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의
국부(國富)
이자(利子)
혁명가(革命家)
,
정치인(政治人)
,
독재자(獨裁者)
.
부패(腐敗)하고 무능(無能)했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政權)으로부터 쿠바를 해방(解放)시킨 혁명가(革命家)
라는 평가(評價)와
언론(言論) 탄압(彈壓)은 물론(勿論) 정적(靜寂)과 반대파(反對派)
숙청(肅淸)
을 행(行)한 독재자(獨裁者)
라는 평가(評價)가 엇갈리고 있다. 1959년(年)부터 2008년(年)까지
[2]
49년(年) 혹은(或은) 2011년(年)까지
[3]
52년간(年間) 집권(執權)하면서
세계(世界)에서 가장 오래 집권(執權)한 독재자(獨裁者), 가장 오래 재임(在任)한 비(非) 왕실(王室) 국가원수(國家元首)
기록(記錄)을 보유(保有)한 인물(人物)이기도 하다.
[4]
미국(美國)
과의 오랜 대립(對立) 속에
반미(反美)
(反美)적(的)인 성향(性向)을 지닌 것으로 유명(有名)하며, 한 때 복지정책(福祉政策)을 통해 쿠바인에게 인기(人氣)를 얻기도 했으나 공산권(共産圈)의 붕괴(崩壞)로 인해 쿠바 역시(亦是) 큰 타격(打擊)을 입었고 쿠바 의료계(醫療界)의 현실(現實)이 알려진 것처럼 선진국(先進國) 수준(水準)까진 아니기에 자국(自國)에서도 어느 정도(程度)의 비판(批判)이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북한(北韓)과는 달리 미국(美國)의 봉쇄(封鎖)가 지속(持續)되고 소련(蘇聯)의 지원(支援)도 끊긴
특별기간(特別期間)
을 극복(克服)한 등(等)의 업적(業績)을 높이 평가(評價)하는 목소리도 높다. 사회보장(社會保障)을 유지(維持)하는 한편(한便) 농업(農業)을 협동조합(協同組合), 도시영농(都市營農)/유기농(有機農) 생산(生産) 체제(體制)로 완전히(完全히) 개편(改編)해내어 그리 풍족(豐足)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고난(苦難)의 행군(行軍)
같은 제(第)3세계(世界) 국가(國家)들에서 흔히 일어나는
헬게이트
가 쿠바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쿠바 자국(自國)에서 뿐만 아니라,
제(第)3세계(世界)
에 대(對)한 협력(協力)과 지원(支援)으로 구(舊)(舊) 동구권(東歐圈)이나 현재(現在) 남아있는 사회주의(社會主義) 국가(國家), 쿠바의 지원(支援)이나 협력(協力)을 받았던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지(等地)의 국가(國家)들에서는 여전히(如前히) 호의적(好意的)인 평가(評價)가 우세(優勢)하다. 그에 대(對)한 평가(評價)는 현재(現在)까지도 정치성향(政治性向), 국가별(國家別)로 크게 갈리지만 그가
반미(反美)(反美)주의(主義)
의 상징(象徵)
이자(利子)
세계사(世界史)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影響)을 미친 인물(人物)들 중(中) 한 명(名)
임은 부정(否定)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