(Proto Altaic language)와 깊은 關聯이 있다. 우리말 가운데 純粹한 固有語들은 大槪는 알타이語로 나타나고 있다. 例를 들면 벼農事에 關한 말들을 除外하고 大槪의 地形이나 各種 固有 動詞, 形容詞들은 알타이語를 起源으로 하는 말들이 많다. 假令 '나라'로 發展한 語彙인 骨, 窟 等이라든가 韓國人들의 나라 이름과 直接 關聯이 있는 구리(까우리, 꾸리), 王(king), 곰(bear), 검다(black) 等의 語彙인 곰, 감, 檢 等은 알타이語다. 이 部分은 러시아의 代表的인 比較言語學者人 세르게이 스타로스틴(Серге?й Анато?льевич Ста?ростин, 1953~2005) 博士의 硏究를 통하여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누구든지 인터넷을 통해 確認해 볼 수 있다.(주8)


▲ 漢語의 領域地圖. 시미즈 기요시· 박명미(2004) ⓒ김운회

民族의 起源과 關聯하여 보면, 韓國말의 '불(fire)', 새벽을 意味하는 韓國 古代語 '배', '태우다(burn)', 뿌리(root), 빨갛다(red), 볕 또는 빛(light), 별(star), 벼리(그물의 中心) 等은 大部分 원알타이語(Proto-Altaic)와 一致한다. 特히 韓國에서 넓은 平原(field, plain)을 意味하는 '벌[平原]'은 원알타이어인 p'??la? [팔라](의미 : field, level ground), 滿洲語의 p?la-n[팔란], 日本語의 pa?ra[爬羅]? 等과 거의 一致한다.(주9)

한 가지 분명한 事實은 中國語와 알타이語(韓國語,日本語,滿洲語,몽골語,터키어)는 分明히 다르다는 것이다. 中國語에는 成造(聲調)가 있는데 알타이語에는 聲調가 없다. 聲調가 있거나 複雜한 言語들은 大部分 南半球의 더운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中國文化는 韓國 文化와 根本的으로 다르다. 特히 萬里長城 以北의 言語들은 現代의 中國語와 같은 絢爛한 聲調가 없다.

▲ 聲調 言語가 나타나는 地域. (이홍규(2012) <인류의 기원과="" 한국인의="" 형성="">, 韓國몽골學會(2012, 159)) ⓒ김운회

그렇다면 알타이를 起點으로 하여 韓半島 日本에 이르는 이 民族을 부르는 一般的인 名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은 없다. 筆者는 그동안 民族의 移動과 關聯된 硏究를 進行하면서 알타이人 또는 쥬신(Jushin 또는 Jusin)이라는 用語가 적합하다고 主張해왔다. 그리고 韓國人(Korean)이라는 말보다는 韓國人들(Koreans)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는 點도 指摘한 바 있다. 왜냐하면 韓國이라는 말은 '가라' 또는 '伽倻'와 같이 '칸(韓)李 다스리는 나라'라는 意味에 가깝기 때문에 이 말은 普通名詞로 굳이 韓半島에서만 使用해온 用語가 아니라 몽골에서도 廣範圍하게 使用된 말이기 때문이다.(주10)

알타이와 몽골 草原은 韓國人들의 마음의 故鄕

알타이는 永遠한 우리 마음의 故鄕이다. 알타이는 우리에게 너무 가까운 <콩쥐팥쥐>, <우렁각시>, <혹부리令監>, <仙女와 나무꾼>, <沈淸傳> 等의 元故鄕이다. 헝가리 平原과 極東地域에서 크게 圓을 그리면 그 圓은 알타이 山에서 만나게 된다. 알타이와 몽골 草原은 騎馬民族(騎馬民族)의 어머니 大地이며 韓國人들의 文化原形을 간직한 곳이다. 韓國人들은 하늘에서 큰 나무를 타고 알타이 山으로 내려온 하늘의 子孫이라는 意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늘과 우리를 이어주는 큰새, 太陽의 새 三足烏(三足烏) 까마귀, 사슴, 나무, 山, 黃金을 우리는 神聖視하는 것이다.

騎馬民族들은 큰 새, 큰 나무, 사슴 等의 세 가지의 象徵이 있다. 사슴은 垈地(good earth)를, 자작나무는 世界의 軸으로 天上과 地上을 잇는 동아줄을 意味한다. 알타이人들은 하늘로부터 이 나무를 타고 山으로 내려와 널리 人間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 世上에 온 것이다. 큰새는 하늘의 使臣이니 알타이人들이 죽으면, 이 새를 따라 다시 七星님(北斗七星) 卽 하늘로 돌아간다. 이 세 가지의 象徵이 黃金으로 統合되어 永遠한 形象을 가진 것이 바로 新羅의 金冠(金冠)이다. 이것은 두고 온 故鄕에 對한 그리움의 表現이다. 놀랍게도 全 世界的으로 알려진 金冠(金冠)은 모두 合하여 봐도 10餘 點인데, 韓國에서 出土된 金管이 無慮 8點이라고 한다. 元來 金으로 몸을 治粧하는 風習은 古代 騎馬民族 사이에 크게 流行한 것이다.(주11)

'알타이人의 아버지 彈自强'은 黃金 개구리王[金蛙王(金蛙王)] 彈子江이 알타이人의 始祖로 나오는 說話다. 그런데 이 金蛙王은 韓國人에게 매우 익숙한 분이다. 卽 夫餘와 高句麗가 바로 이 나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주12) <三國志>에 따르면, 扶餘와 高句麗의 뿌리가 되는 나라는 고리(?離 : 까우리)국 卽 원 코리아(Proto-Korea)로 記錄上 最初로 나타나는 코리어(Korea)이다. 따라서 古離國은 알타이 地方이라는 推論이 可能하다. 다시 말해서 最初의 韓國(Korea)은 바로 알타이라는 말이다.

알타이의 最高峯인 벨루카 鳳으로 가는 길은 韓國의 城隍堂과 恰似한 <세르게>(몽골의 오웨)가 곳곳에 있다. 山에서 흐르는 江에는 돌을 쌓아둔 것도 많아서 韓國의 風景과 매우 恰似하다. 벨루카는 "언제 어디서나 頂上의 하얀 萬年雪을 볼 수 있는 山"이라는 意味다. 이것을 漢文으로 表現한 것이 太白山(太白山)이요 長白山(長白山)이다. 그러니까 알타이산은 韓國人들의 第1 主山이고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간 것이 韓半島 北部의 長白山(白頭山)이다. 筆者는 韓國人들이 使用하고 있는 白頭山(白頭山)은 辱說에 가까운 말이니 使用하지 말고 長白山은 元來는 滿洲人들의 用語였으나 現在는 中國人들의 用語로 굳어진 關係로 太白山(太白山)이라는 말을 使用하는 것이 좋다고 强調한 바 있다.(주13)

元來 알타이는 몽골의 領域이다. 現在 알타이 地域은 몽골 러시아 中國의 國境이 맞닿은 地域이다. 카자흐人들도 西部 몽골人인데, 歲月이 흘러 카자흐人은 투르크와 몽골의 中間쯤 되었다고 보면 된다. 놀랍게도 바로 이 地域에 阿斯達(阿斯達)이라는 말이 살아있다. 알타이語에는 알타이 詩라(sira 또는 te?ga : 山의 뜻), 알탄詩라, 알탄테가, 餓死타라 等의 말이 살아있는데 이 말은 韓國人을 나타내는 阿斯達 (週14) 等과 直接 關聯이 있다. 다만 韓國과 中國에서는 阿斯達이라는 말의 文獻的 連繫가 古代 隨筆集인 <三國遺事(三國遺事)>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關聯 情事(正史) 文獻을 찾아내는 것이 時急한 일이다.

▲ 알타이 地域과 알타이 風景. ⓒ김운회

카자흐스탄(Kazakhstan)의 現在 首都는 아스타나(Astana)인데 이 말은 阿斯達(아스타라)와 같은 意味다. 卽 阿斯達은 韓國人들의 最初의 首都로 記錄된 곳으로 그 意味는 '太陽이 비치는 밝은 벌판(또는 높지 않은 山)'으로 '都邑地(Capital)' 또는 '神聖한 땅(Holy City)'을 意味한다. 元來 이 말은 알타이語로 볼 때, 아스(餓死)는 '밝게 비치는(불타는 : lightly burning)', 타라(타르)는 '若干의 언덕地域 또는 낮은 山'을 意味한다.


以上을 보면, 韓國과 몽골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否定할 수 없고 現代에서도 韓國과 몽골이 特히 가까운 것은 이 같은 뿌리를 共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高麗時代 集中的으로 韓國과 몽골의 血緣이 融合된 것이 더 큰 契機가 되었을 것이다.





本文 主席


(週1) 聯合뉴스 : 2005.08.14

(週2) KBS 1TV 2004 <偉大한 旅程 韓國語> 第1部

(週3) 카자흐民族은 투르크의 一派로 알타이, 카자흐스탄, 中國 西部에 居住한다 ☞ 關聯 資料 : KBS 몽골리안 루트 6 黃金가지(2001年 2月 放映)

(週4) 정수일 <古代文明交流史>(四季節, 2002) 70쪽.

(週5) 以下의 敍述은 조용진 <얼굴> (四季節, 1999) 參考. 또 위의 內容의 一部는 筆者가 조용진 先生으로부터 直接 인터뷰한 內容임.

(週6) 이성규 「鑛物이름의 比較를 통한 알타이語族 分化時期 硏究」<몽골학 27號> (韓國몽골學會, 2010)

(週7) 시미즈기요시?박명미 <아나타(あなた)는 韓國人> (精神世界史 : 2004)

(週8) 세르게이 스타로스틴(러시아 州立大學 人文學 硏究所 所長) 博士는 러시아 比較言語學派의 首長으로 人間 言語의 進化를 硏究한 바벨프로젝트를 進行하는 中 안타깝게도 2005年 心臟痲痹로 急逝하였다. 인터넷上에서 바벨프로젝트인 스타로스틴 DB를 볼 수 있다. 바벨 프로젝트 DB 中 알타이 界열어 使用法은 다음과 같다. http://starling.rinet.ru → Click here to start(바벨塔 寫眞 下端) → All Databases → Altaic etymology (Compiled by Sergei Starostin)에서 view |query | description 가운데 query 를 클릭 → View All Records

(週9) 黎明期의 韓國人들의 歷史에 있어서 많이 登場하는 말로 朝鮮, 쥬신, 肅愼 等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脈(貊), 朴(?), 발(發), 백(白), 불(不) 等의 말들이 나오고 있다. 勿論 이 말들은 '불(fire : 火)'을 의미하거나 '밝다(light)', 弘益人間(弘益人間) 等의 意味로 太陽(Sun) 또는 하늘의 偉大함과 神聖함을 表現하는 말이고, 이것이 民族의 이름으로 定着되어간 것이다. 扶餘(夫餘)라는 말도 이 말들에서 派生된 것으로 보이는데 實際에 있어서 朝鮮(朝鮮)이라는 말과도 別로 다르지 않다는 點을 스타로스틴 DB로 알 수 있다.

(週10) 김운회 <臺쥬신을 찾아서 2>(해냄, 2006) 20張. 還國·칸國·韓國 參照

(週11) 이한상 <黃金의 나라 新羅>(김영사 : 2004) 49쪽.

(週12) <偉略(魏略)>에 이르기를 "옛날 北方에 고리(?離)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王의 侍女가 妊娠을 하자 王이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侍女가 말하기를 닭 알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 그 아이의 이름은 同名(東明)인데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 以後 同名은 首都를 建設하고 附與를 다스렸다"(<三國志> 魏書 扶餘傳 主席)는 記錄이 있다. 扶餘는 바로 고리國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週13) 具體的인 內容은 김운회「高麗 成宗 때 白頭山 첫 記錄, 滿洲族은 '長白山'」<中央 SUNDAY> 2010.8.8 參考.

(週14) 스타로스틴 DB로 보면 Proto-퉁구스滿洲語로[박(bag)]은 white, shining, clear (of sky, weather) 等을 의미하고 韓國語의 '밝(? : 밝다)'에 該當하는 말로 漢字語로는 발(發), 맥(貊), 또는 單(檀) 等으로 나나타고 있는데, 이 말은 샤먼을 意味하는 博施(Baqsi)와 連繫되어있다. 따라서 發朝鮮이란 貊朝鮮, 檀君朝鮮이라는 말과도 큰 差異가 없다. 다만 檀은 박달나무와는 큰 相關이 없고 '밝달' 또는 '配達(太陽이 비치는산 또는 太陽族)'을 表現하는 말이다. "bright, to shine"의 意味로 Proto 알타이는 [먈릭 mi?ali(-k'V)]이고 투르크어는 [밝 bAlk] 몽골語는 [멜 mel] 滿洲 퉁구스어는 [먀ㄹmia(l)]이고 韓國語에서는 [맑다 ma??rk]에서의 '맑'과 같다. 結局 '맥'과 '밝'은 서로 互換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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