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過去)에는 위생(衛生) 관념(觀念)이 없던 탓에 치료행위(治療行爲)가 굉장히(宏壯히) 비위생적(非衛生的)이어서,
전쟁(戰爭)
에서 많은 부상자(負傷者)들이 사망(死亡)하는 병(病)이기도 했다. 설령(設令) 위생적(衛生的)인 환경(環境)에서 치료(治療)를 했다고 한들
항생제(抗生劑)
가 없었기 때문에 이미 세균(細菌)에 감염(感染)된 환자(患者)들은 패혈증(敗血症)의 위협(威脅)에 항상(恒常) 노출(露出)되어 있었다. 세균(細菌)의 존재(存在)를 몰랐던 시절(時節)에는
피
를 신성(神聖)하다고 여겼고, 몸을 씻는 기준(基準)도 어떤 부위(部位)가 눈에 띄게 더러워지거나 냄새가 날 정도(程度)가 되어야 했으며, 그것도 미생물(微生物)이 득실거리는 시냇물에서 비누 없이 씻는 경우(境遇)가 대다수(大多數)였다. 부상(負傷)에 취약(脆弱)한 육체(肉體) 노동자(勞動者)나 군인(軍人)의 경우(境遇)에는 위생(衛生) 상태(狀態)가 더 심각(深刻)했다.
역사(歷史) 기록(記錄)에서 'A는 부상(負傷)을 입고 회복(回復)하지 못하여 사망(死亡)했다' 등(等)의 문구(文句)가 있으면 굉장히(宏壯히) 높은 확률(確率)로 패혈성(敗血性) 쇼크의 가능성(可能性)을 추측(推測)해볼 수 있다. 영화(映畫) 등(等)에서 부상(負傷) 입은 군인(軍人)들이 후송(後送)된 뒤 고열(高熱)에 시달리다 죽는 묘사(描寫)가 많은데, 이게 패혈증(敗血症) 증세(症勢)다. 그 외(外)에도 정말(正말) 사소(些少)한 외상(外傷), 예(例)를 들어
장미(薔薇) 가시에 긁히거나
[6]
살짝 손을 베는 정도(程度)에도 패혈증(敗血症)이 발병(發病)해 사망(死亡)한 인물(人物)들이 많았다.
불결(不潔)한 물건(物件)에 노출(露出)되면 패혈증(敗血症)에 쉽게 걸린다는 것 정도(程度)는 알았기 때문에 과거(過去)에는
인분(人糞)
을 바른 무기(武器)가 치명적(致命的)으로 쓰이곤 했다. 역사적(歷史的)으로 많은 공성전(攻城戰) 기록(記錄)을 보면 수성측(守城側)에서 인분(人糞)을 투척(投擲)했다는 기록(記錄)이 있으며,
구니노미야 구니(拘泥)요시 왕(王)
은 인분(人糞)을 바른 칼에 찔려 패혈증(敗血症)으로 고생(苦生)하다가 사망(死亡)했다.
베트남 전쟁(戰爭)
당시(當時)에도 베트콩들이 인분(人糞)을 뿌린 부비트랩을 사용(使用)한 바 있다. 전부(全部) 더러운 물건(物件)을 묻힌다는 모욕적(侮辱的)인 의도(意圖)가 아니라 패혈증(敗血症)을 유발(誘發)하기 위한 일종(一種)의 독소(毒素) 역할(役割)이었다.
항생제(抗生劑)가 발명(發明)되기 전(前)까지 수많은 산모(産母)들을 괴롭힌 병(甁) 역시(亦是) 바로 패혈증(敗血症)이었다. 전근대시기(前近代時期) 산모(産母)들은
산욕열(産褥熱)
이라는
세균(細菌)
감염(感染)으로 인한 패혈증(敗血症)을 앓는 경우(境遇)가 많았다. 당시(當時)
의사(醫師)
들은
부검(剖檢)
했던 손으로 바로
출산(出産)
을 도왔는데
, 출산(出産) 과정(過程)에서 어마어마한 출혈(出血)과 회음부(會陰部) 열상(裂傷) 등(等)을 동반(同伴)하기 때문에 감염(感染)이 쉽게 되었던 것.
19세기(世紀)
헝가리
의 의사(醫師)였던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 1818?1865)는
출산(出産)
전(前)에 의사(醫師)의 손을 소독(消毒)하는
손 씻기
이후(以後)에
출산(出産)
을 도우면 산욕열(産褥熱)을 낮출 수 있다는 걸 발견(發見)했다. 그래서 그걸 분석(分析)한 책(冊)을 발간(發刊)했으나 당시(當時) 통념(通念)으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무시당(無視當)했다. 그 시대(時代)에는 세균(細菌) 감염(感染)은 커녕, 세균(細菌)이란 개념(槪念)조차 희박(稀薄)했다. 제멜바이스 사후(死後) 10년(年) 뒤에나
루이 파스퇴르
에 의(依)해 세균(細菌)의 존재(存在)가 명확(明確)해진다.
제멜바이스가 이를 반증(反證)하면서 든 예시(例示)가 전문(專門) 의사(醫師)들에 비해 평범(平凡)한
산파(産婆)
들이 출산(出産)을 도울 때는
산욕열(産褥熱)
의 발병률(發病率)이 상대적(相對的)으로 적었다는 통계(統計)였다. 산파(産婆)들은 의사(意思)와는 달리 시체(屍體)를 만지지 않고, 또 관습(慣習)에 따라 출산(出産) 전(前) 물로 손을 씻은 뒤 산모(産母)를 돌보아서 이 때문에 세균(細菌) 감염률(感染率)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당시(當時) 의사(醫師)들은
전문(專門) 의료(醫療) 지식(知識)을 갖춘 자신(自身)들이 일반(一般) 산파(産婆)만도 못하다는 사실(事實)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더욱 제멜바이스의 의견(意見)을 비난(非難)했다. 제멜바이스는 비난(非難)하는 자(者)들을 "살인자(殺人者)"라며 비판(批判)했고, 그 후(後) 극심(極甚)한 우울증(憂鬱症)에 시달렸다. 1865년(年) 그는 정신병원(精神病院)에 보내졌고
연조직염(炎)
이
패혈증(敗血症)
으로 발전(發展)해서 생(生)을 마감한다. 제멜바이스는 이것이 시체(屍體) 입자(粒子) 때문이라는 가설(假說)을 세웠는데 시체(屍體) 입자(粒子)의 정체(正體)는 바로
세균(細菌)
이고 10년(年) 뒤에 밝혀졌다. 그 뒤 위생(衛生)이 철저(徹底)해지고
항생제(抗生劑)
사용(使用)으로
1940년대(年代)
부터 산욕열(産褥熱)로 죽는 산모(産母)가 크게 급감(急減)하였다. 훗날(後날) 이 이론(理論)이 인정(認定)되고 의학계(醫學界)에 끼친 영향(影響)을 고려(考慮)하여
부다페스트
의
의과대학(醫科大學)
은 개교(個校) 200주년(周年)이 되는 1969년(年)에 제멜바이스 의과대학(醫科大學)으로 이름을 바꾼다.
[7]
패혈증(敗血症)은 불특정(不特定)한 병원체(病原體)에 의(依)한
감염(感染)
, 또는
폐렴(肺炎)
이나
뇌수막염(腦髓膜炎)
이나
암(癌)
환자(患者)의 감염(感染) 등(等) 갑자기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임상(臨床)에서 판단(判斷)하기 애매모호(曖昧模糊)한 기준(基準)을 가지고 있다. 옛날부터 지금(只今)까지 엎치락뒤치락 새로운 정의(定義)가 내려지고 있는데 여태까지 제시(提示)된 정의(定義)에 의(依)하면 패혈증(敗血症)은 다음과 같이 설명(說明)할 수 있다. (첫 번째(番째) 정의(定義)는 생략(省略)하고 현재(現在)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혼동(混同)하는 두 번째(番째) 정의(定義)부터 설명(說明)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