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西洋) 지성계(知性界)에선 후(後)에 기독교(基督敎)라는 종교적(宗敎的) 문제(問題)와 상관(相關)없이 고대(古代) 그리스 철학(哲學)의 영향(影響)으로 물질적(物質的)인 세계(世界)와 이상적(理想的)인 세계(世界)는 구분(區分)되며 소통(疏通)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세계(世界)로 여겼기에 동양(東洋)처럼 정신적(精神的) 활동(活動)과 물리적(物理的) 세계(世界)가 연결(連結)된다는 기(氣)(氣) 내지(乃至) 천인감응(賤人感應) 같은 사상(思想)은 없었다.
따라서 영혼(靈魂)의 유무(有無)는
과학(科學)
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分野)도 아니었고, 관심(關心)이 있는 분야(分野)도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철학(哲學)을 받아들인 기독교(基督敎) 신학(神學) 관점(觀點)에 따라 영혼(靈魂)을 '정신(精神)'으로 해석(解釋)하든, 동아시아(東아시아)의 관점(觀點)에 따라 '기(基)(氣)'로 해석(解釋)하든, 이야기책(이야기冊)에서 나올 법한 오(誤)컬트적(的)인 영혼(靈魂)이든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과학(科學)은 유물론적(唯物論的)인
학문(學問)
이고, 영혼(靈魂)은 어느 쪽의 정의(定義)를 따르든 간(間)에 물질적(物質的)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卽), 영혼(靈魂)에 대(對)한 이야기는 다른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반(半)(Anti)과학적(科學的)인 것이 아니라 비(非)(Non)과학적(科學的)인 것이라고 정의(定義)되어 왔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영혼(靈魂)의 경우(境遇), 과학(科學)과 모순(矛盾)을 일으키지는 않으므로 반과학적(反科學的)이지는 않지만, 과학(科學)에서 다루는 영역(領域) 밖에 있었기에 비과학적(非科學的)이었다.
하지만
생물학(生物學)
과
심리학(心理學)
이 발달(發達)하고 인지(認知) 과학(科學)이 출현(出現)하면서 (신체(身體)와 완전히(完全히) 독립(獨立)되어 있다고 주장(主張)되는 의미(意味)인 실체(實體) 이원론(二元論)으로 한정(限定)하여) 영혼(靈魂)의 문제(問題)를 다루는 데 있어 과학(科學)의 역할(役割)이 커지게 되었다. 특히(特히)
뇌(腦)
가 인간(人間)의 의식(意識)과 밀접히(密接히) 연관(聯關)되어 있다는 근거(根據)가 곳곳에서 나타나자 '물리적(物理的) 실체(實體)와 떨어진 영혼(靈魂)이 있다는 실체(實體) 이원론(二元論)'은 위협(威脅)받기 시작(始作)했다.
60년대(年代)
에는 많은 심리(心理)
철학자(哲學者)
들이 실체(實體) 이원론(二元論)을 방어(防禦)하려고 했고 이 과정(過程)에서 훌륭한 논증(論證)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점점(漸漸) 인지(認知) 과학적(科學的) 증거(證據)가 쌓여가자 실체(實體) 이원론자(二元論者)들의 입지(立地)가 줄었다.
그리하여 현재(現在) 다수(多數)의 심리(心理) 철학자(哲學者)들을 비롯한 학계(學界)의 전문가(專門家)들은 신체(身體)와 분리(分離)된 실체(實體)로서의 영혼(靈魂)의 존재(存在)를 배제(排除)하고 있다.
[2]
심신(心身) 일원론(一元論) 측(側)에선 뇌과학적(腦科學的)으로 접근(接近)한다. 대표적(代表的)인 예(例)로 허균(許筠)
교수(敎授)
(
아주대학교(亞洲大學校)
의과대학(醫科大學) 신경학(神經學)과)는 뇌(腦)를 하나의
컴퓨터
로 비유(比喩)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진화(鎭火)
를 거치며 생존(生存)해 온 선대(先代)의 특징(特徵)들을 담은 우리의
뇌(腦)
는 이미
컴퓨터
처럼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했다. 욕망(欲望), 가치(價値) 판단(判斷), 선택(選擇), 행동(行動), 수행(遂行) 평가(評價), 학습(學習) 등(等) 뇌(腦) 안에서 작용(作用)하는 모든 현상(現象)은 이러한 프로그래밍의 결과(結果)다.
한 예(例)로 '
욕망(欲望)
'을 살펴보자.
도파민
이라는 신경(神經) 전달(傳達) 물질(物質)이
뇌(腦)
에 공급(供給)되지 않으면,
인간(人間)
은 어떤 것도 욕망(欲望)할 수 없다. 단순히(單純히) 멍한 상태(狀態)가 된다. 허균(許筠) 교수(敎授)는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
에서 열린 자신(自身)의 강연(講演)에 청중(聽衆)들이 늦은 저녁
비
가 내리는
신촌(新村)
거리를 뚫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醫科大學)
강당(講堂)에 찾아와
강의(講義)
를 듣는 것도, 도파민이 뇌(腦)에 공급(供給)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경(神經) 생리학적(生理學的)인 발견(發見)이 영혼(靈魂)의 유무(有無)를 밝히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보긴 어렵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혼(靈魂)도 육체(肉體)와 조화(調和)를 이루며 나를 이루는 한 부분(部分)이지, 뇌(腦) 내(內)에서 신경(神經) 전달(傳達) 물질(物質)이 고갈(枯渴)되든 말든 상관(相關)없이 뭐든 해낼 수 있는 전능(全能)한 어떤 것이 아니다.
또한,
조현병(調絃病)
의 예(例)를 살펴보자. 조현병(調絃病) 환자(患者)들의
뇌(腦)
는 물질적(物質的)인 손상(損傷)이나 후천적(後天的)인 요인(要因)으로 인한 기형적(畸形的) 성장(成長), 혹은(或은) 발달(發達) 저해(沮害)에 따른 도파민의 과다(過多) 분비(分泌)로 인해 항상(恒常) 메스암페타민을 복용(服用)하는 상태(狀態)가 되어 환각(幻覺)과 환시(幻視)로 인해 들어오는 정보(情報)가 왜곡(歪曲)되거나 과장(誇張)되고 폭력적(暴力的)이며 앞뒤가 맞지 않는 기괴(奇怪)한
인지도식(認知度式)
을 형성(形成)하여
살인(殺人)
같은 극단적(極端的)인 행위(行爲)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 사고(思考)할 수 있으며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는 인간(人間)이고 정수(整數)인 영혼(靈魂)이 존재(存在)한다면 심신(心身)이 분리(分離)된 것으로서 다만 뇌(腦)의 구조적(構造的) 오류(誤謬)로 인해 그 사람의 사고(思考) 체계(體系)가 완전(完全) 마비(痲痹)에 이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에 대(對)해 실제로(實際로) 영혼(靈魂)이 존재(存在)한다고 해도 영혼(靈魂)이란 것이 행동(行動)을 옮길 때에 필요(必要)한 출력(出力) 기구(機構) 즉(卽) 신체(身體) 등(等)이 고장(故障) 난다면 실제로(實際로) 행동(行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해명(解明)하려는 경우(境遇)가 있는데, 뇌(腦)가 출력(出力) 기구(機構)에 불과(不過)하다면 사고(思考)하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正常的)으로 이뤄지고 단지(但只) 행동(行動)만이 왜곡(歪曲)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 사례(事例)들은 이미 사고(思考)하는 것에 문제(問題)가 생긴다. 따라서 현재(現在) 인간(人間)이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심신(心身) 이원론(二元論)을 주장(主張)하는 부류(部類)에서도 육체(肉體)와 완전히(完全히) 분리(分離)된 정신(精神)(영혼(靈魂))을 주장(主張)하는 학자(學者)들이 크게 줄어들고,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이 매우 밀접히(密接히) 연관(聯關)되어 있다는 주장(主張)이 강(剛)해졌다. 영혼(靈魂)은 육체(肉體)를 주관(主管)하며, 육체(肉體)는 영혼(靈魂)에 영향(影響)을 준다는 것.
사실상(事實上) 이들의 주장(主張)은 이와 같다:
뇌(腦)
는 폰 노이만 방식(方式)을 초월(超越)해 스스로 경험(經驗)에 따라 그 논리(論理) 회로(回路)를 송두리째 변경(變更)하는 성장(成長)하는 생체(生體) 컴퓨터에 가까운 존재(存在)이며, 심리학적(心理學的)으로 인간(人間)이 경험(經驗)하는 세계(世界)는 모종(某種)의 이유(理由)로 뇌(腦)가 만들어 낸 것이다. 허균(許筠) 교수(敎授)는 이를 착시(錯視) 효과(效果)로 예(例)를 들었다. 아래
그림
을 보자.
이 그림에서 빨간
선
은
직선(直線)
이다. 그런데
육안(肉眼)으로 볼 때에는 두 선(線)이 굽어 보인다.
이는 주변(周邊)에 있는 다른 선(禪)의 영향(影響)을 받아 뇌(腦)가 작용(作用)한 결과(結果)다. 이처럼 뇌(腦)는 사물(事物)을 인지(認知)할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
,
코
,
입
,
귀
등(等)의 감각(感覺) 기관(機關)으로 얻은 정보(情報)를 바탕으로, 뇌(腦)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세계(世界)를 만들어 내는데
관념론(觀念論)
과 유사(類似)하다. 이것을
심신(心身) 일원론(一元論)
이(理)라 하고, 뇌과학자(腦科學者)들은 이처럼 인간(人間)의 영혼(靈魂), 자아, 자유(自由) 의지(意志),
윤리(倫理)
와
가치(價値)
등(等)의 개념(槪念)이 모두 다 실체(實體)가 아닌 환상적(幻想的) 부산물(副産物)이며, 인간(人間)의 진정(眞正)한 실체(實體)는 무의식(無意識) 깊숙한 곳에서 뇌(腦)에 의(依)해 작동(作動)되는 불확실성(不確實性)의 정보(情報) 처리(處理) 기계(機械)라고 주장(主張)한다. 이에 대(對)해선 반론(反論)이 만만치 않은데, 인지(認知)
과학자(科學者)
들과 심리(心理) 철학자(哲學者)들은 이런 주장(主張)이 정신(精神)과 신체(身體)(뇌(腦))의 결과(結果)를 너무 단순화(單純化)한다고 비판(批判)하고 정신(精神)이 단순(單純)한 신체(身體)의 반영(反映)이 아니라 좀 더 복잡(複雜)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主張)하는데 이런 입장(立場)을
이원론(二元論)
중(中)
속성(屬性) 이원론(二元論)
이라 부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물리적(物理的) 신체(身體)와 분리(分離)되어 존재(存在)하는' 영혼(靈魂)의 개념(槪念)(해당(該當) 조건(條件)이 붙여진)은 부정(否定)한다는 공통점(共通點)이 있다.
한편(한便) 인간(人間)의 정신(精神)과 의식(意識)을 물질적(物質的)으로 설명(說明)해 보려는 시도(試圖) 중(中)에 최근(最近)
양자역학(量子力學)
으로 설명(說明)해 보려는 시도(試圖)가 있었다.
로저(爐底) 펜로즈
(
스티븐 호킹
과 함께
블랙홀
연구(硏究)로 유명(有名)한 이론(理論)
물리학자(物理學者)
)와 해머로프가 주장(主張)한 Orch-or 이론(理論)(
조화(弔花) 객관(客觀) 환원(還元) 이론(理論)
이라는 이름으로
나무위키
에 등재(登載)되어 있다.)이 가장 유명(有名)하고 그 외(外)에 헨리 스탭 같은
과학자(科學者)
가 주장(主張)하는 중(中)이다. Orch-or 이론(理論)은 둘 이상(以上)의
양자(兩者)
의 상태(狀態)가 서로 연결(連結)되는 양자(量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現象)에 기초하는데,
뇌세포(腦細胞)
간(間)의 연결(連結)에서 이러한 현상(現象)이 연속적(連續的)으로 일어남으로써 지금(只今)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의식(意識)이 존재(存在)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뇌(腦)의 생화학적(生化學的) 작용(作用)이 어떻게 우리가 가진 통일(統一)된 의식(意識), 관점(觀點)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와 같은 의문(疑問)에 대답(對答)하기 위하여 양자(兩者)가 의식(意識)의 근본적(根本的) 속성(屬性)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모든
우주(宇宙)
현상(現象)의 근원(根源)이라고 보는 것이다. 관련(關聯)된 책(冊)으로 펜로즈는 이와 같은 주장(主張)을 자신(自身)의 저서(著書)인 《마음의 그림자》로 자세히(仔細히) 설명(說明)했다. 그러나 양자적(兩者的)으로 설명(說明)하기에 뇌(腦)와 뉴런은 너무 크고, 그리하여 양자적(兩者的) 효과(效果)는 거의 상쇄(相殺)되기 때문에 주류(主流) 과학계(科學界)에선 이 주장(主張)에 대(對)해 회의적(懷疑的)이다. 이 같은 비판(批判)에 다시 펜로즈와 해머로프 등(等)이 이에 대(對)한 반론(反論)을 제기(提起)하고 또 이들의 주장(主張)을 뒷받침할 만한 양자(量子) 효과(效果)
연구(硏究)
결과(結果)들이 등장(登場)하면서 여러
논쟁(論爭)
을 불러일으켰다.
한편(한便), 어느 학자(學者)는
자유(自由) 의지(意志)
에 대(對)해 논(論)할 때 거론(擧論)되는 벤자민 리벳의
실험(實驗)
이 영혼(靈魂)을 반박(反駁)한다고 주장(主張)하기도 한다. 리벳의 실험(實驗)은 대략(大略) 피험자(被驗者)에게 손을 들게 시켰는데, 피험자(被驗者)가 어느 손을 들지 결정(決定)하기 이전(以前)에 관련(關聯)된 뇌(腦) 부위(部位)에 전기(電氣)가 일어났다는 결과(結果)가 나와서 이걸 가지고 인간(人間)에게 자유(自由) 의지(意志)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對)한 논의(論議)가 활발(活潑)하다. 하지만 리벳의 실험(實驗)은 예전에 시행(施行)됐고 실제로(實際로) 디지털 시계(時計)를 사용(使用)하니 결과(結果)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 외(外)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問題點)이 있어서 리벳 실험(實驗)에 대(對)한 논의(論議)가 활발(活潑)한데, 설령(設令) 리벳 실험(實驗)이 맞다고 하더라도 어느 학자(學者)
[3]
에 따르면, 위에서 말한 심신(心身) 일원론(一元論)을 따르면 자유(自由) 의지(意志)와 관계없이(關係없이) 이 현상(現象)을 설명(說明)할 수 있다. 그리고 곧이어 이 실험(實驗)은 심신(心身) 일원론(一元論)을 지지(支持)하는 증거(證據)이며, 경우(境遇)에 따라 영혼(靈魂)을 부정(否定)하는 증거(證據)일 수 있다고 한다.
리벳 실험(實驗)의 실험(實驗)은 인정(認定)하나 그 실험(實驗) 결과(結果)의 해석(解釋) 혹은(或은) 실험(實驗) 설계(設計)는 잘못되었다고 비판(批判)하는 철학자(哲學者)들(과학(科學) 철학(哲學), 심리(心理) 철학(哲學))도 있다. 해당(該當) 실험(實驗)이 자유(自由) 의지(意志)를 증명(證明)하도록 설계(設計)되지 않았다. 혹은(或은) 설계(設計)까지도 맞지만 그 결과(結果)를 자유(自由) 의지(意志)가 없다고 해석(解釋)하긴 어렵다. 등(等)의 입장(立場)이다.
심신(心身) 이원론(二元論) 측(側)에선 가장 마지막까지 기대(期待)는 부분(部分)이 인간(人間)의 '의식(意識)(consciousness)'이다. 여기서 의식(意識)이란 전통적(傳統的)으로 인간(人間)의 고유(固有) 영역(領域)이라 여겨져 온 감정(感情)이나 느낌이라고 여겨지는 부분(部分)들을 말한다. 이런 의식(意識)의 영역(領域) 중(中) 일부(一部)는 심신(心身) 일원론(一元論)에서도 아직까지는 명확히(明確히) 설명(說明)할 수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대부분(大部分)은 인간(人間)의 뉴런의 활동(活動)과 신경(神經) 전달(傳達)의 뇌(腦) 과학(科學)으로 충분히(充分히) 설명(說明)할 수 있다. 하도 뇌(腦)가 너무 방대(厖大)해서 구체적(具體的)인 원리(原理)를 아직 파헤치고 있어서 그렇지, 어느 정도(程度) 작동(作動)하는 방식(方式)과 구조(構造)는 이미 이론(理論)들로 증명(證明)된다. 심신(心身) 일원론(一元論)이 영원히(永遠히) 의식(意識)에 대(對)해 설명(說明)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과학(科學)의 발전(發展)에 따라 언제든 주장(主張)이 뒤집어질 수 있기는 하다.
자세(仔細)한 내용(內容)은 아래 링크
예일 대학교(大學校)
철학과(哲學科) 교수(敎授)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의 동영상(動映像) 강의(講義)를 들으면 된다. 강의(講義)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교수(敎授)가 아마도
물리주의(物理主義)
자(者)인 듯하다.
물론(勿論)
영어(英語)
듣기나 읽기가 된다면...
이
링크
에서 세션 탭으로 들어가면 강의(講義) 목록(目錄)이 나온다. 특히(特히) 본문(本文)에 해당(該當)하는 내용(內容)은 4강(强) 'Introduction to Plato's Phaedo; Arguments for the Existence of the Soul, Part II'이다.
국내(國內)에서는 소화기(消火器) 내과(內科)의
정현채
교수(敎授)가 대표적(代表的)인 관련(關聯) 논의자(論議字)로 언급(言及)된다.
예시(例示)
다만, 영혼(靈魂) 에너지가 있다는
영매(靈媒)
의 주장(主張)이나 검증(檢證)되지 않은 집단(集團) 최면(催眠) 등(等)을 근거(根據)로 사후(死後) 세계(世界)를 주장(主張)한다는 점(點)을 들어 비판(批判)이 제기(提起)된다.
영혼(靈魂)의 존재(存在)를 규명(糾明)하기 위해
임사(臨死) 체험(體驗)
을
과학적(科學的)/의학적(醫學的)으로 분석(分析)하려는 시도(試圖)
들이 이어져 왔고
학술적(學術的)인 성취(成就)
들도 존재(存在)했지만, 여전히(如前히) 영혼(靈魂)이 존재(存在)한다는 결론(結論)으로 이어질 만큼 과학적(科學的)으로 확고(確固)한 가설(假說)이 존재(存在)하지 않다는 점(點)과 데이터 수집(蒐集)에 매우 큰 한계(限界)가 있는 주제(主題)의 특성상(特性上) 주류적(主流的)인 정론(正論)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4]
게다가 관련(關聯) 논의자(論議者)의
전공(專攻)
이 주제(主題)와 거리(距離)가 있는 경우(境遇)도 있으니 유명(有名) 대학(大學) 교수(敎授)라는 간판(看板) 때문에 전공(專攻)도 안 보고 그냥 과학적(科學的)인가 보다 해서는 안 되고, 영적(靈的)인 체험(體驗)이나 심지어(甚至於)는 윤회(輪廻) 주장(主張) 등(等) 현대(現代) 과학(科學)과는 완전히(完全히) 괴리(乖離)된 담론(談論)까지 등장(登場)하기 일쑤라 현대(現代) 과학계(科學界)의 반응(反應)은 부정(否定)하는 편(便).
현재(現在)의 인류(人類)가
미생물(微生物)
, 더 나아가
유기물(有機物)
에서 기원(祈願)했음을 생각한다면, 영혼(靈魂)의 존재(存在)는 과학적(科學的)으로 지지(支持)받기 매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특히(特히) "인간(人間)
만(萬)
이 영혼(靈魂)을 가진다"라는 주장(主張)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