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年) 반전(反轉)을 타이틀곡(曲)으로 한 1집(輯)으로 데뷔했다. 당시(當時)
개리
[2]
와
길
도 객원(客員)으로 참가(參加)했으나, 개리의 말에 따르면 '자신(自身)은 외모(外貌)도 춤도 랩도 아무것도 안 됐기에' 망(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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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輯)의 실패(失敗)에도 불구(不拘)하고 1999년(年)에 이희성은 이정관, 양창익(
윤건(綸巾)
)과 함께 컴필레이션 앨범 1999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중추(中樞)가 되었으며, 엑스틴 역시(亦是) 앨범에서 꽤 높은 비중(比重)을 차지하며 팬들의 관심(關心)을 불러모았다.
분위기(雰圍氣)를 타 2000년(年)에 2집(輯) 앨범을 발매(發賣), 이강희와 김원규, 그리고 객원(客員)이었던 개리와 길이 팀을 떠났으며 이희성, 허인창, 마스터 챙(성창일)의 3인조(人組)로 팀을 재구성(再構成)한 뒤 객원(客員) 멤버로 빅 머니(전병기)를 영입(迎入)하여 타이틀 곡(曲)인 국민교육헌장(國民敎育憲章)으로 활동(活動)했지만 30~40위(位) 권(卷)에만 잠시(暫時) 들었을 뿐 큰 반응(反應)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모르겠지만 엑스틴이 주축(主軸)이었던 컴필레이션 앨범 대한민국(大韓民國) 시리즈조차 이희성과 김홍순 & 양창익파(波)로 서로 갈라져
신나라레코드
와 천리안(千里眼)을 통해 제각각(제各各) 2000 대한민국(大韓民國) 앨범을 발매(發賣)하게 되었고, 이희성이 주도(主導)한 신나라(新나라)판 2000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천리안(千里眼)판에 비했을 때 음악적(音樂的)인 면(面)에서의 평가(評價)로는 별(別)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엑스틴의 앨범은 2집(輯) 이후(以後)로 나오지 않았지만, 엑스틴으로써의 활동(活動)은 대한민국(大韓民國) 시리즈를 통해 계속(繼續) 해나갔으며, 엑스틴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확인(確認)할 수 있는건 2001 대한민국(大韓民國) Hip-Hop F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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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엑스틴은 사실상(事實上) 해체(解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