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민주당(民主黨)의 빌뉴스 당(黨) 대표(代表)가 되었다. 1904년(年)부터 1907년(年)까지 리투아니아어(語) 신문(新聞) '빌뉴스 신보(信保)(
Vilniaus ?inios
)'의 부사장(副社長)을 맡았으며 1905년(年)에서 1906년(年)까지 주간지(週刊誌) '리투아니아 농민(農民)(
Lietuvos ?kininkas
)'을 편집(編輯)하였다.
1914년(年)
제(第)1차(次) 세계(世界) 대전(大戰)
이 발발(勃發)하자 리투아니아 구호(口號) 협회(協會) 중앙위원회의(中央委員會議) 부서기장(副書記長), 후(後)에 서기장(書記長)이 되었고 독일(獨逸) 동부전선(東部戰線) 사령관(司令官)에게 리투아니아의 자주(自主) 국가(國家)로서의 권리(權利)를 주장(主張)하는 문서(文書)를 전달(傳達)하였다. 1917년(年) '리투아니아의 메아리(
Lietuvos aidas
)'라는 신문(新聞)을 발행(發行)하여 리투아니아의 독립의지(獨立意志)를 고취(鼓吹)하였다.
1917년(年) 러시아 제국(帝國)의 패색(敗色)이 짙어지고
혁명(革命)
으로 혼란(混亂)한 상황(狀況) 속에서 1917년(年) 9월(月) 18일(日)부터 22일(日)까지 열린 빌뉴스 국가(國家) 평의회(評議會)에 참석(參席)했는데 1919년(年)까지 의장직(議長職)을 맡았다. 1918년(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條約)
으로
괴뢰(傀儡) 리투아니아 왕국(王國)
이 성립(成立)되는 동안 그는 독일(獨逸), 스칸디나비아 국가(國家)들을 돌며 리투아니아 독립(獨立)의 필요성(必要性)을 역설(力說)했고 1919년(年)
독일(獨逸) 제국(帝國)이 몰락(沒落)하자
귀국(歸國)해 리투아니아 국가평의회(國家評議會)에서 초대(初代) 대통령(大統領)으로 선출(選出)되어
리투아니아 독립(獨立) 전쟁(戰爭)
동안 대통령(大統領)을 지내고
알렉산드라스 스툴긴스키스
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