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의 대표격(代表格)인
칼 바르트
가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자(神學者)이자 스승인 하르낙과 공개토론(公開討論)한 것을 비교(比較)하여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과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신학(神學)의 차이점(差異點)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남신학대학교(學校) 조직신학(組織神學) 김동건 교수(敎授)의 <현대신학(現代神學)의 흐름>(대한기독교서회(大韓基督敎敍懷), 2008)을 따라 하르낙의 15개(個) 질문(質問)을 4개(個)의 주제(主題)로 나누고, 이에 대(對)한 바르트의 신학(神學)을 분석(分析)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은 성서(聖書)의 진리(眞理), 계시(啓示)가 성서(聖書)의 내용(內容)과 서로 일치(一致)되지 않는 부분(部分)들이 상당(相當)하기에 역사적(歷史的) 지식(知識)과 비판적(批判的) 숙고(熟考)가 필요(必要)하다고 한다. 성서(聖書)의 오류(誤謬)에 대(對)해서는
성경(聖經)/논란(論難)
,
성서비평학(城西批評學)
항목(項目) 참조(參照). 이에 대(對)해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성서(聖書)는 오류(誤謬)가 있음에도 초월자(超越者)의 거룩한 계시(啓示)는 손상(損傷)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르트에게 성서(聖書)는 이성(理性)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聖靈)의 능력(能力)과 교회전통(敎會傳統)의 신앙(信仰)으로 이해(理解)된다. 따라서 성서비평학(聖書批評學)의 방법(方法)으로 계시(啓示)를 완전히(完全히) 이해(理解)하는 것은 가능(可能)하지 않다.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성서무오설(城西戊午說)
과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은 거부(拒否)하고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의 유산(遺産)인
성서비평학(城西批評學)
을 받아들인다. 다만 현대철학(現代哲學)과 문헌(文獻) 해석학(解析學), 언어학(言語學)을 받아들여
성서(聖書)도 인간(人間)이 쓴 책(冊)이기 때문에 해석(解釋)이 필요(必要)하나 결과적(結果的)으로 신(神)이 주도(主導)했으므로 계시는 손실(損失)되지 않는다
고 주장(主張)한다. 성서(聖書)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표현(表現)은 시인(詩人)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나무가 바람에게 인사(人事)한다"고 표현(表現)하듯, 내용(內容)과 서사(敍事)의 문제(問題)가 아니라 언어(言語) 그 너머에 있는 절대자(絶對者) 체험(體驗)이 시적(詩的), 종교적(宗敎的)으로 표현(表現)된 진리(眞理)이고 계시라는 것이다.
[5]
둘째,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은 성서(聖書) 속 인물(人物), 그리고 성서(聖書)를 읽는 인간(人間)의 체험(體驗), 설교자(說敎者)의 관점(觀點)이 각기(各其) 다르기 때문에 혼선(混線)이 빚어지며 따라서
비판적(批判的)으로 객관적(客觀的)인 기준(基準)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主張)한다.
그들에 의(依)하면 객관적(客觀的)인 이성(理性)으로 설명(說明)할 수 없는 종교적(宗敎的) 체험(體驗)은 무가치(無價値)한 개인(個人)의 환각(幻覺)이자 착각(錯覺)이다.
이에 대(對)해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두 가지로 대답(對答)한다.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신(神)에 대(對)한 인간(人間)의 체험(體驗)은 역사적(歷史的) 판단(判斷), 곧 이성(理性)에 맡겨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神) 인식(認識)이 비판적(批判的) 숙고(熟考)에 달려 있지 않다는 의미(意味)이다. 신인식은 인간(人間)의 이성(理性)으로 판단(判斷)될 수 없는 초월(超越)의 경지(境地)이다. 따라서
신(神)이 허락(許諾)한다면 비판적(批判的) 성찰(省察)없이도(度) 신(神)과 인간(人間)의 진선미(陳善美)(眞,善,美)는 결합(結合)될 수 있다. 신(神)은 그 자신(自身)을 드러냈기 때문에 인간(人間)은 신뢰(信賴)를 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人間)에게 위기(危機)이며 이를 넘어서서 진정(眞正)한 인간성(人間性)에 대(對)한 긍정(肯定)이 나타난다. 여기서 바르트의
아(亞)우프헤벤
적(敵) 신학(神學)이 두드러지는데, 간단히(簡單히) 말해서 바르트는 신(神)과 인간(人間) 사이에는 질적(質的)인 차이(差異)가 있음을 강조(强調)한 것이다.
신(新)
은
인간(人間)
에게
다가와 경험(經驗)을 선물(膳物)하지만
인간(人間)은
질적(質的)으로 전혀(全혀) 다른 존재(存在)
를 이해(理解)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人間)에게 이 경험(經驗)은
오해(誤解), 갈등(葛藤), 배신위기(背信危機)
로 나타나고,
신(神)과 인간(人間)의 단절(斷絶)이 나타난다.
이
단절(斷絶)
을 신은
넘어섬으로
인간(人間)
에게 다가오고, 비로소
긍정(肯定)
이 다가온다. 정확히(正確히)
정반합(正反合)
의 구조(構造)이다.
다른 한편(한便), 바르트는 매우 단순(單純)하게 대답(對答)한다.
"그분은 모든 이성(理性)보다 더 높다"
[6]
셋째,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은 신(神)과 인간(人間)의 대립(對立)을 지양(止揚)하고 신(神)의 사랑과 인간(人間)의 이웃 사랑을 결합(結合)해야 한다고 주장(主張)한다. 이렇게 보면 매우 추상적(抽象的)으로 들릴 수 있으나 하르낙의 입장(立場)에서의 요지(要旨)는
세계역사(世界歷史)의 진보(進步)는 신(神)의 뜻이다
는 의미(意味)이다. 간단히(簡單히) 말해 세상학문(世上學問)과 신학(神學) 사이의 상관관계(相關關係)를 옹호(擁護)하는 것이다. 이 옹호(擁護)는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 본연(本然)의 순수(純粹)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가 18세기(世紀)에 당면(當面)했던 시대(時代)는 더이상(以上)의 형이상학(形而上學)과 신론(新論)에 더이상(以上) 기대(期待)를 할 수 없었다.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基督敎)의 생존(生存)을 위해 근대철학(近代哲學)이 종교(宗敎)에 제시(提示)한 의문(疑問)들을 반박(反駁)하고 그들이 그나마 감싸던 윤리(倫理), 감정(感情)과 미적 토대(土臺)를 양토(壤土)삼아 왼팔엔 경건주의(敬虔主義), 오른팔엔 낭만주의(浪漫主義)를 업고 세상학문(世上學問)이 미처 전달(傳達)하지 못하는 분야(分野)를 종교(宗敎)가 전달(傳達)할 수 있다고 변증(辨證)하였다. 그리고 시대(時代)의 흐름과 요청(要請)에 따라 신학(神學) 강의안(講義案)에 문헌비평(文獻批評), 역사비평(歷史批評)을 넣은 것이다. 칼 바르트도 슐라이어마허를 맹렬히(猛烈히) 비판(批判)했지만 평생(平生)을 연구(硏究)하면서 그가 맞닥뜨렸던 현실(現實)과 그의 대처(對處)를 옹호(擁護)하기도 했다. 하르낙에 의(依)하면 진화론(進化論), 자연과학(自然科學)의 발달(發達), 산업혁명(産業革命), 계몽주의(啓蒙主義)의 풍토(風土)가 식민주의(植民主義)와 제국주의(帝國主義) 사관(史觀)을 형성(形成)하도록 이끌었으며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도(神學徒) 계몽주의(啓蒙主義)의 시각(視角)에 동의(同意)하였음을 여기서 발견(發見)할 수 있다. 바르트는 단언(斷言)한다.
신(神)과 인간(人間)의 사랑은 도저히(到底히) 나란히 놓을 수 없다. 신(神)과 인간(人間)을 나란히 놓으려 는 것이 바로 신(神)과 인간(人間)이 대립관계(對立關係)임을 보여준다
칼 바르트가 지적(指摘)한 것은 신학(神學)을 맹렬히(猛烈히) 공격(攻擊)했던 지성인(知性人)이라고 하는 인간(人間)들, 학문(學問)들이 한참뒤에 도리어 종교전쟁(宗敎戰爭) 보다도 더욱 잔혹(殘酷)하고 과학적(科學的)으로 세계대전(世界大戰)을 저지른 야만적(野蠻的) 행위(行爲)이다. 바르트는 1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에서 유럽의 관념론(觀念論)과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의 철저(徹底)한 붕괴(崩壞)를 보았다. 바르트는 신학(神學)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榮光)을 말할 것인가, 인간(人間)의 종교적(宗敎的) 도덕적(道德的) 가능성(可能性)에 대(對)하여 말할 것인가의 문제(問題)를 모순적(矛盾的) 양자택일(兩者擇一)로 보았다. 이러한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의 확언(確言)은 이후(以後)
세속학문(世俗學問)들
의
극단적(極端的)인 변화(變化)
를 통해서
사실(事實)임이
입증(立證)되었다.
넷째,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은 역사적(歷史的) 연구(硏究)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리스도는 몽상적(夢想的)인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음을 경고(警告)한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적(歷史的) 예수
세미나, 고대근동지역(古代近洞地域) 발굴(發掘) 등(等)을 통해 실제(實際) 역사(歷史)와 성서신화(聖書神話)를 구분(區分)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바르트는 계시(啓示)에 의(依)한 그리스도 인식(認識) 외(外)에는 그리스도에 도달(到達)할 수 없다고 주장(主張)한다. 이 말은 결코(決코) 육체(肉體)를 입고 이성(理性)으로 사고(思考)하는 인간(人間)은 그리스도를 완전히(完全히) 알 수 없으며 오로지 미래(未來), 계시(啓示), 종말(終末)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신정통주의(神正統主義)의 대표자(代表者)인 칼 바르트는
그래도 성경(聖經)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주장(主張)하면서,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자(神學者)들이 부정(否定)하던 (구(舊))정통주의(正統主義)의 죄(罪), 심판(審判), 죽음, 십자가(十字架), 속죄(贖罪), 부활(復活) 등등(等等)에 대(對)한 개념(槪念)을 다시 인정(認定)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대(對)해서 (구(舊))정통주의자(正統主義者)들을 교조적(敎條的)으로 답습(踏襲)한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實存主義), 신(新) 죽음의 신학(神學) 등(等)으로 기존(旣存) (구(舊))정통주의(正統主義)에서 찾아내지 못한 또 다른 의미(意味)를 부여(附與)했다.
즉(卽)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宗敎) 개혁자(改革者)들의 (구(舊))정통주의(正統主義)를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계승(繼承)하고 발전시켜 등장(登場)한, 자유주의(自由主義)에 대(對)한
안티테제
를 자칭(自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