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年) 5월(月)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
내(內)
민정계(系)
의 대통령(大統領) 후보(候補)였던
이종찬(李鍾贊)
이
민주계(系)
의
김영삼(金永三)
과의 대통령(大統領) 후보(候補) 경선(競選)에서 패배(敗北)한 후(後) 자신(自身)을 지지(支持)하는
김현욱
,
박철언
,
이영일(李榮一)
,
김용환
,
장경우(張慶宇)
,
오유방
등(等)과 함께 1992년(年) 11월(月) 창당(創黨)했다.
창당(創黨) 이전(以前)부터
통일국민당
과의
합당(合黨)이 논의(論議)되고 있었으며
, 합당(合黨)이 여의(如意)치 않자 독자(獨自) 창당(創黨)하여
제(第)14대(代)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
후보(候補)로 이종찬을 추대(推戴)하였으나,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종찬(李鍾贊)의 지지율(支持率)에
박철언
,
김용환
등(等)의 일부(一部) 의원(議員)들이 통일국민당(統一國民黨)으로 옮겨가고 결국(結局) 대선(大選) 직전(直前) 통일국민당(統一國民黨)과의 합당(合黨)을 선언(宣言)한다. 그러나
정주영(鄭周永)
이 대선(大選)에서 패(敗)하면서 통일국민당(統一國民黨)과의 합당(合黨)은 결국(結局)
무산(霧散)되었다.
1995년(年) 3월(月)
민주당(民主黨)
과 합당(合黨)했으며, 몇몇 인사(人士)들은
자유민주연합(自由民主聯合)
으로 갔다. 몇 달 뒤
새정치국민회의
가 출범(出帆)하자 일부(一部)는 잔류(殘留)해
통합(統合)민주당
소속(所屬)이 되었는데, 대표적(代表的)으로
1995년(年) 지방선거(地方選擧)
에서 민주당 후보(候補)로 경기도지사(京畿道知事)에 출마(出馬)했던 장경우(張慶宇).
[1]
새한국당의 대표(代表)였던 이종찬은 1998년(年) 대통령직인수위원장(大統領職引受委員長)을 거쳐
국민(國民)의 정부(政府)
출범(出帆) 때
국가안전기획부(國家安全企劃部)
장(張)에 임명(任命)됐고 1999년(年) 개편(改編)에 따라
국가정보원(國家情報院)
장(張)으로 재임(在任)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