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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麗한 色彩의 都市, 바르셀로나

한 張의 그림 地圖

華麗한 色彩의 都市, 바르셀로나

 이미지 1

후안 미로 廣場

후안 미로 (Joan Miro 1893~1983)는 굳이 토를 달 必要가 없을 程度로 有名한 畫家다. 그의 天眞爛漫한 原色은 現代美術에 關心 없는 사람에게도 꽤나 익숙한 이미지다. 그보다 더 有名한 畫家로 들 수 있는 이름은 파블로 피카소 程度나 될까? 바르셀로나에서는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그리고 그들 못지않게 有名한 살바도르 달리 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모두 스페인을 代表하는 畫家들이라니. 스페인의 底力이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中에서도 1893年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特히 카탈루냐 사람들이 사랑한 후안 迷路의 作品은 이 都市에서 쉽게 接할 수 있다. 후안 미로 美術館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후안 미로 公園도 威風堂堂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旅行者들이 더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그의 作品은 람블라스 거리 한가운데 있는 타일로 만든 후안 미로 廣場 이 아닐까. 觀光의 메카라는 람블라스 거리 한복판에 이 作品이 가로누워 있는 까닭은 '바르셀로나에 온 觀光客을 歡迎'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굳이 챙겨보지 않으면 밟고 지나치기 十常인 大家의 原作. 생각보다 초라하더라도 失望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자. 有名한 作家의 原作을 발밑에 두고 이렇게 가까이서 살펴볼 機會가 흔치 않으니.

피카소 美術館 Museu Picasso

피카소,달리,迷路는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3代 畫家다.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Picasso1881~1973)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그렇기 때문에 피카소 美術館 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美術館이다. 特히 피카소의 初期 作品들이 많은 곳이라 時期別로 變化하는 피카소의 作品世界를 한눈에 살펴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피카소가 태어난 곳은 스페인의 南部 안달루시아 地方에 있는 작은 都市인 말라가 이다. 1881年에 태어난 피카소는主로 프랑스 파리에서 活動하는데, 그前에 바르셀로나에 머물며 이 都市의 空氣를 맘껏 들이마셨다. 이곳 美術館은 그가 파리로 留學을 떠나기 前까지 살았던 14世紀 頃에 지어진 고딕 樣式의 貴族 邸宅, 아길라르 宮殿을 改造한 것이다. 1963年에 開館한 이 美術館은 피카소의 幼年時節의 鉛筆 習作品부터 過去의 有名作品들을 리메이크한 作品까지 無慮 3,000餘 個의 作品이 모여 있다. 13~15世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貴族邸宅들이 늘어선 비좁은 몬까다 거리 한구석에 피카소 特有의 華麗한 色彩로 그려진 作品들이 가득 차 있는 美術館이 숨어 있으니, 그 골목길로 접어드시라.

鬪牛競技場 Plaza de Toros Monumental

안은 鮮血이 狼藉하지만, 鬪牛競技場의 外觀은 상큼하다.

붉은 甓돌에 흰色과 푸른色의 타일로 앙증맞은 무늬를 그려 붙인 이곳. 塔 위에 둥글게 올라앉은 달걀 같은 지붕 위에도 푸른 무늬가 그려져 있어 스페인 사람들의 感覺을 새삼 느끼게 한다. 事實, 바르셀로나는 鬪牛가 禁止되어 있다. 2004年에 '안티鬪牛都市' 宣言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 唯一하게 남은 鬪牛 競技場인 이곳, 모累멘탈(Monumental) 以外에는 모두 門을 닫았고, 모累멘탈 亦是變身을 기다리고 있다.

1914年에 엘 스포르트(El Sport)라는 이름을 달고 오픈했다가 1916年에 모累멘탈(Monumental)이라고 이름을 바꾼 이곳은 모데르니스모 建築樣式으로 지어진 建物이다. 19世紀 末에서 20世紀 初에 걸쳐 유럽에서 일어난 藝術復興運動인 某데르니스모는 프랑스式으로 '아르 누보'라고 하면 確實히 感이 잡힐 것이다. 이슬람 美術科 고딕 美術을 折衷한 무데하르 樣式, 裝飾性이 强한 獨創性이 모데르니스모 樣式의 特徵이다. 이곳에서는 1960年 以後 鬪牛시즌이 아닐 때는 콘서트가 열렸는데, 비틀즈 , 롤링스톤스 , 밥 말리 等 錚錚한 스타들이 소의 피로 얼룩진 舞臺에 그 이름을 올렸다.

안토니 타피에스美術館 Fundacio Tapies

單純하면서도 複雜한, 안토니 타피에스美術館 屋上의 設置作品 'Cloud and Chair'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도, 迷路圖, 달리도 있지만 안토니 타피에스 (Antoni Tapies)도 있다. 1923年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바르셀로나 大學에서 法律을 專攻하였으나 專攻과는 無關하게 다양한 繪畫作業을 내놓으며 大家의 班列에 올랐다. 찢어진 캔버스, 便紙, 못쓰는 物件들, 쓰레기들에 휘갈겨 쓰듯 드로잉을 한 그의 作品들은 先輩 作家들에 비해 크게 有名해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에 꼭 가야 할 美術館 中 하나에 自身의 이름을 올릴 만큼은 되었다.

그의 이름을 건 이 美術館 은 타피에스의 全 作品을 볼 수 있는 곳이기며 圖書館과 아트關聯 專門書店을 갖추고 現代美術을 쉽게 接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기도 하다. 모데르니스모 建築家인 도메네크 이 몬타네로 (Lluis Domenech I Montaner)가 設計하여 1984年에 지어진 이 建物은, 建物 自體의 아름다움보다 建物 屋上 위에 이고 있는 作品으로 인해 더 有名해졌다. 巨大한 鐵絲뭉치로 보이는 'cloud and chair'라는 이름의 이 作品은 바르셀로나의 푸른 하늘을 背景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明確한 看板 役割을 하고 있다.

카탈라냐 音樂堂 Palau de la Musica Catalana

숨이 막히는 經驗을 하고 싶다면 카탈라냐 音樂堂의 天井스테인드글래스를 올려다보라

事實, 안토니 타피에스 美術館을 設計한 도메네크 이 몬타네로의 代表作은 카탈라냐 音樂堂 이다. 그의 이름은 낯설지만 20世紀 初盤, 카탈루냐에서는 가우디만큼이나 名聲이 높았다. 스물다섯살에 바르셀로나 建築學校 敎授로 就任했을 程度로 天才的이었던 이 建築家의 '天才性'은 바로 이 音樂堂에서 確認할 수 있다. 가우디를 보러 왔다가 가우디를 못 보고 가도 아깝지 않을 아름다움을 가진 이 音樂堂은 數千 個의 彩色琉璃를 使用하여 壁과 天井을 꾸미고 있다. 이러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샹들리에의 아름다움은 어떤 建物을 견주어도 全혀 주눅들지 않는다.

1905年과 1908年 사이에 지어진 이 建物은 가이드 투어로 內部를 觀覽할 수 있지만, 그보다 公演을 볼 때 제 아름다움을 빛낸다. 只今도 第一 有名하고 비싼 公演을 包含하여 수많은 公演이 열리는 '現役 公演場'이다.

달리美術館 Teatre Museu Dali

달리美術館의 前景이야말로 '달리스러움'의 典型이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에 對해 또 다른 說明이 必要할까? 狂人과 天才의 어디쯤에 자리 잡았던 그의 作品은 너무 有名해서, 그의 行跡만큼이나 깊은 印象을 사람들에게 남겼다. 하도 奇異하여 어디 하늘에서쯤 뚝 떨어진듯했던 그도 事實은 카탈루냐 北部의 작은 마을 피게라스(Figueras)에서 갓난아이로 태어나 같은 都市에서 84歲의 나이로 죽은 平凡한 사람이었다. 結局 그의 故鄕인 이곳에 달리 美術館 이 세워지게 된다.

피게라스는 바르셀로나에서 버스로는 約 2時間 20分, 汽車로는 約 2時間쯤 걸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內亂 中에 불탄 市民劇場을 改造해서 1974年에 오픈한 이 建物은 鮮明한 붉은 系統의 色 壁에 빵 模樣의 裝飾을 다닥다닥 붙이고 建物 꼭대기에 巨大한 달걀을 옹기종기 이고 있다. 外樣부터 '달리스러운' 이 建物은 다른 美術館들과는 달리 위層부터 보며 내려올 수 있도록 作品을 配置하였다고 한다. 約 600餘 點의 달리 作品뿐 아니라 달리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하니, 달리의 팬에게는 聖地巡禮의 經驗을 안겨줄 듯.

구엘公園 Park Guell

구엘公園의 도마뱀은 바르셀로나의 象徵이 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色彩를 이야기하면서 가우디 를 빼놓을 수는 없다. 가우디의 어떤 作品을 이야기할까가 고민스러울 뿐. 曲線과 다양한 色깔을 써서 신비롭기까지 한 建物을 지어냈던 그의 作品은 바르셀로나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그곳의 風景을 바꾸고 있다. 그 中에서도 구엘公園 은 色色깔의 타일조각, 獨特한 기둥과 華麗한 天井, 모자이크 噴水, 彫刻品과 구불거리는 벤치로 가득 찬, 말 그대로 '가우디월드'라 할만한 곳.

구엘이 아파트團地를 짓기 위해 가우디에게 맡겼던 이곳은 14年間의 工事期間에도 不拘하고 計劃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結局 구엘이 죽은 뒤 그 家族이 時에 땅을 寄贈하면서 구엘公園이 되었다. 가우디가 1906年에 移徙 와서 죽기 直前까지 20年間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오면 가우디 博物館도 둘러볼 수 있다.

이 都市를 더 들여다보려면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뒤를 졸졸 좇는 것만으로도 充分히 둘러볼 수 있다. 아직 젊은 가우디가 建築家로서의 꿈을 가득 담아 지어 올렸던 카사 非센스 (Casa Vicens), 구엘을 위해 지은 別莊인 파베욘스 구엘(Pavellons Guell), 그리고 구엘 家族이 살았던 집, 팔라시오 구엘(Palacio Guell), 曲線으로 된 外觀이 신기한 카사 바트요 (Casa Batllo), 카사 밀라(Casa Mila) 아직도 짓고 있는 사그라다파밀리아 (Sagrada Familia)...뿐이랴, 레이알 廣場의 街路燈 도 가우디의 作品이다. 하지만 가우디에서만 滿足한다면 바르셀로나가 아깝다. 이곳의 수많은 다른 建物들이, 가우디의 建築物이 個人的인 天才性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雄辯하고 있다. 가우디에게 影響을 주었던, 가우디와 함께 發展하며 키를 높였던 建物들을 둘러보면 그를 낳은 都市, 바르셀로나의 全貌가 斟酌이 갈 것이다. 도메네크 이 몬타네로의 또 다른 作品인 山 파우 病院 (hospital de sant pau), 호세프 푸이그 이 카다팔츠가 지은 카사 亞마트예르(Casa Amatller)와 카사 드 레스 뿐세스(Casa de les Punxes), 가우디의 스승 護岸 마르토렐이 지은 山프란세스크 데 살레스(Sant Francesc de Sales) 等. 그 땅에 붙박여 있는 建物들은 그 땅에 가지 않고서는 볼 수 없으니, 밟아보고 만져보고 걸어보고 期待보자.

映畫와 함께 떠나는 都市 旅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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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出處: 美術大辭典(用語便)

發行日

發行日 : 2010.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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