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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年만에 얼굴 드러낸 박종철 事件 暴露 主役들 - 오마이뉴스

25年만에 얼굴 드러낸 박종철 事件 暴露 主役들

[現場] 25周忌 追悼式 進行... 安諭 前 서울校正廳長, 矯導官 한재동氏 參席

登錄 2012.01.14 21:14 修正 2018.01.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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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日 午後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에서 열린 故 박종철 烈士 25周忌 追悼式에서 87年 當時 영등포矯導所에 服役하던 이부영 前 열린우리당 議長이 故人의 拷問 致死 事件 縮小隱蔽 試圖를 提報하고, 外部로 알리는데 決定的인 役割을 했던 當時 安諭 保安係長(왼쪽)과 한재동 矯導官(오른쪽)을 紹介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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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烈士의 拷問致死 縮小 隱蔽 事件을 世上에 알리는데 決定的인 役割을 했던 87年 當時 영등포矯導所 安諭 保安係長(왼쪽)과 한재동 矯導官이 14日 午後 南營洞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 509號 調査室에서 獻花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나는 軍事獨裁政權의 走狗, 下手人, 사냥개 소리를 듣던 加害 集團이었다."

故 박종철君 拷問致死事件 縮小 隱蔽 造作 事實을 世上에 알려 1987年 6月 抗爭을 이끈 숨은 主役들이 25年 만에 얼굴을 드러냈다. 14日 午後 옛 南營洞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 마당에서 열린 박종철 烈士 25周忌 追悼式 舞臺에 깜짝 登場한 安諭(68) 前 서울校正廳長과 '民主 矯導官' 한재동(66)氏가 그 主人公이다. 하지만 이들의 첫 마디는 이처럼 '자랑'李 아닌 '自省'이었다.

6月 抗爭 起爆劑된 두 矯導官 "나도 加害集團"

1987年 1月 14日 박종철君 拷問 致死 事件 直後 治安本部는 "冊床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單純 쇼크死'로 몰아갔다. 結局 물拷問 事實이 드러나자 顧問에 關與한 警察官 2名을 拘束하는 線에서 事件을 덮으려 했다. 當時 이들이 收監된 영등포拘置所 保安係長이던 安氏는 이들 外에 警察官 3名이 더 關與했고 警察이 이를 組織的으로 隱蔽하는 過程을 目擊했다. 安氏는 마침 같은 拘置所에 收監 中이던 이부영 前 열린우리당 議長에게 이 事實을 알렸고 當時 矯導官이던 韓氏는 이 前 議長의 쪽紙를 外部에 傳達하는 役割을 했다. 

結局 그 쪽紙를 받은 天主敎 正義具現 全國司祭團 고 김승훈 神父와 함세웅 神父는 그해 5月 18日 5·18光州抗爭 犧牲者 追慕미사에서 造作 事實을 暴露했고 그 社會的 憤怒가 6月 抗爭으로 이어졌다. 李 前 議長은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 事實을 밖으로 傳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잔뜩 추켜세지만 정작 두 사람은 故 박종철君 아버지 박정기氏를 비롯한 200餘 追慕客들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다.

"當時 在野人士와 大學生 等 公安 關聯 師範들을 監視하고 懷柔하는 役割을 했다"며 自身의 부끄러운 過去를 告白한 安氏는 "當時 警察 首腦部들이 拘束된 警察들을 찾아와 입 닥치고 있으면 1億 원을 주겠다고 懷柔하고 家族을 내세워 脅迫하는 모습을 直接 目擊하고 對共搜査部署가 國家에 歪曲된 忠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結局 엉뚱한 學生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事件을 造作, 隱蔽 縮小하려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그 事實을 이 前 議長에게 털어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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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烈士 25周忌 追悼式이 열린 14日 午後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에서 故人의 아버지인 박정기氏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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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年 서울대生 박종철 顧問 致死 事件 25週期인 14日 午後 故人이 물拷問을 받아 死亡한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 509號 調査室 물拷問 現場이 고스란히 保存되어 있다. ⓒ 권우성


옛 同僚들 사이에 王따 取扱... "背信이 아니라 犯罪 밝힌 것"


當時 이 前 議長을 도와 外部에 쪽紙를 傳達한 矯導官 한재동氏는 70年代부터 전병용, 김재술氏 等과 함께 이른바 '民主 矯導官'이라 불리며 民主 人士들과 잘 알고 지내던 人物이다. 韓氏는 "當時 이 前 議長에게 펜과 종이를 갖다 주고 저녁에 쓴 쪽紙를 바깥에 傳達했는데 發覺되면 큰일 난다고 해 꼭 숨겨 가져 나갔다"면서 "그때 쪽紙를 傳한 일이 矯導官 生活 30年에서 가장 뜻 깊은 일이었다"고 當時를 回想했다.   

다만 韓氏는 "過去 軍事獨裁 殘滓는 아직 淸算되지 않았고 朴正熙를 克服하지 못하면 바깥에 알린 게 意味 없다"면서 "그 殘滓는 박근혜高 올해는 그 殘滓를 克服하는 해가 돼야 한다"고 밝혀 뜨거운 拍手를 받았다.

이들은 그 事件 以後에도 現職에 있었던 탓에 自身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8年 前 停年退職한 後에도 周邊은 勿論 家族에까지 그 事實을 숨긴 건 自身의 일에 對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矯導官 同僚들 사이에서 '王따' 取扱을 받으면서도 "이건 背信이 아니라 犯罪를 밝힌 것"이라고 堂堂한 모습이었던 안柳氏는 "나도 加害 集團이었는데 어떻게 밝혔겠나"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 2005年 南營洞 對共分室을 只今의 人權센터로 바꾸는 데 一助했던 박종환 前 警察綜合學校長 亦是 "當時 警察 指揮部가 지난 過誤를 되풀이하지 않고 反省과 謝過 意味로 '박종철 記念館'으로까지 바꾸려 했다"면서 "명박山城, 乳母車部隊와 촛불 鎭壓, 용산 撤去民 慘事 等 지난 4年 警察 모습을 되돌아보면 當時 謝過가 果然 眞心이었는지 아쉽다"고 警察의 自省을 促求했다. 

柳時敏 딸 追悼辭 "先輩 이름 팔아, 목숨 바친 價値들 짓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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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時敏 統合進步黨 共同代表의 딸인 유수진 서울大 單科大學生會腸 連席會議 議長이 14日 午後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에서 열린 故 박종철 烈士 25周忌 追悼式에서 追悼辭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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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烈士 25周忌 追悼式이 열린 14日 午後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 509號 調査室에서 警察이 박종철 烈士를 拷問해서 所在把握을 하려고 했던 當時 學校 先輩인 박종운 한나라당 京畿道當 西部地域 總括本部長이 默念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한便 曺國 서울大 法大 敎授가 이날 追悼式 社會를 맡은 가운데 柳時敏 統合進步黨 共同代表 長女인 유수진(21) 서울대 社會大 學生會長이 學生 代表로 追悼辭를 朗讀해 눈길을 끌었다.

柳氏는 "더욱 안타까운 것은 先輩가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고, 先輩의 죽음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조차 하나 둘 制度圈에 旣得權에 旣成權力에 包攝돼 버렸다는 것"이라면서 "저들은 오늘도 先輩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先輩가 목숨 바쳐 追求했던 價値들을 짓밟고 있다"고 一喝했다. 

25年동안 自身을 드러내지 않았던 두 前職 矯導官의 부끄러운 告白과 只今도 '박종철 이름을 팔아' 活動 中인 一部 政治人들 모습이 겹쳐지는 瞬間이었다. 마침 이날 追悼式엔 朴鍾哲軍이 拷問을 받으면서도 끝내 지키려했던 先輩, 박종운 한나라당 京畿道當 西部地域 總括本部長度 參席했다.

이날 追悼式에 앞서 故 김근태 前 民主統合黨 常任顧問이 拷問을 받았던 옛 對共分室 515號와 朴君이 숨진 509號를 돌아보며 눈물을 훔친 백기완 統一問題硏究所 所長은 "軍事獨裁體制의 朴鍾哲을 기리고 고개만 조아릴 게 아니라 오늘날 歷史的 現場의 '박종철'을 죽이는 李明博 體制와 金融獨占資本體制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밝혔다. 百 所長은 이날 追悼式에서 自身이 쓴 追慕詩를 直接 朗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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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烈士 25周忌 追悼式이 열린 14日 午後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에서 故人의 高等學校, 大學校 先輩인 曺國 서울대敎授가 社會를 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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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拷問 現場 바라보는 백기완 先生과 명진 스님 故 박종철 烈士 25週期인 14日 午後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 505號 調査室을 찾은 백기완 先生과 명진 스님이 故人이 물拷問을 받다 숨진 浴槽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前略)
거기서 運命처럼 제 몸을 사르던 촛불
그게 누군가 했더니 그게 바로 너였고
하늘에 닿을 怨恨을 기름으로 내달리던 希望버스
그게 누군가 했더니 그게 바로 너였고
韓美自由貿易賣國協定 廢棄 싸움에 까마득한
앞장, 그게 누군가 했더니 그게 바로 너였구나

그렇다
썩어문드러진 獨占資本主義는 이제 끝장이다
참된 下劑는 땀이 主人 되는 世上이라고
워싱턴과 歐羅巴, 世界 곳곳에서 '뗑 뗑 뗑'
온 몸으로 鐘을 치는 피투성이의 젊은이
그게 누군가 했더니 그게 바로 너였다니까
(中略)
아 끝없이 歷史를 일깨우는 鐘치기 縱綴아"

- 백기완 '朴鍾哲 烈士 25周忌 追慕詩 '그게 바로 너였구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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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年 서울대生이었던 박종철 烈士가 물拷問을 當해 死亡한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에서 25周忌 追悼式이 열린 가운데, 故 박종철 烈士와 高 김근태 議員 等 수많은 民主人士들에 對해 殘酷한 拷問이 恣行되었던 5層 調査室 작은 窓門들 앞에 太極旗가 펄럭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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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철 烈士, 고 김근태 議員 等 수많은 民主人士들이 拷問을 받았던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現 警察廳 人權센터)에는 5層 調査室로 向하는 回轉式 鐵製階段이 設置되어 있다. 警察에 逮捕된 民主人士들은 눈이 가려진 채 이 階段을 통해 拷問이 行해지는 調査室로 올라가게 되면서 自身의 正確한 位置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 권우성


#朴鍾哲 #6月抗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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