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義]
兆猛을 始祖로 하고 서울特別市 도봉구에 歲庄地가 있는 姓氏.
[開設]
풍양曺氏(豊壤趙氏)
는 兆猛(趙孟)李 始祖이고 京畿道 楊州를 貫鄕으로 하는데, 豐穰은 楊州의 옛 이름이다. 4個의 波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 淮陽公派(淮陽公派)에서 많은 高官(高官)李 나왔다. 安東 金氏(安東金氏)와 함께 朝鮮 後期 勢道 政治機에 政權을 擔當한 代表的인 家門이다.
肅宗
臺에 大司憲·吏曹判書·禮曹判書·右議政을 지낸
조상우(趙相愚)
,
英祖
臺에 左議政을 지낸
조문명
과 領議政을 지낸
조현명
兄弟, 國舅(國舅)이자
憲宗
臺에 영돈녕府使를 지낸
조만영(趙萬永)
, 大提學과 領議政을 지낸
조인영(趙寅永)
兄弟 等이 有名한데, 이러한 人物들의 累代에 걸친 顯達을 통해 勢道 政治의 基盤을 마련하였다.
[입향 經緯]
풍양曺氏
의 墓域이 있는
도봉구 방학동
一帶는 朝鮮 前期 中宗反正에 參與하여 功臣으로 책록되고
풍양群(豊壤君)
으로 冊封된
조세훈(趙世勛)
[
풍양曺氏
11世孫, 先代 6世는 實戰]의 賜牌地(賜牌地)였다. 이 土地의 四牌 以後로
조세훈
을 비롯하여 그 後代의
풍양曺氏
들을 세장(世葬)하여 只今에 이르렀다.
조세훈
의 墓를 現在의 位置에 쓴 以後로 그 後孫의 一部가 隣近에 居住했었다고 하지만, 大體로 中央 政界로 進出하며 都城에 居住하였거나 現代의 都市化 等으로 인하여 現在는 集姓村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세훈
의 故鄕인 忠淸南道 扶餘와 그 隣近 地域에
풍양曺氏
의 集姓村이 있다.
[現況]
人口 總調査 結果에 依하면 2000年 現在 도봉구에 居住하는
풍양曺氏
는 345家口 1,128名이다. 그러나 集姓村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現在
도봉구 방학동
에는
풍양曺氏
의 세張地(世葬地)가 位置하고 있으며 그 隣近에는 祠堂인 풍양群 祠堂이 있다.
조세훈
이
풍양群
으로 봉해지면서 後孫들은 풍양群波로 分岐하였고, 그를 罷朝(派祖)로 하고 不遷位(不遷位)로 모시며 풍양群 祠堂에서 향사하고 있다. 朝鮮 後期
신정 王后 조 對備(趙大妃)
의 別墅(別墅)가 도봉구에 있었으나 現在는 남아 있지 않다.
[關聯 遺跡]
도봉구 방학동
에
풍양曺氏
의 墓域 두 곳이 있다. 첫 番째 墓域은
신放學 初等學校
東쪽 丘陵에 자리하고 있다.
中宗
臺 分의 靖國功臣(奮義靖國功臣)
조세훈
, 그 養子인 司憲府 監察
早期(趙磯)
,
早期
의 長男
조희철(趙希轍)
의 墓가 있다. 두 番째 墓域은
신放學 初等學校
를 사이에 두고 첫 番째 墓域과 마주보고 있다. 이곳에는
早期
의 3男 分承政院 承旨(分承政院承旨)
조희보(趙希輔)
,
風興 府院君(豊興府院君)
조인수(趙仁壽)
의 墓가 있다. 右議政을 지낸
조상우(趙相愚)
는
조희보
의 孫子이고,
조인수
는
조상우
의 조카이다. 政丞
조문명(趙文命)
·
조현명(顯命)
은
조인수
의 아들들이다.
가장 선대인
조세훈
의 墓는 墓表, 床石, 文人石, 望柱石 等을 갖추고 있다. 墓表는 下葉形 1面비로 全面에는 ‘朝鮮 增 資憲大夫 工曹判書 풍양群 分의 靖國功臣 通訓大夫 豐儲倉수 풍양 朝貢 세훈至妙 增 政府인 평해 孫氏 部(朝鮮贈資憲大夫工曹判書豊壤君奮義靖國功臣通訓大夫豊儲倉守豊壤趙公世勛之墓 贈貞夫人平海孫氏?)’라 새겼다.
조세훈
의 兩者
早期
의 墓는 近來에 호석(護石)을 두르고 墓表를 새로 세우는 等 整備를 하였다.
조희철
의 墓 亦是 近來에 護石을 두르고 墓表와 墓碣을 세우는 等 整備하였다.
조희보
의 墓는 雙墳으로 墓表 2期, 文人石, 望柱石, 床石 等을 갖추고 있으며, 最近에 整備하였다. 墓表 1機에는 ‘蒸 資憲大夫 吏曹判書 兼 知經筵 弘文館 大提學 藝文館 大提學 春秋館 成均館 義禁府社 世子左賓客 五衛都摠府 都摠管 行通政大夫 분承政院 承旨 朝貢 喜報至妙 增 政府인 橋下 盧氏 祔左(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春秋館成均館義禁府事世子左賓客五衛都摠府都摠管行通政大夫分承政院承旨趙公希輔之墓 贈貞夫人交河盧氏?左)’라 새겼고 나머지 1機에는 ‘政府인 江陵 崔氏至妙(貞夫人江陵崔氏之墓)’라 새겼다. 이를 通해
조희보
와 橋下 盧氏를 合掌하였음을 確認할 수 있다.
조인수
의 墓 亦是 整備를 거쳤고 各種 石物을 갖추고 있다. 墓碣은 大提學
최규서(崔奎瑞)
가 짓고, 判中樞府事
서종태(徐宗泰)
가 쓰고, 아들인 藝文館 檢閱
조문명
이 電子(篆字)를 새기었다. 全額은 ‘百分當 豐盛 朝貢 墓碣銘(白賁堂豊城趙公墓碣銘)’이고 비제는 ‘有名 조선국 中訓大夫 行義禁府都事 百分當 朝貢 墓碣銘 兵書(有明朝鮮國中訓大夫行義禁府都事白賁堂趙公墓碣銘幷序)’이다. 墓域에는 그 外에도
조세훈
의 後孫들의 墓가 位置하고 있으며, 近來에 새롭게 지은 풍양群 祠堂이 있다.
한便, 現在는 남아 있지 않으나 朝鮮 後期
翼宗(翼宗)
비
신정 王后 조 對備
의 別墅가 도봉구에 있었는데 그 터에 現在는
廣輪社
가 세워져 있다.
조 對備
는 御營大將, 訓鍊大將을 지낸
조만영
의 딸로서, 朝鮮 後期
풍양曺氏
가 權力을 掌握하는 데 重要한 役割을 한 人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