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事實) 이런 모든 음모론(陰謀論)의 원인(原因)은 폭파범인(爆破犯人) 김현희 본인(本人)에게도 있었는데 김현희는 철저(徹底)하게 훈련(訓鍊)받은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이 맞나 싶을 정도(程度)로 말이 오락가락하였고 행적(行跡)에도 의문(疑問)이 많았다. 앞서 언급(言及)한 폭탄(爆彈) 양(量)에 대(對)해서도 김현희의 입에서 나왔고 김현희가 증언(證言)한 사소(些少)한 개인사(個人事)는 모조리 거짓으로 밝혀졌다. 조작(操作)할 필요(必要)가 없는 부분(部分)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논란(論難)은 더욱 커졌다. 예(例)를 들어서 북한(北韓) 내(內) 주소(住所)를 평양시(平壤時) 문수구 문수동이라고 했는데 평양(平壤)에는 문수구역(文殊區域)이나 문수구, 문수동이 없었다. 부친(父親)의 직업(職業)을 앙골라 주재(駐在) 북한무역대표부(北韓貿易代表部) 수산대표(水産代表)라고 밝혔는데 이 역시(亦是) 북한(北韓)에 없는 직책(職責)이었다. 가장 압권(壓卷)이 김현희 사진조작(寫眞造作) 사건(事件)이었다. 김현희가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이라는 주장(主張)의 핵심(核心)은 당시(當時)로서는 북한(北韓)에서 찍은 사진(寫眞)에 김현희가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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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증거(證據)로 나온 것이 사진(寫眞) 3장(丈)이고 김현희는 자신(自身)이 4번(番)이라고 주장(主張)했다. 그런데 북한(北韓) 출신(出身)인 정희선이 4번(番)은 자신(自身)이고 3번(番)은 김송희라고 밝히면서 거짓이 증명(證明)되어 버렸다. 이 후(後) 이 사진(寫眞) 3가지는 변조(變造)다, 아니다, 누가 누구다 하고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후(以後) 김현희는 3번(番)으로 추정(推定)되면서 김현희가 북한(北韓)에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는 중간결론(中間結論)이 나왔다. 다만 당시(當時) 꽃을 받은 인물(人物)이 왜 이동복이었다가 장기영으로 바뀌어서 알려졌으며, 김현희는 왜 자기(自己)를 잘못 지목(指目)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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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진짜(眞짜) 저 3번째(番째)가 김현희가 맞는지에 대(對)해서는 의문(疑問)이 남는다는 결론(結論)이 나왔다.
[44]
후술(後述)하는 자신(自身)의 자서전(自敍傳) 초판(初版)에서도 출판(出版) 직후(直後)부터 위의 주소(住所) 같은 오류(誤謬)가 수십(數十)군데에서 발견(發見)되었고 이 오류(誤謬)들이 모두 수정(修正)된 재판(裁判)이 다시 나왔다. 이 자서전(自敍傳)도 소설가(小說家) 노수민이 대필(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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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라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지만 기본적(基本的)으로 김현희의 구술(口述)을 받아서 쓴 것인데 왜 이렇게 기초적인 신상명세(身上明細)부터 오류(誤謬)가 많았는지 이해(理解)할 수가 없다는 지적(指摘)이 많다. 즉(卽) 김현희는 오랜 기간(期間) 강도(强度) 높은 특수공작원(特殊工作員) 교육(敎育)을 받은 엘리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程度)로 아주 사소(些少)한 데서 허술한 측면(側面)을 너무나도 많이 드러냈다. 이와 같이 굳이 속일 필요(必要)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자신(自身)의 유년(幼年) 시절(時節) 및 가족(家族) 관계(關係)와 같은 정보(情報)의 진위성(眞僞性)에 대(對)한 의문(疑問)으로 인해 사건(事件)이 정부측(政府側)에서 꾸민 것인지 여부(與否)와는 별개(別個)로 일부(一部)에서는 김현희를 중심(中心)으로 한 사건(事件) 진상(眞相) 재규명(再糾明)을 요구(要求)하고 있는 실정(實情)이다.
이 사건(事件)을 추적(追跡)한
일본(日本)
기자(記者)를 아무런 설명(說明)도 없이 한국(韓國) 입국(入國)을 막아 버린 것도 음모론(陰謀論)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김현희가 어린 시절(時節) 화동을 했다고 했다가 논란(論難)을 일으킨 사진(寫眞)에 대(對)해서 나중에서야 실수(失手)라고 번복(飜覆)했기에 음모론(陰謀論)을 정부(政府)가 더 만들었다는 지적(指摘)이 많다. 김현희가 결혼(結婚)한 상대(相對)가 사건(事件) 당시(當時)의 수사관(搜査官)인 것과 항공기(航空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을 일으킨 게 사실(事實)이라면 왜 사형(死刑) 당(當)하지 않았냐는 것, 그리고 그 당시(當時)
땡전(땡錢)뉴스
였던 언론(言論)들이 김현희에게 묘(妙)하게 호의적(好意的)이었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決定的)으로 북한(北韓)이
간접적(間接的)으로 이 사건(事件)을 일으켰음을 시인(是認)했다
고 한다.
내용(內容)인즉슨 북한(北韓)의 리근 외무성(外務省) 미국(美國) 국장(局長)이 남한(南韓) 측(側) 관계자(關係者)와 사석(私席)에서 대화(對話) 중(中)에 "우리는 KAL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이후(以後)로 테러는 한 번(番)도 하지 않았다"고 발언(發言)했다는 것인데
잠깐. 그럼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은 본인(本人)들이 했다는 거 아닌가?
이후(以後) 2022년(年)에는 북한(北韓) 외교관(外交官) 출신(出身)인
태영호(太永浩)
의원(議員)이 북한(北韓) 외교(外交) 라인은 처음에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이 본인(本人)과 무관(無關)했다고 믿었고 그렇게 국제사회(國際社會)에 지속적(持續的)으로 항변(抗辯)했으나 어느 순간(瞬間) 윗선(윗線)에서 그만 하라는 지시(指示)를 받았다고 전(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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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參與政府)
시기(時期) "국가정보원(國家情報院) 과거(過去) 사건(事件) 진실규명(眞實糾明)을 통한 발전위원회(發展委員會)"에서 활동(活動)하였던
한홍구
교수(敎授)도 "안기부(安企部)는 사람 잡아다 겁(怯)주고 두들겨 패는 짓에서는 전문가(專門家)였을지 모르나 이런 엄청난 사건(事件)을 꾸밀 능력(能力)도 배짱도 없고, 이런 큰일을 저지르고도 20여(餘) 년(年) 동안 감쪽같이 덮어둘 만한 치밀(緻密)함 같은 것은 전혀(全혀) 갖추지 못한 조직(組織)이었다."면서 음모론(陰謀論)을 일축(一蹴)했다. 다만 당시(當時) 안기부(安企部)가 임박(臨迫)한 대선(大選)에 활용(活用)하기 위해서 수사결과(搜査結果)를 지나치게 서둘러서 발표(發表)하면서 여러 허점(虛點)이 노출(露出)되었고 이게 음모론(陰謀論)을 부채질했다고 비판(批判)하였다.
2009년(年) 시사(示唆)in 기고(寄稿)
한홍구 교수(敎授)는 2020년(年) 이 사건(事件)을 다룬 자신(自身)의 유튜브 라이브에서도 "다 사실(事實)로 확인(確認)되었다. 이 범행(犯行)은 김현희가 한게 맞다"고 재차(再次) 강조(强調)하였다.
KAL 858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거짓과 진실(眞實), 그리고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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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當時) 사건(事件) 담당(擔當) 공안검사(公安檢事)였던 이상형(以上刑) 변호사(辯護士)의 이야기에 따르면 철저(徹底)한 증거주의(證據主義) 및 논리(論理)에 입각(立脚)하여 김현희의 선고(宣告)가 이루어진 것이며 대중(大衆)에게 알려지지 않고 재판(裁判)에서만 공개(公開)된 확실(確實)한 증거(證據)들은 훨씬 많다고 주장(主張)하였다. 특히(特히) 사진(寫眞)의 경우(境遇) 문제(問題)가 있었던 건 맞지만 곧바로 제대로 된 다른 사진(寫眞)이 확보(確保)되어 실제(實際) 증거(證據) 확보(確保)에 문제(問題)가 없는데도 불구(不拘)하고 음모론(陰謀論)에서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해(理解)하기 어렵다는 반응(反應)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김현희 압송(押送) 시점(時點) 또한 대선(大選)을 하루 앞둔 것은
바레인
당국(當局)에서 압송(押送) 허가(許可)를 내줬을 때 시점(時點)이 하필(何必)이면 그때였고, 가뜩이나 어렵게 이뤄낸 허가(許可)인데 압송(押送)을 곧바로 진행(進行)하지 않았다간 기회(機會)가 사라질 수도 있다 보니 한국(韓國) 일정(日程)과는 관계(關係) 없이 가능(可能)한 대로 당장(當場) 데려오는 것이 불가피(不可避)했다고 주장(主張)하였다. 하지만 김현희를 압송(押送)해서 한국(韓國) 공항(空港)에 도착(到着)하는 장면(場面)을, 그것도 선거(選擧) 전날(前날)에 공개적(公開的)으로 생중계한 것을 볼 때 이 부분(部分)은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를 의식(意識)한 작전(作戰)이었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2019년(年) 공개(公開)한 외교문서(外交文書)
그리고 사형당(死刑當)할 김현희가 갑작스레 사면(赦免)된 이유(理由)는 '그녀(그女) 자체(自體)를 살아 있는 증거(證據)'로 남기고자 한 당시(當時) 노태우 대통령(大統領)의 판단(判斷) 때문이다. 김현희가 재판(裁判)받을 당시(當時) 이미 안기부(安企部) 측(側)에서 운동권(運動圈)을 중심(中心)으로 '김현희는 가짜(假짜)'라는 내용(內容)의 음모론(陰謀論)이 퍼지는 것을 것을 감지(感知)했으며 대통령(大統領)의 재량(裁量)으로 김현희를 사면(赦免)시켜 안기부(安企部)의 보호(保護)를 받으며 안보강연(安保講演) 등(等)의 활동(活動)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만약(萬若) 정말(正말) 안기부(安企部)가 그녀(그女)를 이용(利用)해서 조작(造作)을 하려 했다면 차라리 사형(死刑) 집행(執行)을 서둘러 영원히(永遠히) 입막음하는 것이 훨씬 더 완벽(完璧)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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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萬若) 당시(當時) 김현희가 곧바로 사형(死刑)되었다면 음모론(陰謀論)은 그녀(그女)를 희생양(犧牲羊)으로 삼았다는 식(式)으로 변형(變形)되어 퍼졌을 것이다. 오히려 이건 정말(正말) 음모론(陰謀論) 중(中)에서도 탄탄한 기초(基礎)가 되기 때문에 실체적(實體的) 진실(眞實)을 알지 못하여 미궁(迷宮)으로 빠지고 북한(北韓)의 테러라고 믿는 쪽과 안기부(安企部)의 조작(造作)이라고 믿는 쪽이 극심(極甚)한 대립(對立)을 하며 사회(社會) 혼란(混亂)만 가중(加重)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혼란(混亂) 때문에 시간(時間)이 지남에도 사건(事件)이 더더욱 입에 오르내리며 유가족(遺家族)들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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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살아 있는 증거(證據)로 남기고 싶었다면 사형(死刑)에서 무기징역(無期懲役)으로 감형(減刑)만 시켜서 평생(平生)을 감옥(監獄)에서 보내면서 죄(罪)에 대(對)한 대가(代價)는 치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음모론(陰謀論)과는 별개(別個)로 '김현희 덕(德)에 선거(選擧)에서 이겼으니 고마워서 사면(赦免)해준 것'이라고 비꼬는 의견(意見)도 상당(相當)하다. 실제(實際) 사면(赦免) 과정(過程)과 관련(關聯)된 기록(記錄)을 보면 김현희의 감형(減刑)안도 거론(擧論)되긴 했으나 수감(收監) 중(中) 심경(心境)의 변화(變化)가 생길 수 있고 관리(管理)가 어려우며 감형(減刑) 후(後) 다시 사면(赦免)하는 것은 부담(負擔)스럽다는 세 가지 이유(理由)로 사면(赦免)되었다고 한다. 교도소(矯導所)보다는 정보기관(情報機關)에서 평생(平生) 관리(管理)하는게 훨씬 확실(確實)하다는 판단(判斷)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도소(矯導所)에서 수십년간(數十年間) 수감(收監)되었던
비전향(非轉向) 장기수(長期囚)
들도 아직 남아 있던 상황(狀況)에서 대규모(大規模) 테러가 비전향(非轉向)보다 그 죄질(罪質)이 가벼웠는지는 의문(疑問)이며 더불어 비슷하게 출소(出所)한
김신조
의 경우(境遇) 사람을 죽이기 않은 게 확인(確認)되었는데 김현희가 과연(果然) 김신조 정도(程度)로 죄질(罪質)이 약(弱)했는지도 의문(疑問)이다.
참여정부(參與政府)
의 재조사(再調査)에서도
북한(北韓)의 명백(明白)한 테러
로 다시 한 번(番) 결론(結論)이 났기에 안기부(安企部) 자작극(自作劇) 혹은(或은) 미국폭(美國幅)파론 같은 음모론(陰謀論)을 믿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極少數)에 불과(不過)하다.
한겨레
에서도
기사(記事)
와 같이 김현희 자체(自體)는 진짜(眞짜)임을 전제(前提)한다.
2018년(年) 사설(社說)
에서도 폭파범(爆破犯) 김현희씨(氏)라고 정확(正確)하게 언급(言及)된다.
자주민보(自主民步)
,
미디어오늘
같은 언론(言論)에서 항공기(航空機) 테러 자체(自體)가 당시(當時) 안기부(安企部)의 소행(所行)이라는 음모론(陰謀論)이 나오긴 하나 진지(眞摯)하게 믿는 사람은 소수(少數)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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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고(無辜)한 민간인(民間人)들을 대량(大量) 살상(殺傷)한 테러범(犯)인데도 혼자 살아남아 반공투사(反共鬪士)처럼 활동(活動)하는 김현희의 행동(行動)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아래 링크된
월간조선
의 기사(記事)에서 보이듯 엄연(儼然)한 가해자(加害者)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자신(自身)이 마치 좌파(左派) 정권(政權)의 부당(不當)한 탄압(彈壓)을 받은 피해자(被害者)로 행세(行世)하면서 유가족(遺家族)들을 종북(從北)으로 모는 것에 대(對)해서는 여론(輿論)의 반감(反感)이 심(甚)하다. 언론(言論)에 나타나서 국민(國民)과 유가족(遺家族)의 어그로를 끌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진정(眞正)한 사죄(謝罪)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大部分)이다. 실제로(實際로) 사람을 그리 죽여 놓고 정권(政權)의 비호(庇護) 하(下)에 살아났으면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나 댓글이 수시로(隨時로) 나온다. 물론(勿論) 다시 말하지만 김현희가 폭파범(爆破犯)이기 때문에 김현희의 반공투사(反共鬪士) 코스프레에 대(對)한 비판(批判)이 합리적(合理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