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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康津 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畫

全羅南道 康津郡 성전면 월하리 無爲寺에 奉安되어 있는 朝鮮時代의 不和(佛畵). 2009年 9月 2日 國寶로 指定되었다. 極樂殿의 州존불人 阿彌陀佛像 뒤에 그려진 後佛壁畫로,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에 別途로 세워진 土壁(土壁)에 그려져 있다. 牙山縣監을 지낸 강노地(姜老至) 等 數十 名의 施主로 大禪師 해련(海連) 等이 1476年(成宗 7)에 造成하였다. 4脚의 연화對坐에 結跏趺坐하고 있는 阿彌陀佛을 中心으로 왼쪽에서 觀音菩薩이, 오른쪽에서 地藏菩薩이 夾侍하고 있는 阿彌陀 三尊度(三尊圖)이다. 一般的인 高麗佛畫의 構圖는 모든 菩薩이 부처의 무릎 아래에 配置되며, 16世紀 以後에는 菩薩과 羅漢 等이 부처를 빙 둘러 畵面 가득히 背馳되는 傾向이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두 夾侍佛의 키가 部處의 어깨까지 올라와 있고 또 畵面 위 兩쪽에 各各 세 比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點이 特徵이다. 阿彌陀佛의 光背는 圓形이나 배[舟] 模樣도 아닌, 어깨 위가 잘록한 키[箕] 模樣으로 表現되어 있는데, 이런 形態는 15世紀 以後의 傾向이다. 畵面 위 兩쪽에 上體만 그려져 있는 6比丘는 얼굴 表情과 姿勢가 多樣하고 生動感있게 表現되어 있다. 왼쪽의 觀音菩薩 立像은 頭光이 綠色의 圓形이고 身光은 黃色의 楕圓形이다. 華麗한 保管 겉으로 흰色의 透明한 網紗가 덮여 있고 끝자락이 어깨까지 내려와 있는데 가는 善만으로 무늬를 그려 質感이 透明하다. 오른쪽의 地藏菩薩은 석張과 寶珠를 지닌 채 흰 事理를 걸치고 點 무늬가 透明한 頭巾과 줄

타르트 트로페지엔느

타르트 트로페지엔느

납작한 圓筒形으로 구워낸 브리오슈를 半으로 갈라, 그 사이를 豐富한 크림으로 채워낸 뒤 프랑스의 케이크로, 케이크의 윗部分에는 펄 슈가(pearl sugar; 덩어리진 雪糖)가 듬뿍 뿌려져 있다. 납작한 圓筒形으로 구워낸 브리오슈를 半으로 가른 뒤, 그 사이에 크림을 바른 프랑스 케이크로 粒子가 굵은 펄 슈가가 뿌려져 있다. ‘라 타르트 드 生트로페(La Tarte de Saint-Tropez)’라고도 불린다. 프랑스 南東部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의 休養都市인 生트로페에서 由來하였다. 名稱 自體에 타르트라는 이름이 붙지만 實際로는 타르트가 아닌 브리오슈를 活用한 料理이며 그 形態는 케이크에 더 가깝다. 由來 타르트 트로페지엔느는 폴란드 出身의 料理師인 알렉산드르 미카(Alexandre Micka)가 1952年 生트로페로 移住하여 1955年 페이스트리 가게를 열면서 登場하게 된 料理로, 그가 祖母에게 받은 레시피를 活用하여 브리오슈에 豐富한 맛의 크림을 더하면서 誕生하였다. 以後 《그리고 신은 女子를 創造했다 (And God Created Woman)》(1956)의 映畫 撮影으로 生트로페에 訪問한 프랑스 俳優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알렉산드르의 이 디저트 料理에 깊은 印象을 받고 地域의 名稱을 따 料理의 이름을 지을 것을 提案하면서 ‘라 타르트 드 生트로페(La Tarte de Saint-Tropez)’라는&n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정원

포츠담·베를린의 宮殿과 庭園

獨逸 베를린과 포츠담에 있는 宮殿과 庭園 遺跡. 포츠담을 中心으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500헥타르 넓이에 位置한 여러 個의 庭園과 公園, 그 안의 150餘 個의 建築物들이 複合的으로 묶여 1992年 世界文化遺産으로 指定된 곳이다. 地形을 適切히 活用하면서 곳곳에 建築物과 庭園 等을 造成하는 形式으로, 18世紀 中盤 프리드리히 2歲가 상수시 宮殿을 지은 것을 始作으로 19世紀까지 프로이센 帝國의 王后들이 持續的으로 建物을 짓고 造景에 關心을 쏟은 結果物이다. 지나치게 華麗하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建物들, 숲과 噴水, 오솔길 等이 어우러진 便安하면서도 아름다운 合作品이다. 가장 中心이 되는 建物은 상수시 宮殿이다. 프리드리히 大王이 손수 스케치를 했다는 여름 別莊으로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語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1745~1747年에 建立되었으며, 프랑스를 좋아했던 王이 베르사유 宮殿을 模倣하여 만들어 ‘프로이센의 베르사유’라 불린다. 하지만 華麗하지 않고 素朴하고 푸근한 것이 差異點이다. 앞의 帶分數에서 6段의 테라스를 지나 約 20미터 올라간 곳에 세워진 길이 97미터의 單層建物로, 便安한 로코코 樣式의 眞髓를 볼 수 있으며, 文學과 哲學, 藝術을 사랑했던 王의 面貌가 곳곳에 묻어난다. 王이 直接 플루트를 연주했던 플루트 演奏室, 볼테르가 3年間 머물렀다는 볼테르의 房 等 內部의 볼거리도 豐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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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김정호

《靑邱圖》,《東輿圖》,《大東輿地圖》를 만든 朝鮮 後期의 地理學者.《大東輿地圖》는 朝鮮時代 가장 正確한 科學的 實測地圖로 評價된다. 19世紀 朝鮮의 國土 情報를 集大成하고 體系化하였다. 本貫은 淸道(淸道)이다. 字는 百원(伯元)·백온(伯溫)이고, 號는 古山子(古山子)이다. 出生年度는 분명하지 않으며, 태어난 곳은 黃海道 鳳山(鳳山) 또는 土産(兎山)이라고도 한다. 平民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地理學에 精進하여 一生을 精密한 地圖와 地理書를 만드는 일에 바쳤다. 1834年(純祖 34) 《靑邱圖》 2妾을 完成하였고, 1857年(哲宗 8)에 全國 彩色 地圖인 《東輿圖》, 1861年(哲宗 12)에 《大東輿地圖》를 完成하여 喬幹(校刊)하였다. 《靑邱圖》 《東輿圖》 《大東輿地圖》는 우리나라 全體를 그린 顚倒(全圖)로서 意義가 크다. 金正浩는 朝鮮 後期에 民間에서 活潑하게 戰士되었던 全國地圖·道別地圖와 國家가 中心이 되어 製作하였던 郡縣指導를 結合하여 郡縣指導 水準의 詳細함을 갖춘 臺(大)縮尺 全國地圖를 만들었다. 特히 《大東輿地圖》는 朝鮮時代에 만들어진 가장 正確하고 精密한 科學的 實測地圖로 評價된다. 이밖에 서울 地圖인 《首善全圖(首善全圖)》 等을 남겼다. 또 地理誌 編纂에도 힘써 《東輿圖地(東輿圖志)》(1834∼1844), 《餘度비지(輿圖備志)》(1853∼1856), 《大東地志(大東地志)》(1861∼1864) 等을 펴냈다. 《東輿圖地》와 《大東地志》는 地域 單位로 地域의 特性을 記述하는 地域別 支持와 疆域·道路·山川 等의 主題別 地理學을 結合시킨 地理誌로서 以前의 全國 地理誌나 邑誌에서는 例를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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