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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世界人 울리는 SHIN RAMYUN으로|신동아

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世界人 울리는 SHIN RAMYUN으로

25歲 농심 辛라면, 只今도 成長 中

  • 강지남 記者| layra@donga.com

    入力 2012-09-20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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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세계인 울리는 SHIN RAMYUN으로

    신라면 封紙면과 큰사발面, 컵라면의 包裝 디자인은 1986年 첫 出市 以來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海外에 몇 番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농심 신라면에 對한 에피소드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호텔에서 ‘故鄕의 맛’에 對한 그리움이 사무쳐 신라면을 끓여 먹었다던가, 뜻하지 않게 신라면을 파는 작은 가게를 發見해 반가웠다던가 하는. 大學 時節 親舊가 濠洲로 語學硏修 갔을 때의 일이다. 下宿하기로 한 濠洲人 집에 갔더니 그 집 꼬마가 신라면 컵을 먹으면서 “코리아는 어디에 있는 나라예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은 더는 說明이 必要 없는 大韓民國 代表 브랜드다. 2011年까지 신라면의 累積 販賣量은 總 210億 封止. 신라면 길이는 約 20cm인데, 이 210億 封紙를 一列로 세우면 地球를 아흔여섯 바퀴 돌 수 있다는 計算이 나온다. 또 韓國人이 먹는 라면 네 封止 中 한 封紙는 신라면이다(국내시장 占有率 24.5%). 가까운 中國, 日本에서부터 멀게는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지리아 等 中東 및 아프리카까지 80個國으로 輸出되고 있다. 海拔 4000m가 넘는 ‘유럽의 지붕’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展望臺 賣店에서도 신라면 컵을 판다.

    韓國에서 出市된 첫 라면은 1963年 9月 삼양식품이 선보인 삼양라면이다. 食糧 不足, 特히 쌀 不足이 深刻해 魂·粉飾 奬勵運動이 벌어지던 時節이었다. 1965年 농심(當時 使命은 롯데工業株式會社)도 라면事業에 첫발을 내딛고 多樣한 製品을 出市했다. ‘롯데라면’(1965)을 거쳐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兄님 먼저 아우 먼저’ 하던 廣告의 人氣에 힘입어 ‘농심라면’(1975)李 空前의 히트를 記錄하면서 1978年 社名도 아예 ‘農心’으로 바꿨다.

    以後 농심은 ‘沙鉢麵’(1981),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 等 每年 히트作을 내놓으면서 國內 라면市場의 成長을 牽引해갔다. 그리고 1985年 3月 농심은 三養食品을 꺾고 占有率 1位 라면業體로 올라섰다.

    농심의 信念 中 하나는 ‘라면 맛은 스프에 있다’는 것이다. 韓國 食文化의 基底에는 湯, 국물이 있다. 라면도 韓國人이 즐기는 飮食이기에 국물 맛이 무엇보다 重要하다. 面은 大部分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라면 全體의 맛에 特別한 作用을 하지 않는다. 結局 국물 맛은 스프가 左右한다.



    매운맛 찾아 三萬里

    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세계인 울리는 SHIN RAMYUN으로

    하루 總 380萬 封紙의 라면을 生産하는 농심의 龜尾工場. 國內 生産 신라면의 70%가 이 工場에서 나온다.

    이에 농심은 1980年 京畿 安城에 스프專門工場을 着工해 스프 製造工法을 발전시켜나갔다.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等의 잇단 成功으로 業界 1位로 올라선 것도 스프로 各各의 製品을 差別化한 德分이었다고 농심은 自評한다. 하지만 라면市場 1位를 鞏固히 하기 위해서는 高級 이미지를 가진 製品으로 競爭優位를 確實하게 다질 必要가 있었다. ‘確實한 한 房’. 1980年代 初 신라면 開發프로젝트는 이런 背景에서 始作됐다.

    농심의 目標는 ‘특별하면서도 普遍的인 매운 맛’을 찾는 것이었다. 윤성학 농심 弘報팀 次長은 “언뜻 矛盾돼 보이지만 특별하다는 것은 旣存 製品에는 없는 매운맛 라면을 最初로 開發하자는, 普遍的이라는 것은 韓國人에게 親熟한 매운맛을 具現하자는 뜻이었다”고 說明했다.

    開發팀은 全國에서 栽培되는 거의 모든 品種의 고추를 사들여 매운맛을 實驗했다. ‘얼큰한 소고기醬국맛’을 基本으로 삼았기에 고추, 소고기, 마늘 等等을 넣고 끓인 국물을 하루에도 스무 가지씩 만들어 맛을 봤다. 單純히 고춧가루에서 비롯되는 매운맛에는 限界가 있다는 걸 切感하던 때, 開發팀에서 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다대기로 맛을 내보면 어떨까?”

    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세계인 울리는 SHIN RAMYUN으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농심 本社.

    다대기, 卽 다진 양념이란 국물 있는 飮食에 加味할 수 있게 고춧가루와 마늘, 生薑 等의 材料를 適切히 配合한 것이다. 開發팀은 칼국수집, 冷麵집, 국밥집, 설렁湯집 等 다진 양념을 使用하는 全國 有名 飮食店들을 돌며 양념을 確保해 적합한 맛의 配合을 硏究했다.

    라면 맛이 스프에 있다면 라면의 食感은 麵발에 달렸다. ‘安城湯麵보다 굵고 너구리보다는 가늘면서 넉넉한 食感과 쫄깃한 質感’을 目標로 實驗用 麵발을 200餘 種類나 만들었다. “하루 平均 세 封紙에 該當하는 量의 라면을 먹어가며 秒時計로 時間을 재고 비커와 溫度計로 물의 量과 溫度를 測定하며 맛을 鑑別했다.” 신라면 開發에 參與한 한 硏究員의 回顧다.

    總 2年의 時間이 所要된 끝에 1986年 ‘깊은 맛과 매운맛이 調和를 이룬, 얼큰한 감칠맛’을 가진 신라면이 完成됐다. 붉은 고추와 쇠고기가 잘 調和돼 매콤하고 개운한 국물, 當時 競爭 라면들보다 回分(灰分) 含量이 높은 밀가루를 使用해 쫄깃하고 매끄러운 麵발, 표고버섯 乾播 마늘 等으로 만든 別添스프가 獨特한 香味를 내는 라면. 當時 농심은 “成功을 壯談할 순 없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自身 있는 製品”이라고 自體 評價했다고 한다.

    매울 辛字에 얽힌 事緣

    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세계인 울리는 SHIN RAMYUN으로
    “매운 라면이니까 辛라면으로 합시다.”

    농심의 創業主인 신춘호 當時 社長(現 會長)李 이렇게 말했을 때 經營陣은 反對했다. 그도 그럴 것이 當時만 해도 製品 大部分이 ‘농심라면’ ‘김치라면’ 等과 같이 會社 이름이나 材料에서 비롯된 네이밍을 使用하던 時節이었다. 또 漢字를 商品名으로 쓴 前例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社長의 姓(姓)인 新(辛)과 辛라면이 陰과 漢字가 모두 같아 宗親會나 消費者에게 非難받지 않을까 憂慮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춘호 社長은 斷乎했다.

    “내 性을 팔자는 게 아니라 좋은 製品을 消費者가 잘 알아보도록 하자는 거요. 些少한 일에 戀戀해 큰일을 그르치지 맙시다.”

    신라면의 包裝 디자인은 첫 出市됐을 때나 現在나 別般 달라진 게 없다. 붉은色과 검은色으로 ‘매운 라면’이라는 製品의 屬性이 加減 없이 傳達되도록 한 點, 賣場에 陳列됐을 때의 注目 效果를 考慮해 매울 ‘辛’字를 붓글씨로 强調해 明確히 露出되도록 한 點, 包裝에 玉篇을 드러내 漢字 브랜드에서 오는 拒否感을 最小化한 點 等이 25年이 지난 現在까지 維持돼 브랜드 正體性(identity)을 鞏固히 하는 데 一助하고 있다. 아무튼 當時로서는 이 모든 게 라면業界에서 처음 試圖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면은 商標登錄 過程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當時 食品衛生法은 “食品의 商品名 標示는 한글로 하여야 하고 外國語를 兵器하고자 할 때는 한글 標示보다 크게 할 수 없다”고 規定하고 있었다. 이에 농심은 數千 年 동안 漢字 文化圈에 屬해온 우리나라에서 果然 漢字를 外國語로 分類하는 것이 現實的으로 妥當한지, 그리고 卽刻的인 意味 傳達과 이미지 浮刻을 生命으로 하는 商品名에 漢字를 크게 쓸 수 없다는 規定이 合理的인지 等의 反論을 提起했다. 結局 政府에서 농심의 建議를 받아들여 1988年 10月 法 條項을 改正했다.

    이 같은 過程을 거친 신라면은 1986年 10月 出市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消費者들은 ‘얼큰한 국물맛도 좋고 面도 다른 라면보다 낫다’는 反應을 보였다. 신라면은 出市 첫해 석 달 동안 30億 원에 肉薄하는 販賣高를 올렸다. 當時 個當 價格이 200원이니 1500萬 個가 팔린 셈이다. 이듬해인 1987年, 賣出額이 180億 원을 上廻하면서 신라면은 國內 라면市場의 代表走者로 떠올랐다.

    라면이든 菓子든 농심의 製品廣告는 素朴하다. 무슨 賞을 받았다거나, 어려운 輸出길을 뚫었다거나 하는 자랑거리를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지 않는다. 이대진 製品마케팅部門長 常務는 “創業 以後 ‘廣告가 製品을 앞서서는 안 된다’라는 廣告哲學을 變함없이 維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說明했다. 이런 廣告 戰略이 製品이나 企業 이미지를 疏脫하고 親近感 있게 만드는 것도 事實이다. 앞서 言及한 農心라면의 ‘兄님 먼저 아우 먼저’ 廣告가 뿌리가 되어 現在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신라면 廣告도 이 範疇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농심은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란 카피를 製品을 出市한 지 25年이 지난 現在까지 固守하고 있다. 신라면의 核心인 매운맛을 諧謔的으로 表現한 이 짧고 强烈한 카피는 一貫된 메시지가 되었다. 消費者는 신라면 하면 自然스럽게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을 떠올린다. ‘신라면=매운맛’이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鞏固하게 되었음은 勿論이다.

    ‘中國 사나이’울리는 신라면

    사나이 울리는 辛라면에서 세계인 울리는 SHIN RAMYUN으로

    中國의 신라면 廣告. 마오쩌둥의 말을 패러디해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면 사내大丈夫가 아니다’라는 카피를 使用한다.

    中國에서도 같은 廣告戰略이 實行되고 있다. 농심은 마오쩌둥의 末 ‘將星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大丈夫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를 패러디한 카피를 만들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면 사내大丈夫가 아니다’(吃不了辣味非好漢)가 그것으로, 이를 통해 中國人의 獨特한 情緖와 心理를 刺戟하고 있다.

    廣告 마지막에 나오는 ‘農心 神~라면’이란 징글(jingle) 亦是 25年째 變한 적이 없다. 강부자, 구봉서가 부르던 CM송을 박지성, 利用代價 부를 뿐이다. 농심은 이런 廣告戰略을 통해 ‘歲月은 變하지만 신라면의 맛과 人氣는 變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消費者에게 傳하고자 한다.

    지난해 末 개그맨 이경규가 開發에 參與한 八道 ‘앵그리꼬꼬麵’李 話題가 되면서 하얀국물 라면市場은 全體 라면市場의 17%를 차지할 程度로 그 比重이 急上昇했다. 하지만 곧 人氣가 시들해져 지난 7月 하얀국물 라면의 占有率은 3.3%로 墜落하고 만다.

    이 하얀국물 라면의 急襲에도 신라면은 健在했다. 國內 라면市場 規模는 大略 1兆9600億 원인데 이 中 신라면이 차지하는 게 24.5%, 4800億 원에 達한다. 하얀국물 라면의 人氣가 絶頂에 達했을 때도 신라면은 占有率을 2%p假量 잃었을 뿐, 打擊은 主로 下位 브랜드들이 입었다. 그만큼 國內 라면市場에서 신라면의 位相은 搖之不動이다.

    농심 龜尾工場은 現在 農心 라면 生産의 心臟으로 自動化·高速化된 生相工程을 통해 하루 總 380萬 封紙의 라면을 生産하고 있다. 신라면의 國內 生産量 中 70%가 龜尾工場에서 만들어지고 나머지가 安養, 安城, 釜山工場 等에서 生産된다. 이 中 釜山工場에서 만든 신라면은 日本, 東南亞 等地로 輸出된다. 海外工場이 있는 中國과 美國은 現地에서 신라면을 生産한다.

    신라면은 全 世界 80餘 個國에 輸出되고 있다. 美國 월마트(Wal Mart), 캐나다 세이프웨이(Safeway), 英國 아스다(ASDA), 프랑스 파리스토어(Paris Store), 日本 세븐일레븐(7-Eleven), 濠洲 콜스(Coles) 等 신라면은 各 나라의 主要 마트에 進入해 있어 쉽게 求할 수 있다. 이렇게 海外市場에서 販賣되는 신라면을 金額으로 換算하면 約 2000億 원에 達한다(2011년 基準).

    海外輸出이 많다보니 농심은 2009年 ‘신라면指數’를 만들어 發表하기도 했다. 신라면指數란 맥도날드 ‘빅맥指數’나 스타벅스 ‘라테指數’처럼 各國의 販賣價格을 同一 貨幣로 換算해 各國의 購買力을 比較 評價(PPP·Purchasing Power Parity)하는 指數다. 신라면指數는 신라면이 販賣되는 主要 10個 地域의 신라면 한 封紙 價格을 美國 달러로 換算해 算出한다. 농심은 2009年과 지난 3月, 두 次例 신라면指數를 發表했다.

    海外에서 신라면을 맛본 韓國人들 中 一部는 “外國에서 사 먹는 신라면은 덜 맵다”고 하는데 이에 對해 최성진 R· BD部門 스프開發팀 常務는 “基本的으로 신라면 製造法은 全 世界가 同一하다. 하지만 中國이나 美國에서 生産하는 신라면은 該當 國家의 물, 菜蔬, 肉類, 고추의 特性에 따라 매운맛 程度가 아주 조금 달라질 수 있다”고 說明했다. 基本的으로 同一한 ‘매운맛’이란 뜻이다.

    卽, 신라면은 海外市場에 進出할 때도 本然의 매운맛을 그대로 維持한다. 매운맛을 選好하지 않는 國家라면 戰略上 그 맛에 變化를 줄 법한 데도 농심은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의 正體性에 一切 손을 대지 않는다. “가장 韓國的인 것이 世界的인 것이요, 맵지 않다면 더 以上 신라면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世界舞臺서도 매운맛으로 勝負

    中國은 101億 달러(約 11兆4000億 원)의 市場規模를 자랑하는 世界 最大의 라면 消費國이다. 農心으로서는 決코 抛棄할 수 없는 市場인 것. 그런데 쓰촨省을 除外한 地域에서 中國人들은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다. 또 中國人들은 라면을 ‘물을 부어 簡單히 먹는 料理’로 여긴다. ‘매운 封紙면’인 신라면 立場에서는 넘어야 할 山이 둘인 셈이다.

    그럼에도 농심은 中國市場에서도 ‘신라면 固有의 맛으로 勝負를 건다’는 戰略을 修正하지 않았다. 代身 앞서 紹介한 廣告카피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면 사내大丈夫가 아니다’와 함께 週末마다 大型마트를 中心으로 試食行事를 벌여 ‘끓여 먹는 신라면의 맛’에 對해 弘報했다. 조인현 농심 中國法人 本部長은 “그 結果 現在 中國 北方地域 消費者 中 60%가 라면을 끓여먹는 것으로 調査됐고, 신라면 販賣도 큰 幅으로 伸張됐다”고 밝혔다. 또 농심은 신라면보다 덜 매운 ‘愚弄面’, 海産物을 加味한 ‘傷害湯면’ 等 中國人의 입맛에 맞춘 製品도 함께 선보여 戰略을 補完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이슬람 國家에도 신라면이 輸出되기 始作했으니 이제 신라면을 맛볼 수 없는 나라는 드물다. 2011年 농심은 무슬림度 먹을 수 있는 ‘할랄 신라면’을 出市, 그동안 輸出實績이 없던 파키스탄, 요르단, 카타르 等 이슬람 國家 進出에 成功했다. 할랄(Halal)이란 아랍語로 ‘許容된’이란 뜻으로, 농심은 이슬람법이 許容하는 食材料만으로 신라면을 生産하는 할랄生産라인을 釜山工場에 갖춰 신라면 封紙와 컵面 等 總 8種의 할랄 認證을 取得했다. 世界 全體人口의 25%가 무슬림이란 點을 勘案하면 ‘할랄 신라면’ 出市는 농심에 큰 機會를 가져다줄 것으로 展望된다.

    브랜드 價値 評價專門機關人 브랜드스탁에 따르면 2011年 신라면은 大韓民國 100大 브랜드 가운데 8位를 차지했다. 勿論 食品 브랜드 中에서는 斷然 1位다. 2004年 日本 空中波人 도쿄TV는 신라면을 포스트잇, 칭다오麥酒 等과 함께 世界的인 名品 브랜드로 紹介하기도 했다. 最近 아시아를 中心으로 大衆文化 韓流가 ‘먹거리’ 寒流로 擴大되는 趨勢인데, 신라면 亦是 그 가운데 있다.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빅맥처럼 신라면度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으로 또 하나의 世界標準이 될 수 있을까. “變치 않는 것이 신라면의 魅力”이라는 농심의 固執은 오늘도 挑戰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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