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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간디' 曺晩植先生 59周忌 追慕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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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간디' 曺晩植先生 59周忌 追慕式

방우영 理事長, “다시는 共産主義에 속지 말고, 古堂 曺晩植 先生의 뜻에 따라 나라와 겨레를 지켜야”
Written by. 강치구   入力 : 2009-10-16 午後 9: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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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日 午後 3時, YWCA(서울 明洞) 大講堂에서는 古堂 曺晩植 先生(1883年 2月 1日 出生, 1950年 10月 18日 平壤에서 獄中殉國)의 第 59周忌 追慕式이 (寺)古堂 曺晩植先生 記念事業會(理事長 방우영)의 主管으로 擧行됐다.

 ▲ 古堂 曺晩植 先生의 第 59周忌 追慕式이 (寺)古堂 曺晩植先生 記念事業會(理事長 방우영)의 主管으로 16日 擧行됐다.ⓒkonas.net

 古堂 曺晩植 先生은 日帝 强占期에 “國産品 愛用이 民族經濟를 살리는 길이다”라며 民族經濟의 自給과 發展을 위해 物産奬勵運動을 民族運動으로 展開했다. 光復 後에 曺晩植 先生은 조선민주당을 創黨하고 反共路線에 立脚한 信託統治反對를 展開하다 蘇聯軍에 依해 監禁되었고, “나는 自由를 憧憬하는 北韓同胞와 生死를 같이 하겠다”며 越南 勸誘를 뿌리치다가 1950年 10月 18日에 共産黨에 依해 銃殺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

 ▲ "古堂 曺晩植 先生의 뜻에 따라 다시는 共産主義에 속지말고, 나라와 겨레를 지켜야 한다"고 記念辭를 傳한 방우영(古堂曺晩植先生記念事業會) 理事長ⓒkonas.net

 이날 記念式에서 방우영(古堂曺晩植先生記念事業會) 理事長은 記念辭를 통해, “金大中-노무현 두 政權이 北에 30億弗 가까운 現金을 줘서, (이 돈으로) 北은 核을 開發하고 미사일로 우리를 威脅하고 있다. 그들의 目標는 駐韓美軍을 撤收시켜 南韓을 赤化統一하려는 것이다.”라며 “日帝에 對하여는 非暴力, 不服從으로 一貫하며 오로지 祖國이 獨立하여 富强한 나라가 되도록 힘을 기우렸고, 解放 後 蘇聯軍政 共産治下에서 조선민주당을 創黨하여 自由民主主義를 守護하고 國家와 民族의 分斷을 막기 위하여 獻身하시다 끝내 殉國하신, 古堂 曺晩植 先生의 뜻에 따라 다시는 共産主義에 속지말고, 나라와 겨레를 지켜야 한다”고 力說했다.

 이어 정연선(숭실대) 敎授는 ‘民族統合과 高黨精神’題下의 追慕講演에서 “過去 曺晩植 先生을 記錄하고 지나간 哀悼의 次元이 아닌, 物産奬勵運動을 통해 民族獨立精神을 鼓吹시키고 解放 後 自由民主主義를 守護했던 曺晩植 先生의 精神을 復活시키고 再照明해야 한다”고 말했다.

 ▲ 追慕詩를 朗誦하는 金유선(장안대 敎授) 是認ⓒkonas.net

 이날 追慕行事에 李明博 大統領, 鄭夢準(한나라당) 代表最高委員, 김영일(光復會) 會長, 방상훈(朝鮮日報) 社長 等이 獻花를 보냈으며, 이병구 서울地方報勳廳腸, 남만우 光復會 副會長은 追慕辭를 傳했다. 이 자리에 參席한 市民 300餘 名은 김유선(장안대 敎授) 詩人이 朗誦한 追慕詩를 들으며 故人의 遺訓을 되새기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朗誦한 追慕詩 全文과 主催側에서 提供한 古堂 曺晩植 先生의 略歷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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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 엠 · 에쓰

金 소 月

平壤에서 나신 人格의 그 當身님
제이 · 엠 · 에스
德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在朝있던 나를 사랑하셨다.
烏山(五山)에 계시던 제이 · 엠 · 에쓰
十年 봄 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近年 처음 꿈없이 자고 일어나며

자그만 키와 餘원 몸매는
달은 쇠끝 같은 志操가 튀어날듯
타듯하는 눈瞳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民族을 위해서는 더도 모르시는 熱情의 그님
 
素朴한 風采, 仁慈하신 옛날醫그 模樣대로
그러나 아아, 술과 계집과 利慾에 헝클어져
十五年에 虛駐韓 나를
웬일로 그 當身님

맘속으로 찾으시오 오늘 아침?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法 없어
記憶되어 恒常 내 가슴 속에 숨어 있어
미쳐 거츠르는 내 良心을 잠 재우리.
내가 괴로운 이 世上 떠날 때까지.


 

世上을 앓던 사람

朴 南 수

검은 두루마기는 무릎을 덮은 일이 없고
當身의옥 같은 몸은 緋緞에 감겨 본 일이 없다.
韓國의 村婦(村婦)가 짠
씨날이 굵은 무명으로도
當身은 족히 자랑을 만들었다.

실눈썹에 署理는 者부러움 뒤에서
當身의 작은 눈은 늘 타고 있었고
옳은 일이면 동강 부러질지언정
구불어져 휘이는 일이 없었다.

오늘 누구도
그니의 生死를 아는 이 없다.
머리에 繃帶를 감고 世上을 앓던 사람
그 肉身은 사로잡혀 敵(赤)의 볼모가 되었지만
그니가 우리의 둘레를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슴마다에 새겨진 그니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가져다 준 解放의 어려운 터전에
十字架를 스스로 지고
只今 어디서 當身은 銀錢(銀錢)에 팔려간 兄弟들을 굽어 보시는가.

오늘 누구도
그니의 生死를 아는 이 없다.

鐵造(鐵條)로 가로질러진 南北 三千里
잘리고 흩어진 몸 고달픈 兄弟들도 많지만
當身은 더 멀리 當身은
더 고달픈 어디에서 只今도
머리에 繃帶를 감고 世上을 앓고 계시리라.
<이 시는="" 고당="" 조만식선생="" 83회="" 생신기념경모회때="" 낭송됐음="">

  <고당 조만식="" 선생="" 약력="">
1883年 2月 1日 出生
1905~1913年 平壤 숭실中學校, 日本 세이小쿠英語學校, 日本 메이지大學 法學部 卒業
              印度의 獨立運動家 간디의 無抵抗主義와 民族主義에 感動함
1915~1919年 五山學校 校長 就任, 3.1運動에 參加했다가 1年 服役
1920~1926年 朝鮮物産奬勵會 會長(이무렵부터 ‘朝鮮의 간디’로 불림), 平壤 YMCA總務,
              平壤 算定縣 敎會 長老, 인촌 金性洙·古下 宋鎭禹와 함께 연정회 勃起,
              民立大學期成會 組織, 숭인中學校 校長
1927年 新幹會結成視 中央委員兼 平壤 支會長
1930年 官署體育會 會長
1932~1943年 조선일보사 社長, 非暴力 抗日鬪爭, 乙支文德 將軍 妙手補回 創立 會長
1945~1946年 平南建國準備委員會, 人民政治委員會 委員長
              朝鮮민주당 創黨, 反託運動展開
1950年 10月 18日 平壤에서 獄中殉國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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