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尙北道
醴泉郡
出身으로,
醴泉女中
在學 中 洋弓을 始作했다.
醴泉女高
在學 中 國家代表로 選拔되어
1979年
베를린
에서 열린 世界 洋弓 選手權 大會에서 30m, 50m, 60m, 個人 綜合, 團體戰을 席卷하며 5冠王에 올라 大韓民國에서 큰 關心을 모았던 選手이다.
1980年
모스크바
에서 열리는
夏季 올림픽
에서도 큰 期待를 모았으나, 大韓民國의 보이콧으로 參加하지 못했다.
1983年
로스앤젤레스
에서 열린 世界 選手權 大會에서 다시 5冠王에 오른 김진호는 다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1984年
夏季 올림픽
에서도 매우 큰 期待를 모았다. 그러나 大會에서 後輩
서향순
이 意外의 金메달을 따고, 김진호는 銅메달을 獲得했다. 올림픽 後 한동안 彷徨하다
1986年
서울 아시안 게임
에서 洋弓 3冠王에 오른 後 現役에서 隱退했다. 올림픽에서는 金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김진호는 選手 生活 동안의 華麗한 經歷으로 神宮의 援助로 알려져 있다.
隱退 後에는
한국체육대학교
大學院에 進學, 博士 學位를 取得한 後 1995年에
한국체육대학교
에 正式 任用되어 敎授로 在職 中이다.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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