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러한 아키하바라도(度) 2020년(年) 이후(以後)로 전(全) 세계(世界)를 강타(强打)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感染症)-19
의 여파(餘波)로 인해, 상가(商家)들이 문(門)을 닫거나 휴업(休業)하는 등(等) 크게 쇠퇴(衰退)하였다.
사실(事實) 코로나 이전(以前)부터도 오타쿠 성지(聖地)로서의 아키하바라가 변질(變質)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본(日本)의 오타쿠들이 의외로(意外로) 많았고, 그 이유(理由)와 시점(時點)에 대(對)해서 주로(主로) 나이와 세대(世代)에 따라 의견(意見)의 차이(差異)가 있었을 뿐이다. 이르게는
2000년대(年代) 초(初)
(구체적(具體的)으론
아키하바라역(驛)
앞에 있었던 농구장(籠球場)이 폐장(閉場)된 2001년(年))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의 조짐(兆朕)이 보이며 코어한(韓) 오타쿠 문화(文化)의 본질(本質)을 잃었다는,
좋았던 옛날 편향(偏向)
에 가까운 극단적(極端的)인 의견(意見)도 존재(存在)했으며,
아키하바라 무차별(無差別) 살상사건(殺傷事件)
이 일어난
2008년(年)
에 사회적(社會的) 인식(認識) 악화(惡化)와 더불어 무리(無理)한 양지화로 인해 변질(變質)되었다는 사람도 있으며, 늦게는 2010년대(年代) 중반(中盤)까지는 그래도
모에
문화(文化)의 최전선(最前線)으로서 제 역할(役割)을 했다가
2015년(年)
5월(月), 아키하바라의 오타쿠 문화(文化)를 상징(象徵)하는
디지캐럿
간판(看板)이
철거(撤去)
되었을 무렵부터 몰락(沒落)이 시작(始作)되었다는 의견(意見)도 있었다. 그 시점(時點)이야 어찌되었건, 2020년(年)을 기점(起點)으로 서브컬쳐 특구(特區)라는 의미(意味)의 아키하바라는 거의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진 상태(狀態)이다.
2010년대(年代) 초반(初盤)부터도 '아키하바라에 가봤자 별로(別로) 살 게 없고, 있는 것도 인터넷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公公然)하게 돌 정도(程度)였다. 이는 인터넷 거래(去來)의 발달(發達)로 인해 필연적(必然的)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현상(現象)이긴 한데, 안 그래도 인터넷과 친(親)한 오타쿠들이 인터넷 정보(情報)들을 통해 가격(價格)을 훤히 알게 된 이후(以後)로 직접(直接) 가서 사는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 것에 더해서, 제작사(製作社) 측(側)에서도 적극적(積極的)으로 직접(直接) 통신(通信) 판매(販賣)를 개시(開始)하고, 특히(特히)
메루카리
등(等)의 등장(登場)으로 중고(中古) 거래(去來)마저 훨씬 손쉽게, 더욱 저렴(低廉)한 가격(價格)으로 가능(可能)하게 되자 아키하바라의 가게들은 이미 한 차례(次例) 크게 타격(打擊)을 입었다. 업자(業者) 입장(立場)에서는 마진을 위해 당연(當然)한 것이지만, 중고(中古) 매장(賣場)은 고객(顧客)으로부터 매입(買入)할 때는 가격(價格)을 깎고 팔 때는 비싸게 판다. 공급자(供給者) → 중개자(仲介者) → 수요자(需要者) 구조(構造)를 거치며 가격(價格)이 오르는 것인데 메루카리를 통해 중개자(仲介者) 없이(혹은(或은) 훨씬 낮은 중계비용(中繼費用)을 요구(要求)하는) 중고거래(中古去來)가 가능(可能)해지자 그 타격(打擊)이 아키하바라의 중고매장(中古賣場)을 덮친 것이다.
[13]
즉(卽), 이미 이때부터 일본(日本) 현지(現地) 오타쿠들에게 아키하바라에 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반드시 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타쿠 문화(文化) 성지(聖地)인 아키하바라의 분위기(雰圍氣) 자체(自體)를 즐기거나, 행사(行事)가 있어서 가거나, 혹은(或은) 근처(近處)
애니메이트
,
게이머즈
,
소프맙
등(等)의 대형(大型) 점포(店鋪)를 방문(訪問)하는 김에 들르는 정도(程度)의 의미(意味)가 되었고, 이는 당연히(當然히) 전체적(全體的)인 매출(賣出)의 하락(下落)을 초래(招來)했다. 규모(規模)나 질(質)의 차이(差異)는 있지만, 각(各) 권역별(圈域別) 큰 도시(都市)의 중심가(中心街)마다 만화(漫畫) 상점(商店), 메이드 카페 등(等) 오타쿠 대상(對象) 점포(店鋪) 밀집(密集) 지역(地域)이 존재(存在)하기 때문에 일본(日本) 현지인(現地人)들은 굳이 아키하바라까지 가서 시설(施設)을 이용(利用)할 필요(必要)도 없다. 사실(事實) 서점(書店) 멜론북스, 중고(中古)샵 스루가야(伽倻), 메이드카페 허니허니 등(等) '아키하바라'하면 떠오르는 대형(大型) 점포(店鋪)들은 본점(本店)이 타(他) 지역(地域)에 있고 아키하바라에 진출(進出)한 경우(境遇)가 매우 많다. 순수(純粹)하게 아키하바라에서 시작(始作)해서 아키하바라에서 큰 곳은 별로(別로) 없고(토라노아나 정도(程度)), 그런만큼 아키하바라 밖에 점포(店鋪)를 내는 것도 통신판매(通信販賣)를 전개(展開)하는 것도 전혀(全혀)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아키하바라를 방문(訪問)하는 일본인(日本人) 오타쿠들이 줄자 아키하바라의 매장(賣場)들은 영업(營業) 전략(戰略)을 전환(轉換)하기 시작(始作)했는데, 바로
성지(聖地)에 방문(訪問)하려는 외국인(外國人) 라이트 오타쿠
들을 타겟으로 잡는 것, 다시 말해 관광지화(觀光地化)를 꾀하는 것이었다. "AKIBA"등(等)의 홍보(弘報) 문구(文句)를 시작(始作)으로 아키하바라를 어떤 의미(意味)에서 양지(陽地)로 끌어올려 적극적(積極的)으로 해외(海外) 관광객(觀光客)들을 유치(誘致)하였고, 거리에는
영어(英語)
와
중국어(中國語)
,
한국어(韓國語)
가 범람(汎濫)하게 된다. 그리고 관광객(觀光客)들이 몰려든 결과(結果) 점주(店主)들이 내국인(內國人)을 차별(差別)하고 외국인(外國人)을 우대(優待)하는 역차별(逆差別)이 발생(發生)했다. 이는 침체(沈滯)되는 내수(內需) 시장(市場)을 관광객(觀光客) 유치(誘致)로 매우려던
아베 신조(新潮)
정권(政權)의 정책(政策) 방향성과(方向成果) 일치(一致)하는 부분(部分)이기도 했고, 그래서 아키하바라뿐 아니라 교토 등(等) 타지(他地)의 유명(有名) 관광지(觀光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관광공해(觀光公害)라는 표현(表現)으로 비판(批判)되는 풍경(風景)이 재현(再現)되는 모습이었다. 이렇다 보니 2010년대(年代)의 아키하바라는 이미 다양한 취미(趣味)의 성지(聖地)로서의 본기능(本機能)을 많이 상실(喪失)한 채 라이트 오타쿠인(人) 해외(海外) 관광객(觀光客)들에 의(依)해 유지(維持)되었던 관광지(觀光地)라는 측면(側面)이 컸으며, 코로나19 이전(以前)까지만 해도 이는 이런저런 역효과(逆效果)는 감수(甘受)할 수 있을 정도(程度)로 성공적(成功的)인 한 수(首)가 되어서 아키하바라는 대표적(代表的)인 도쿄의 관광명소(觀光名所)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달콤한 꿀도
코로나
가 전세계(全世界)를 강타(强打)하며 팬데믹 상황(狀況)이 벌어지게 되자 독(毒)이 되어 돌아왔다. 각(各) 국가(國家)들이 입/출국(出國)에 제한(制限)을 걸고 일본(日本) 당국(當局)마저 국경(國境)을 강제적(强制的)으로 봉쇄(封鎖)하자 당연히(當然히) 외국인(外國人)들의 발길이 끊겼고, 그제서야 내국인(內國人) 대상(對象) 마케팅을 재개(再開)했지만 이미 내국인(內國人)들은 아키하바라에 가야 할 이유(理由)를 잃었으며, 이렇듯 내국인(內國人)을 등한시(等閑視)한 대가(代價)는 결국(結局) 몰락(沒落)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사실(事實) 개인(個人)이 운영(運營)하는 희귀(稀貴) 굿즈들이 모여있는 곳이나 다양한 취미(趣味) 제품(製品) 매장(賣場)들은 2010년대(年代) 들어서서 대부분(大部分) 몰락(沒落)하기 시작(始作)했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자영업자(自營業者)들도 코로나19 장기화(長期化)에 의(依)해 사실상(事實上) 한 점포(店鋪)도 남김없이 문(門)을 닫고 있으며, 심지어(甚至於) 대기업(大企業)이 운영(運營)하는 대형(大型) 점포(店鋪)들도 문(門)을 닫는 실정(實情)이다.
한편(한便) 또다른 뿌리깊은 문제(問題)로 아키하바라의 전성기(全盛期)를 이끌었던 중요(重要)한 존재(存在)들인
메이드 카페
의 질적(質的) 수준(水準) 하락(下落)이 있다. 2000년대(年代)부터 꾸준히 말이 나왔던, 서비스의 질(質)이 나빠지고 요금(料金)은 비싸지는 현상(現象)이 지속(持續)되며 메이드 카페라는 업종(業種) 자체(自體)를 몰락(沒落)시키고 있다는 분석(分析)이 있었다. 이 문제(問題) 또한 코로나-19를 만나며 심화(深化)되었는데, 이른바 컨셉 카페(줄여서 콘카페)
[14]
라 불리는 업소(業所)들이 등장(登場)해 바가지를 씌운다는 점(點)이다. 일본(日本) 당국(當局)이
카부키쵸
등지(等地)의 풍속업(風俗業) 점포(店鋪)들을 코로나19 확산(擴散)의 원인(原因)으로 지목(指目)하며 때려잡고 이와 함께 안 그래도 유흥가(遊興街) 이미지가 각인(刻印)되어 사람들이 근처(近處)에도 얼씬 않는 상황(狀況)이 되자, 이런 유흥업소(遊興業所)들이
코스프레를 해도 거부감(拒否感)이 없는 아키하바라로 피난(避難)해서
들어와 이런 '카페'를 만든 뒤 말만 메이드 카페인 풍속업소(風速業所)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아키하바라에 유흥업소(遊興業所)가 과잉(過剩) 공급(供給)되자 2020년대(年代) 이후(以後)로 거리마다 호객(呼客) 행위(行爲)를 하는 여성(女性)들이 대충 한 블록당(當) 최소(最小) 7명(名) 이상(以上)으로 도(道)를 넘어서며 통행(通行)이 불가능(不可能)할 정도(程度)에 이르렀다. 코로나 이전(以前) 메이드 카페 홍보(弘報)를 하는 메이드들은 주오도리(道理)에선 의외로(意外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理由)는 오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죽치고 서있을 수가 없었거니와 굳이 주오도리까지 나오지 않아도 될 만큼 장사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호객(呼客) 메이드들이 홍보(弘報)를 하는곳은 메인로드에서 좀 깊게 들어가야 나오는
코토부키야
근처(近處)로 한정(限定)되어 있었고 기껏해야 골목에 한두명(名) 정도(程度)였다(그나마도 메이도리밍(道理名)이나 지금(只今)은 사라진 COS-CHA같은 유명점포(有名店鋪)로부터 파견(派遣)하는 정도(程度)). 하지만 지금(只今)은
이 영상(映像)에서 보듯
[15]
주오도리(道理)를 3분(分)만 걸어도 호객(呼客) 메이드를 예닐곱명(名)은 볼 수 있을 지경(地境)이 되었다. 특히(特히) 밤이 깊어질수록 호객(呼客)꾼들은 더 늘어난다. 몇몇 콘카페 호객(呼客)꾼의 경우(境遇) 전단지(傳單紙)에 사탕(沙糖)이나 휴지(休紙) 등(等)을 끼워주기도 한다.
[16]
심지어(甚至於) 아키하바라의 오타쿠들은 여자(女子)에 대(對)해 내성(耐性)이 없다며 업소(業所)로 반(半)쯤 끌고 들어가는 호객(呼客)을 한 뒤에
카부키쵸
의 스낵바, 캬바쿠라 스타일 바가지 요금(料金)을 씌운다는 이야기도 들릴 정도(程度)로 치안(治安)까지 악화(惡化)된 상태(狀態)다. 다만 코로나 이전인 2010년대(年代) 말(末)부터 극심(極甚)해지기 시작(始作)하였고, 팬데믹이 진정(鎭靜)되면서 정점(頂點)에 이른것으로 보인다. 2022년(年) 리(리)오프닝 이후(以後)로는 아키하바라 내(內) 갸쿠
비키
(客引き)를 방지(防止)하는 자경단(自警團) 활동(活動)과 지자체인(地自體認) 지요다구에서도 호객방지(呼客防止) 조례(條例)를 제정(制定)하는등 이러한 행위(行爲)에 대(對)한 제재(制裁)가 크게 강화(强化)되었다.
정리(整理)하자면,
코로나
사태(事態)가 3년차(年次)에 접어든 2022년(年) 기준(基準)
코로나 이전(以前)의 아키하바라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아키하바라는 어쨋든 교통(交通)의 요지(要地)이므로 서브컬쳐 샵들이 사라진 빈자리에
미나토구
의 살인적(殺人的)인 땅값을 피(避)해서 온 회사(會社)들이 빈 점포(店鋪)를 계약(契約)하면서 오피스 타운의 색채(色彩)가 훨씬 강(剛)해지고 있어
[17]
, 현(現) 상황(狀況)이 1~2년(年) 이상(異常)이 더 지속(持續)된다면 지역색(地域色)이 사라지고 정말로(正말로) 서브컬쳐 특구(特區)로서의 아키하바라는 완전히(完全히)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는 의견(意見)이 보일 정도(程度)다. 심(甚)하게 말하자면, 코로나 이전(以前) 한국인(韓國人)들이 일본(日本)을 많이 방문(訪問)하던 시기(時期)인 2018~2019년(年) 중반(中盤)에 서브컬쳐를 목적(目的)으로 아키하바라를 가본 사람에겐
그 모습이 정말(正말) 마지막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程度)로 비관적(悲觀的)인 상황(狀況)이다. 그래도 일본(日本) 정부(政府)가 위드 코로나 선언(宣言)을 하며 영업시간(營業時間) 제한(制限) 및 야외(野外) 행사(行事) 금지(禁止) 조치(措置)에 대(對)한 전면(全面) 해제(解除)를 선언(宣言)하면서 희망(希望)의 불씨는 아직 남아있긴 하나, 과연(果然) 아키하바라 상인(商人)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對應)할 지가 문제(問題)다.
코로나 이후(以後) 아키하바라가 앞으로도 서브컬쳐계(界)에 그나마 기여(寄與)할 수 있는 부분(部分)이 있다면, 바로 각(各) 기업(企業)의 이벤트 플로어나 전시전(展示展), 콜라보(콜라보) 카페나
지하(地下) 아이돌
들의 라이브 하우스
[18]
,
애니송 클럽
(e.g. 클럽 MOGRA) 등(等)이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이벤트 장소(場所)
로서의 기능(機能) 정도(程度)일 것이다. 도쿄 한복판에 있는 만큼 너무 크고 비싼데다 대관(對官) 스캐줄도 빡빡하고 교통(交通) 인프라도 나쁜 빅사이트나 마쿠하리 멧세(歲) 등지(等地)에 비하면 교통(交通) 액세스가 편리(便利)하고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적어도 라이브하우스나 중소규모(中小規模) 이벤트 장소(場所)로써는 앞으로도 명맥(命脈)을 한동안 더 유지(維持)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매우 비슷한 경우(境遇)로는 한국(韓國)의
홍대(弘大)거리
가 있다. 홍대의 힙했던 인디 문화(文化)는 이미 사라졌지만, 아직도 다양한 라이브 하우스(록밴드)들이나 대형(大型) 클럽(힙합/EDM)이(李) 모여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脈絡)이다.
현재(現在) 일본(日本)에 남아있는 다양한 오타쿠 취미(趣味)의 성지(聖地)로 살아남은 곳은
나카노 브로드웨이
가 있지만, 이쪽은 아키하바라만큼의 관광적(觀光的) 메리트를 기대(期待)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경우(境遇) 초입(初入) 입장(立場)에서는 분위기(雰圍氣)가 기괴(奇怪)하거나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데다, 과거(過去)나 지금(只今)이나 하드한(限) 오타쿠들을 대상(對象)으로 하는 곳이라 어느 정도(程度) 안목(眼目)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갈 곳이 못 되는 건 여전(如前)하다. 애초(애初)에 공간(空間)이 한정(限定)된 만큼 확장(擴張)할 여지(餘地)도 없으며, 더욱이 아키하바라의 몰락(沒落)을 보고 난 후(後)여서 해외(海外)의 라이트 오타쿠들을 끌어 모으려는 것은 시도(試圖)조차 안 할 것이 자명(自明)하기에, 아키하바라의 대체(代替)제가 되기에는 매우 요원(遙遠)한 것이 현실(現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