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굉장히(宏壯히) 좋은 편(便)인데, 여기서 머리가 좋다는 말은 문어(文魚)의 뇌(腦)가 굉장히(宏壯히) 높은 수준(水準)으로 발달(發達)해 있다는 의미(意味)이다. 과학자(科學者)들의 연구(硏究) 결과(結果)에 따르면 경험(經驗)을 통한 학습(學習) 능력(能力)이 있으며, 단기기억(短期記憶)과 장기기억(長期記憶)이 있다고 한다. 또한 문어(文語)의
게놈
은 인간(人間)만큼이나 크며 신경세포(神經細胞)의 발달(發達)과 상호조절(相互調節)을 관장(管掌)하는 유전자(遺傳子)의 숫자(數字)는 포유류(哺乳類)의 두 배(倍)에 달(達)하고 단백질(蛋白質)코팅 유전자(遺傳子)는 사람보다 많으며 어지간한 포유류(哺乳類)를 능가(凌駕)하는 지능(知能)을 가진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문어(文魚)는 뇌(腦)뿐만 아니라 다리도 사고(思考)하는 기능(機能)이 있다. 과학자(科學者)들이 실험(實驗)한 결과(結果)에 따르면 헤엄치거나, 포식(捕食)과 같은 행동(行動)은 뇌(腦)가 직접(直接) 명령(命令)을 내리지만 나머지 뻗고 구부리는 등(等)의 세세(細細)한 동작(動作)은 다리가 알아서 한다고. 심지어(甚至於)는 뇌(腦)의 명령(命令)없이 미각(味覺), 촉각활동(觸角活動)도 한다. 이 덕분(德分)에 도망가기 편(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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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문어(文魚)의 다리에는 문어(文魚)의 뇌(腦)에 분포(分布)된
뉴런
의 거의 2배(倍)의 수효(數爻)를 가진 뉴런이 분포(分布)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어(文魚)를 사육(飼育)하면 문어(文魚)는 미각(味覺)(빨판을 통한 감각(感覺)), 촉각(觸覺), 시각(視角)을 종합(綜合)하여 개개인(個個人)의 사람을 구별(區別)할 줄 안다. 문어(文魚)를 사육(飼育)하는 아쿠아리움이나 사육사(飼育師)의 경험(經驗)에 따르면, 문어(文魚)는 각기(各其) 확실(確實)한 '성격(性格)'이 있으며, 수줍음, 장난기(장난氣), 흥미(興味) 등(等)이 모두 제각각(제各各)이다. 문어(文魚)가 한 번(番)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접근(接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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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名)이 무작위(無作爲)로 서 있어도 귀신(鬼神)같이 그 사람을 알아채고 그 사람에게 정확(正確)하게 물을 뿜어 맞추기도 한다. 반대(反對)로 문어(文魚)가 사람에 지대(至大)한 관심(關心)을 보일 때는, 배가 고플 법한 시기(時期)에 먹이를 제공(提供)해도 먹이에 관심(關心)조차 주지 않을 때도 있다. 성체(聖體) 문어(文魚)의 경우(境遇) 경험(經驗)에 근거(根據)하여 무척 어려운 의사소통(意思疏通)도 종종(種種) 해내는데 이를테면 먹이를 숨겨놓고 손가락으로 위치(位置)를 가리키면 그 의미(意味)를 알아채고 먹이를 찾으러 간다. 의외로(意外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무슨 의미(意味)인지 간파(看破)하려면 무척 높은 지능(知能)을 요구(要求)한다는 점(點)을 고려(考慮)할 때 문어(文魚)의 사고력(思考力)이 대단히 높음을 간접적(間接的)으로 확인(確認)할 수 있다.
아쿠아리움에서 대형(大型) 문어(文魚)를 사육(飼育)하기란 이러한 높은 지능(知能)과 유연(柔軟)한 몸 때문에 난이도(難易度)가 높다. 어지간한 생물(生物)은 먹잇감인데다가, 자칫 맘에 안들면 좁은 구석에 숨어 전시생물(展示生物)로서 가치(價値)가 없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자신(自身)의 수조(水槽)에 가만히 있지 않고, 옆 수조(水槽)에 뭔가 입맛을 돋울 만한 별밋거리라도 있으면 몰래 오밤중(午밤中)에 넘어가 잡아먹어놓고는 아침에 천연덕스럽게 제(第) 수조(水槽)로 돌아오기도 한다. 호기심(好奇心)이 무척 높고 문제(問題) 해결(解決) 능력(能力)이 뛰어나, 자신(自身)이 통과(通過)할 수 있는 2~3cm 틈만 있으면 몰래 탈출(脫出)하거나 다른 수조(水槽)에 침범(侵犯)하거나, 혹은(或은) 배수(排水) 관(棺)에 몸이 끼어 물이 넘치는 등(等) 문제(問題)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문어(文魚) 수조(收租)의 틈은 정말(正말) 잘 관리(管理)해야 한다. 뉴질랜드의 수족관(水族館) 두 곳은 문어(文魚) 사육(飼育)을 포기(抛棄)하고 바다로 돌려보냈는데, 문어(文魚)들이 전구(電球)에 물을 뿜어 고장(故障)내는 놀이를 배우는 바람에 전기(電氣) 고장(故障)이 너무 자주 발생(發生)해 수리비(修理費)를 감당(堪當)하기 어려울 정도(程度)였다고 한다.
문어(文魚)의 피부(皮膚) 변화(變化)는 보호색(保護色) 내지(乃至)는 위장(僞裝)의 역할(役割)을 하거나, 싸움이나 짝짓기 시(詩)의 자기(自己) 과시(誇示)의 역할(役割)을 하는데 그 변화(變化) 속도(速度)가 굉장히(宏壯히) 빠르고 정확(正確)하다. 특히(特히) 보호색(保護色)이 그러한데, 자신(自身)이 있는 바닥의 색(色)/모양(模樣) 등(等)의 패턴을 정확(正確)하게 인지(認知)하고 그대로 자신(自身)의 색(色)을 바꾼다. 이러한 신속(迅速)하고 정확(正確)한 변화(變化)를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성능(性能)의 뇌(腦)가 필요(必要)하다. 아직도 문어(文魚)의 피부색(皮膚色) 변환구조(變換構造)는 완벽(完璧)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피부(皮膚) 조직(組織)이 어떻게 바뀌는지 메카니즘 정도(程度)는 밝혀냈지만, 그토록 색상(色相)을 빠르고 정확(正確)하게 바꾸는 문어(文魚)의 지능(知能)과 그에 연동한 작동방식(作動方式) 등(等)은 정확(正確)하게 모른다.
흉내문어(文魚)
의 경우(境遇), 주변(周邊)과 색깔(色깔)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부족(不足)해서 다른 동물(動物)의 모습을 흉내낼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特히) 상대(相對) 동물(動物)이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動物)의 모양(模樣)을 골라서 의태(疑殆)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다만 이는 두뇌활동(頭腦活動)은 아니고, 유전자(遺傳子)에 각인(刻印)된 선천적(先天的) 특성(特性)이다.
지능(知能) 덕분(德分)에
개미
등(等)과 함께 인류(人類)가 멸망(滅亡)할 경우(境遇) 지구(地球)의 차기(次期) 지배종(支配種)으로 지목(指目)되기도 한다.
(위) 해저면(海底面)에 놓인 코코넛 조각을 들고, 두 짝을 찾아 은신처(隱身處)를 만드는, 일명(一名)
코코넛 문어(文魚)
(Amphioctopus marginatus)의 영상(映像).
코코넛 문어(文魚)의 생태(生態) 연구(硏究) 도중(途中), 이 문어(文魚)가 몸을 숨기기 위해
코코넛
껍질을 짝을 맞춰 찾아내서 들고 도망가서 합친 뒤에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 영상(映像)으로 담겨져 공개(公開)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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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문어(文魚)가 도구(道具) 사용(使用)이 가능(可能)하다는 주장(主張)이 제시(提示)됐다. 무척추동물(無脊椎動物)에서 도구(道具) 사용(使用)의 예(例)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학계(學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연(果然) 코코넛으로 피난처(避難處)를 들고다니며 만드는 것이 '도구(道具) 사용(使用)'의 예인가는 논란(論難)의 여지(餘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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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코코넛 뿐만 아니라 자신(自身)의 피신처(避身處)를 만들기 위해 주변(周邊)의 돌을 이용(利用)하여 기지(基地)를 구축(構築)하거나 방호벽(防護壁)을 만들며 납작한 돌이나 조개껍질을 방패(防牌)처럼 사용(使用)하는 모습은 세부종(細部種)에 상관(相關)없이 문어(文魚) 대부분(大部分)에게서 발견(發見)되는 행동(行動)이다.
먹이를 병(甁)에 넣어두고 뚜껑을 씌워놔도 그걸 따버린다. 심지어(甚至於) 먹이활동(活動)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물고기를 놀래켜서 흩어지게 만들고 지켜보거나 수조(水槽)에서 키우는 문어(文魚)가 빈 병(甁)을 물에 띄워놓고 놀이행동(行動)을 보인다는 사례(事例)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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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문어(文魚)
(담요문어(毯요文魚))는
고깔해파리
의 독에 면역(免疫)이 있어서 새끼 때 고깔해파리를 잡아먹고 그 독(獨) 있는 촉수(觸手)를 들고다니면서 포식자(捕食者)들에게서 자기(自己) 보호용(保護用)으로 써먹는다. 성체(成體)가 되면 고깔해파리의 촉수(觸手)를 버린다. 하지만 성체(聖體)는 이름 그대로 몸을 담요(毯요)처럼 펼칠 수 있어 포식자(捕食者)들이 놀라서 도망(逃亡)간다.
(위) 8개(個) 다리 중(中) 하나를 길게 뻗어서 새우 뒤쪽으로 보내 등을 툭 건드리는 문어(文魚). 깜짝 놀란
새우
가 앞으로 뛰쳐나가는 걸 잡아서 사냥하는 것이 교활(狡猾)하게 보일 지경(地境)이다.
스폰지
에서도 문어(文魚)가 머리가 좋다면서 영상(映像)으로 여러 실험(實驗) 사례(事例)를 보여준 바 있다. 돌려야지 열리는 병(甁)에 산 먹이를 넣어서 문어(文魚)에게 주자 문어(文魚)는 처음에는 부수려고 몇번(番) 쳤으나, 멈추고 얌전히 병(病)을 이러저리 관찰(觀察)했다. 2분(分)쯤 지나자 문어(文魚)는 알아서 병(病)을 돌려서 아무렇지 않게 먹이를 잡아먹었다. 다른 영상(映像)에선 역시(亦是) 빙빙 돌려서 여는 큰 병(甁)에 문어(文魚)를 집어넣었는데 거기 문어(文魚)도 몇분(分) 정도(程度) 생각하다가 병(病)을 돌려서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앗! 시리즈에서도 문어(文魚)가 머리가 좋은 걸 실험(實驗) 사례(事例)로 소개(紹介)한 바 있다. 어느 동물학자(動物學者)는 문어(文語)를 가두고 줄을 당겨야지 유리문(琉璃門)이 열리고 살아있는 먹이가 나오게 장치(裝置)를 설치(設置)했다. 문어(文魚)는 유리문(琉璃門)으로 보이는 먹이를 잡으려다가 못 잡았다. 한참 동안을 둘러보더니만 문(門)을 여는 끈을 둘러보다가 문(門)이 열리자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걸로 문(門)을 열어 먹이를 잡아먹은 사례(事例)까지 있다. 그런데 이 문어(文魚)는 나중에는 끈을 놔두고 가만히 있다가 둘러보던 동물학자(動物學者) 얼굴에 먹물을 명중시켰다고. 그 학자(學者)는 문어(文魚)가 날 가지고 실험(實驗)하다니 건방지다는 의미(意味)로 해석(解釋)했다 한다.
모래에서 말라 죽어가는 문어(文魚)를 물에 다시 넣어줘서 살려주니 정신(精神)을 차리고는 감사(感謝) 인사(人事)를 하려는 듯 발 위에 다리를 올린 후(後) 유유히(悠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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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
나의 문어(文魚) 선생님(先生님)
"은 해양(海洋) 다큐멘터리 찍는데 질린 해양학자(海洋學者)가 한 문어(文魚)에게 삘이 꽂혀 그 녀석을 1년(年) 가까이 되는 시간(時間)동안 계속(繼續) 관찰(觀察)하는 내용(內容)인데, 며칠동안 박사(博士)가 매일(每日) 찾아오니 처음엔 경계(警戒)하던 문어(文魚)도 나중엔 박사(博士)를 알아보고 친근(親近)하게 구는 모습을 보이다. 그런데 그 와중(渦中) 실수(失手)로 카메라의 촬영(撮影) 렌즈가 떨어지고 거기에 문어(文魚)가 놀라 서식지(棲息地)를 바꿔버리는 초유(初有)의 사태(事態)가 벌어져 박사(博士)는 상심(傷心)에 빠진 나머지 일주일(一週日) 동안 문어(文魚)의 생태(生態)를 죽어라 파헤치고 일주일(一週日) 동안 매일(每日) 바다에 들락거리며 결국(結局) 문어(文魚)의 바뀐 서식지(棲息地)를 추적(追跡)해내는데 성공(成功)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문어(文魚)는 박사(博士)를 알아보고 애교(愛嬌)를 부렸다. 박사(博士)가 잠수(潛水) 시간(時間)이 다 돼서 수면(水面)으로 올라가려는 데도 손에 휘감겨 같이 가려는 문어(文魚)의 모습이 매우 귀엽다.
유튜버 마크 로버는 자신(自身)이 키우던 애완(愛玩) 문어(文魚)를 자연(自然)으로 돌려보내기 전(前)에 야생적응훈련(野生適應訓鍊) 과정(過程)을 유튜브 영상(映像)으로 만들어 올린 적이 있는데, 해당(該當) 영상(映像)을 통해 문어(文魚)의 뛰어난 공간지각능력(空間知覺能力)과 응용력(應用力)을 쉽게 확인(確認)해볼 수 있다.
더 대단한 것은, 이토록 높은 문어(文魚)의 지능(知能)은 학습(學習)으로 얻어지는 게 아닌 순전(純全)한 진화(進化)의 산물(産物)이라는 것. 문어(文魚)는 부모(父母) 자식(子息) 세대(世代) 간(間)의 접점(接點)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基本的)으로 문어(文魚)는 무리생활(生活)을 하지 않는데다, 수컷은 교미(交尾) 후(後) 죽거나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암컷은 산란(産卵) 후(後) 수개월(數個月)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알만 품다가 죽는다. 모든 문어(文魚)는 태어나는 그 순간(瞬間)부터 홀로서야 한다. 만약(萬若) 문어(文魚)가 부모(父母)의 경험(經驗)을 전(傳)해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只今)의 문어(文魚)와는 전혀(全혀) 다른 종(種)이 탄생(誕生)했을 것이다.
높은 지능(知能)을 지닌 탓인지 해외(海外)에서
문어(文魚) 양식(樣式)을 반대(反對)하는 동물보호운동(動物保護運動)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韓國)에서는 문어(文魚)를 비롯한 두족류(族類)를 즐겨먹는 식문화(食文化)가 발달(發達)한 탓에 이에 대(對)해서는 대체적(大體的)으로 부정적(否定的)인 반응(反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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