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언급(言及)된 내용(內容)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개념(槪念).
트라우마의 정의(正義)가 대개(大槪) 한 사건(事件), 특정(特定) 사물(事物) 등(等)을 매개(媒介)로 하여 마음의 공포(恐怖)를 불러일으키는 상황(狀況)을 가리키는 편(便)이지만 특정(特定) 시절(時節) 자체(自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 속의 분노(憤怒), 지우고 싶은 기피(忌避) 본능(本能)을 유발(誘發)하는 등(等) 지속적(持續的)인 심적(心的) 고통(苦痛) 또한 트라우마의 한 갈래가 될 수도 있다.
두드러지는 특징(特徵)은 자신(自身)의
흑역사(黑歷史)
에 대(對)한 방어(防禦) 본능(本能), 흑역사(黑歷史)를 만들게 했던 대상(對象)에 대(對)한 증오감(憎惡感)이 뒤섞여 심적(心的)으로 고통(苦痛)을 느끼고 민감(敏感)하게 반응(反應)하거나 분노(憤怒)를 표하는 것. 심(甚)하지 않은 경우(境遇)는
이불킥
이라든지 일상적(日常的)인 스트레스 수준(水準)에 그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격적(人格的)으로 삐뚤어지는 주요(主要)한 원인(原因)이 될 수 있으며 특정(特定) 대상(對象) 및 주제(主題), 상황(狀況)에 대(對)해
증오발언(憎惡發言)
을 쏟아내거나 혹은(或은) 그 증오(憎惡)가 무기력(無氣力), 무능력(無能力)했던 자신(自身)으로 향(向)하여
자기혐오(自己嫌惡)
로 발전(發展)할 수도 있다.
보통(普通) 있을 만한 예시(例示)를 든다면
학창(學窓) 시절(時節)의 따돌림, 괴롭힘
등(等)의 기억(記憶)이나 군대(軍隊)에서
관심병사(關心兵士)
로 지내던 시절(時節) 등(等) 괴롭거나 부끄러운
지우고 싶은 기억(記憶)들
이 이에 해당(該當)할 수 있다. 최근(最近)에는 다수(多數) 커뮤니티 사이에서 이런 지우고 싶은 기억(記憶)들이 떠올라 부끄러움과 분노(憤怒)로 고통(苦痛)받는 상황(狀況)을 가리켜 기억폭력(記憶暴力)을 당(當)한다고 지칭(指稱)하는 편(便)이다.
[6]
이러한 증상(症狀)이 계속(繼續) 이어지면
조울증(躁鬱症)
이나
우울증(憂鬱症)
,
강박장애(强迫障礙)
,
피해망상(被害妄想)
, 무기력증(無氣力症)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제때에 상담(相談)과 치료(治療)를 받는게 중요(重要)하다. 대다수(大多數)의 상담자(相談者)들이 나가서 활동(活動)을 해보라는 것은 운동(運動)같은 체육(體育) 활동(活動)을 하라는 의미(意味)로 실제로(實際로) 운동(運動)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완화(緩和)되는 효과(效果)도 있으며 사람이 지금(只今) 당장(當場) 하기 쉬운 활동(活動)이기도 하기에 추천(推薦)해주는 것이다.
본인(本人)의 트라우마는 가급적(可及的)이면 타인(他人)에게 설파(說破)하진 말자. 대부분(大部分) 집단(集團) 내(內) 사회(社會) 시스템은 결점(缺點)에 대(對)한 관용(寬容)이 부족(不足)하기 때문에 사람을 이용(利用)해먹기 좋은 소재(素材)로 전락(轉落)하는건 시간문제(時間問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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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美國産) 개그물(物)에서는 등장인물(登場人物)이 자신(自身)의 특정(特定)한 트라우마가 발동(發動)하면 엄지손가락을 빠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境遇)가 종종(種種)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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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을 빠는 행위(行爲)는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던 행위(行爲)의 모방(模倣)으로, 당사자(當事者)가 엄청난 심리적(心理的) 고통(苦痛)을 받아들이지 못해 심리상태(心理狀態)를 유아기(幼兒期)로 되돌려 보호(保護)받고자 하는 본능(本能)이 발현(發現)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現象)을 정신분석(精神分析)에서는 ‘퇴행(退行)’이라는 방어기제(防禦機制)로 부른다. 눈물 자체(自體)도 일종(一種)의 가벼운 수준(水準)의 퇴행(退行)으로 본다.
최악(最惡)의 경우(境遇)
가해자(加害者)가 된 피해자(被害者)
가 되거나
극단적(極端的)인 선택(選擇)
을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