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선의(善意) 시초(始初)는 오쿠라 재벌(財閥)
[7]
을(乙) 등 뒤에 두고 하야카와 노리츠구(區)
[8]
가 설립(設立)한 '도쿄 지하철(地下鐵)도'라는 회사(會社)였다. 하야카와 노리츠구는 야마나시 출신(出身)이었는데,
와세다대학
을 졸업(卒業)한 뒤 대학(大學) 시절(時節) 스승이었던
고토 신페이
가 총재(總裁)를 맡고 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
에 들어간다. 그 뒤 고토가
일본국유철도(日本國有鐵道)
의 전신(全身)이 되는 철도성(鐵道性)의 전신(全身)에 해당(該當)하는 철도원(鐵道院)의 총재(總裁)로 취임(就任)하자 그를 따라 철도원(鐵道員)으로 적(籍)을 옮겼다가 동향(同鄕) 출신(出身)이자
도부 철도(鐵道)
의 2대(代) 사장(社長)이었던 '철도왕(鐵道王)' 네즈 카이치로와 만나게 된다. 네즈는 하야카와의 능력(能力)을 꿰뚫어보고 그를 영입(迎入), 네즈가 보유(保有)하고 있던 여러 철도회사(鐵道會社)들의 경영(經營) 재건(再建)에서 능력(能力)을 보여줌으로서 네즈의 오른팔로 자리잡았다
[9]
. 이후(以後) 1914년(年) 유럽을 방문(訪問)하던 중(中) 런던에서 지하철(地下鐵)을 접(接)하고, 도쿄에도 지하철(地下鐵)이 필요(必要)하다고 여기게 된다.
하야(下野)카와는 귀국(歸國)한 뒤 철도원(鐵道員)이나 도쿄 시청(市廳) 등(等)에 공영(共營) 지하철(地下鐵)의 건설(建設)을 제의(提議)했으나 회의적(懷疑的)인 반응(反應)만을 얻었다. 민간(民間) 투자자(投資者)들도 마찬가지여서, 고토 등(等) 극소수(極少數)의 이해자(理解者) 외(外)에는 떨떠름한 분위기(雰圍氣)였다. 결국(結局) 그는 각종(各種) 자료(資料)를 모으며 투자자(投資者)들을 설득(說得)했고, 결국(結局) 철도원(鐵道院)에게서 철도(鐵道) 면허(免許)
[10]
를 취득(取得)하고 도쿄 지하철(地下鐵)도 주식회사(株式會社)를 설립(設立), 1925년(年)에야 첫 노선(路線)을 착공(着工)하여 1927년(年) 아사쿠사 ↔ 우에노 구간(區間)의 개통(開通)을 이뤄냈다. 이것은
아시아 최초(最初)의 지하철(地下鐵)
[11]
이며, 당연히(當然히) 일본(日本) 최초(最初)이기도 하다
[12]
.
도쿄 지하철도(地下鐵道)의 노선(路線)은 여섯 차례(次例) 연장(延長)
[13]
을 통해 우에노에서 신바시까지 이르는 노선(路線)이 되었다. 중간(中間)에
스에히로쵸
-
칸다
구간(區間)을 건설(建設)할 당시(當時) 칸다강(講)을 관통(貫通)하기 위한 하저(河底)터널을 건설(建設)하는 데 시간(時間)이 오래 걸리자, 임시역으로
만(萬)세이바시역(市域)
을 개업(開業)하기도 했다. 만(萬)세이바시역(市域)은 2년(年)을 못 채우고 칸다역(多役)의 개업(開業)과 함께 폐업(廢業)한다. 이후(以後)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에서 1938년(年)에 토라노몬 ↔ 아오야마로쿠초(超)메(現 오모테산도) 구간(區間)을 개통(開通), 이후(以後) 1939년(年) 9월(月) 16일(日)부터 시부야 ↔ 신바시까지 확장(擴張)한 지하철(地下鐵) 노선(路線)과 직결운행(直結運行)을 개시(開始), 지금(只今)의 형태(形態)로 완성(完成)되었다.
사실(事實) 도쿄 지하철도(地下鐵道)와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의 직결운행(直結運行)은 무마(撫摩)될 뻔한 상황(狀況)이 있었는데, 1935년(年) 직결운행(直結運行) 협정(協定)을 해 놓고서 1937년(年)
케이큐 전철(電鐵)
과 합작회사(合作會社) '게이힌 지하철(地下鐵)도 주식회사(株式會社)'를 설립(設立), 케이큐와의 직결운행(直結運行)을 계획(計劃)하고 이 회사(會社)에 신바시 ↔ 시나가와 간(間)의
미성선(選)
을 양도(讓渡)하기까지 한 것
[14]
. 당연히(當然히)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와의 직결(直結) 계획(計劃)은 파토날 상황(狀況)이었다. 그리고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의 경영권(經營權)을 쥔 사람이 다름 아닌
도큐 전철(電鐵)
의 실질적(實質的)인 창립자(創立者)이자, 공격적(攻擊的)인 사업(事業) 확장(擴張)으로 악명(惡名) 높던 '강도(强盜)' 고토 케이타였다. 위의 "도쿄 지하철(地下鐵)도" 노선(路線)의 기점(起點)이 도부(刀部)의 터미널역인(驛人) 아사쿠사역(役)이 된 것처럼,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 노선(路線)의 기점(起點)이 도큐의 터미널역인(驛人) 시부야역(役)이 된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었던 것.
1939년(年), 고토 케이타가 케이큐와 도쿄 지하철도(地下鐵道)의 주식(株式)을 매점(賣店)하기 시작(始作), 경영권(經營權) 쟁탈전(爭奪戰)이 벌어진다
[15]
. 이 싸움은 1년(年)이 넘게 지속(持續)되어 결국(結局) 1940년(年)에야 철도부(鐵道部)의 중재(仲裁)로 하야카와가 은퇴(隱退)하고 도쿄 지하철도(地下鐵道)의 경영권(經營權)이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에 넘어가는 대신(代身) 고토가 도쿄 지하철(地下鐵)의 임원(任員)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근데 이 직후(直後), 철도(鐵道)를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국유화(國有化)하려던 철도성(鐵道性)의 의도(意圖)가 끼어들어가는 바람에 1941년(年) 당(當)해 설립(設立)된
제도고속도교통영단(制度高速道交通營團)
에 두 회사(會社)의 노선(路線)이 면허(免許)째로 넘어가게 되었다.
[16]
결국(結局) 최후(最後)의 승자(勝者)는 철도성(鐵道性)이었고, 도쿄 고속철도(高速鐵道)의 주식(株式) 대신(代身) 전후(前後) 인플레이션으로 휴지(休紙)조각이 되어버리는 영단(營團)의 채권(債券)만 떠안게 된 고토나, 반생(半生)을 바친 도쿄 지하철도(地下鐵道)를 통째로 뜯기고 고향(故鄕)으로 내려가 곧 사망(死亡)한 하야카와나
모두 상처(傷處)만 남은 싸움이 되어버렸다
.
그 흔적(痕跡)은 지금(只今)
신바시역(驛)
환상(幻想)의 승강장(乘降場)(幻のホ?ム)으로 남아있다. 직결(直結)이 무산(霧散)되면서 두 회사(會社)가 각각(各各) 신바시역(役)을 만들었었는데, 하나의 노선(路線)으로 통일(統一)되어 하나가 필요(必要)없어진 것이다. 다만, 지하(地下)에 지었기 때문에 철거(撤去)는 못하고 평소(平素)에는 유치선, 역무(役務)·사무실(事務室) 공간(空間)으로 쓰다가 이벤트성(性)으로 가끔씩 개방(開放)한다.
도쿄 지하철(地下鐵) 중(中)에서는 유일(唯一)하게 전쟁(戰爭) 전(前)부터 운영(運營)되고 있었기 때문에,
도쿄 대공습(大攻襲)
으로 인한 폭격(爆擊)도 맞아봤다.(...)
[17]
이 노선(路線)은 지표면(地表面)에서 너무 얕은 곳에 있어서
런던 지하철(地下鐵)
과는 달리
방공호(防空壕)
용도(用途)로 사용(使用)되지는 못했다.
1953년(年),
마루노우치선(選)
의 개통(開通)을 한 해 앞두고 다른 지하철(地下鐵) 노선(路線)과 호칭(呼稱)을 구분(區分)할 필요(必要)가 생김(生김)으로서 긴자선(線)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원래(元來) 긴자선은 기껏해야 2~3량(輛) 정도(程度)의 편성(編成)밖에 다니지 않는 노선(路線)이었지만, 이후(以後) 꾸준한 확장공사(擴張工事)로 1966년(年) 6량(輛) 편성(編成)이 투입(投入) 가능(可能)하게 된다. 1968년(年)에는
미노와
방면(方面)으로의 연장(延長) 계획(計劃)이 제시(提示)되었으나, 1985년(年) 폐지(廢止)된다. 이 구간(區間)은
츠쿠바 익스프레스
가 비슷하게 지나가면서 실현(實現)된 것 같다.
1927년(年) 개통(開通) 당시(當時)부터 당시(當時) 최첨단(最尖端)의 보안장비(保安裝備)였던
ATS
를 채택(採擇)했다. 따라서 긴자선은 일본(日本) 최초(最初)로 ATS를 상용화(商用化)한 노선(路線)이기도 하다. 다만 이 때 도입(導入)한 ATS는 타자식(他子息) ATS로 지금(只今)과 다른 원리(原理)였는데, 타자식(他子息) ATS의 자세(仔細)한 원리(原理)는
영단(營團) 1000형(型) 전동차(電動車)
문서(文書) 참조(參照). 타자식(他子息) ATS는
2000형(型)
은 물론(勿論) 1984년(年)부터 도입(導入)된
01계(係)
까지 사용(使用)되다가 1993년(年) 구형(求刑) 전동차(電動車)들이 01계(係)로 전량(全量) 대차(大差)가 완료(完了)되면서, 타자식(他子息) ATS도 신(新)CS-
ATC
,
TASC
로 대체(代替)되어 사라졌다.
최근(最近) 도쿄메트로는
긴자선(選) 개통(開通) 100주년(周年)
을 맞이하는
2027년(年)
연내(年內) 완공(完工)을 목표(目標)로
대규모(大規模) 리모델링 프로젝트
를 진행(進行)하고 있고, 그 일환(一環)으로 2012년(年) 봄에
도쿄메트로 1000계(係) 전동차(電動車)
의 신형(新型) 차량(車輛)이 데뷔했다. 도색(塗色)과 외부(外部) 디자인은 개통(開通) 당시(當時) 1000계(界)의 모습을 본땄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최신형(最新型). 그 이외(以外)에도 노선(路線)의 전(前) 역사(歷史)를 전면(全面)
리모델링
할 예정(豫定)이며, 베리어(語) 프리화(火) 등(等)을 진행(進行)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설치(設置)도 2018년(年) 완료(完了)를 목표(目標)로 진행중(進行中)이다. 때문에 2017년(年) 7월(月) 현재(現在) 상대식(相對式) 승강장(乘降場)이 설치(設置)된 역(役)은 한 쪽 출구(出口)밖에 사용(使用)할 수 없다. 즉(卽), 반대편(反對便) 승강장(乘降場)으로 가려면 다시 지상(地上)으로 나간 다음 도로(道路)를 건너서 와야한다. 주의(注意)하자. 또한 몇몇 역(驛)은 공사(工事)로 인해 냉방(冷房)이 안되어 매우 덥다.
[18]
2018년(年) 현재(現在)
우에노역(驛)
과 같은 긴자선(選) 북부(北部) 역(驛)들은 리모델링이 완료(完了)된 상태(狀態)로, 리모델링 전(前)과 비교(比較)하면 열차(列車)를 이용(利用)하기에 매우 쾌적(快適)하다. 시부야 방면(方面)으로 갈수록 소규모(小規模) 역(驛)은 리모델링이 덜 된 상태(狀態)이다.
다만 6량(輛) 편성(編成)이 기본(基本)인 관계(關係)로 러시아워 시(時)에는
서울 지하철(地下鐵) 9호선(號線)
순(純)한맛 급(級)의 헬게이트를 자랑한다. 2022년(年) 8월(月) 낮 중(中) 3분(分) 20초(秒) 간격(間隔)에서 5분(分) 간격(間隔)으로 감편(減便)할 계획(計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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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시행(施行)되면 낮에도 혼잡도(混雜度)가 심각(深刻)해질 듯.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2023년(年) 코로나19 규제(規制)가 해제(解除)되며 낮에도 심각(深刻)한 혼잡도(混雜度)를 기록(記錄)하면서 가축수송(家畜輸送) 라인으로 복귀(復歸)했다. 결국(結局) 2023년(年) 4월(月) 다시 4분(分) 간격(間隔) 증차(增車)로 돌려놓으면서 그나마 나아진 상태(狀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