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L
은
고용노동부(雇傭勞動部)
가 9대(代)의 소스 혼합기(混合機) 가운데 인터록이 없는 7대(代)에 대(對)해서만 작업중지(作業中止) 명령(命令)을 했다는 이유(理由)로 나머지 2대(臺)로 소스 배합(配合) 작업(作業)을 시작(始作)했다. 노동부(勞動部)는 이날 오후(午後) 뒤늦게 나머지 2대(代) 혼합기(混合氣)에 대(對)한 작업중지(作業中止)를 명령(命令)하고 사고(事故)가 발생(發生)한 3층(層) 전체(全體)의 공정(公正) 중지도 권고(勸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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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事故) 이후(以後)
SPC그룹
의 대응(對應) 및 조치(措置)와 관련(關聯)해서도 큰 비판(批判)이 있었다. SPC그룹은 사고(事故)에 대(對)한 공식적(公式的)인 언급(言及) 없이, 사고(事故) 발생(發生) 다음날인 16일(日)부터 휴일(休日)인 17일(日) 일요일(日曜日)까지
파리바게뜨
의 9번째(番째) 해외진출(海外進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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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對)한 보도자료(報道資料)를 배포(配布)하고 허진수 글로벌 총괄사업(總括事業) 사장(社長)이 나서서 이를 대대적(大大的)으로 홍보(弘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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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對)하여 SPC가 그룹차원(次元)에서 의도적(意圖的)으로 사고(事故) 관련(關聯) 기사(記事)들을 "밀어내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疑惑)과 함께, SPC그룹의 사고(思考) 대응(對應)에 대(對)한 비판(批判)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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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결국(結局)
SPC그룹
허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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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會長)은 사고(事故)가 난 지 이틀이 지나서야 공식적(公式的)으로 사고(事故)와 관련(關聯)한 입장(立場)을 표명(表明)하고 유가족(遺家族)들에게 사과(謝過)하였다. "불의(不意)의 사고(事故)로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빈다."며 '작업환경(作業環境) 개선(改善)과 시설투자(施設投資)' 등(等) 재발(再發) 방지(防止)를 거듭 약속(約束)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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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한便) 노조(勞組) 측(側)에서는 이번(이番) 사고(事故)가 SPL 사측(社側)이 안전(安全) 매뉴얼을 무시(無視)하고 과중(過重)한 업무(業務)를 부과(賦課)하여 발생(發生)했다고 언급(言及)하며, 사고(事故) 이전(以前)의 상황(狀況)과 사고(事故) 이후(以後) 회사(會社)의 대응(對應)에 대(對)하여 문제(問題)를 제기(提起)했다. 공장(工場) 근무(勤務) 매뉴얼은 해당(該當) 작업(作業)을 실시(實施)할 때 2인(人) 1조(組)로 하게 돼 있으나 사고(事故) 당시(當時) 동료(同僚) 직원(職員) 1명(名)은 자리를 비운 상황(狀況)이었다. "2인(人) 1조(組)로 근무(勤務)하게 규정(規定)해 놨지만, 기계(機械)를 만지는 1명(名)을 제외(除外)한 나머지 1명(名)은 재료(材料)를 나르거나 주변(周邊)을 정리(整理)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상황(狀況)이 원래(元來)부터 많았다"며 "노동자(勞動者)의 안전(安全)을 위한다면 기계(機械) 앞을 2명(名)이 지킬 수 있게 3인(人) 1조(兆) 근무(勤務)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공장(工場)의 노동자(勞動者)들은 말했다.
강규형 화섬식품노조(化纖食品勞組) SPL 지회장도(支會長度) 이날
경향신문(京鄕新聞)
과의 통화(通話)에서 같은 취지(趣旨)의 발언(發言)을 하였다. 그는 "정상적(正常的)으로 운영(運營)하기 위해선 3인(人) 1조(組)로 해야 했던 것인데, 회사(會社)는 비용(費用) 탓에 그러지 않았다. 하루 목표(目標) 배합량(配合量)이 40개(個)라고 한다면 무조건(無條件) 채워야 했다, 관리자(管理者)들은 빠르게 작업(作業)하라고 독촉(督促)했고, 노동자(勞動者)들은 항상(恒常) 과중(過重)한 업무량(業務量)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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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0월(月) 16일(日)
화섬식품노조(化纖食品勞組)SPL지회(支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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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르면 사망(死亡) 사고(事故)가 있었던 작업장(作業場)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또 다시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바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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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事故)를 목격(目擊)한 직원(職員)들도 쉬는 일 없이 출근(出勤)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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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인간적(非人間的)인 대우(大宇)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憤怒)했으며
SPC그룹
관련(關聯) 업체(業體)들을 불매(不買)하겠다는 의견(意見)도 확산(擴散)되었다.
이러한 점(點)이 밝혀지고 비판(批判) 여론(輿論)이 높아지자, SPC 측(側)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고현장(事故現場) 주변(周邊) 근무(勤務) 노동자(勞動者)들에게까지 일주일(一週日) 간(間)의 유급(有給) 휴가(休暇)를 제공(提供)했다. 추가적(追加的)으로 심리(心理) 치료(治療)도 지원(支援)할 예정(豫定)"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事故)를 직접(直接) 수습(收拾)한 노동자(勞動者)들은 곧바로 업무(業務)에서 배제(排除)하여 출근(出勤)하지 않았다고 언급(言及)하면서, 현장(現場)에서 "인원(人員)을 충원(充員)해 달라는 요청(要請)은 없었다"와 같이 비용(費用) 문제(問題) 때문에 현장(現場) 인력(人力)을 줄인 게 아니라 마치 현장(現場)의 잘못이라는 식(式)으로 해명(解明)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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