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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편(篇) 폭파(爆破) 사건(事件)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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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航空) 사건(事件) 사고(事故) 요약표(要約票)
발생일(發生日)
유형(類型)
발생(發生) 위치(位置)
미얀마 국기(1974-2010... 버마 사회주의(社會主義) 연방(聯邦) 공화국(共和國) 근해(近海) 안다만 해역(海域) 상공(上空)
기종(機種)
운영사(運營社)
기체(機體) 등록번호(登錄番號)
출발지(出發地)
1차(次) 경유지(經由地)
2차(次) 경유지(經由地)
도착지(到着地)
탑승인원(搭乘人員)
승객(乘客): 104명(名)
승무원(乘務員): 11명(名)
사망자(死亡者)
탑승자(搭乘者) 115명(名) 전원(全員) 사망(死亡)
2012071914241971...
영화(映畫) 마유미 에 나온 폭파(爆破) 재현(再現) 장면(場面)이다. 보잉 이 촬영(撮影) 협조(協助)를 거절(拒絶)해서 에어버스 A300 기(機)가 대신(代身) 쓰였다.

1 . 개요(槪要) 2 . 사고(思考) 기체(機體) 3 . 테러 발생(發生) 전(前) 사건(事件) 경위(經緯) 4 . 사건(事件) 발생(發生) 5 . 범인(犯人) 검거(檢擧) 6 . 형사(刑事) 재판(裁判) 7 . 테러의 목적(目的) 8 . 음모론(陰謀論)
8.1 . 폭약(爆藥)의 양(量) 8.2 . 발견(發見)되지 않은 유류물(遺留物) 8.3 . 김현희의 정체(正體)에 관(關)한 음모론(陰謀論) 8.4 .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에게 일본교습(日本敎習)을 받은 김현희 8.5 . 유족(遺族)들의 반응(反應)
9 . 재수색(財數色) 요청(要請)
9.1 . 32년(年) 만의 추정동체(推定胴體) 발견(發見)
10 . 대중매체(大衆媒體)에서
10.1 . 서적(書籍)/소설(小說) 10.2 . 다큐 10.3 . 영화(映畫)/드라마 10.4 . 애니메이션/웹툰 10.5 . 그 외(外) 장르
11 . 기타 12 . 관련(關聯) 문서(文書) 13 . 둘러보기

1. 개요(槪要) [편집(編輯)]

1987년(年) 11월(月) 29일(日) 이라크 사담 국제공항(國際空港) 에서 출항(出港)한 대한항공(大韓航空) 보잉 707 [1] 여객기(旅客機)가 인도양(印度洋) 상공(上空)에서 실종(失踪) 된 사건(事件).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이라고 하면 보통(普通) 이 사건(事件)을 의미(意味)한다. [2]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 는 '북한(北韓) 지령(指令)에 의(依)한 공중폭발(空中爆發)'로 결론(結論)을 지었으며 조사(調査) 결과(結果) 북한(北韓) 정권(政權)의 지령(指令)을 받고 일본인(日本人)으로 위장(僞裝)한 북한(北韓) 특수공작원(特殊工作員) 김승일, 김현희 2인조(人組)가 액체(液體) 시한(時限) 폭탄(爆彈)으로 비행기(飛行機)를 폭파(爆破)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건(事件) 자체(自體)는 북한(北韓)의 소행(所行)으로 명백히(明白히) 결론(結論)났지만 세부적(細部的)인 의혹(疑惑)이나 떡밥 등(等)이 완전히(完全히) 풀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음모론(陰謀論) 이 돌고 있다. 심지어(甚至於) 주범(主犯)인 김현희 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인데, 그녀(그女) 역시(亦是) 모르는 내용(內容)도 있을 정도(程度)로 복잡(複雜)한 사건(事件)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책(國策) 항공사(航空社) 의 국적기(國籍機)가 공중(空中) 폭파(爆破) 테러 를 당(當)해 탑승객(搭乘客) 전원(全員)이 사망(死亡)한 항공(航空) 사건(事件) 사고(事故) 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最惡)의 참사(慘事)였음에도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 의 대응(對應)은 굉장히(宏壯히) 미온적(微溫的)이었다. 부실(不實)한 인력(人力)으로 구성(構成)된 조사단(調査團)에, 추락(墜落) 위치(位置)를 잘못 짚어 엉뚱한 곳을 수색(搜索)했으며 도중(途中)에 버마 사회주의(社會主義) 연방(聯邦) 공화국(共和國) (현(現) 미얀마 )과의 대립(對立)과 장비(裝備) 부족(不足) 등(等)을 이유(理由)로 열흘 만에 수색대(搜索隊)를 철수(撤收)했다. 이후(以後) 한동안 동체(胴體) 수색(搜索)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가 2019년(年) 에 들어 대구(大邱)MBC 의 수중(水中) 탐사(探査)에서 858편(篇)으로 추정(推定)되는 동체(胴體)가 확인(確認)되었다. # 이종인 탐사단장(探査團長) [3] 과 취재진(取材陣)들은 이것이 858편(篇)의 동체(胴體)라고 확신(確信)하고 있다 (하(河)술 '32년(年) 만의 추정동체(推定胴體) 발견(發見)' 단락(段落) 참조(參照)) .

이 때 대한민국(大韓民國)은 6월(月) 항쟁(抗爭) 의 결과(結果) 10월(月) 27일(日) 9차(次) 헌법(憲法) 개정(改正) 국민투표(國民投票) 를 실시(實施)하여 대통령(大統領) 직선제(直選制) 가 도입(導入)되었으며 이 사건(事件)이 일어난 시점(時點)은 전두환 정부(政府) 가 임기(任期)를 마칠 즈음 제(第)13대(代)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 가 치러지기 불과(不過) 보름 전(前)이었다. 이에 국가안전기획부(國家安全企劃部) 는 선거(選擧) 하루 전(前)인 12월(月) 15일(日) 오후(午後) 공작범(工作犯) 김현희 를 김포공항(金浦空港)으로 압송(押送)하고 이를 언론(言論)에 대대적(大大的)으로 중계(中繼)하는 등(等)의 안보(安保) 선전(宣傳)을 했으며 이는 김영삼(金永三) , 김대중(金大中) 의 단일화(單一化) 무산(霧散)과 함께 야권(野圈)의 대선(大選) 패인(敗因) 중(中) 하나로 작용(作用)했다.

이 때문에 일부(一部) 친북(親北) 성향(性向) 논평(論評)에 의(依)해 ' 북한(北韓) 이 항공기(航空機)를 폭파(爆破)한 것이 아니라 남한(南韓)의 조작극(造作劇)이 아니냐.'는 식(式)의 음모론(陰謀論)이 떠돌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음모론(陰謀論)은 오늘날 다수(多數)의 증거(證據)에 의(依)해 부정(否定)되고 있다. 역사(歷史)바로세우기로 전두환, 노태우를 법정(法廷)에 세웠을 때도 이 사건(事件)이 자작극(自作劇)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으며, 참여정부(參與政府) 시절(時節) 과거사위원회(過去事委員會)에서 재조사(再調査)를 시행(施行)했을 때도 북한(北韓)의 소행(所行)임을 뒤집을 만한 단서(端緖)는 발견(發見)되지 않았다. 이한영 등(等) 탈북(脫北)한 북한(北韓) 고위(高位) 인사(人士)들 역시(亦是) 이 사건(事件)이 북한(北韓)의 소행(所行)이 맞음을 밝힌 바 있다. [4] 김현희가 방송(放送)에 자주 나오는 것에 대(對)한 비판(批判)은 김현희의 태도(態度)에 대(對)한 비판(批判)일 뿐, 음모론(陰謀論)과는 전혀(全혀) 관련(關聯)이 없다. 김현희가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 출신(出身) 폭파범(爆破犯)이 아니라면 김현희의 태도(態度)에 대(對)한 비판(批判) 자체(自體)의 논거(論據)가 없어진다.

이는 국정원(國精院) 과거사(過去事) 진실위원회(眞實委員會)에서 선정(選定)한 7가지 사건(事件) [5] 중(中) 북한(北韓)과 직접(直接) 연관(聯關)되었음이 확정(確定)된 사건(事件)이기도 하다. 간첩(間諜) 이선실과 중부지역당(中部地域黨)은 '실재(實在)'

문서(文書) 내용(內容)을 요약(要約)하자면 다음 표(表)와 같다.
김현희가 폭파(爆破)했나?
O (본인진술(本人陳述) 일치(一致), 참여정부(參與政府) 시절(時節) 과거사위원회(過去事委員會) 조사결과(調査結果))
김현희는 북한(北韓) 소속(所屬) 공작원(工作員)인가?
안기부(安企部)의 폭파자작극(爆破自作劇)인가?
X (증거(證據) 없음. 극소수(極少數)의 음모론(陰謀論))
안기부(安企部)가 폭파(爆破) 계획(計劃)을 알고도 방치(放置)했는가?
X (증거(證據) 없음. 극우(極右), 극좌(極左)의 음모론(陰謀論))
사건(事件)의 진행(進行) 시계열(時系列)을 알아보려면 대구(大邱)MBC에서 정리(整理)한 페이지를 참고(參考)하는 것이 좋다 #

2. 사고(思考) 기체(機體) [편집(編輯)]

HL7406 신도장
사고(事故) 전(前)의 해당(該當) 기체(氣體)로 1984년(年) 6월(月)부터 사용(使用)되기 시작(始作)한 대한항공(大韓航空) 의 신도색(信徒色)이 적용(適用)된 상태(狀態)이다. 정확(正確)한 촬영(撮影) 날짜는 알 수 없지만 후술(後述)할 동체(胴體) 착륙(着陸) 뉴스 시점(時點)에서는 1988년(年) 서울 올림픽 홍보(弘報) 도장(圖章)이 적용(適用)되었으나 이 사진(寫眞)에서는 그 도장(圖章)이 적용(適用)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사진(寫眞)은 해당(該當) 도색(塗色)이 적용(適用)된 지 얼마 안 가 촬영(撮影)되었을 가능성(可能性)이 높다. 참고(參考)로 위 사진(寫眞)의 출처(出處)에는 촬영(撮影) 날짜가 1980년(年) 10월(月) 1일(日)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오류(誤謬)이다. 여담(餘談)으로 위 사진(寫眞)처럼 하늘색(하늘色)으로 신도색(神塗色)된 HL7406이 찍힌 사진(寫眞)은 극히(極히) 희귀(稀貴)하며 인터넷 상(上)에 알려진 것은 이 사진(寫眞) 을 포함(包含)해 단(單) 2장(章) 밖에 없다.

사고기체(思考機體)는 HL7406 이고 보잉 707 기(基)이다. 사고(事故) 당일(當日)은 1987년(年) 11월(月) 29일(日)이라 항공기(航空機) 뒷쪽에 1988년(年) 서울 올림픽 을 홍보(弘報)하는 것을 볼 수있다.(Since 1988 이라고 써있었다.)

3. 테러 발생(發生) 전(前) 사건(事件) 경위(經緯) [편집(編輯)]

북한(北韓) 은 1980년대(年代) 들어 1988 서울 올림픽 을 방해(妨害)하기 위해 여러 작전(作戰)을 실행(實行)했다. 대외적(對外的)으로는 서울-평양(平壤) 공동(共同) 올림픽을 주장(主張)하거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혼란스럽고 불안(不安)한 상황(狀況)으로는 올림픽을 열 수 없다는 논리(論理)를 내세웠다. 그리고 음지(陰地)에서는 남의 나라 국가원수(國家元首) 묘소(墓所)에 폭탄(爆彈)을 설치(設置)해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 관료(官僚)를 죽이기도 하고 [6] 외국(外國)의 테러조직(組織)을 포섭(包攝)하기도 했다 . 그런 과정(過程) 속에서 이번(이番)에는 대한민국(大韓民國) 국적사(國籍社) 항공기(航空機)를 공중폭파(空中爆破)하는 작전(作戰)을 세우게 된 것이다.

1987년(年) 11월(月) 12일(日), 김승일과 김현희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 두 명(名)은 평양(平壤) 을 떠나 소련(蘇聯) 모스크바 로 이동(移動)했고 모스크바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로 이동(移動)했다. 이후(以後) 헝가리에 주재(主宰)한 다른 북한(北韓) 요원(要員)의 집에서 6일간(日間) 머물게 되었고 11월(月) 18일(日)에 자동차(自動車)를 이용(利用)하여 오스트리아 으로 다시 이동(移動)했다. 이때 헝가리에 있었던 안내(案內) 요원(要員)은 국경(國境)을 넘으며 일본(日本) 위조여권(僞造旅券) 두 장(張)을 넘겨주었다. 오스트리아는 냉전(冷戰) 시대(時代)에 중립국(中立國) 이었기 때문에 북한(北韓) 여권(旅券)으로도 입국(入國)이 가능(可能)했지만 친미(親美) 성향(性向)이 있었기 때문에 두 공작원(工作員)은 일본(日本) 여권(旅券)을 위조(僞造)해 일본인(日本人) 행세(行世)를 한 것. 이후(以後) 빈에 소재(所在)한 호텔에 약(約) 9일(日)을 머무르는 동안 오스트리아 항공(航空) 을 이용(利用)하여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에서 바그다드 , 아부다비 를 거쳐 바레인 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購買)했다. [7] 그리고 아부다비에서 로마 로 가는 또 다른 티켓 한 장(張)을 도피용(逃避用)으로 구매(購買)한다. [8] 그리고 11월(月) 27일(日), 오스트리아로 온 다른 북한(北韓) 요원(要員)이 이들에게 액체(液體) 폭발물(爆發物)과 기폭장치(起爆裝置) 등(等)을 건네주었고 이들은 다음 날 바그다드 공항(空港)으로 떠났다. 11월(月) 28일(日), 두 공작원(工作員)은 바그다드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飛行機)에 밤 11시(時) 30분(分) 경(頃) 탑승(搭乘)했다. 이후(以後) 자신(自身)들이 앉은 7B, 7C 부근(附近)에 폭탄(爆彈)을 설치(設置)하고 테러요원(要員)들은 중간(中間) 기착지(寄着地)인 아부다비에서 내려 도피(逃避) 계획(計劃)을 세웠다. [9]

4. 사건(事件) 발생(發生) [편집(編輯)]

1987년(年) 11월(月) 29일(日) , 이라크 사담 국제공항(國際空港) 에서 이륙(離陸)한 대한항공(大韓航空) 보잉 707 기종(機種)의 KE858편(篇)(HL7406)이(李) UAE 아부다비 국제공항(國際空港) 을 거쳐 서울(김포(金浦)) 로 오기 전(前)의 마지막 중간(中間) 기착지(寄着地)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國際空港) 으로 비행(飛行)하던 도중(途中) 인도양(印度洋) 상공(上空)에서 교신(交信)이 두절(杜絶)되어 실종(失踪)되는 사건(事件)이 발생(發生)했다. 당시(當時) 바그다드에서는 99명(名)이 탑승(搭乘)했다가 15명(名)이 아부다비에서 내렸고 [10] 11명(名)이 아부다비에서 출국수속(出國手續)을 마치고 858편(篇)을 탔다.

사건(事件) 초기(初期)에는 단순(單純) 기체(氣體) 고장(故障)이나 돌풍(突風) 같은 갑작스런 기상(氣象) 악화(惡化) 가능성(可能性)이 제기(提起)되었는데 특히(特히) 이 중(中)에서 기체(氣體) 고장(故障)의 가능성(可能性)도 없지는 않았다. 사실(事實) 사고기(事故機)인 HL7406은 사건(事件) 10년(年) 전(前)인 1977년(年) 9월(月) 13일(日)에는 부산(釜山)(김해(金海)) 을 떠나 김포(金浦)로 착륙(着陸)하던 중(中) 유압(油壓) 장치(裝置)가 고장(故障)나 동체(胴體) 착륙(着陸)한 전력(前歷)이 있었으며 [11] 앞에 나온 고장의 10년(年) 후이자(後利子) 사건(事件) 약(約) 3개월(個月) 전(前)이던 1987년(年) 9월(月) 2일(日)에는 제주(濟州)를 떠나 김포(金浦)로 향(向)하던 기체(氣體)가 랜딩 기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동체(胴體) 착륙(着陸) 을 하는 등(等)의 기체(機體) 결함(缺陷)으로 인한 사고(事故) 전력(電力) [12] 이 있었고 수리(修理)한 후(後) 첫 출항(出港)하여 김포국제공항(金浦國際空港) 으로 귀국(歸國)하는 항공편(航空便)이 바로 858편(篇)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고기(事故機)의 고장(故障) 전력(前歷)은 폭파(爆破) 사건(事件) 음모론(陰謀論)의 중요(重要)한 정황(情況) 증거(證據)로 사용(使用)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境遇)에는 보통(普通) 주변(周邊) 공항(空港) 관제탑(管制塔) 이나 공용(共用) 통신망(通信網)으로 구조(救助) 요청(要請)을 하는데 당연히(當然히) 이 사건(事件)에서 조종사(操縱士)의 구조요청(構造要請)은 없었다. 결국(結局) 이 상황(狀況)에서 가장 합리적(合理的)인 판단(判斷)은 테러 에 의(依)한 공중폭발(空中爆發). 물론(勿論) TWA 800편(篇) 추락(墜落) 사고(事故) 처럼 전기(電氣) 합선(合線) 등(等)의 원인(原因)으로 기체(氣體)가 폭발(爆發)하는 현상(現象)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境遇)에는 이 사건(事件)처럼 폭탄(爆彈)이 폭발(爆發)하는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5. 범인(犯人) 검거(檢擧) [편집(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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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第)13대(代)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 전날(前날)인 12월(月) 15일(日) 에 대한항공(大韓航空) DC-10 (HL7316) 특별기(特別機) 편(篇)으로 [13] 대한민국(大韓民國) 에 도착(到着)한 김현희 .
자살(自殺) [14] 을 막기 위해 재갈 을 물리고 그 위에 테이프 를 붙여 놓은 상태(狀態)다. [15] [16]

조사(調査) 과정(過程)에서, 중간(中間) 기항지(寄港地)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國際空港) 에서 내린 일본인(日本人) 남녀(男女) 승객(乘客) 2명(名)이 출국(出國)을 시도(試圖)하다가 위조(僞造) 여권(旅券) 사용(使用)으로 검거(檢擧)되었다는 정보(情報)를 입수(入手)하였고 [17] 즉시(卽時) 이들이 검거(檢擧)되었다. [18] 검거(檢擧)된 남성(男性)의 신원(身元)은 70세(歲)의 노인(老人) 하치(下치)야 신이치(蜂谷眞 [구자체(舊自體)] 一, 본명(本名)은 김승일(金勝一)), 여성(女性)은 25세(歲)의 하치(下치)야 마유미(蜂谷眞 [구자체(舊自體)] 由美)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僞裝)하고 있었는데 검거(檢擧) 후(後) 담배갑(담배匣)에 숨겨둔 청산가리(靑酸加里) 앰풀 을 깨물어 자살(自殺)을 시도(試圖)했고 이 과정(過程)에서 하치(下치)야 신이치는 사망(死亡)했으나 하치(下치)야 마유미는 앰풀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自殺) 에 실패(失敗)했다. [21]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僞造)된 일본(日本) 여권(與圈) 을 사용(使用)했기 때문에 일본(日本) 으로 송환(送還)되어 조사(調査)를 받을 예정(豫定)이었으나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 에서 청산가리(靑酸加里) 앰풀을 깨물어 자살(自殺)하는 것은 북한(北韓) 의 수법(手法)임을 증명(證明)하여 [22] 하치(下치)야 마유미를 최대한(最大限) 빨리 한국(韓國)으로 압송(押送)할 수 있었다. 사건(事件) 수사(搜査)를 담당(擔當)한 안기부(安企部) 1988 서울 올림픽 방해(妨害)를 위한 북한(北韓)의 테러 로 결론지었고 추가(追加) 조사(調査) 결과(結果) 하치(下치)야 마유미로부터 자신(自身)의 본명(本名)은 김현희이며 북한(北韓)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對外情報調査部) 공작원(工作員) 으로서 지령(指令)을 받고 대한항공(大韓航空) 858기(機)를 폭파(爆破)했다는 자백(自白)을 받아냈다. 또한 헝가리 , 오스트리아 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篇)에 잠입(潛入)하기 위해 경유(經由)한 나라들에서 정보(情報)를 받은 결과(結果) 북한(北韓)의 중앙통신(中央通信)의 베오그라드 지부(支部)에서 김현희를 목격(目擊)한 정보(情報)도 확인(確認)했다.

시한폭탄(時限爆彈) 과 액체(液體) 폭발물(爆發物)을 승무원(乘務員)들이 발견(發見)하기 어려운 곳에 몰래 두고 중간(中間)에 내리는 수법(手法)을 사용(使用)했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이후(以後) 해당(該當) 비행기(飛行機)는 시한폭탄(時限爆彈)에 맞춰진 시간(時間)에 도달(到達)한 인도양(印度洋) 상공(上空)에서 폭파(爆破)되었다.

김현희가 자살(自殺)에 실패(失敗)하고 남한(南韓)으로 귀순(歸順)하자 김정일(金正日) 북한(北韓) 에 남아 있던 김현희의 가족(家族)들을 모두 요덕수용소(要德收容所) 보냈다. 이는 1995년(年) 성혜림 [23] 의 언니인 성혜랑 이 아들 이한영 [24] 과(課)의 전화(電話) 통화(通話)에서 얘기했던 내용(內容)이라고 한다. 당시(當時) 신문(新聞) 기사(記事) . 또한 김정일(金正日)은 자살(自殺)에 실패(失敗)하고 남한(南韓)으로 전향(轉向)한 김현희의 소식(消息)을 듣고 여자(女子)는 요물(妖物)이라는 독설(毒舌)과 함께 김현희가 속(屬)했던 대외정보조사부(對外情報調査部)(35호실(號室))에서 여성(女性) 공작원(工作員)들을 모두 방출(放出)하고 김현희를 교육(敎育)한 노동당(勞動黨) 조사부간부(調査部幹部)들까지 요덕(要德) 정치범(政治犯) 수용소(收容所)로 보냈다고 한다. 김현희의 육촌(六寸) 친척(親戚)까지 평양(平壤)에서 지방(地方)으로 추방(追放)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事件)으로 미국(美國) 북한(北韓) 테러지원국(支援局) 으로 규정(規定)했고 김현희는 사형(死刑) 판결(判決)을 받았으나 추후(追後) 음모론(陰謀論)으로 인(因)한 사회적(社會的) 혼란(混亂)을 막고자 일종(一種)의 살아있는 증거(證據)로 남겨 두려는 목적(目的),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北韓) 과 관련(關聯)된 정보(情報)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次元)에서 노태우(盧泰愚) 당시(當時) 대통령(大統領)의 재량(裁量)으로 전격(電擊) 사면(赦免)을 받았으며 이후(以後) 본인(本人)의 회고록(回顧錄)을 저술(著述)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安保) 강연(講演)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等) 안기부(安企部)(현(現) 국정원(國精院))의 보호(保護)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2013년(年) 1월(月) 15일(日)에는 MBC 에도 출연(出演)했다. 당시(當時) 방송분(放送分)의 일부(一部) . [25]

이 사건(事件) 이후(以後) 수뇌부(首腦部)에서 특전사(特戰司) , 707특임대(特任臺) 를 북한(北韓)에 침투시켜서 북한(北韓)의 핵심(核心) 표적(標的)들에 대(對)해 응징(膺懲)하는 보복작전(報復作戰)을 계획(計劃)했다. 하지만 결국(結局) 작전(作戰) 계획(計劃)이 실제로(實際로) 실시(實施)되진 못했다.

2019년(年) 공개(公開)된 외교문서(外交文書)에 따르면 북한(北韓)은 당연(當然)하다는 듯이 항공기(航空機) 폭파(爆破)를 남한(南韓)의 조작(造作)이며 당시(當時) 당(黨) 서기(書記)인 황장엽 과 루디 아른트 유럽의회(議會) 사회당(社會黨) 그룹의장(議長)의 북한(北韓) 방문(訪問) 당시(當時) 이같은 입장(立場)을 표명(表明)했다. 황장엽 당시(當時) 당서기(黨書記)는 아론트 그룹의장(議長)에게 한반도(韓半島) 분단(分斷)은 외세(外勢)에 의(依)한 것이라는 점(點)을 강조(强調)하며 주한미군(駐韓美軍) 철수(撤收) 등(等)을 통해 한반도(韓半島)를 통일(統一) 해야 한다는 주장(主張)을 펼쳤다.

그는 특히(特히) 1987년(年) 11월(月)에 발생(發生)한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과 관련(關聯)해 유럽의회(議會)가 대북(對北) 규탄(糾彈) 결의안(決議案)을 채택(採擇)한 데 대(對)한 불만(不滿)을 노골적(露骨的)으로 표출(表出)했으며 이 사건(事件)이 "생명보험금(生命保險金)을 타기 위한 남한(南韓)의 조작(造作)"이라고 주장(主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이듬해 1월(月) 중앙아프리카(中央아프리카)의 외교행사장(外交行事場)에서 오경환 당시(當時) 북한(北韓) 대사(大使)가 김승호 당시(當時) 한국(韓國) 대사(大使)에게 "남조선(南朝鮮)이 도전적(挑戰的)인 태도(態度)로 나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오늘밤 죽여버리겠다."고 폭언(暴言)을 했다는 사실(事實)도 드러났다.

산케이신문(산케이新聞) 이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을 남북(南北) 지도자(指導者)를 변태(變態) 성욕자(性慾者)로 묘사(描寫)하는 만평(萬坪)에 논란(論難)을 불러일으키자 외교(外交) 경로(經路)를 통해 편집장(編輯長) 파면(罷免)과 만화가(漫畫家)와의 계약(契約) 해지(解止), 산케이 그룹 회장(會長)의 사죄(謝罪), 사과문(謝過文) 게재(揭載) 등(等)을 요구(要求)했고 그렇지 않으면 산케이 서울 지국(支局)을 폐쇄(閉鎖)하겠다는 최후통첩(最後通牒)을 보냈다. 결국(結局) 산케이 그룹 의장(議長)이 최광수 외무부(外務部) 장관(長官)을 방문(訪問)해 사과(謝過)하면서 한국(韓國) 측(側) 요구(要求)가 관철(貫徹)됐다. #

6. 형사(刑事) 재판(裁判) [편집(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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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航路)'의 의미(意味) (땅콩회항(回航) 사건(事件) / 2015도(度)8335) · 유추해석금지(類推解釋禁止)의 원칙(原則)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2017도(度)14749) · 부작위범(不作爲犯) (보라매병원(病院) 사건(事件) / 2002도(度)995) · 부작위범(不作爲犯) (세월호 사고(事故) / 2015도(度)6809) · 정당방위(正當防衛)의 요건(要件) (김보은·김진관 사건(事件) / 92도(度)2540) · 원인(原因)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行爲) (조형기(造型機) 뺑소니 사건(事件) / 92도(度)999) · 승계적(承繼的) 공동정범(共同正犯)에서 후행자(後行者)의 귀책범위(歸責範圍) (이윤상 유괴(誘拐) 살인(殺人) 사건(事件) / 82도(度)2024) · 상관(上官)의 위법(違法)한 명령(命令)에 대(對)한 기대가능성(旗대可能性) (박종철 고문치사(拷問致死) 사건(事件) / 87도(度)2358) · 국회의원(國會議員) 면책특권(免責特權)의 한계(限界) (삼성(三星) X파일 사건(事件) / 2009도(度)14442) ·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의 전제사실(前提事實)에 대(對)한 착오(錯誤) (여우고개 사건(事件) / 86도(度)1406) · 제(第)12조(條)의 의미(意味)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 / 89도(度)1670) · 제(第)12조(條)가 적용(適用)되지 않는 경우(境遇) (동림호(號) 사건(事件) / 73도(度)1684) · 과실범(過失犯)의 공동정범(共同正犯) (성수대교(聖水大橋) 붕괴(崩壞) 사고(事故) / 97도(度)1740) · 군용물분실죄(軍用物紛失罪)의 '분실(紛失)'의 의미(意味) (백 소령(少領) 사건(事件) / 98도(度)1719) · 공선법상(共旋法上) 분리선고(分離宣告)와 상상적(想像的) 경합(競合)의 관계(關係) (신연희 공선법위반(共旋法違反) 사건(事件)) / 2018도(度)16587)
이 판결(判決)의 판시사항(判示事項) 및 판결요지(判決要旨)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大法院) 1990. 3. 27. 선고(宣告) 89도(度)1670 판결(判決)
[국가보안법위반(國家保安法違反),항공법위반(航空法違反),항공기운항안전법위반(航空機運航安全法違反)][집38(1)형(型),660;공1990.5.15.(872),1017]

【판시사항(判示事項)】
가. 성장교육과정(成長敎育課程)을 통하여 형성(形成)된 관념(觀念)으로 인하여 행위자(行爲者)의 의사결정(意思決定)이 사실상(事實上) 강제(强制)되는 경우(境遇)가 형법(刑法) 제(第)12조(條) 소정(所定)의 강요(强要)된 행위(行爲)에 포함(包含)되는지 여부(與否)(소극(小隙))

나. 공범자(共犯者)가 범죄(犯罪)의 부수적(附隨的)인 일부(一部)의 실행(實行)에만 가담(加擔)한 경우(境遇) 공동정범(共同正犯)의 성부(聖父)(적극(積極))

다. 다수(多數)의 승객(乘客)이 탑승(搭乘)한 국제민간항공기(國際民間航空機)를 폭파시킨 범인(犯人)에 대(對)한 사형선고(死刑宣告)가 무거워 부당(不當)하다는 주장(主張)을 배척(排斥)한 사례(事例)

【판결요지(判決要旨)】
가. 형법(刑法) 제(第)12조(條)에서 말하는 강요(强要)된 행위(行爲) 는 저항(抵抗)할 수 없는 폭력(暴力)이나 생명(生命), 신체(身體)에 위해(危害)를 가(加)하겠다는 협박(脅迫) 등(等) 다른 사람의 강요행위(强要行爲)에 의(依)하여 이루어진 행위(行爲)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의 성장교육과정(成長敎育課程)을 통하여 형성(形成)된 내재적(內在的)인 관념(觀念) 내지(乃至) 확신(確信)으로 인하여 행위자(行爲者) 스스로의 의사결정(意思決定)이 사실상(事實上) 강제(强制)되는 결과(結果)를 낳게 하는 경우(境遇)까지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나. 형법(刑法) 제(第)30조(條)의 "2인(人) 이상(以上)이 공동(共同)하여 죄(罪)를 범(犯)한 때"라 함은 범죄구성요건(犯罪構成要件)에 해당(該當)하는 행위(行爲)의 전부(全部) 또는 일부(一部)의 실행(實行)에 공동가공(共同加工)한 경우(境遇)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고, 수인(獸人)이 공동(共同)하여 범죄(犯罪)의 실행(實行)을 모의(謀議)하고 그 공동의사(共同意思)를 실행(實行)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모의자(謀議子) 사이에 역할(役割)에 차이(差異)가 있어 모의자(謀議子) 중(中)의 일부(一部)가 그 범죄(犯罪)의 부수적(附隨的)인 부분(部分)의 실행(實行)에만 가담(加擔)한 경우(境遇)도 이에 포함(包含)된다.

다. 피고인(被告人)이 그 성장교육과정(成長敎育課程)과 그후(後) 밀봉교육(密封敎育)에서의 사상주입(思想注入)으로 사실상(事實上) 인간(人間)도구화된 하수인(下手人)이 되었고, 귀국후(歸國後) 참회(懺悔)하고 있으며, 이 사건(事件) 진상(眞相)을 증명(證明)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생존(生存) 증인(證人)이더라도 다수(多數)의 승객(乘客), 승무원(乘務員)들이 탑승(搭乘), 운항중(運航中)인 국제민간항공기(國際民間航空機)를 이른바 "남조선(南朝鮮) 해방(解放)과 조국통일(祖國統一)"이라는 정치적(政治的) 목적달성(目的達成)을 위하여 폭파(爆破), 희생시킨 범행(犯行)의 실행(實行)에 직접(直接) 가담(加擔)하여 실질적(實質的)인 임무(任務)를 분담(分擔), 수행(遂行)하고 그로 인하여 귀국중(歸國中)이었던 다수(多數)의 해외(海外) 근로자(勤勞者)와 항공기(航空機) 승무원(乘務員) 등(等) 115명(名)의 인명(人命)이 살해(殺害)되었다면 이는 극단(極端)의 비윤리적(非倫理的) 행위(行爲)로서 국제협약(國際協約)에서도 이를 엄중(嚴重)한 형벌(刑罰)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으며, 결국(結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존립(存立), 발전(發展) 또는 기능(機能)을 침해(侵害) 내지(乃至) 위협(威脅)하기 위한 것이었음에 비추어 피고인(被告人)에게 사형(死刑)을 선고(宣告)한 제(第)1심판결(審判決)의 양형(量刑)이 너무 무거워 부당(不當)하다고 인정(認定)되지 않는다.
[뉴본史] KAL 폭파(爆破) 김현희 사형(死刑) 구형(求刑)... 그날의 법정(法廷)은? (1989.04.04.)
이 판례(判例)는 형사법상(刑事法上) 책임조각사유(責任阻却事由) 로서 강요(强要)된 행위(行爲)(형법(刑法) 제(第)12조(條))를 부정(不正)한 사례(事例)로서 의미(意味)를 가진다. 즉(卽) '어떤 사람의 성장교육과정(成長敎育課程)을 통하여 형성(形成)된 내재적(內在的)인 관념(觀念) 내지(乃至) 확신(確信)으로 인하여 행위자(行爲者) 스스로의 의사결정(意思決定)이 사실상(事實上) 강제(强制)되는 결과(結果)를 낳게 하는 경우(境遇)'까지 '방어(防禦)할 방법(方法)이 없는 협박(脅迫)'에 해당(該當)한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被告人)이 일종(一種)의 확신범(確信犯)으로서 형법(刑法) 제(第)12조(條)의 적용(適用)이 배제(排除)된다고 판단(判斷)한 것이다.

이 판례(判例)의 주문(注文)과 이유(理由) 부분(部分)에 대(對)해서는 판결문(判決文) 전문(專門)을 참조(參照) 바람. 판결문(判決文) 전문(專門)

여담(餘談)으로 이 사건(事件)을 담당(擔當)했던 검사(檢事) 중(中) 1명(名)이 황교안(黃敎安) 이었고 판결(判決)을 했던 대법관(大法官) 중(中) 1명(名)이 이회창(李會昌) 이었다.

7. 테러의 목적(目的) [편집(編輯)]

학계(學界)의 의견(意見)은 확고(確固)하다. 정설(定說)은 서울 올림픽 을 방해(妨害)하기 위한 테러라는 것이다. 당시(當時) 확증(確證)은 없었지만 사건(事件) 발생(發生) 1년(年) 전(前)인 1986년(年)에 발생(發生)한 김포국제공항(金浦國際空港) 폭탄(爆彈) 테러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을 방해(妨害)하기 위한 [26] 북한(北韓) 의 소행(所行)으로 잠정(暫定) 결론(結論)이 내려진 상황(狀況)이었고 서울 올림픽 유치(誘致) 직후(直後)부터 북한(北韓) 은 올림픽 경기(競技) 일부(一部)를 할당(割當)해 달라는 개(個)드립 을 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사건(事件) 당시(當時) KE858편(篇)에 투입(投入)된 HL7406 은 폭파(爆破) 당시(當時) 올림픽 홍보(弘報) 도장(圖章)을 하고 있었다. [27]

그리고 당시(當時) 대선(大選) 정국(政局)에서 북한(北韓) 당국(當局)이 이 테러가 민정당(民政黨) 노태우(盧泰愚) 에게 도움이 될 걸 빤히 알면서도 민주당(民主黨) 김영삼(金永三) 평민당 김대중(金大中) 의 당선(當選)을 썩 원(願)치 않았다는 증거(證據)가 되기도 한다. 만일(萬一) 대선(大選)에서 김영삼이나 김대중 두 사람 중(中) 한 명(名)이 당선(當選)될 경우(境遇)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민주화(民主化)가 급속히(急速히) 이루어지면서 북한(北韓) 당국(當局)이 기존(旣存)에 주적(主敵)으로 내걸었던 남한(南韓) 군부권력(軍部權力)이 해체(解體)될 것이고 기존(旣存)에 빨갱이 몰이를 당(當)했던 재야세력도(在野勢力度) 단일화(單一化) 국면(局面)으로 틀어지기 전(前)까지만 해도 양김(兩金)과 연대(連帶)했기 때문에 양김(兩金)이 집권(執權)하면 기존(旣存)의 대결구도(對決構圖)가 허물어지니 북한(北韓) 당국(當局)에서도 차라리 기존(旣存) 군부(軍部)가 집권(執權)하는 것이 체제(體制) 유지(維持)에 있어서 더 나았다고 판단(判斷)했다 는 얘기다. 당시(當時)에는 냉전(冷戰)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소련(蘇聯)이 한순간(한瞬間)에 망(亡)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국(美國)도 못 했던 시절(時節)이라 그런 공작(工作)을 벌이는 것도 충분히(充分히) 가능(可能)했다. 정작 노태우 정부(政府) 남북기본합의서(南北基本合意書) 채택(採擇)이나 UN 동시(同時) 가입(加入), 단일팀(單一팀) 구성(構成), 한반도(韓半島) 비핵화(非核化) 선언(宣言) 등(等) 대북관계(對北關係)를 적극적(積極的)으로 개선(改善)시킨지라 지금(只今)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

2019년(年)에 공개(公開)된 외교문서(外交文書)에 따르면 이듬해 1월(月) 조사(調査) 결과(結果)가 발표(發表)되자 정부(政府)는 대응책(對應策)으로 국제기구(國際機構)를 통해 KAL기(機) 사건(事件) 관련(關聯) 대북(對北) 규탄(糾彈) 여론(輿論)을 만들기 위한 특별대책반(特別對策班)을 구성(構成)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당시(當時) 서기관(書記官)이던 윤병세 ( 박근혜(朴槿惠) 정부(政府) 외교부(外交部) 장관(長官) )와 사무관(事務官)이던 조태용 ( 윤석열(尹錫悅) 정부(政府) 의 現 국가정보원장(國家情報院長) ) 등(等)도 참여(參與)했다.

정부(政府)는 미국(美國)과 국제연합(國際聯合) 안전보장이사회(安全保障理事會) 뿐만 아니라 국제민간항공기구(國際民間航空機構) (ICAO), 국제(國際)올림픽위원회(委員會) (IOC) 등(等) 거의 모든 국제기구(國際機構)를 상대(相對)로 대북(對北) 규탄(糾彈) 입장(立場) 표명(表明)을 요구(要求)했다. # 2020년(年) 공개(公開)된 외교문서(外交文書)에 따르면 결국(結局) ICAO 이사회(理事會)에서 규탄(糾彈) 결의(決意)가 채택(採擇)됐지만 '북한(北韓)'은 명시(明示)되지 않았고, 외교부(外交部)는 이를 외교적(外交的) 성과(成果)로 평가(評價)했고 북한(北韓)은 자신(自身)들의 외교적(外交的) 성과(成果)로 평가(評價)하는 상반(相反)된 평가(評價)를 낳았다.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때는 제(第)1세계(世界) , 1984 LA 올림픽 때는 제(第)2세계(世界) 가 서로 보이콧 해 '반쪽(半쪽) 대회(大會)'로 전락(轉落)해 버렸지만 1988 서울 올림픽 북한(北韓) 의 우방국(友邦國)이던 중국(中國) 소련(蘇聯) [28] 이 참가(參加)하기로 결정(決定)하면서 다급(多急)했던 북한(北韓) 이 공산(共産) 진영(陣營)의 참가(參加)를 막기 위해 테러를 감행(敢行)한 것으로 추측(推測)된다. 만약(萬若) 비행기(飛行機)에 중국인(中國人) 이나 소련인(蘇聯人) 이 한 명(名)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중국(中國)과 소련(蘇聯)이 전쟁(戰爭) 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로 인(因)해 2018 평창(平昌) 동계(冬季)올림픽 직전(直前)에도 북한(北韓) 이 잇따라 탄도(彈道)미사일을 갖고 도발(挑發)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유사(有史) 테러가 발생(發生)할 가능성(可能性)을 생각해 인천국제공항(仁川國際空港) 이나 외국(外國)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 으로 들어오는 국적기(國籍機)에 대(對)한 보안(保安)과 경계(境界)를 임시(臨時)로 강화(强化)하는 등(等)의 조치(措置)를 취(取)했다. 다행히(多幸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동계(冬季)올림픽을 계기(契機)로 일단(一旦) 테러의 가능성(可能性)이 줄어들었다. [29]

8. 음모론(陰謀論) [편집(編輯)]

김현희는 북한(北韓)의 간첩(間諜)이 아니며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은 전두환(全斗煥) 정권(政權)이 노태우를 당선시키기 위해 저지른 날조극(捏造劇)이라는 것을 주요(主要) 내용(內容)으로 한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KAL機 폭파범(爆破犯) 김현희 <上> [최보식이 만난 사람] KAL機 폭파범(爆破犯) 김현희 <中> [인터뷰][최보식이 만난 사람]KAL機 폭파범(爆破犯) 김현희 <下>

사건(事件) 2년(年) 뒤인 1989년(年)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사회과학출판사(社會科學出版社) '도서출판(圖書出版) 힘'에서 반미청년회(反美靑年會) 자주언론(自主言論)팀 수집(蒐集) 자료(資料)를 토대(土臺)로 낸 책(冊) <의혹(疑惑) 속의 KAL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을 필두(筆頭)로 하여 이후(以後) 가톨릭계(系) 뉴스인 가톨릭뉴스 지금(只今)여기 에서는 [30] 안기부(安企部) 소행(所行)이란 제목(題目) 으로 기사(記事) [31] 를 내기도 했다.

하필(何必)이면 13대(代) 대선(大選) 직전(直前)의 가장 민감(敏感)한 시기(時期)에 터진 테러라서 여당(與黨)인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 노태우 후보(候補)의 승리(勝利)를 위한 대한민국(大韓民國) 의 자작극(自作劇)이라는 음모론(陰謀論)이 많이 퍼졌다. 하지만 전직(前職) 주영국북한대사관(週英國北韓大使館) 공사(公使)였던 국민의힘(國民의힘) 태영호(太永浩) 국회의원(國會議員)에 의(依)하면 북한(北韓)의 소행(所行)이라고 인증(認證)했다. 그에 의(依)하면 김현희는 북한(北韓) 대외경제위(對外經濟位) 소속(所屬) 김원석의 딸이며 그 당시(當時) "대외경제위(對外經濟位) 김원석의 딸이 KAL기(機) 사건(事件)을 일으켰고, (자살(自殺)에 실패(失敗)하며 체포(逮捕)되어서 그런 것인지) 그 가족(家族)들은 모두 수용소(收容所)로 갔다"는 이야기가 북한(北韓)에 퍼졌다는 것이다. 또한 평양외국어대학과 평양외국어학원(平壤外國語學院)은 총장(總長)이 동일인물(同一人物)인데 김현희는 평양외국어대학 출신(出身)이고 자신(自身)은 평양외국어학원(平壤外國語學院) 출신(出身)이라고 밝힘으로써 이 사건(事件)이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가 스스로 만들어낸 자작극(自作劇)이 아니라는 사실(事實)이라는 것을 입증(立證)하면서 음모론(陰謀論)을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만들었다.

초기(初期) 음모론(陰謀論)은 단순(單純) 사고(事故)로 실종(失踪)된 대한항공기(機)를 남한(南韓) 정부(政府)에서 북한(北韓)의 소행(所行)으로 몰고 갔다는 단순(單純)한 이야기였는데 점차(漸次) 음모론(陰謀論)이 정교(精巧)해져서 '사실(事實)은 남한(南韓)에서 일부러 폭파시켰다.'로 확대(擴大)되었다. 실제로(實際로) 국민(國民)의 정부(政府) 참여정부(參與政府) 에서 새롭게 조사(調査)에 착수(着手)했을 때 이러한 종류(種類)의 음모론(陰謀論) 소설(小說)이 난무(亂舞)했다. 국민(國民)의 정부(政府) 당시(當時) 월간(月刊) 인물(人物)과 사상(思想) 에 글을 투고(投稿)한 전직(前職) 공무원(公務員) 아저씨 등(等) 일부(一部) 유족(遺族)들은 지금(只今)도 '김현희를 자신(自身)에게 직접(直接) 넘기면 진상(眞相)을 밝히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유족(遺族)들 앞에 나타난 이철승 이 대놓고 빨갱이 드립을 날리다가 스스로 욕(辱)처먹을 일거리만 늘린 적이 있다.

음모론(陰謀論)의 핵심(核心)은 대한항공(大韓航空) 858기(期) 탑승자(搭乘者)의 시체(屍體)가 한 구도(構圖) 발견(發見)되지 않았고 블랙박스 도 끝내 발견(發見)되지 않았다는 점(點)에서 출발(出發)한다. 좌우지간(左右之間) 증거(證據)가 개인(個人)의 증언(證言)뿐인데 은폐(隱蔽)를 위(爲)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主張)이다. 그러나 비단(緋緞) 공중(空中) 폭발(爆發)이 아니더라도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떨어진 항공기(航空機)는 파편(破片)이라도 발견(發見)하면 다행(多幸)인 경우(境遇)가 많다.

8.1. 폭약(爆藥)의 양(量) [편집(編輯)]

다른 의문점(疑問點)은 김현희의 폭약(爆藥)의 양(量)에 대(對)한 증언(證言) 신빙성(信憑性)이다. 범인(犯人) 당사자(當事者)의 증언(證言)으로는 컴포지트 250g이라고 했는데 사실(事實) 이 250g이 문제(問題)가 되는 것은 폭파(爆破) 효과(效果)가 아니라 은닉(隱匿) 수단(手段)이었다. 이 폭파(爆破) 과정(過程)에서 언급(言及)된 양(量)은 C4 350g을 파나소닉 휴대용(携帶用) 라디오에 숨기고 액체폭탄인(液體爆彈人) PLX 700cc는 술로 위장(僞裝)했다고 언급(言及)을 했다. 그런데 C4 350g이면 파나소닉 라디오의 내부(內部)를 텅 비워야 간신히(艱辛히) 들어갔는데 김현희는 라디오가 정상(正常) 작동(作動)했다고 증언(證言)한 것이다. 그래서 C4 350g 설이 파기(破棄)되었고 250g으로 줄어들어서 다시 발표(發表)되었다. 나중에 이 분량(分量)이 안기부(安企部) 추정치(推定値)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당시(當時) 수사본부(搜査本部)장이였던 정형근 한나라당(한나라黨) 전(前) 의원(議員) 는 김현희에게 들은 것은 '라디오에 고체폭약(固體爆藥)을, 그리고 술병(술甁)에 액체폭약(液體爆藥)을 넣었다.'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發言)을 듣고 그럼 고체(固體)는 C4이고 액체(液體)는 PLX로 결정짓고, 이 정도(程度) 폭발(暴發)이 되려면 얼마나 필요(必要)한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정(推定) [32] 해서 용량(容量)을 발표(發表)했다는 것이다. 즉(卽), 비행기(飛行機)가 터질 만한 용량(容量)을 설정(設定)한 것이 초기(初期)의 350g, 700cc였다는 것이고 350g이 라디오에 은닉(隱匿)이 불가능(不可能)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라디오가 정상(正常) 작동(作動)하는 범위(範圍) 내(內)에서 최대한(最大限)의 용량(容量)인 250g이 다시 설정(設定)된 것이다.

이 폭약량(爆藥量)의 변화(變化)에 대(對)해서는 이후(以後) 청문회(聽聞會)에서 다시 언급(言及)할 정도(程度)로 논란(論難)의 핵심(核心)에 서 있었다. 다만 고성능(高性能) 폭약(爆藥)이라면 250g으로도 항공기(航空機) 대파(大破)가 가능(可能)하다는 반론(反論)도 있으며 대파(大파)되지 않더라도 충분히(充分히) 치명적(致命的)이기 때문에 이 점(點)도 고려(考慮)해야 한다. [33] 순항고도(巡航高度)에 오른 항공기(航空機)는 작은 동체(胴體) 균열(龜裂)로도 충분히(充分히) 큰 문제(問題)가 발생(發生)할 수 있음 이 여러 항공사고(航空事故)로 증명(證明)되었고 여압(與壓)이 깨진 것만으로 조종사(操縱士)가 기절(氣絶)하여 추락(墜落)한 사고(事故) 도 있었기에 350g이든 250g이든 항공기(航空機) 폭파(爆破)라는 사실(事實) 자체(自體)가 뒤집힐 정도(程度)의 오류(誤謬)는 아니다.

폭파(爆破) 지점(地點)에서 좀 먼 곳의 승객(乘客)은 시체(屍體)가 온전(穩全)할 가능성(可能性)은 있지만 폭발(爆發) 지점(地點)은 뱅골만(灣) 한복판으로 한국(韓國)의 서해(西海), 동해(東海), 남해(南海) 면적(面積)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바다이며 게다가 정확히(正確히) 어디서 폭파(爆破)되었는지조차 확인(確認)할 수 없는 상황(狀況)에서 시체(屍體)를 1구(句)라도 찾으면 그것이 더 용하다. 블랙박스 역시(亦是)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태국(泰國) - 버마 [34] 국경(國境) 카렌족 [35] 의 추락(墜落) 목격(目擊) 신고(申告)에 따라 육지(陸地) 수색(搜索)에만 전념(專念)하느라 7일(日)을 허비(虛費)했다. 이후(以後) 생각을 바꿔 해상(海上) 수색(搜索)으로 전환(轉換)하지만 3일(日) 만에 포기(抛棄)했다. 이유(理由)는 수심(水深)이 너무 깊고 유속(流速)이 빨라 정확(正確)한 위치(位置)를 추정(推定)조차 할 수 없는 상황(狀況)에서 블랙박스를 찾기 어렵고 상어 등(等)에 의(依)해 이미 훼손(毁損)되었을 것이니 [36] 시체(屍體)를 찾을 가능성(可能性)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7] 물론(勿論) 이 시기(時期)에 조사(調査) 내용(內容)들은 아직 노태우(盧泰愚) 도(陶) 대통령(大統領)이 되기 전(前)의 정부(政府)에서 발표(發表)한 내용(內容)이라 100%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點)이 있기는 하지만 겨우 불확실(不確實)한 제보(提報)로 정글을 헤맨 것은 역시(亦是) 이해(理解)하기 힘들다. [38] 또한 합동조사단(合同調査團)에는 항공기(航空機) 사고(事故) 조사(調査)를 담당(擔當)하는 교통국의 직원(職員)들은 없었다. [39] 진실(眞實)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결론(結論)을 내리고 수사(搜査)한 것이라는 의심(疑心)은 나올 수 있다.

8.2. 발견(發見)되지 않은 유류물(遺留物) [편집(編輯)]

또한 문제(問題)가 되었던 것이 유류물(遺留物)이었다. 앞서 언급(言及)한 것처럼 비행기(飛行機) 폭파(爆破)는 확실(確實)했고 김현희도(度) 잡아 놓았는데 폭파(爆破)된 비행기(飛行機)의 파편(破片)이 발견(發見)되지 않으니 증거(證據)가 없던 것이다.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狀況)에서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 의 똥줄이 타들어가는 상황(狀況)이었는데, 이 때 증거물(證據物) 2가지가 발견(發見)되었는데 많은 논란(論難)을 일으켰다.

미얀마 선적(船積) 다곤 1호(號) [40] 에서 발견(發見)된 KAL 858기(期) 구명보트의 상태(狀態)에 관(關)한 문제(問題) 제기(提起)였다. 첫번째(番째): "구명보트의 탑재(搭載) 위치(位置)가 김현희와 김승일이 탑승(搭乘)한 좌측(左側)날개 7B, 7C에 가까우나 어떻게 무사(無事)한가?" 두번째(番째) "구명보트에 왜 폭파(爆破)흔이 없는가?"였다. 이에 국정원(國精院) 진실위(眞實委)는 국정원(國精院)에 보관(保管) 중(中)인 구명보트를 직접(直接) 조사(調査)한 결과(結果) 첫번째(番째) "구명보트가 좌측(左側)날개 7B, 7C로부터 멀리 있었으며, 내부(內部) 천장(天障) 칸막이가 완충제(緩衝劑) 역할(役割)을 하였음(442-444p)." 두번째(番째) "당시(當時) 국과수(國科搜)의 감정(感情)대로, 국과수(國科搜)의 감정서(鑑定書)에 구명보트에 화약(火藥)흔이 없었음. 폭발(爆發) 당시(當時) 압력(壓力)이나, 해상(海上)에 떨어질 때 충격(衝擊)으로 내부(內部)의 펌프가 훼손(毁損)된 것으로 추정(推定)되나, 이것으로 KAL 858기(期)가 폭탄(爆彈)테러에 의(依)해 폭파(爆破)되지 않는 증거(證據)로 볼 수 없음(440-442p)."으로 결론(結論)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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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番째) 유류품(遺留品)은 사건(事件) 이후(以後) 2년(年) 여(餘)가 지난 1990년(年)에 발견(發見)되었다. # 이 때의 발견품(發見品)은 기체(機體) 파편(破片)이었다. 가장 발견(發見) 확률(確率)이 낮은 기체(機體) 파편(破片) [41] , 그것도 정확(正確)하게 증거(證據)가 되는 자료(資料)만 딱 발견(發見)된 것이다. 일본(日本) 아사히 TV에서 미국(美國) MIT 대학(大學) 항국우주학과(項局宇宙學科) 존 한스만 박사(博士)는 이 파편(破片)에 대(對)해서 폭발(爆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主張)을 했다. [42] 그리고 이 자료(資料)는 서둘러 폐기(廢棄)해 버려서 또 한 번(番) 의구심(疑懼心)을 모았다.

8.3. 김현희의 정체(正體)에 관(關)한 음모론(陰謀論) [편집(編輯)]

사실(事實) 이런 모든 음모론(陰謀論)의 원인(原因)은 폭파범인(爆破犯人) 김현희 본인(本人)에게도 있었는데 김현희는 철저(徹底)하게 훈련(訓鍊)받은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이 맞나 싶을 정도(程度)로 말이 오락가락하였고 행적(行跡)에도 의문(疑問)이 많았다. 앞서 언급(言及)한 폭탄(爆彈) 양(量)에 대(對)해서도 김현희의 입에서 나왔고 김현희가 증언(證言)한 사소(些少)한 개인사(個人事)는 모조리 거짓으로 밝혀졌다. 조작(操作)할 필요(必要)가 없는 부분(部分)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논란(論難)은 더욱 커졌다. 예(例)를 들어서 북한(北韓) 내(內) 주소(住所)를 평양시(平壤時) 문수구 문수동이라고 했는데 평양(平壤)에는 문수구역(文殊區域)이나 문수구, 문수동이 없었다. 부친(父親)의 직업(職業)을 앙골라 주재(駐在) 북한무역대표부(北韓貿易代表部) 수산대표(水産代表)라고 밝혔는데 이 역시(亦是) 북한(北韓)에 없는 직책(職責)이었다. 가장 압권(壓卷)이 김현희 사진조작(寫眞造作) 사건(事件)이었다. 김현희가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이라는 주장(主張)의 핵심(核心)은 당시(當時)로서는 북한(北韓)에서 찍은 사진(寫眞)에 김현희가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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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증거(證據)로 나온 것이 사진(寫眞) 3장(丈)이고 김현희는 자신(自身)이 4번(番)이라고 주장(主張)했다. 그런데 북한(北韓) 출신(出身)인 정희선이 4번(番)은 자신(自身)이고 3번(番)은 김송희라고 밝히면서 거짓이 증명(證明)되어 버렸다. 이 후(後) 이 사진(寫眞) 3가지는 변조(變造)다, 아니다, 누가 누구다 하고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후(以後) 김현희는 3번(番)으로 추정(推定)되면서 김현희가 북한(北韓)에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는 중간결론(中間結論)이 나왔다. 다만 당시(當時) 꽃을 받은 인물(人物)이 왜 이동복이었다가 장기영으로 바뀌어서 알려졌으며, 김현희는 왜 자기(自己)를 잘못 지목(指目)했는지 [43] , 그리고 진짜(眞짜) 저 3번째(番째)가 김현희가 맞는지에 대(對)해서는 의문(疑問)이 남는다는 결론(結論)이 나왔다. [44] 후술(後述)하는 자신(自身)의 자서전(自敍傳) 초판(初版)에서도 출판(出版) 직후(直後)부터 위의 주소(住所) 같은 오류(誤謬)가 수십(數十)군데에서 발견(發見)되었고 이 오류(誤謬)들이 모두 수정(修正)된 재판(裁判)이 다시 나왔다. 이 자서전(自敍傳)도 소설가(小說家) 노수민이 대필(代筆) [45] 한 것이라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지만 기본적(基本的)으로 김현희의 구술(口述)을 받아서 쓴 것인데 왜 이렇게 기초적인 신상명세(身上明細)부터 오류(誤謬)가 많았는지 이해(理解)할 수가 없다는 지적(指摘)이 많다. 즉(卽) 김현희는 오랜 기간(期間) 강도(强度) 높은 특수공작원(特殊工作員) 교육(敎育)을 받은 엘리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程度)로 아주 사소(些少)한 데서 허술한 측면(側面)을 너무나도 많이 드러냈다. 이와 같이 굳이 속일 필요(必要)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자신(自身)의 유년(幼年) 시절(時節) 및 가족(家族) 관계(關係)와 같은 정보(情報)의 진위성(眞僞性)에 대(對)한 의문(疑問)으로 인해 사건(事件)이 정부측(政府側)에서 꾸민 것인지 여부(與否)와는 별개(別個)로 일부(一部)에서는 김현희를 중심(中心)으로 한 사건(事件) 진상(眞相) 재규명(再糾明)을 요구(要求)하고 있는 실정(實情)이다.

이 사건(事件)을 추적(追跡)한 일본(日本) 기자(記者)를 아무런 설명(說明)도 없이 한국(韓國) 입국(入國)을 막아 버린 것도 음모론(陰謀論)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김현희가 어린 시절(時節) 화동을 했다고 했다가 논란(論難)을 일으킨 사진(寫眞)에 대(對)해서 나중에서야 실수(失手)라고 번복(飜覆)했기에 음모론(陰謀論)을 정부(政府)가 더 만들었다는 지적(指摘)이 많다. 김현희가 결혼(結婚)한 상대(相對)가 사건(事件) 당시(當時)의 수사관(搜査官)인 것과 항공기(航空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을 일으킨 게 사실(事實)이라면 왜 사형(死刑) 당(當)하지 않았냐는 것, 그리고 그 당시(當時) 땡전(땡錢)뉴스 였던 언론(言論)들이 김현희에게 묘(妙)하게 호의적(好意的)이었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決定的)으로 북한(北韓)이 간접적(間接的)으로 이 사건(事件)을 일으켰음을 시인(是認)했다 고 한다. 내용(內容)인즉슨 북한(北韓)의 리근 외무성(外務省) 미국(美國) 국장(局長)이 남한(南韓) 측(側) 관계자(關係者)와 사석(私席)에서 대화(對話) 중(中)에 "우리는 KAL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이후(以後)로 테러는 한 번(番)도 하지 않았다"고 발언(發言)했다는 것인데 잠깐. 그럼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은 본인(本人)들이 했다는 거 아닌가? 이후(以後) 2022년(年)에는 북한(北韓) 외교관(外交官) 출신(出身)인 태영호(太永浩) 의원(議員)이 북한(北韓) 외교(外交) 라인은 처음에 KAL기(機) 폭파(爆破) 사건(事件)이 본인(本人)과 무관(無關)했다고 믿었고 그렇게 국제사회(國際社會)에 지속적(持續的)으로 항변(抗辯)했으나 어느 순간(瞬間) 윗선(윗線)에서 그만 하라는 지시(指示)를 받았다고 전(傳)했다. #

참여정부(參與政府) 시기(時期) "국가정보원(國家情報院) 과거(過去) 사건(事件) 진실규명(眞實糾明)을 통한 발전위원회(發展委員會)"에서 활동(活動)하였던 한홍구 교수(敎授)도 "안기부(安企部)는 사람 잡아다 겁(怯)주고 두들겨 패는 짓에서는 전문가(專門家)였을지 모르나 이런 엄청난 사건(事件)을 꾸밀 능력(能力)도 배짱도 없고, 이런 큰일을 저지르고도 20여(餘) 년(年) 동안 감쪽같이 덮어둘 만한 치밀(緻密)함 같은 것은 전혀(全혀) 갖추지 못한 조직(組織)이었다."면서 음모론(陰謀論)을 일축(一蹴)했다. 다만 당시(當時) 안기부(安企部)가 임박(臨迫)한 대선(大選)에 활용(活用)하기 위해서 수사결과(搜査結果)를 지나치게 서둘러서 발표(發表)하면서 여러 허점(虛點)이 노출(露出)되었고 이게 음모론(陰謀論)을 부채질했다고 비판(批判)하였다. 2009년(年) 시사(示唆)in 기고(寄稿) 한홍구 교수(敎授)는 2020년(年) 이 사건(事件)을 다룬 자신(自身)의 유튜브 라이브에서도 "다 사실(事實)로 확인(確認)되었다. 이 범행(犯行)은 김현희가 한게 맞다"고 재차(再次) 강조(强調)하였다. KAL 858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거짓과 진실(眞實), 그리고 헛소리 [46]

당시(當時) 사건(事件) 담당(擔當) 공안검사(公安檢事)였던 이상형(以上刑) 변호사(辯護士)의 이야기에 따르면 철저(徹底)한 증거주의(證據主義) 및 논리(論理)에 입각(立脚)하여 김현희의 선고(宣告)가 이루어진 것이며 대중(大衆)에게 알려지지 않고 재판(裁判)에서만 공개(公開)된 확실(確實)한 증거(證據)들은 훨씬 많다고 주장(主張)하였다. 특히(特히) 사진(寫眞)의 경우(境遇) 문제(問題)가 있었던 건 맞지만 곧바로 제대로 된 다른 사진(寫眞)이 확보(確保)되어 실제(實際) 증거(證據) 확보(確保)에 문제(問題)가 없는데도 불구(不拘)하고 음모론(陰謀論)에서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해(理解)하기 어렵다는 반응(反應)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김현희 압송(押送) 시점(時點) 또한 대선(大選)을 하루 앞둔 것은 바레인 당국(當局)에서 압송(押送) 허가(許可)를 내줬을 때 시점(時點)이 하필(何必)이면 그때였고, 가뜩이나 어렵게 이뤄낸 허가(許可)인데 압송(押送)을 곧바로 진행(進行)하지 않았다간 기회(機會)가 사라질 수도 있다 보니 한국(韓國) 일정(日程)과는 관계(關係) 없이 가능(可能)한 대로 당장(當場) 데려오는 것이 불가피(不可避)했다고 주장(主張)하였다. 하지만 김현희를 압송(押送)해서 한국(韓國) 공항(空港)에 도착(到着)하는 장면(場面)을, 그것도 선거(選擧) 전날(前날)에 공개적(公開的)으로 생중계한 것을 볼 때 이 부분(部分)은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를 의식(意識)한 작전(作戰)이었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2019년(年) 공개(公開)한 외교문서(外交文書)

그리고 사형당(死刑當)할 김현희가 갑작스레 사면(赦免)된 이유(理由)는 '그녀(그女) 자체(自體)를 살아 있는 증거(證據)'로 남기고자 한 당시(當時) 노태우 대통령(大統領)의 판단(判斷) 때문이다. 김현희가 재판(裁判)받을 당시(當時) 이미 안기부(安企部) 측(側)에서 운동권(運動圈)을 중심(中心)으로 '김현희는 가짜(假짜)'라는 내용(內容)의 음모론(陰謀論)이 퍼지는 것을 것을 감지(感知)했으며 대통령(大統領)의 재량(裁量)으로 김현희를 사면(赦免)시켜 안기부(安企部)의 보호(保護)를 받으며 안보강연(安保講演) 등(等)의 활동(活動)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만약(萬若) 정말(正말) 안기부(安企部)가 그녀(그女)를 이용(利用)해서 조작(造作)을 하려 했다면 차라리 사형(死刑) 집행(執行)을 서둘러 영원히(永遠히) 입막음하는 것이 훨씬 더 완벽(完璧)했다. [47] 만약(萬若) 당시(當時) 김현희가 곧바로 사형(死刑)되었다면 음모론(陰謀論)은 그녀(그女)를 희생양(犧牲羊)으로 삼았다는 식(式)으로 변형(變形)되어 퍼졌을 것이다. 오히려 이건 정말(正말) 음모론(陰謀論) 중(中)에서도 탄탄한 기초(基礎)가 되기 때문에 실체적(實體的) 진실(眞實)을 알지 못하여 미궁(迷宮)으로 빠지고 북한(北韓)의 테러라고 믿는 쪽과 안기부(安企部)의 조작(造作)이라고 믿는 쪽이 극심(極甚)한 대립(對立)을 하며 사회(社會) 혼란(混亂)만 가중(加重)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혼란(混亂) 때문에 시간(時間)이 지남에도 사건(事件)이 더더욱 입에 오르내리며 유가족(遺家族)들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48]

다만 살아 있는 증거(證據)로 남기고 싶었다면 사형(死刑)에서 무기징역(無期懲役)으로 감형(減刑)만 시켜서 평생(平生)을 감옥(監獄)에서 보내면서 죄(罪)에 대(對)한 대가(代價)는 치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음모론(陰謀論)과는 별개(別個)로 '김현희 덕(德)에 선거(選擧)에서 이겼으니 고마워서 사면(赦免)해준 것'이라고 비꼬는 의견(意見)도 상당(相當)하다. 실제(實際) 사면(赦免) 과정(過程)과 관련(關聯)된 기록(記錄)을 보면 김현희의 감형(減刑)안도 거론(擧論)되긴 했으나 수감(收監) 중(中) 심경(心境)의 변화(變化)가 생길 수 있고 관리(管理)가 어려우며 감형(減刑) 후(後) 다시 사면(赦免)하는 것은 부담(負擔)스럽다는 세 가지 이유(理由)로 사면(赦免)되었다고 한다. 교도소(矯導所)보다는 정보기관(情報機關)에서 평생(平生) 관리(管理)하는게 훨씬 확실(確實)하다는 판단(判斷)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도소(矯導所)에서 수십년간(數十年間) 수감(收監)되었던 비전향(非轉向) 장기수(長期囚) 들도 아직 남아 있던 상황(狀況)에서 대규모(大規模) 테러가 비전향(非轉向)보다 그 죄질(罪質)이 가벼웠는지는 의문(疑問)이며 더불어 비슷하게 출소(出所)한 김신조 의 경우(境遇) 사람을 죽이기 않은 게 확인(確認)되었는데 김현희가 과연(果然) 김신조 정도(程度)로 죄질(罪質)이 약(弱)했는지도 의문(疑問)이다.

참여정부(參與政府) 의 재조사(再調査)에서도 북한(北韓)의 명백(明白)한 테러 로 다시 한 번(番) 결론(結論)이 났기에 안기부(安企部) 자작극(自作劇) 혹은(或은) 미국폭(美國幅)파론 같은 음모론(陰謀論)을 믿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極少數)에 불과(不過)하다. 한겨레 에서도 기사(記事) 와 같이 김현희 자체(自體)는 진짜(眞짜)임을 전제(前提)한다. 2018년(年) 사설(社說) 에서도 폭파범(爆破犯) 김현희씨(氏)라고 정확(正確)하게 언급(言及)된다. 자주민보(自主民步) , 미디어오늘 같은 언론(言論)에서 항공기(航空機) 테러 자체(自體)가 당시(當時) 안기부(安企部)의 소행(所行)이라는 음모론(陰謀論)이 나오긴 하나 진지(眞摯)하게 믿는 사람은 소수(少數)에 그친다. [49] #

하지만 무고(無辜)한 민간인(民間人)들을 대량(大量) 살상(殺傷)한 테러범(犯)인데도 혼자 살아남아 반공투사(反共鬪士)처럼 활동(活動)하는 김현희의 행동(行動)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아래 링크된 월간조선 의 기사(記事)에서 보이듯 엄연(儼然)한 가해자(加害者)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자신(自身)이 마치 좌파(左派) 정권(政權)의 부당(不當)한 탄압(彈壓)을 받은 피해자(被害者)로 행세(行世)하면서 유가족(遺家族)들을 종북(從北)으로 모는 것에 대(對)해서는 여론(輿論)의 반감(反感)이 심(甚)하다. 언론(言論)에 나타나서 국민(國民)과 유가족(遺家族)의 어그로를 끌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진정(眞正)한 사죄(謝罪)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大部分)이다. 실제로(實際로) 사람을 그리 죽여 놓고 정권(政權)의 비호(庇護) 하(下)에 살아났으면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나 댓글이 수시로(隨時로) 나온다. 물론(勿論) 다시 말하지만 김현희가 폭파범(爆破犯)이기 때문에 김현희의 반공투사(反共鬪士) 코스프레에 대(對)한 비판(批判)이 합리적(合理的)인 것이다.

8.4.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에게 일본교습(日本敎習)을 받은 김현희 [편집(編輯)]

김현희가 진짜(眞짜) 북한(北韓) 간첩(間諜)인지에 대(對)한 의문(疑問)에 하나의 답(答)을 줄 만한 사건(事件)이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와 관련(關聯)된 논의(論議)이다.

1970년대(年代)부터 일본(日本) 에서는 기이(奇異)한 실종(失踪) 사건(事件)이 빈번히(頻繁히) 발생(發生)했다. 대부분(大部分)이 젊은 20대(代) 남녀(男女)였으며 [50] 모두 해안가(海岸가) 근처(近處)에서 실종(失踪)되었다는 것이다. 일본(日本) 에서 납북(拉北) 문제(問題)가 처음으로 제기(提起)된 것은 1980년(年) 산케이신문(산케이新聞) 의 보도(報道)였는데 북한(北韓) 이라는 구체적(具體的)인 언급(言及)은 없었으며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 측(側)에서 이 사안(事案)에 대(對)해 일본(日本) 정부(政府) 측(側)에 귀띔을 했지만 일본(日本) 에서는 사실상(事實上)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웃어넘길 정도(程度)였고 누구도 인정(認定)조차 하지 않은 문제(問題)였다.

그러나 80년대(年代) 후반(後半)에 들어 일본(日本) 경찰(警察) 공안(公安) 당국(當局)은 본 문서(文書)의 사건(事件)의 주범(主犯) 김현희 의 증언(證言)을 시작(始作)으로 북한(北韓) 출신(出身)의 탈북자(脫北者) 와 망명(亡命)한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 , 북한(北韓)으로 갔다가 돌아온 재일(在日) 한국인(韓國人) , 일본인(日本人) 의 증언(證言)을 토대(土臺)로 북한(北韓) 정부(政府) 가 일본인(日本人)들을 계획적(計劃的)으로 납치(拉致)했다고 공식적(公式的)으로 인정(認定)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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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他)쿠치 야에코
田口八重子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1955-1986?, 당시(當時) 22세(歲))는 1978년(年) 6월(月) 29일(日) 납치(拉致)되었다. 도쿄 의 음식점(飮食店) 점원(店員)으로 1984년(年) 오사카 중국(中國) 요리(料理) 점(點) 요리사(料理師) 였다가 납북(拉北) 된 하라 타다아키와 결혼(結婚)하였다. 그러나 1986년(年) 남편(男便)이 병사(病死)하고 같은 해에 교통사고(交通事故)로 사망(死亡)했는데 홍수(洪水)로 묘지(墓地)가 유실(流失)되었다는 것이 북한(北韓)의 주장(主張)이다. 1987년(年) 대한항공 858편(篇) 폭파(爆破) 사건(事件)의 주범(主犯) 김현희가 '이은혜라는 여성(女性)에게 일본인(日本人)처럼 행동(行動)하는 법(法)을 배웠다.'고 증언하자(證言瑕疵) 몽타주를 그리게 하여 1988년(年) 일본(日本) 각지(各地)에 ' 1980년(年) 이전(以前)에 행방불명(行方不明)된 이 여성(女性)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대대적(大大的)으로 조사(調査)하기 시작(始作)했다. 1991년(年) 들어 1978년(年) 에 실종(失踪)된 타(他)쿠치 야에코가 '이은혜'와 동일인(同一人)인 것으로 추정(推定)했으며 김현희와 공작원(工作員)들에게 일본어(日本語)를 가르쳤던 교관(敎官)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일본(日本) 조사단(調査團)이 서울 에 수감(收監)되어 있던 김현희와 직접(直接) 면회(面會)해 동년배(同年輩) 여성(女性)의 사진(寫眞) 10장(張)을 뿌리고 이 중(中)에서 교육관(敎育觀)이었던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指示)했을 때 김현희가 타(他)쿠치 야에코의 사진(寫眞)을 보고 정확(正確)하게 '이 사람'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타(他)쿠치 야에코=이은혜가 맞는 것으로 확인(確認)되었다. 다만 북한(北韓)은 타구치 야에코가 이은혜임을 인정(認定)하지 않고 있다.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 관련(關聯) 글
북한(北韓)은 이은혜로 하여금 김현희 씨(氏)에게 일본어(日本語)와 관습(慣習)을 가르쳐 그를 일본화(日本畫) 했다. 김현희씨(氏)가 이은혜 선생(先生)으로부터 일어(日語)를 배운 것은 그가 대남전복활동(對南顚覆活動)과 테러를 할 때 일본인(日本人)으로 가장(假裝)하기 위해서였다.
김현희 씨(氏)에게 일어(日語)와 일본습관(日本習慣) 등(等) 일본인화(日本人化) 교육(敎育)을 한 이은혜에 대(對)해서는 김현희 고백록(告白錄) <이제 여자(女子)가 되고 싶어요>제1부에 상세(詳細)하게 기록(記錄)돼 있다. 그녀(그女)는 1978~79년경(年頃) 일본해안(日本海岸)에서 피랍(被拉), 선박편(船舶便)으로 북한(北韓)으로 끌려갔다.
이은혜의 신원(身元)은 한?일수사기관 공조수사(共助搜査)로 1991년(年) 5월(月) 비로소 자세(仔細)하게 밝혀졌다. 그는 도쿄 도요시마에서 거주(居住)하던 타(他)쿠치 아예코(당시(當時) 22세(歲))라는 여성(女性)이며 여상고를 중퇴(中退)했고 재학당시(在學當時) 배구선수(排球選手)로 활약(活躍)했으며 그후(後) 음식점(飮食店) 종업원(從業員)으로 일할 때 <치(齒)도세>라는 별명(別名)으로 불리기도 했다.
타(他)쿠치(은혜(恩惠))는 1978년(年) 북한(北韓)에 납북(拉北)돼 1981년(年) 7월(月) 4일(日)부터 1983년(年) 3월(月)까지 평양부근(平壤附近) 동북리(東北리) 3호초대소(好招待所)에서 김현희씨(氏)에게 일본인화(日本人化) 교육(敎育)을 담당(擔當)했다. 김현희씨(氏)는 1991년(年) 서울을 방문(訪問)한 일본경찰(日本警察)과의 면담(面談)때 타쿠치(値)의 사진(寫眞)을 정확(正確)하게 골라냄으로써 타쿠치(値)의 납북사실(拉北事實)을 분명하게 확인(確認)했다.
김현희와 이은혜
북한(北韓)에 의(依)한 일본인(日本人) 납치(拉致)는 1970년대(年代)~1980년대(年代)에 주로(主로) 일어났다. 이에 일본(日本)은 북한측(北韓側)에 납치(拉致) 문제(問題)를 강력히(强力히) 문제제기(問題提起)했지만 북한(北韓)은 그간(그間) 납치(拉致) 사실(事實) 자체(自體)를 완강히(頑强히) 부인(否認)해왔다. 그러다 북한(北韓)은 2002년(年) 1차(次) 북일정상회담(北日頂上會談)에서 사상(史上) 처음으로 납북(拉北) 사실(事實)을 시인(是認)하게 된다.
북한(北韓)은 납북자(拉北者) 중(中) 5명(名)이 생존(生存)했고 8명(名)이 사망(死亡)했으며 2명(名)은 납북(拉北) 사실(事實)이 확인(確認)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以後) 북한(北韓)은 5명(名)의 생존자(生存者)와 함께 2명(名)의 사망자(死亡者) 유골(遺骨)을 일본(日本) 본국(本國)으로 돌려보냈다. 북한(北韓)은 나머지 6명(名)의 사망자(死亡者) 유해(遺骸)는 홍수(洪水)로 유실(流失)됐다고 설명(說明)했다.
그러나 일본측(日本側)의 확인(確認) 결과(結果), ‘8명(名)은 사망(死亡), 2명(名)은 납북(拉北) 사실(事實)이 확인(確認)되지 않는다’는 북한(北韓)의 주장(主張)을 뒷받침하는 증거(證據)가 전무(全無)했다.
북한(北韓)의 일본인(日本人) 납치(拉致) 확인과정(確認過程)
요약(要約)하자면 북한(北韓)이 일본인(日本人)을 십수(十數) 명(名)을 납치(拉致)하고 간첩(間諜) 양성(養成) 등(等)에 활용(活用)한 사실(事實)에 대(對)해서는 1980년대(年代)에는 한국(韓國), 일본(日本) 당시(當時) 모두 그다지 자세히(仔細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김현희의 이은혜라는 일본인(日本人)에 대(對)한 증언(證言) 이후(以後) 1988년경(年頃) 일본(日本)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이슈가 되었고 본격적(本格的)인 조사(調査)가 들어간 것이다.

김현희의 증언(證言)으로 몽타주를 그린 이후(以後) 일본(日本) 정부(政府)에서 대대적(大大的)으로 조사(調査)하다 보니 타(他)쿠치 야에코라는 일본인(日本人) 실종자(失踪者)와 유사(類似)하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以後) 1991년(年) 일본(日本)의 조사단(調査團)에 의(依)해서 김현희가 10장(張)의 사진(寫眞) 중(中) 타쿠치(値)를 정확히(正確히) 찾아냈으니 일본(日本) 정부(政府)는 타쿠치(値)가 납북(拉北)된 것으로 판단(判斷)했다.

거기에 2002년(年) 북일정상회담(北日頂上會談)에서 북한(北韓) 측(側)이 납북자(拉北者) 신원(身元)을 공개(公開)하면서 타(他)쿠치 야에코의 납북도(拉北度) 공식적(公式的)으로 확인(確認)된다.

사실(事實) 보통(普通) 김현희에 대(對)한 의문(疑問)을 이야기하는 측(側)에서는 이은혜의 존재(存在)에 대(對)해서도 김현희의 주장(主張)뿐이라며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한다. 즉(卽), 타(他)쿠치 아에코가 납북자인(拉北者人) 건 맞지만 김현희가 말한 이은혜는 타쿠치(値)와 동일인(同一人)이 아니거나 이은혜 자체(自體)는 상상(想像)의 산물(産物)이라는 이야기다. ## [51]

그런데 김현희가 북한(北韓)과 무관(無關)하고 이은혜라는 일본인(日本人)도 상상(想像)의 산물(産物)이라면 '김현희의 상상(想像)으로 만든 이은혜라는 가짜(假짜) 몽타주를 만들었더니, 우연히(偶然히) 비슷하게 생긴 타(他)쿠치 아에코라는 실종자(失踪者)가 나왔고 하필(何必) 그 실종자(失踪者)가 진짜로(眞짜로) 납북자(拉北者)였다.'는 것이 되는데 정말(正말) 정말(正말) 희박(稀薄)한 확률(確率)일 수밖에 없다.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 항목(項目)을 보면 나오지만 한국(韓國) 안기부(安企部)는 이미 1980년(年)부터 북한(北韓)이 일본인(日本人)을 납치(拉致)한다는 정보(情報)를 입수(入手)하고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程度) 정보(情報)를 미리 파악(把握)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김현희가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이 아니고 안기부(安企部)의 공작(工作) 관련(關聯) 인사(人士)라는 주장(主張)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김현희가 일본(日本)에서 가져온 10개(個) 사진중(寫眞中)에서 타(他)쿠치 야에코를 정확히(正確히) 골라냈다는 사실(事實)은 불가능(不可能)에 가깝다. 안기부(安企部)가 대북(對北) 첩보(諜報)를 통해서 납북(拉北)된 일본인(日本人)이 있다는 사실(事實) 자체(自體)는 미리 파악(把握)했을 가능성(可能性)이 있다. 그러나 북한(北韓)에서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의 일본(日本)은 일본(日本) 이름이 아닌 북한식(北韓式) 이름을 사용(使用)하고 있었기에, 납북자(拉北者)의 신상(身上)을 미리 파악(把握)하기는 거의 불가능(不可能)하고, 더구나 납북자중(拉北者中)에서 타(他)쿠치 야에코의 꼭 찝어서 신상(身上)과 외모(外貌)까지 파악(把握)하는것은 더욱 불가능(不可能)에 가깝다. 이런 이유(理由)로 최소한(最小限) 김현희가 실제로(實際로) 북한(北韓) 출신(出身)이라는 것은 인정받게 된 것이다.

8.5. 유족(遺族)들의 반응(反應) [편집(編輯)]

애초(애初)에 진상조사(眞相調査) 자체(自體)가 유족(遺族)들의 줄기찬 요구(要求)로 시작(始作)되었다. 참여정부(參與政府) 시기(時期) 국정원(國精院)의 고위관계자(高位關係者)는 피해(被害) 유족(遺族)의 지속적(持續的)인 조작(造作) 의혹(疑惑) 제기(提起)에 ‘국정원(國精院) 과거사건(過去事件) 진실규명(眞實糾明)을 통한 발전위원회(發展委員會)’에서 민관합동(民官合同) 조사(調査)를 벌여 북한(北韓)의 지령(指令)에 의(依)한 테러로 결론(結論)을 냈다고 밝혔다. # 그 이전(以前)에 승객(乘客) 유가족(遺家族)들의 사고(事故) 현장(現場) 방문(訪問) 계획(計劃)에 대(對)해 정부(政府)가 수색(搜索)에 방해(妨害)가 된다며 부정적(否定的)인 입장(立場)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

2009년(年)에 김현희가 자신(自身)에게 일본어(日本語)를 가르쳐준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 가족(家族)과 만나고 납북자(拉北者) 인권(人權)에 대(對)해 언급(言及)을 하는 활동(活動)을 했는데 김씨(金氏)가 유족(遺族)들에게 사과(謝過)는 하지 않은 채 납북자(拉北者) 인권(人權)을 말하는 데 대(對)하여 어이없다는 반응(反應)을 보였고 구제적(救濟的)인 증거(證據)를 제시(提示)해 폭파사건(爆破事件)의 진상(眞相)을 밝혀달라고 요구(要求)했다. #

김현희가 '가짜(假짜) 공작원(工作員)'설을 언급(言及)하며 방송(放送)에 자주 출연(出演)하자 유족(遺族)들은 크게 분노(憤怒)했다. 유족(遺族)들은 김(金) 씨(氏)의 '가짜(假짜) 몰이'에 대(對)해 반박(反駁)을 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반응(反應)을 보이며 공개토론(公開討論)을 제안(提案)했다. 김(金) 씨(氏)가 직접적(直接的)으로 사과(謝過)한 적도 없고 의문점(疑問點)에 대(對)해 답변(答辯)한 것 하나 없으면서 이제와서 자신(自身)들을 좌파(左派) 종북(從北)으로 몰아간 이유(理由)가 뭐냐고 맹공(猛攻)했다. #

박근혜(朴槿惠) 정부(政府) 가 출범(出帆)하자 인수위(引受委)에 재조사(再調査)를 요구(要求)하기도 했다. #

2017년(年)에도 진상규명대회(眞相糾明大會)와 추모제(追慕祭)가 열렸는데 김현희는 참석(參席)하지 않았다. #

2018년(年) 07월(月) 23일(日) KAL858기(期) 희생자(犧牲者) 가족회(家族會)와 진상규명(眞相糾明) 대책본부(對策本部)에서 김현희에 대(對)해 정보통신망법상(情報通信網法上) 명예훼손(名譽毁損)과 업무방해(業務妨害) 혐의(嫌疑)로 고소장(告訴狀)을 제출(提出)할 예정(豫定)으로 전(傳)해졌다. 진상규명(眞相糾明)을 요구(要求)하는 유족(遺族)들을 지속적(持續的)으로 종북좌파(從北左派)로 매도(罵倒)했다는 이유(理由) 때문이다. #

2018년(年) 11월(月) 20일(日) KAL858기(期) 가족회(家族會)와 KAL858기(期) 사건(事件) 진상규명대책본부(眞相糾明對策本部)는 전면적(全面的)인 재조사(再調査)가 필요(必要)하다고 주장(主張)했다. 이들은 당시(當時) 사건(事件) 조치과정(措置過程)에서 안기부(安企部)가 사건(事件)을 주도(主導)했다며 제주(濟州) 4.3 사건(事件) 이나 5.18 민주화운동(民主化運動) , 세월호(歲月號) 참사(慘事) 에 버금가는 국가적(國家的) 재난(災難)이던 만큼 다른 사건(事件)과 마찬가지로 철저(徹底)하게 진상(眞相)을 규명(糾明)해야 하며 피해자(被害者)들의 명예(名譽)도 회복(回復)되어야 한다고 주장(主張)했다.

9. 재수색(財數色) 요청(要請) [편집(編輯)]

2018년(年) 11월(月) 20일(日), 사고(事故) 31주기(週期)를 앞두고 중구(中區) 프레스센터에서 사고(事故) 현지(現地)의 전면(全面) 재수색(財數色)과 철저(徹底)한 진상규명(眞相糾明)을 요구(要求)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에서 이 사건(事件)의 대처(對處) 등(等)에 대(對)해 재조명(再照明)하는 방송(放送)을 2018년(年) 11월(月) 29일(日)에 진행(進行)했다. 이어 KAL858의 사고(事故) 잔해(殘骸)로 추정(推定)되는 물체(物體) [52] 를 찾았다고 발표(發表)했다. # 이후(以後) 유가족(遺家族) 모임인 'KAL858기(期) 가족회(家族會)'는 정부(政府)에 수거(收去)한 잔해(殘骸)의 검증(檢證)과 사고(事故) 지역(地域)에 남아 있는 잔해(殘骸)들의 국내(國內) 반입(搬入)을 요구(要求)하는 청원서(請願書)를 국무총리실(國務總理室)에 제출(提出)했다.

가족회(家族會)는 “정부(政府)와 대한항공사 사장(社長)은 지난 1987년(年) 12월(月)과 1993년(年)에도 유해유품잔해(遺骸遺品殘骸)들을 찾아 인도(引導)하겠다고 약속(約束)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指摘)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國際民間航空機構)(ICAO) 부속서(附屬書) 13에 새로운 잔해(殘骸)와 중요(重要)한 잔해(殘骸)가 사고(事故) 지역(地域)에서 발견(發見)될 경우(境遇) 재수색(財數色)과 재조사(再調査)를 해야 한다고 규정(規定)돼 있다.”고 설명(說明)했다. 유족(遺族)들의 청원(請願)은 담당부서(擔當部署)인 국토부(國土部) 소속(所屬) 항공철도조사위원회(航空鐵道調査委員會)로 넘어갔으나 사건(事件)의 규모(規模)로 볼 때 이 위원회(委員會)에서 결정(決定)될 일은 없으며 국토부(國土部), 외교부(外交部), 청와대(靑瓦臺) 등(等)이 종합적(綜合的)으로 판단(判斷)할 것이다. 익명(匿名)을 요구(要求)한 정부고위관계자(政府高位關係者)는 KAL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이 테러로 규정(規定)되어 있는 것이 재수색(財數色)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2019년(年) 2월(月) 19일(日) 유족(遺族)들은 대한항공(大韓航空) 서소문(西小門)빌딩 앞에서 사고 지역(地域)에서의 재수속(再手續)을 통해 희생자(犧牲者) 115명(名)의 유골(遺骨)과 유품(遺品) 수색(搜索)을 요구(要求)하는 기자회견(記者會見)을 열었다. 국무총리실(國務總理室)을 중심(中心)으로 추가(追加) 수색(搜索)이 가능(可能)한지, 수색(搜索)에 나선다면 어떤 과정(過程)을 거쳐야 하는지 국토교통부(國土交通部), 기획재정부(企劃財政部) 등(等)과 협의(協議) 중(中) 인 것으로 전(傳)해졌다.

2019년(年) 2월(月) 20일(日) 정부(政府)가 추가(追加) 수색(搜索) 방안(方案)을 검토(檢討) 중(中)인 것으로 전(傳)해졌다. 정부(政府) 'KAL 858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유해(遺骸) 수습(收拾)·잔해(殘骸) 인양(引揚) 수색(搜索) 검토(檢討)

2020년(年) 5월(月) 21일(日), MBC 뉴스데스크 단독(單獨) 보도(報道)에 의(依)하면 정부(政府)가 대구(大邱) MBC 취재진(取材陣)이 발견(發見)한 추정동체(推定胴體)를 미얀마 현지(現地) 조사(調査)하기로 결정(決定)하고 미얀마 정부(政府)와 협의(協議) 중(中)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정부(政府)가 미얀마 정부(政府)에 제안(提案)한 방안(方案)은 한국(韓國) 정부(政府)와 미얀마 정부(政府)의 공동조사(共同調査), 한국(韓國) 정부(政府)의 단독조사(單獨調査), 미얀마 정부(政府)가 단독(單獨) 조사(調査)하되 장비(裝備)와 인력(人力)을 한국(韓國) 정부(政府)가 제공(提供)하는 방안(方案)이라고 하며 어느 쪽이든 미얀마 정부(政府)와의 협력(協力) 하(下)에서 진행(進行)하는 것을 원칙(原則)으로 한다고 한다. 2020년(年)이 한국(韓國)과 미얀마의 국교(國交) 수립(樹立) 40주년(周年)이 되는 해인지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大統領)과 아웅 산 수 치 국가자문역(國家諮問役)이 친서(親書)를 교환(交換)했으며 양국(兩國) 외교부장관(外交部長官) 사이에 전화통화(電話通話)도 이루어진 만큼 양국(兩國) 관계(關係)는 우호적(友好的)인 분위기(雰圍氣)였던지라 미얀마 내부(內部)의 특별(特別)한 사정(事情)이 없다면 현지조사(現地調査)는 물론(勿論) 인양까지도 가능(可能)할 수 있다는 희망적(希望的) 전망(展望)이 나왔다. 현지(現地) 조사(調査)가 이루어진다면 우선(于先) 대구(大邱) MBC 취재진(取材陣)이 발견(發見)한 추정동체(推定胴體)가 과연(果然) 대한항공(大韓航空) 기체(氣體)가 맞는지 대한항공(大韓航空)의 엠블럼등(等)을 확인(確認)하는 작업(作業)이 이루어질 전망(展望)이었으며 이런 조사(調査)를 통해 KAL 858기(基)임이 분명해진다면 이후(以後) 인양(引揚) 작업(作業)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展望)이 나왔다.

2020년(年) 12월(月) 3일(日) 통과(通過)된 2021년(年) 국가(國家) 예산(豫算) 중(中) KAL 858기(期) 수색(搜索) 예산(豫算) 23억(億) 원이 책정(策定)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確認)되었다. 외교부(外交部)는 여건(與件)이 마련되면 동체수색(胴體搜索)을 시작(始作)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코로나 19 사태(事態)가 심각(深刻)해지고 2021년(年) 미얀마 쿠데타 2021년(年) 미얀마 민주화(民主化) 운동(運動) 으로 인해 조사(調査)가 중단(中斷)되었다.

9.1. 32년(年) 만의 추정동체(推定胴體) 발견(發見) [편집(編輯)]

2019년(年)에 대구(大邱)MBC 가 사건(事件) 32주기(週期)를 맞아 이 사건(事件)에 대(對)한 연속(連續) 보도(報道)를 하면서 사건(事件)을 재조명(再照明)하기 시작(始作)했다. KAL 858기(期) 실종사건(失踪事件)의 진실(眞實)은? 플레이리스트 이후(以後) 특별취재(特別取材)팀을 꾸려 취재(取材)한 끝에 2020년(年)에 미얀마 안다만 해저(海底)에서 KAL 858편(篇) 동체(胴體)로 추정(推定)되는 잔해(殘骸)를 32년(年) 만에 최초(最初)로 발견(發見)하는 데 성공(成功)했다. KAL858기(機) 추정(推定) 동체(胴體) 최초(最初) 발견(發見)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2020년(年) 1월(月) 23일(日), MBC 뉴스데스크 에서도 이를 비중(比重) 있게 보도(報道)했다. 취재기자(取材記者)에 의(依)하면 원래(元來)는 위안부(慰安婦)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미얀마의 위안소(慰安所)에 대(對)해 취재(取材)하러 갔다가 의도(意圖)치 않게 현지(現地)의 저인망(底引網) 어선(漁船) 어부(漁夫)들을 통해 추정동체(推定胴體)가 있는 구체적(具體的) 좌표(座標)를 입수(入手)했고, 수심(水深) 50 m 지점(地點)에서 찾아내는 데 성공(成功)했다고 한다. 또한 동체(胴體)가 비교적(比較的) 온전히(穩全히) 남아 있어 블랙박스를 회수(回收)할 가능성(可能性)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는 MBC 보도(報道)가 잇따랐다.

이후(以後) MBC는 2020년(年) 5월(月) 8일자(日子) 방송(放送)을 통해 지난 2월(月) 탐사(探査)에서 KAL858기(基)의 것이 거의 확실(確實)해 보이는 엔진과 동체(胴體) 잔해(殘骸)를 촬영(撮影)하는 데 성공(成功)했다고 밝히며 해당(該當) 영상(映像)들을 공개(公開)했다. # 추가(追加) 탐사(探査) 결과(結果) 비교적(比較的) 비행기(飛行機) 동체(胴體)가 온전(穩全)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該當) 보도(報道)에 나온 전문가(專門家)들은 1980년대(年代) 말(末) 정부(政府) 발표(發表)대로 기체(氣體)가 공중폭발(空中爆發)하거나 조종성(操縱性) 상실(喪失) 후(後) 통제불능(統制不能) 상태(狀態)에서 급강하(急降下)했다면 형태(形態)가 이렇게 보존(保存)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專門家)들은 엔진이 날개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폭발(爆發)로 인해 기체(機體)에 이상(異常)이 생겼지만 조종성(操縱性)은 조금이나마 유지(維持)되어 비상착수(非常着手)를 시도(試圖)했으나 비상착수(非常着手)에 실패(失敗)해서 추락(墜落)했을 가능성(可能性)을 제기(提起)했다. # 물론(勿論) 동체(胴體)가 온전(穩全)하게 남아 있다는 이유(理由)만 가지고 이것이 테러가 아닌 기체결함(機體缺陷)으로 인한 추락(墜落)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단적(端的)인 예(例)로, 이집트 상공(上空)에서 테러로 추락(墜落)한 코갈림아비아(我非我) 항공(航空) 9268편(篇) 테러 사건(事件) 에서도 기체(氣體)가 전소(全燒)되었지만 동체(胴體)는 보존(保存)되었기 때문.

애초(애初)에 라디오 속에 숨겨 들어온 컴포지트 250 g이라는 폭약(爆藥)의 양(量)이 너무 작아서 과연(果然) 폭파(爆破)가 사실(事實)인가 싶은 의문(疑問) [53] 이 나왔던 만큼, 폭약(爆藥) 양(量)이 적어서 파손(破損)은 있었지만 큰 손상(損傷)은 없어서 비상착수(非常着手)를 시도(試圖)했으나 실패(失敗)해서 추락(墜落)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年) 11월(月) 27일(日) MBC는 정부(政府)가 30년(年)만에 KAL기(機) 858사건(事件)을 재조사(再調査)에 착수(着手)해 10달 간(間) 이어진 미얀마 정부(政府)와의 협의(協議) 끝에 동체(胴體)가 발견(發見)된 현지(現地)에 수색조사단(搜索調査團)을 파견(派遣)하기로 합의(合意)했다고 보도(報道)했다.

그러나 2021년(年) 2월(月) 1일(日),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發生) 하면서 서방(西方)의 미얀마 군부(軍部)에 대(對)한 제재(制裁)가 시작(始作)되고 시민군(市民軍)이 결성(結成)되어 항쟁(抗爭) 에 나서고 미얀마의 코로나 사태(事態)가 심각(深刻)해지는 등(等) 미얀마 정국(政局)이 악화(惡化)됨에 따라 조사(調査) 진행(進行)이 불투명(不透明)해졌다.

2023년(年) 12월(月) 29일(日), 대구(大邱)MBC 단독보도(單獨報道)로 KAL858기(期)가 바다에 불시착(不時着)했을 가능성(可能性)이 높다면서 재수색(財數色)의 필요성(必要性)을 느끼는 영상(映像)을 유튜브에 올렸다. # 해당(該當) 영상(映像)에서는 심(甚)해 깊이 있는KAL858기의 파편(破片)으로 보이는 날개에 엔진이 정상적(正常的)으로 붙어있음을 확인(確認)할 수 있었는데, 전문자(專門者)들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파편(破片)은 비행기(飛行機)가 심(甚)한 충격(衝擊)을 입지는 않았다는 증거물(證據物)이라고 한다. 이를 통(通)해 KAL858기(期)가 바다에 비상착륙(非常着陸)을 했을 수도 있다면서 재수색(財數色)의 필요성(必要性)을 언급(言及)했다.

10. 대중매체(大衆媒體)에서 [편집(編輯)]

10.1. 서적(書籍)/소설(小說) [편집(編輯)]

  • 김현희 자신(自身)은 『이제 여자(女子)가 되고 싶어요』(고려원, 1991년(年))라는 회고록(回顧錄)을 남겼는데 [54] 제법 볼 만하다. 1급(級) 간첩(間諜)의 확보(確保)가 얼마나 방대(厖大)한 대북(對北) 정보(情報)를 알려주는지 여실히(如實히) 알려주는 책(冊)으로, 21세기(世紀)에도 북한(北韓) 사회(社會)에 대(對)해 알고 싶다면 한 번(番)쯤 읽어볼 만하다. 2권(卷)으로 나뉘어 있다.
    • 1권(卷) '내(內) 영혼(靈魂)의 눈물'은 동유럽(東유럽) 지역(地域)을 돌고 돌아 잠행(潛行) 하다가 858편(篇)을 폭파시킨 이야기이다. 일부(一部)에서는 이 책(冊)에서 나오는 동유럽(東유럽) 지역명(地域名)이나 호텔명(名) 등(等) 대부분(大部分)이 실제(實際) 존재(存在)하지 않는 가짜(假짜) 지역(地域)이라고 주장(主張)한다.
    • 2권(卷) '꿈꾸는 허수아비'에서는 김현희의 어린 시절(時節) 이야기인데, 꽤 부유(富裕)한 집에서 잘 살았다는 내용(內容)이다. 중요(重要)한 관건(關鍵)은 잘 사는 집이니 어렸을 때 뽑혀서 위에서도 나오는 화동(畫棟)으로 남한측(南韓側) 대표(代表)에서 꽃을 전달(傳達)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진실(眞實) 공방(攻防)이 있다. 책(冊)의 내용(內容)은 매우 흥미진진(興味津津)하고 재미있다. 특히(特히) 기존(旣存)의 어렵게 살던 탈북자(脫北者)가 북한(北韓)에 대(對)한 회의감(懷疑感)을 느끼고 탈북(脫北)했다는 내용(內容) 대신(代身) 부유층(富裕層)이며 부러움 하나도 없이 행복(幸福)했던 이가 간첩(間諜)이 되어 가는 과정(過程)이 자세히(仔細히) 나와 있다.
  • 회고록(回顧錄)이 나오기 전(前)인 1988년(年) 덕문출판사(德門出版社)에서 강인철이 쓴 『언니 미안(未安)해』라는 소설(小說) 형식(形式)의 책(冊)이 나왔다. “언니 미안(未安)해”라는 말은 김현희가 안기부(安企部) 여성(女性) 조사관(調査官)과 며칠을 같이 지내는 동안 심경(心境)의 변화(變化)를 일으켰을 때 맨 처음으로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근데 꽤 골 때리는 것이, 계몽사에서 이 책(冊)을 좀 간략(簡略)하게 다듬어서 동명(同名)의 동화책(童話冊)을 냈다. 내용(內容)은 어느 국민학생(國民學生) 여자아이(女子아이)들이 마유미, 즉(卽) 김현희에게 편지(便紙)를 썼고 안기부(安企部)가 이들에게 김현희와의 데이트를 주선(周旋)해 주는 댓가(對價)로 담임(擔任) 선생(先生)을 통해 반공동화책(反共童話冊)을 내줄 것을 요구(要求)해 그림자의 감시(監視) 속에 김현희와 아이들이 서울 시내(市內)를 돌아다니면서 김현희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을 듣는다는 꽤나 흠좀무한 내용(內容). 김현희의 출생(出生), 성장과정(成長過程), 공작원(工作員) 교육(敎育), 김정일에 의(依)한 858기(機) 폭파(爆破) 작전(作戰) 입안(立案)과 실행(實行) 등(等)이 제법 상세(詳細)하게 서술(敍述)되어 있다. [55] 헤어질 때 아이들이 마유미에게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마유미는 대통령(大統領) 특사(特使) 외(外)에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담담히(淡淡히) 대답(對答)하는 장면(場面)이 클라이막스. 다행히(多幸히) 살아남았다는 설명(說明)으로 끝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동화책(童話冊)이다! 하긴 계몽사의 이 창작동화집(創作童話集) 중(中)에는 영덕(盈德)-강구(講究) 전투(戰鬪) 중(中)에 수류탄(手榴彈)으로 전차(電車)를 때려부순 이명수 상사(商事)를 다룬 이야기도 있다.
  • 일본인(日本人) 요리사(料理師) 후지모토 겐지 가 쓴 책(冊) 『북한(北韓)의 후계자(後繼者), 왜 김정은(金正恩)인가?』 에도 이 사건(事件)이 잠깐 언급(言及)된다. 김정일(金正日) 후지모토 에게 “우리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후지모토 는 “나라에 하등(何等) 도움이 안 될 일을 뭐하러 하셨겠습니까?”라고 대답(對答)했는데, 같이 있던 고용희 가 “그렇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꼭 우리 탓을 한다니까요”라며 맞장구를 쳤다고. 다만 후지모토 겐지 문서(文書)에서도 적혀 있듯이 이 발언(發言)을 들었을 때는 북한(北韓) 생활(生活) 초기(初期)로, 일종(一種)의 외부인(外部人)으로서 함부로 건드리지도 않고 속내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당연히(當然히) 잡아뗀 것이다.
  • 책(冊) 구미호(九尾狐) 식당(食堂) 창작(創作)노트에서 작가(作家)가 어렸을 때부터 마주치며 인사(人事)만 나눴던 친구(親舊)가 이 비행기(飛行機)를 타다 20대(代) 중반(中盤)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에 작가(作家)는 그 아이와 친(親)하게 지낼껄 하며 후회(後悔)했다고 한다.

10.3. 영화(映畫)/드라마 [편집(編輯)]

  • 신상옥(申相玉) 감독(監督)이 부인(夫人) 최은희 와 함께 납북(拉北)되었다가 탈북(脫北)에 성공(成功)하고 미국(美國) 으로 망명(亡命)한 후(後)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政府)의 요청(要請)으로 만든 반공(反共) 영화(映畫)가 바로 마유미 이다. 영화(映畫) 만추(晩秋)에서 현빈 의 애인(愛人) 아줌마로 나오는 김서라 [56] 가 주연(主演)을 맡았고 북한(北韓) 의 공작(工作), 선량(善良)한 여러 근로자(勤勞者)들이 대한항공(大韓航空) 기(氣)를 탑승(搭乘)하기까지의 여정(旅程)을 다루고 일본(日本)과 합작(合作)으로 특촬 기술(技術)로 나름 대(臺)로 재현(再現)했다. 무엇보다 김서라 는 김현희와 비슷하게 생겨서 캐스팅했다고 한다. 보잉 의 거부(拒否)로 영화(映畫)에서는 보잉 707 이 아닌 에어버스 A300 이 나왔다.
    • 무엇보다도 탑승객(搭乘客)들이 죽어가는 적나라(赤裸裸)한 장면(場面) 묘사(描寫) [57] 로 유가족(遺家族)들에게 욕(辱)을 무진장(無盡藏) 먹었다. [58] 실제로(實際로)는 이렇게 안 죽는다. 불타는 기내(機內)에서 죽는 것은 실제로(實際로) 일어날 가능성(可能性)이 있지만, 눈알이 튀어나오거나 피부(皮膚)나 팔, 다리, 옷이 찢어지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다. 옷 정도(程度)가 바람에 의(依)해 찢어질 수는 있겠지만 인체(人體)는 생각보다 튼튼하다. 오히려 저기압(低氣壓)으로 인(因)해 산소(酸素) 부족(不足)과 저체온증(低體溫症)으로 죽는다. 게다가 미얀마 앞바다에서 폭파(爆破)의 흔적(痕跡)이 거의 없고 비스듬히 착륙(着陸)하는 형태(形態)로 물 속에 가라앉은 동체(胴體)가 발견(發見)됨으로서 해당(該當) 영화(映畫)는 악의적(惡意的) 상상력(想像力)을 동원(動員)한 고어물(高魚物) 이상(以上)도 이하(以下)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 1991년(年) KBS에서 방영(放映)된 드라마 야망(野望)의 세월(歲月) 에서는 주인공(主人公) 박형섭( 유인촌 , 실존인물(實存人物) 이명박(李明博) 현대건설(現代建設) 사장(社長))이(李) 장회장(張會長)( 이영후 , 실존인물(實存人物) 정주영(鄭周永) 현대(現代)그룹 회장(會長))과 함께 해당(該當) 사건(事件) 보도(報道)를 확인(確認)하면서 중동(中東) 건설현장(建設現場)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수많은 임직원(任職員)들이 귀국(歸國)길에 변(變)을 당(當)해 희생(犧牲)된 사실(事實)을 알고 침통(沈痛)해하는 장면(場面)이 나온다. 실제로(實際로)도 해당(該當) 기체(氣體)에 탑승(搭乘)한 승객(乘客) 중(中)에는 현대건설(現代建設) 임직원(任職員)들이 다수(多數) 있었다.
  • 1998년(年) KBS 진달래꽃 필때까지 - 김정일, 김경희, 이철규(李喆圭) 등(等)이 모인 자리에서 88 서울올림픽을 방해(妨害)하기 위해 여러 작전(作戰)을 논의(論議)하던중 [59] 김정일이 공중(空中)에서 비행기(飛行機)를 폭파(爆破)하라고 명(命)한뒤 이철규(李喆圭), 한지욱과 함께 폭파(爆破) 모의(模擬) 시험(試驗)을 한다. 사건(事件) 이후(以後) 실제(實際) 김현희의 연행(連行) 장면(場面)이 나온다.
  • 2019년(年) SBS에서 방영(放映)한 드라마 배가본드 의 주된 플롯이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 간(間)의 암투(暗鬪)로 인해 대한민국(大韓民國) 여객기(旅客機)가 공중(空中) 폭파(爆破)된 사건(事件)의 진실(眞實)을 유가족(遺家族)이 찾아가는 내용(內容)인데 이 드라마 방영(放映) 직후(直後) 대구(大邱)MBC에서 새로운 사실(事實)들을 밝혀내는 등(等) 시기적(時期的)으로 절묘(絶妙)한 내용(內容)이 되었다.
  • 2023년(年) 드라마 무빙 에서는 안기부(安企部) 블랙요원(遙遠) 김두식 이 테러 저지(沮止)를 시도(試圖)하나 실패(失敗)하는 장면(場面)이 나온다.
  •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 문제(問題)와 크게 연관(聯關)된 사건(事件)인지라 일본(日本) 에서도 극화(劇化)가 꽤 많이 되었다. 특히(特히) 김현희가 납북(拉北) 일본인(日本人)인 타구치 야에코에게서 일본어(日本語)와 일본인(日本人)의 생활양식(生活樣式)을 교육(敎育)받은 점(點)과 김현희와 김승일이 일본인(日本人)으로 위장(僞裝)했다는 사실(事實) 때문에 일본(日本)서도 관심(關心)이 높은 사건(事件)이라 [60] 신상옥 감독(監督)의 영화(映畫)보다 오히려 연출력(演出力)과 재현은 일본(日本) TV 드라마가 낫다는 평(評)이다.

10.4. 애니메이션/웹툰 [편집(編輯)]

  • 1988년(年) 5월(月) 5일(日) 어린이날에 첫 방영(放映)된 KBS1 에서 했던 아기공룡(恐龍) 둘리 애니판 시즌 2의 '둘리의 분노(憤怒)' 에피소드 에서 이 사건(事件)을 주제(主題)로 반공물(反共物) 에피소드를 다뤘다. [61] 둘리와 도우너가 영희까지 끌어들여 대한민국(大韓民國) 여객기(旅客機) 를 폭파시킨 나쁜 놈 들을 혼내주러 북한(北韓) 으로 쳐들어가기 위해 뻘짓을 하는 내용(內容)이며 실제론(實際로) 휴전선(休戰線) 근처(近處)에도 가 보지 못하고 [62] 온갖 사고(事故)만 치며 [63] 고길동 등골 브레이커 로 활약(活躍)하지만 얼떨결에 한강(漢江) 잠수정(潛水艇) 으로 침투(浸透)하여 KAL 기(氣)를 한 대(臺) 더 까부수려던 무장공비(武裝共匪) 2명(名)과 마주쳤고 도우너 가 이들을 떡실신(失神) 시키며 자진(自進) 항복(降伏)하게 만들어 결과적(結果的)으로 이들을 검거(檢擧)하는 데 일조(一助)하기도 했다. 둘리 일행(一行)은 자기(自己)들이 이룬 공적(功績)을 끝까지 모른 채 또 북한(北韓)을 혼내주겠다고 말썽을 피우다 혼나는 엔딩을 맞이했다.
  • 2015년(年)에 연재(連載)된 강풀 무빙 중(中) 16화(話) 프리퀄 에서 구체적(具體的) 언급(言及)은 없지만 이 사고(事故)로 추정(推定)되는 장면(場面)이 나오는데 재현(再現) 오류(誤謬) 로 작중(作中) 나오는 대한항공기(大韓航空機)는 구도색(構圖色)을 하고 있다. [64]

10.5. 그 외(外) 장르 [편집(編輯)]

  • 김승일의 유해(遺骸)는 국과수(國科搜)에서 부검(剖檢)하고 나서 파주(坡州) 적군묘지(敵軍墓地) 에 묻혔다. 묘비(墓碑) 에는 '무명(無名)인'으로 표기(表記)되어 있는데 김승일이라는 이름 자체(自體)도 가명(假名) 일 가능성(可能性)이 있어서 이름을 표기(表記)하지 않았다고 한다.
  • 훗날(後날) 드러난 사실(事實)은 김승일은 '이 공작(公爵)은 성공(成功)하기 어려울 뿐 만 아니라 실패(失敗)할 경우(境遇) "공화국(共和國)"에 큰 타격(打擊)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작전(作戰)에 대(對)해 반대(反對)했다는 것이다. 작전(作戰) 지시(指示)를 하는 '최(崔) 과장(誇張)'에게도 "작전(作戰)을 시행(施行)하는 자신(自身)과 김현희 뿐만 아니라 공화국(共和國) 전체(全體)가 곤란한 입장(立場)이 된다. 당신(當身)이 책임(責任)을 질 것이냐"라고 대놓고 말했다고. 그러나 최(崔) 과장(課長) 역시(亦是) 명령(命令)에 따를 뿐이라며 김승일의 기(氣)를 꺾었고, 김승일은 체포(逮捕) 직후(直後) 자살(自殺)했으나 결국(結局) 그의 예측(豫測)대로 일이 돌아갔다. [65]
  • 대한항공(大韓航空) 803편(篇) 추락사고(墜落事故) 당시(當時) 사고기(事故機) 조종사(操縱士)였던 현규환 조종사(操縱士)가 KAL858 사건(事件) 직전(直前)의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12. 관련(關聯) 문서(文書) [편집(編輯)]

[ 202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2022년(年) 10월(月) 29일(日)
159
2020년(年) 4월(月) 29일(日)
38
[ 201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2019년(年) 5월(月) 29일(日)
27
2018년(年) 1월(月) 26일(日)
47
2017년(年) 12월(月) 21일(日)
29
2014년(年) 12월(月) 1일(日)
27
2014년(年) 5월(月) 28일(日)
21
2014년(年) 4월(月) 16일(日)
299
2010년(年) 3월(月) 26일(日)
46
[ 2000년대(年代) ]

[ 199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1999년(年) 10월(月) 30일(日)
56
1999년(年) 6월(月) 30일(日)
23
1998년(年) 10월(月) 29일(日)
27
1997년(年) 8월(月) 6일(日)
228
1996년(年) 4월(月) 4일(日)
21
1995년(年) 8월(月) 21일(日)
37
1995년(年) 6월(月) 29일(日)
502
1995년(年) 4월(月) 28일(日)
101
1994년(年) 10월(月) 24일(日)
29
1994년(年) 10월(月) 21일(日)
32
1993년(年) 10월(月) 10일(日)
292
1993년(年) 7월(月) 26일(日)
68
1993년(年) 6월(月) 10일(日)
20
1993년(年) 4월(月) 19일(日)
34
1993년(年) 3월(月) 28일(日)
78
1993년(年) 1월(月) 7일(日)
28
1991년(年) 11월(月) 3일(日)
22
1990년(年) 11월(月) 4일(日)
21
1990년(年) 9월(月) 1일(日)
25
[ 198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1989년(年) 9월(月) 17일(日)
24
1989년(年) 7월(月) 27일(日)
79
1988년(年) 3월(月) 25일(日)
22
1987년(年) 11월(月) 29일(日)
115
1987년(年) 8월(月) 29일(日)
32
1987년(年) 6월(月) 16일(日)
29
1986년(年) 7월(月) 30일(日)
21
1985년(年) 1월(月) 11일(日)
38
1984년(年) 1월(月) 14일(日)
38
1983년(年) 10월(月) 9일(日)
25
1983년(年) 9월(月) 1일(日)
269
1983년(年) 4월(月) 18일(日)
25
1982년(年) 6월(月) 1일(日)
53
1982년(年) 4월(月) 26일(日)
62
1982년(年) 2월(月) 5일(日)
53
1981년(年) 11월(月) 22일(日)
33
1981년(年) 5월(月) 14일(日)
55
1980년(年) 6월(月) 5일(日)
23
[ 197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1979년(年) 10월(月) 27일(日)
26
1979년(年) 4월(月) 14일(日)
44
1978년(年) 7월(月) 23일(日)
33
1977년(年) 11월(月) 11일(日)
59
1976년(年) 10월(月) 28일(日)
34
1976년(年) 5월(月) 18일(日)
23
1976년(年) 2월(月) 28일(日)
32
1974년(年) 11월(月) 3일(日)
88
1974년(年) 2월(月) 22일(日)
159
1973년(年) 8월(月) 12일(日)
32
1973년(年) 5월(月) 16일(日)
22
1972년(年) 12월(月) 2일(日)
53
1972년(年) 8월(月) 1일(日)
26
1971년(年) 12월(月) 25일(日)
166
1971년(年) 10월(月) 13일(日)
20
1971년(年) 5월(月) 10일(日)
80
1971년(年) 5월(月) 10일(日)
31
1970년(年) 12월(月) 15일(日)
326
1970년(年) 11월(月) 5일(日)
31
1970년(年) 10월(月) 14일(日)
46
1970년(年) 8월(月) 21일(日)
25
1970년(年) 4월(月) 8일(日)
33

[ 196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1969년(年) 9월(月) 17일(日)
37
1969년(年) 1월(月) 31일(日)
41
1968년(年) 10월(月) 30일(日)
48
1968년(年) 1월(月) 8일(日)
41
1967년(年) 10월(月) 16일(日)
42
1967년(年) 9월(月) 15일(日)
29
1967년(年) 4월(月) 8일(日)
80
1967년(年) 1월(月) 14일(日)
93
1967년(年) 1월(月) 1일(日)
41
1966년(年) 1월(月) 18일(日)
22
1964년(年) 7월(月) 29일(日)
95+
1963년(年) 10월(月) 23일(日)
49
1963년(年) 6월(月) 25일(日)
70
1963년(年) 1월(月) 18일(日)
140
1962년(年) 9월(月) 7일(日)
36
1960년(年) 3월(月) 2일(日)
62
1960년(年) 1월(月) 26일(日)
31
[ 195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1959년(年) 7월(月) 17일(日)
67
1956년(年) 1월(月) 12일(日)
66
1955년(年) 3월(月) 2일(日)
42
1953년(年) 11월(月) 27일(日)
29
1953년(年) 1월(月) 31일(日)
56
1953년(年) 1월(月) 25일(日)
66
1953년(年) 1월(月) 9일(日)
330
1951년(年) 7월(月) 11일(日)
94
1951년(年) 7월(月) 11일(日)
30+
[ 1940년대(年代) ]
발생일(發生日)
사건명(事件名)
1949년(年) 10월(月) 5일(日)
71
1949년(年) 8월(月) 18일(日)
51
1947년(年) 8월(月) 19일(日)
23
1946년(年) 11월(月) 13일(日)
42
1946년(年) 10월(月) 22일(日)
59
1945년(年) 9월(月) 29일(日)
73
1945년(年) 8월(月) 24일(日)
549?~?5000 이상(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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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主要) 역사적(歷史的) 사건(事件)
김일성(金日成)
시대(時代)
해방(解放) (1945) ·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북조선분국(北朝鮮分局) 설치(設置) (1945) ·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 설립(設立) (1946) · 북조선인민위원회(北朝鮮人民委員會) 설립(設立) (1947) ·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 설립(設立) (1948)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創建) (1948) · 북(北)·남조선로동당 합당(合當) (1949) · 6.25 전쟁(戰爭) (1950~1953) · 박헌영-리(리)승엽 간첩(間諜) 사건(事件) (1953~1955) · 8월(月) 종파사건(宗派事件) (1956) · 중국(中國) 인민지원군(人民支援軍) 철수(撤收) (1958) · 재일교포(在日僑胞) 북송(北送) (1959~1984) · 조소동맹조약(蘇同盟條約) (1961) · 조중동맹조약(兆中同盟條約) (1961) · 갑산파(甲山派) 숙청(肅淸) 사건(事件) (1967) · 1.21 사태(事態) (1968)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被拉事件) (1968) · 울진(蔚珍)-삼척(三陟) 무장공비(武裝共匪) 침투사건(浸透事件) (1968) · 7.4 남북(南北) 공동(共同) 성명(聲明) (1972) · 사회주의헌법(社會主義憲法) 제정(制定) (1972) · 판문점(板門店) 도끼 만행(蠻行) 사건(事件) (1976) · 아웅 산 묘소(墓所) 폭탄(爆彈) 테러 사건(事件) (1983) · 대한항공 858편(篇) 폭파(爆破) 사건(事件) (1987) · 제(第)13차(次) 평양세계학생축전(平壤稅契學生祝典) (1989) · 남북기본합의서(南北基本合意書) (1991) · 남북(南北) 유엔 동시(同時) 가입(加入) (1991) · 제(第)1차(次) 북핵(北核) 위기(危機) (1993~1994) · 서울불바다 발언(發言) 사건(事件) (1994) · 김일성 사망(死亡) (1994)
김정일(金正日)
시대(時代)
김정은(金正恩)
시대(時代)
역사왜곡(歷史歪曲) *
항일무장투쟁(抗日武裝鬪爭)
6.25 전쟁(戰爭)
백두혈통(白頭血統)
우상화(偶像化)
관련(關聯) 서적(書籍)
* 괄호(括弧) 안의 연도(鳶島)는 북한(北韓)의 주장(主張)에 근거(根據)한 연도(鳶島)이며, 실제(實際) 역사(歷史)에서는 존재(存在)하지 않는 단체(團體) 및 사건(事件)이거나 실제(實際)와는 다른 연도(年度)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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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構成)
여당(與黨)
정책(政策) 및 방향(方向)
타임라인
1979년(年)
1980년(年)
서울의 봄 · 사북사건(事件) · 5.17 내란(內亂) · 5.18 민주화운동(民主化運動) · 전두환(全斗煥)의 김대중 내란음모(內亂陰謀) 조작(造作) 사건(事件) · 동명목재 공중분해(空中分解) 사건(事件) · 미스유니버스대회(大會) 폭파음모사건(爆破陰謀事件) · 사회정화운동(社會淨化運動) 실시(實施) · 공직자(公職者) 숙정계획(肅正計劃) · 원풍모방(遠風模倣) 노조사수투쟁(勞組死守鬪爭) · 노동계(勞動界) 정화조치(淨化措置) · 계엄포고(戒嚴布告) 제(第)13호(號)( 삼청교육대(三淸敎育隊) ) · 방송자율정화방안(放送自律淨化方案) 발표(發表) · 중화학공업(重化學工業) 1차(次) 투자조정(投資調整) 조치(措置) · 만화정화방안(漫畫淨化方案) 발표(發表) · 중화학공업(重化學工業) 2차(次) 투자조정(投資調整) 조치(措置) · 10.27 법난(法難) · 이윤상 유괴(誘拐) 살인(殺人) 사건(事件) · 언론통폐합(言論統廢合) · 폭력성(暴力性) 만화영화(漫畫映畫) 금지(禁止) 정책(政策) · 광주(光州) 미국문화원(美國文化院) 방화(放火) 사건(事件) · 부림 사건(事件) · 서울 지하철(地下鐵) 2호선(號線) 개통(開通) · 대청댐 준공(竣工)
1981년(年)
경주(慶州) 당구장(撞球場) 여주인(女主人) 피살사건(被殺事件) · 전국민주학생연맹(全國民主學生聯盟) 결성(結成) · 자동차공업(自動車工業) 통합조치(統合措置) · 한수산 <욕망(欲望)의 거리> 필화(筆禍) 사건(事件) · 아침방송(放送) 시간대(時間帶) 부활(復活) · 국풍(國風)81 개최(開催) · 학림 사건(事件) · 아람회(回) 사건(事件) · 윤경화 보살(菩薩) 피살사건(被殺事件) · 전민노련(田民勞聯)/전민학련 사건(事件) · 교정시설경비교도대(矯正施設警備敎導隊) 창설(創設) · 해외여행(海外旅行) 자유화(自由化) 첫 실시(實施) · 부마고속도로(高速道路) 개통(開通) · 학사장교(學士將校) 도입(導入) · 학력고사(學力考査) 시행(施行) · 야간자율학습(夜間自律學習) 시행(施行) · 대구(大邱) / 인천(仁川) 직할시(直轄市) 승격(昇格) , 부림사건 · 무림파천황(武林破天荒) 사건(事件) · 박상은 여대생(女大生) 피살사건(被殺事件) · 서울올림픽 개최(開催) 확정(確定) · 금강회 사건(事件) ·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開催) 확정(確定) · 대학생불교연합회(大學生佛敎聯合會) 노동야학(勞動夜學) 사건(事件)
1982년(年)
교복자율화(校服自律化) 조치(措置)· 야간통행금지(夜間通行禁止) 해제(解除)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民族和合民主統一方案) 발표(發表) · 한국(韓國)콘트롤데이타 노동쟁의(勞動爭議) · 제주(濟州) C-123 추락사고(墜落事故) · 부산(釜山) 미국문화원(美國文化院) 방화(放火) 사건(事件) · 한국(韓國)프로야구(野球) 개막(開幕) · 의령(宜寧) 총기난사(銃器亂射) 사건(事件) · 장영자(張玲子)-이철희(李哲熙) 금융사기(金融詐欺) 사건(事件) · 제1차 일본(日本) 역사교과서(歷史敎科書) 왜곡(歪曲) 파동(波動) · 정부(政府) 제(第)2청사(廳舍) 개청(開廳) · 녹화사업(綠化事業) · 오송회(誤送回) 사건(事件)
1983년(年)
함주명 간첩조작(間諜造作) 사건(事件) · 북한(北韓) 공군(空軍) 이웅평 귀순(歸順) · 천하장사(天下壯士) 씨름대회(大會) 개막(開幕) · 중공(中共) 여객기(旅客機) 불시착(不時着) 사건(事件) · 프로축구(蹴球) 개막(開幕) · 김영삼(金永三) 단식(斷食) 농성(籠城) 사건(事件) · 김영삼(金永三) 보름달 사건(事件) · 명성그룹 사건(事件) · 야학연합회(夜學聯合會) 사건(事件) · 영동개발진흥(嶺東開發振興) 사건(事件) · 대한항공(大韓航空) 007편(篇) 격추(擊墜) 사건(事件) · 아웅산 묘소(墓所) 폭탄(爆彈) 테러 · 농구대잔치(籠球大잔치) 개막(開幕) · 삼성전자(三星電子) 64K D램 개발(開發) · 학원자율화(學院自律化) 조치(措置)
1984년(年)
부산(釜山) 대아(大我)호텔 화재사고(火災事故) · 대통령배(大統領杯) 전국남녀배구대회(全國男女排球大會) 개막(開幕) · 정치활동(政治活動) 규제자(規制者) 2차(次) 해금(解禁) · 청계피복(被服) 노조(勞組) 합법화(合法化) 투쟁(鬪爭) · 민중문화운동협의회(民衆文化運動協議會) 결성(結成) · 교황(敎皇) 요한 바오로 2세(歲) 방한(訪韓) · 대우(大宇)어패럴 노조(勞組) 탄압(彈壓) · 정래혁 투서(投書) 사건(事件) · 88올림픽고속도로(高速道路) 개통(開通) · 민중민주운동협의회(民衆民主運動協議會) 결성(結成) · 목동주민(木洞住民) 철거(撤去) 반대투쟁(反對鬪爭) · 전두환(全斗煥) 방일(訪日) 반대투쟁(反對鬪爭) · 1984년(年) 한강(漢江) 대홍수(大洪水) · 함평(咸平) 무안(務安) 농민대회(農民大會) · 청량리경찰서(警察署) 여대생(女大生) 성추행(性醜行) 사건(事件) · 전두환 대통령(大統領) 방일(訪日) · 서울대(서울大) 민간인(民間人) 감금(監禁) 폭행(暴行) 고문(拷問) 사건(事件) · 서울올림픽주경기장(主競技場) 개장(開場) · 민주화추진위원회(民主化推進委員會) 결성(結成) · 박영두 의문사(疑問詞) 사건(事件) · 민주통일(民主統一)국민회의 결성(結成) · 망원동 수재(秀才) 사건(事件) · 학생(學生)의 날 부활(復活) · 민정당 중앙당사(中央黨舍) 점거농성(占據籠城) · 전국학생총연맹(全國學生總聯盟) 결성(結成) · 판문점(板門店) 총격사건(銃擊事件) · 박종만 노동자(勞動者) 분신(焚身) · 자유실천문인협의회(自由實踐文人協議會) 재창립(再創立) · 민주언론운동협의회(民主言論運動協議會) 결성(結成)
1985년(年)
양강교 버스 추락사고(墜落事故) · 김대중(金大中) 귀국(歸國) · 국제그룹 해체(解體) 사건(事件) · 고려대 김준엽 총장(總長) 사퇴파동(辭退波動) · 중국(中國) 해군(海軍) 어뢰정(魚雷艇) 망명사건(亡命事件)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民主統一民衆運動聯合) 출범(出帆)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富平工場) 파업(罷業) · 민중교육지(民衆敎育誌) 사건(事件) · 서울 미국문화원(美國文化院) 점거농성(占據籠城) 사건(事件) · < >지 창간(創刊) · 구로동맹파업(九老同盟罷業) · 삼민투위(位) 사건(事件) · '힘'전(前) 탄압(彈壓) 사태(事態) · 대구교도소(大邱矯導所) 양심수(良心囚) 집단구타(集團毆打) 사건(事件) · 학원안정법(學院安定法) 파동(波動) · 홍기일 노동자(勞動者) 분신(焚身) · 서울노동운동연합(勞動運動聯合) 결성(結成) · 구미유학생(歐美留學生) 간첩단(間諜團) 사건(事件) · 63빌딩 개장(開場) · 제(第)12대(代) 국회의원(國會議員) 선거(選擧) · 서울 지하철(地下鐵) 3호선(號線) 개통(開通) · 서울 지하철(地下鐵) 4호선(號線) 개통(開通) · 부산(釜山) 도시철도(都市鐵道) 1호선(號線) 개통(開通) · 충주(忠州)댐 준공(竣工) · 우종원 의문사(疑問詞) 사건(事件) · 서울대학교(서울大學校) 민주화추진위원회(民主化推進委員會) 사건(事件) · 주한(駐韓) 미국상공회의소(美國商工會議所) 점거(占據) 농성(籠城) ·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中央政治硏修院) 점거(占據) 농성(籠城)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民主化實踐家族運動協議會) 결성(結成)
1986년(年)
KBS 시청료(視聽料) 거부(拒否) 운동(運動) · 개헌(改憲) 서명운동(署名運動) 개시(開始) · 서울대 졸업식(卒業式) 집단퇴장(集團退場) 사건(事件) · 박영진 노동자(勞動者) 분신(焚身) · 국회(國會) 국방위원회(國防委員會) 회식(會食) 난투극(亂鬪劇) 사건(事件) · 구국학생연맹(救國學生聯盟) 사건(事件) · 전방입소(前方入所) 거부투쟁(拒否鬪爭) ·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焚身事件) · 인천(仁川) 5.3 운동(運動) · 서노련 사건(事件) · <교육민주화(敎育民主化) 선언(宣言)> 발표(發表) · 부천(富川) 경찰서(警察署) 성고문(性拷問) 사건(事件) · 신호수(信號手) 의문사(疑問詞) 사건(事件) ·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韓國出版文化運動協議會) 결성(結成) · 김성수(金性洙) 의문사(疑問詞) 사건(事件) · 인천(仁川) 뉴송도호텔 사장(社長) 피습사건(被襲事件) ·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民主化運動遺家族協議會) 결성(結成) · 보도지침(報道指針) 폭로(暴露) 사건(事件) · 한강종합개발사업(漢江綜合開發事業) 완료(完了) · 김포국제공항(金浦國際空港) 폭탄(爆彈) 테러 · 화성(華城) 연쇄살인(連鎖殺人) 사건(事件)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 광주(光州) 직할시(直轄市) 승격(昇格) · 서울대(서울大) 대자보(大字報) 사건(事件) · 유성환(兪成煥) 국시(國試)론 파동(波動) · 전국노동자연맹(全國勞動者聯盟) 추진위원회(推進委員會)(이하(以下) 전노추(前老醜)) 사건(事件) · 마르크스 레닌주의당(黨)(이하(以下) ML당(當)) 결성기도(結成企圖) 사건(事件) · 10.28 건국대(建國大) 항쟁(抗爭) · 금강산댐 사건(事件) 및 평화(平和)의 댐 모금(募金) 운동(運動) · 반제동맹당(反帝同盟當)(이하(以下) AILG당(當)) 사건(事件) 및 민통련 사무실(事務室) 폐쇄(閉鎖) · 김일성 사망(死亡) 오보(誤報) 사건(事件) · 서울개헌대회(改憲大會) 봉쇄(封鎖) · 이민우(李珉雨) 구상(構想) · 대한민국(大韓民國) 사상(史上) 첫 무역수지(貿易收支) 흑자(黑字)
1987년(年)
수지 김(金) 간첩(間諜) 조작(造作) 사건(事件) · 안산노동자해방투쟁위원회(安山勞動者解放鬪爭委員會) 사건(事件) · 박종철 고문치사(拷問致死) 사건(事件) · 노동자해방사상연구회(勞動者解放思想硏究會) 사건(事件) · 제헌의회(制憲議會)그룹 사건(事件) · 대전(大田) 성지원 사건(事件) · 김만철 일가족(一家族) 귀순(歸順) · 한국민중사(韓國民衆史) 사건(事件) · 한국여성단체연합(韓國女性團體聯合) 결성(結成) · 평화(平和)의 댐 착공(着工) · 부산(釜山) 형제복지원(兄弟福祉院) 사건(事件) · 서울 택시기사(技士) 연대파업(連帶罷業) · 4.13 호헌조치(護憲措置) · 통일(統一)민주당 창당방해(創黨妨害) 사건(事件) · 서울남부지역(南部地域) 노동자연맹(勞動者聯盟) 사건(事件) · 서대협 결성(結成) · 서머타임제(制) 실시(實施) · 광양종합제철소(光陽綜合製鐵所) 준공(竣工) · 공기업(公企業) 민영화방안(民營化方案) 확정(確定) · 강우확률예보제(降雨確率豫報第) 실시(實施) · 이한열(李韓烈) 최루탄(催淚彈) 피격(被擊) 사망(死亡) 사건(事件) · 6월(月) 민주항쟁(民主抗爭) · 극동호(極東號) 유람선(遊覽船) 화재(火災) 사건(事件) · 6.29 선언(宣言) · 1987년(年) 노동자(勞動者) 대투쟁(大鬪爭) · 문화예술(文化藝術) 자율화(自律化) 대책(對策) · 금지곡(禁止曲) 186곡(曲) 해금(解禁) · 영화(映畫) 시나리오 사전심의(事前審議) 폐지(廢止) · 출판활성화조치(出版活性化措置) 실시(實施)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全國大學生代表者協議會) (전대협) 결성(結成) ·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개관(開館) · 오대양(五大洋) 집단(集團) 자살사건(自殺事件) · 장의균 간첩조작(間諜造作) 사건(事件) · 한국여성민우회(韓國女性民友會) 결성(結成) · 민족문학작가회의(民族文學作家會議) 출범(出帆) · 전교협 결성(結成) · 신민주(新民主)공화당 창당(創黨) · 평화(平和)민주당 창당(創黨) · 언론기본법(言論基本法) 폐지(廢止) · 대한항공 858편(篇) 폭파(爆破) 사건(事件) · 남녀고용평등법(男女雇傭平等法) 제정(帝政) · KBS 별관(別館) 점거농성(占據籠城) 사건(事件) · 제(第)13대(代)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 · 중부고속도로(中部高速道路) 개통(開通) · 구로구청(區廳) 선거부정(選擧不正) 항의(抗議) 점거농성(占據籠城) 사건(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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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全斗煥) 개인(個人)과 관련(關聯)된 문서(文書)는 틀:전두환(全斗煥) 참고(參考)

[1] HL7406 [2] 1983년(年) 소련(蘇聯) 상공(上空)에서 격추(擊墜)된 대한항공(大韓航空) 007편(篇) 사건(事件) 은 'KAL기(機) 격추(擊墜) 사건(事件)' 이라고 불린다. [3] 청해진해운 세월호(歲月號) 침몰(沈沒) 사고(事故) 당시(當時) 다이빙벨 투입(投入) 주장(主張)을 한 해난구조자(海難救助子). [4] 밑에도 서술(敍述)되어 있지만 이한영 모친(母親) 성혜랑 이 김현희 가족(家族)들은 요덕수용소(要德收容所)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5] 인민혁명당 사건(事件) 민청학련(民靑學聯) 사건(事件) , 김형욱 실종(失踪) 사건(事件) , 김대중 납치(拉致) 사건(事件) , 중부지역당(中部地域黨) 사건(事件) , 동백림 사건(事件) , 정수장학회(淨水場學會) 사건(事件)이 나머지 6개(個) 사건(事件)이다. [6] 거기다가 묘소(墓所)의 주인(主人)인 아웅 산 은 생전(生前)에 위대(偉大)한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이자 버마의 국부(國富) 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웅 산(山)의 영묘(英妙)는 한국(韓國)으로 치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이상(以上)의 가치(價値)를 지녔으므로 버마 사람들의 분노(憤怒)도 엄청났을 것이란 것은 충분히(充分히) 예상(豫想)할 수밖에 없다. [7] 대한항공(大韓航空)과 코드셰어된 티켓으로 추정(推定)된다. [8] 도피용(逃避用)으로 미리 여러 장소(場所)를 선정(選定)해 놓았다. [9] 이 때 두 사람은 자신(自身)이 앉았던 좌석(座席) 위 선반에 폭발물(爆發物)을 두고 내렸다. 현재(現在)는 승객(乘客) 하기 후(後) 분실물(紛失物) 습득(習得) 및 추가(追加) 검색(檢索) 목적(目的)으로 선반을 전부(全部) 열어 검사(檢査)하지만 당시(當時)에는 그런 규정(規定)이 없었다. [10] 그 중(中) 13명(名)이 아부다비에서 여행(旅行)을 종료(終了)했고, 2명(名)은 바레인행(行) 걸프에어 003편(篇)으로 환승(換乘)했다. 이 두명(名) 중(中) 한명(名)이 김현희 이다. [11] KAL 보잉 707 위기일발(危機一髮)(1977년(年) 09월(月) 14일(日) 동아일보(東亞日報) 7면(面)) [12] 대한항공(大韓航空) 여객기(旅客機) 동체(胴體) 착륙(着陸)(1987년(年) 09월(月) 02일(日) MBC 뉴스데스크) [13] KAL기(機) 폭파사건(爆破事件) 용의자(容疑者) 마유미, 서울 도착(到着)(1987년(年) 12월(月) 15일(日) MBC 뉴스데스크) [14] 혀를 깨물어 죽는다 는 미신적(迷信的) 행위(行爲)가 아니라 독약(毒藥)을 사용(使用)한 자살(自殺)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河)술한(韓) 것처럼 공범(共犯)인 김승일이 체포(逮捕) 당시(當時) 몰래 숨겨놓은 청산가리(靑酸加里)를 삼켜 자살(自殺)했기 때문이다. [15] 압송(押送)되는 김현희의 모습은 꽤나 큰 파장(波長)을 일으켰다. 수백(數百) 명(名)을 살해(殺害)한 공작원(工作員)이라길래 험상궂은 인상(印象)을 생각한 국민(國民)들은 의외로(意外로) 곱상한 김현희의 모습에 놀라 '죽이긴 아깝다.'는 반응(反應)을 보였다. 훗날(後날) 이 반응(反應)을 전(傳)해 들은 김현희는 "북한(北韓)에서였다면 요물(妖物)이라고 더 잔혹(殘酷)하게 죽였을 텐데..."라며 희한(稀罕)하다는 반응(反應)을 보였다. 이 대선(大選) 전날(前날)이라는 절묘(絶妙)한 시점(時點)은 훗날(後날) 음모론(陰謀論)이 피어나는 주요(主要)한 이유(理由)가 되었다. 후술(後述)하는 '무지개 공작(工作)'을 참고(參考). [16] 여담(餘談)으로 마유미 옆에서 연행(連行)하는 여성(女性)은 안기부(安企部) 최초(最初)의 여성(女性) 수사관(搜査官)인 최창아다. [17] 어떤 음모론(陰謀論)에선 중간(中間) 기착지(寄着地)에서 여객기(旅客機)에 타고 있던 한국(韓國)의 고위(高位) 공직자(公職者)들이 우르르 내렸다고도 하는데 확인(確認)된 사실(事實)은 아니라고 한다. [18] 처음에는 테러 용의자(容疑者)로 검거(檢擧)된 것이 아니라 위조(僞造) 여권(旅券) 사용(使用) 혐의(嫌疑)로 검거(檢擧)되었다. [구자체(舊自體)] 19.1 19.2 일본(日本) 신자체(神自體) 인(人) '?'으로 써야 옳을 듯하지만 일본(日本)에서 인명(人命)의 경우(境遇)엔 구자체(舊自體) 를 쓸 수 있다. 그리고 여권(與圈) 사진(寫眞) 을 보아도 구자체인(舊自體人) '眞'으로 쓰여 있다. [21] 청산가리(靑酸加里)라는 네임드급(級) 맹독성(猛毒性) 물질(物質)을 바로 빼앗기긴 했다지만 살아남은 것이 용하다. 아예 섭취(攝取)조차 못 했거나 했어도 치사량(致死量)에 훨씬 못 미치는 양(量)이던 모양(模樣)이다. 다만 3일간(日間) 혼수상태(昏睡狀態)에 빠졌다는 소문(所聞)이 떠돌기도 했고 담당(擔當) 의사(醫師)가 "쟤 쇼하는 거야"라고 슬쩍 흘렸다는 음모론(陰謀論)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그女)는 사지(四肢) 멀쩡하게 자살(自殺)에 실패(失敗)했다. [22] 게다가 하치(下치)야 신이치, 즉(卽) 김승일의 허파에 박혀 있던 2ml짜리 유리(琉璃) 파편(破片)은 1974년(年) 다대포(多大浦)에 침투(浸透)했다가 자결(自決)한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들의 부검(剖檢)에서 나온 청산가리(靑酸加里) 앰풀의 파편(破片)과 동일(同一)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의 치아(齒牙)에서는 북한(北韓)에서만 쓰는 방식(方式)인 납으로 이를 땜한 흔적(痕跡)이 확인(確認)되었다. 그런데도 음모론자(陰謀論者)들은 1972년(年)에 이후락 당시(當時) 중앙정보부장(中央情報部長)이 김일성(金日成) 을 만나기 위해 북한(北韓)을 방문(訪問)했을 때도 청산가리(靑酸加里) 앰풀을 소지(所持)한 적이 있는데 청산가리(靑酸加里) 앰풀이 뭐가 북한(北韓)의 수법(手法)이냐고 주장(主張)했다. 청산가리(靑酸加里) 자살(自殺) 수법(手法)이 북한(北韓)의 수법(手法)이라는 것이 아니라 부검(剖檢) 과정(過程)에서 나온 청산가리(靑酸加里) 앰풀 파편(破片)이 북한산(北漢山)이라는 것이 입증(立證)되었다는 건데 기초(基礎)도 알아먹지 못한 무식(無識)한 음모론(陰謀論)이다. [23] 김정일(金正日) 의 전처(前妻)이자 김정일의 장남(長男)인 김정남 의 모친(母親). [24] 김정일의 전처(前妻)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이므로 김정일의 처조카(妻조카)였다. 1982년(年) 9월(月)에 탈북(脫北)했지만 1997년(年) 2월(月) 북한(北韓) 공작원(工作員)에게 피살(被殺)되었다. [25] 인세(印稅) 8억(億) 5천만(千萬) 원을 유족(遺族)들에게 내놓으며 용서(容恕)를 빌었다는 기사(記事). # [26] 폭탄(爆彈) 테러 발생일(發生日)이 아시안 게임 개최일(開催日)로부터 불과(不過) 1주일(週日) 전(前)이었다. [27] 이런데도 음모론자(陰謀論者)들은 당시(當時) 남한(南韓)과 북한(北韓) 은 올림픽 개최(開催)에 굉장히(宏壯히) 서로 협조적(協調的)이었다며 북한(北韓) 이 올림픽 개최(開催)에 훼방(毁謗)놓을 이유(理由)가 없다고 주장(主張)한다. [28] 소련(蘇聯) 1988 서울 올림픽 에 출전(出戰)해 남자(男子) 축구(蹴球) 등(等)의 종목(種目)에서 금메달(金메달)을 획득(獲得)했다. 중국(中國)은 올림픽 5년(年) 전(前)에 일어난 중공(中共) 여객기(旅客機) 불시착(不時着) 사건(事件) 이후(以後) 대한민국(大韓民國) 과 관계(關係)가 조금씩 진전(進展)되는 중(中)이었다. [29] 당시(當時) 김정은(金正恩)의 신년사(新年辭)를 계기(契機)로 남북관계(南北關係) 가 급격히(急激히) 해빙(解氷)되었고 북한(北韓) 선수단(選手團)의 평창(平昌) 올림픽 전격(電擊) 참가(參加), 응원단(應援團) 파견(派遣), 남북공동입장(南北共同入場) 합의(合意)를 통해 북한(北韓)의 평창(平昌)올림픽 참가(參加)가 이루어져 최소한(最小限) 북한(北韓)이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可能性)이 현저히(顯著히) 줄어들었다. 자기(自己)들이 참가(參加)하는 올림픽인데 아무리 적대적(敵對的)인 남한(南韓)이라 해도 개최국에 대(對)해 테러를 일으킬 일이 없다. [30] 주교회의(主敎會議)에서 관여(關與)하는 언론(言論)은 아니고 일종(一種)의 민간(民間) 언론사(言論社)이다. [31] 하지만 결론(結論)을 내리진 않아 음모론(陰謀論)을 다루는 수준(水準)에 가깝다. [32] 요즘처럼 수치적(數値的)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단 의미(意味)가 아니다. 쉽게 말해 실제(實際) 실험(實驗) 없이 가정(家庭)을 통해서 추정(推定)했단 소리. [33] 미국(美國) 도시전설(都市傳說) 재현(再現) 프로그램인 ' 호기심해결사(好奇心解決士) ' 2시즌의 1화(話)( 7분(分) 44초(秒)부터 )의 부(部)가 검증(檢證)에서는 6.5g의 고체(固體) 폭약(爆藥)만으로도 폭약(爆藥)이 부착(附着)된 동체(胴體)의 좌측(左側)과 상단(商團)이 완전히(完全히) 날아갔다. 폭약(爆藥)이 설치(設置)된 앞 좌석(座席)은 아예 좌석(座席)이 통째로 분리(分離)되어 뒷좌석(뒷座席) 위로 올라가 있다. [34] 가장 걸작(傑作)인 음모론(陰謀論)은 이 사건(事件)이 있기 전(前)에 버마 지도자(指導者)를 전두환(全斗煥) 정부(政府)가 국빈(國賓)으로 초청(招請)했고 당시(當時) 한국(韓國)도 매우 가난한데 버마에 파격적(破格的)인 경제적(經濟的) 지원(支援)을 했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 이후(以後) 버마 근처(近處)에서 이런 사건(事件)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당시(當時) 서로 군부(軍部) 독재(獨裁) 정부(政府)가 들어선 한국(韓國)과 버마가 무엇인가를 꾸미지지(支持) 않았느냐는 음모론(陰謀論)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것은 거의 2차(次) 창작(創作) 수준(水準)의 헛소리이다. [35] 여담(餘談)이지만 람보4 의 그 카렌족이 맞다. [36] 이 말을 한 말이 누구냐면 안기부(安企部) 수사단장(搜査團長) 정형근 이다. 넓은 바다에서 그만큼 시체(屍體)나 추락기(墜落記)의 동체(胴體)를 찾는 건 어렵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겠지만 이 표현(表現)이 너무 과장(誇張)이 심(甚)했기 때문에 음모론(陰謀論)에 불을 지폈다. 정형근은 "수심(水深) 2,000m~3,000m, 물살이 초속(秒速) 300m, 상어가 득시글거린다." 고 주장(主張)했다. 허나 2004년(年) 일본(日本) 아사히TV 에서는 다큐멘터리를 통(通)해서 "수심(水深) 70m(북위(北緯) 14도(度) 45분(分), 동경(東京) 95도(度) 38분(分)), 물살 전혀(全혀) 안 빠르고, 상어는 보이지도 않는다."라고 결론(結論)을 내렸다. 정형근의 주장(主張)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이후(以後) 음모론(陰謀論)은 더욱 거세졌다. 애초(애初)에 문제(問題)의 지역(地域)인 안다만 해의 평균(平均) 수심(水深)은 870m이다. 또한 초속(秒速) 300미터라는 유속(流速)은 남극(南極)의 드레이크 해협(海峽) 이더라도 불가능(不可能)하다. 당장(當場) 음속(音速)이 초속(秒速) 340미터이다. [37] 2, 3km 정도(程度) 되는 수심(水深)에서도 블랙박스가 발견(發見)된 사례(事例)가 있기는 하다. 심해잠수정(深海潛水艇)으로 엄청난 비용(費用)을 써가며 그마저도 포기(抛棄) 직전(直前)에 겨우 발견(發見)한 것이지만 말이다. 문제(問題)는 그 경우(境遇)는 최종(最終) 추락(墜落) 지점(地點)을 어느 정도(程度) 알고 있는 상황(狀況)이었다. 위치(位置)를 확정(確定)할 수 없는 상태(狀態)에서는 애초(애初)에 무리이다. [38] 다만 초기(初期)에 잔해(殘骸)로 추정(推定)되는 흔적(痕跡)을 발견(發見)했다는 기사(記事)가 있다. 이것이 다른 미상(未詳)의 추락기체(墜落機體)의 잔해(殘骸)인지 그냥 설레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초동대응(初動對應)에 영향(影響)을 줬을 가능성(可能性)은 있다. 이는 한국(韓國) 뿐 아니라 뉴욕 타임즈 등(等)의 외국(外國) 언론(言論)에도 분명히(分明히) 나오고 이를 발표(發表)한 것은 한국(韓國)이 아니라 태국(泰國) 이다. 그리고 애초(애初)에 어디에 추락(墜落)했는지 모르는 상태(狀態)인데 목격자(目擊者) 진술(陳述)을 '불확실(不確實)하다.'라고 말해 봤자 소용(所用)이 없다. [39] 항공(航空) 및 철도(鐵道) 사고(事故) 조사(調査)를 담당(擔當)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航空鐵道事故調査委員會)는 2006년(年)에야 설립(設立)되었다. [40] 국정원진실(國精院眞實)위에서 다곤 1호(號)는 명백(明白)하게 미얀마(버마) 국적(國籍)의 선박(船舶)임을 입증(立證)했다(522-523p). [41] 어디까지나 음모론자(陰謀論者)의 주장(主張)이다. 추락(墜落) 사고(思考)에서 가장 많이 발생(發生)하고 고열(高熱)에도 어느 정도(程度) 견딜 수 있고 사고(事故) 직후(直後)엔 일부(一部) 떠 있는 경우(境遇)도 있는 게 기체(機體) 파편(破片)이며, 시간(時間)이 흐르면 흐를수록 발견(發見) 확률(確率)은 원래(元來) 내려가는데 그중(그中)에서도 다른 유류품(遺留品)들은 부식(腐蝕)되거나 다른 부유물(浮遊物)들과 구별(區別)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일정(一定) 시기(時期)가 지난 후(後) 그나마 발견(發見) 확률(確率)이라도 있는 건 기체(機體) 파편(破片)뿐이다. 당장(當場) 말레이시아 항공(航空) 370편(篇) 추락(墜落) 사고(事故) 에서도 1년(年) 4개월(個月) 후(後)에 기체(機體) 파편(破片) 일부(一部)가 발견(發見)됐다. [42] 이 역시(亦是) 인터뷰 일부(一部)만 발췌(拔萃)해서 왜곡(歪曲)했을 가능성(可能性)이 높다. 폭발(爆發) 지점(地點)의 파편(破片)이 아니고 이후(以後) 그로 인한 기체(氣體) 분해(分解)로 인(因)한 파편(破片)일 가능성(可能性)이 당연히(當然히) 높다. 기체(機體) 대부분(大部分)이 발견(發見)되고 그중(그中)에 폭발(爆發)로 추정(推定)되는 부분(部分)이 나온 게 없는 것도 아니고 아주 일부(一部)만 발견(發見)됐는데, 그것을 가지고 판단(判斷)하는 것 자체(自體)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43] 김현희의 주장(主張)으로는 자신(自身)이 4번째(番째)로 꽃을 주기로 했다는 것만 강박(强迫)이 되어서 자기(自己) 얼굴 지목(指目)을 잘못했다고 해명(解明)했다. [44] KAL기(機) 폭파사고(爆破事故) 진실위원회(眞實委員會) 조사결과(調査結果)에서 가장 많은 의혹(疑惑)이 지목(指目)된 부분(部分)은 정치적(政治的) 이용(利用) 논란(論難)과 함께 이 어설픈 북한(北韓) 첩보원(諜報員) 김현희였다. 모든 행적(行跡)과 언동(言動)에 논란(論難)이 일었던 것이다. [45] 원래(元來) 유명인(有名人)들의 자서전(自敍傳)이나 회고록(回顧錄)은 대부분(大部分) 전문작가(專門作家)들이 당사자(當事者)들의 구술(口述)과 주변인(周邊人)들의 증언(證言)을 바탕으로 대필(代筆)한다. 비밀엄수(祕密嚴守)를 조건(條件)으로 이런 대필(代筆)을 전문(專門)으로 하는 사람을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라고 한다. [46] 유튜브를 보면 한홍구 교수(敎授)는 방송(放送) 내내 안기부(安企部) 수사(搜査) 결과(結果)가 사소(些少)한 몇 가지만 빼면 진실(眞實)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채팅창(窓)에는 음모론(陰謀論)이 맞다고 우기는 채팅이 올라왔다. [47] 수지 김(金) 간첩(間諜) 조작(造作) 사건(事件) 또한 기본적(基本的)으로 피해(被害) 당사자(當事者)인 김옥분이 사건(事件) 당시(當時) 이미 윤태식에 의(依)해 살해(殺害)되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한국(韓國)에서 접근(接近)이 어려운 해외(海外)에서 발생(發生)한 사건(事件)인 데다 오로지 윤태식의 진술(陳述)만으로 증거(證據)가 시작(始作)되었기 때문에 조작(造作)이 쉽게 가능(可能)했던 것이다. [48] 김영삼이 암살(暗殺)되고 학생(學生) 시위(示威)에 이은 군부(軍部) 내(內) 쿠데타로 전두환(全斗煥)이 물러가는 80년대(年代) 후반(後半)을 그린 ' 10월(月)의 폭풍(暴風) '이라는 대체역사소설(代替歷史小說)에서는 이 사건(事件)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벌어지기 직전(直前)에 공작원(工作員)이 자살(自殺)하는 바람에 그 때까지도 안기부(安企部)의 조작(造作)이라거나 북한(北韓)의 실패(失敗)한 테러 음모(陰謀)였다는 설(說)이 대립(對立)하는 것으로 나온다. 딱 이런 스토리를 가정(假定)한 이야기이다. [49] 결정적(決定的)인 증거(證據)로는 소련(蘇聯)과 중국(中國)의 88 올림픽 참여(參與)다. 사건(事件)의 진상(眞相)이나 원인(原因)을 제대로 파악(把握)할 수 있는 입장(立場)이기 때문. 그들이 안기부(安企部)가 했다고 생각한다면 민간인(民間人)을 테러 자작극(自作劇)의 희생물(犧牲物)로 바치는 한국(韓國)의 행보(行步)에 기겁(氣怯)해서 보이콧을 했을 것이다. [50] 10대(代) 소녀(少女)와 50대(代) 여성(女性)이 사라진 경우(境遇)도 있었다. [51] 인터뷰 내용(內容): 김현희는 과거(過去) 납북(拉北)된 일본인(日本人) 타(他)쿠치 야에코가 북한(北韓)에서 자신(自身)의 일본어(日本語) 선생님(先生님)이었다고 말했지만 그에 대(對)해서는 확인(確認)된 바 없다. 타(他)쿠치 야에코가 이은혜라는 한국명(韓國名)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시(當時) 안기부(安企部)가 내놓은 발표(發表) 내용(內容)은 김현희의 진술(陳述)에만 기반(基盤)한 것이다.? [52] 랜딩기어 부속품(附屬品)으로 추정(推定) [53] 하지만 팬암 103편(篇) 폭파(爆破) 사건(事件) 당시(當時) 사건기(事件期)에 실려 있던 폭탄(爆彈)은 무게가 약(約) 350 g이었지만 858편(篇) 사고(事故) 기종(機種)인 보잉 707 의 약(約) 두 배(倍) 정도(程度) 큰 보잉 747 을 그대로 공중분해(空中分解)시킨 만큼 이 주장(主張)의 신빙성(信憑性)이 의심(疑心)된다. 공중(空中)에서는 기압차(氣壓差) 등(等)의 요인(要因)으로 작은 폭약(爆藥) 폭발(爆發)도 동체(胴體)엔 치명적(致命的)이다. 고무풍선(고무風船)에 바람이 없는 상태(狀態)에서 구멍을 뚫어도 터지지는 않지만 바람을 빵빵하게 넣은 상태(狀態)에서 작은 구멍을 뚫어도 바로 터지는 것과 같다. 항공사고수사대(航空事故搜査隊) 등(等)의 다큐멘터리에서도 평범(平凡)하게 지상(地上)에 있는 비행기(飛行機)에 소형(小型) 폭약(爆藥) 폭발(爆發)로는 큰 손상(損傷)이 나지 않지만 비행(飛行) 중(中) 상태(狀態)로 기압(氣壓) 조정(調整) 후(後) 같은 양(量)의 폭약(爆藥)으로 폭발(爆發)이 발생(發生)하면 비행기(飛行機)가 공중분해(空中分解)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공중분해(空中分解)가 됐을 가능성(可能性)도 있다. [54] 사실(事實) 김현희가 직접(直接) 쓴 책(冊)은 아니고 소설가(小說家) 노수민이 대필(代筆)한 것이라고 한다. 관련(關聯) 기사(記事) [55] 다만 아버지의 직업(職業)이 앙골라 대사(大使)로 서술(敍述)되는 등(等) 어린이들이 대강(大綱) 이해(理解)할 수 있을 정도(程度)로 어레인지된 부분(部分)은 있다. 남북회담(南北會談)에서 꽃둥이로 나왔다는 주장(主張)도 그대로 차용(借用)되었다. [56] 당시(當時) 김서라가 스포츠서울 에서 말하길, 친구(親舊)랑 같이 극장(劇場)으로 영화(映畫)를 보러 갔는데 어느 아저씨가 마구 욕(辱)하면서 나오다가 친구(親舊)와 언쟁(言爭)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바로 이 사건(事件)으로 아들을 잃은 유족(遺族)이었다고 하면서 그 길로 김서라와 친구(親舊)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허겁지겁 나왔다고 한다. 김서라는 사건(事件) 당시(當時) 9시(時) 뉴스 등(等)에 나와서 김현희와 머리 모양(模樣)이며 표정(表情)을 비슷하게 꾸미고 앉아 게스트 비슷하게 출연(出演)하기도 했다. 물론(勿論) 시켜서 했을 가능성(可能性)이 높지만 닮은꼴 치고는 충공(忠功)깽. 테러리스트 닮은꼴로 데뷔한 한국(韓國) 최초(最初)의 연예인(演藝人)일 듯. 그래도 활발(活潑)하게 연기(演技) 활동(活動)을 이어가고 있다. [57] 그냥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비명(悲鳴)을 지르고(비행기 뻥뻥 터지는 소리 빼곤 죄다 비명(悲鳴)소리만 나온다) 어떤 사람은 팔이 찢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불타는 기내(機內)에서 비명(悲鳴)을 지르는 모습 등(等) 공포(恐怖)스러운 표현(表現)이 다 나온다. [58] 신(申) 감독(監督) 자신(自身)은 북한(北韓)에 간 후(後)에 북한(北韓) 영화(映畫) 발전(發展)에 상당히(相當히) 기여(寄與)한 공로(功勞) 때문에 남한(南韓)으로 귀국(歸國)이 어려웠고 위장(僞裝) 귀순(歸順)이라는 비난(非難)까지 받을 정도(程度)여서 결국(結局) 미국(美國) 으로 망명(亡命)했다가 이후(以後) 대한민국(大韓民國) 에 귀국(歸國)했다. 《마유미》는 사실(事實) 신(申) 감독(監督)이 자신(自身)의 충성심(忠誠心)을 알리고자 만든 작품(作品)이다. 마유미 이후(以後) 충성심(忠誠心)을 검증(檢證)받은 신(申) 감독(監督)이 만든 작품(作品)이 바로 군사정변(軍事政變)으로 대통령(大統領)이 된 장군(將軍)이 자기(自己) 부하(部下)인 정보부장(情報部長) 을 지하실(地下室)에서 총(銃)으로 처형(處刑)하는 내용(內容)의 증발(蒸發) 이다. 이 작품(作品)으로 무진장(無盡藏) 비난(非難)을 받았다. [59] 예(例)를 들면 땅굴(땅窟)을 통(通)한 남파공작원(南派工作員) 침투(浸透), 미사일기지(基地) 폭파(爆破), 올림픽 주경기장(主競技場) 폭파(爆破), 조총련(朝總聯)을 통해 올림픽 자금줄(資金줄) 차단(遮斷) 등등(等等) [60] 한국어(韓國語) 위키백과(百科) 보다 일본어(日本語) 위키백과(百科) 의 이 사건(事件)을 다룬 문서(文書) 내용(內容)이 더 자세(仔細)하고 분량(分量)이 많을 정도(程度). [61] 원작(原作)에선 해당(該當) 에피소드가 1983년(年) 에 나왔는데 대한항공(大韓航空) 007편(篇) 격추(擊墜) 사건(事件) 을 배경(背景)으로 깔고 있으며, 대상(對象)도 북한(北韓)이 아닌 소련(蘇聯) 이다. [62] 보면 알겠지만 둘리 일당(一黨)들은 도봉구(道峰區) 쌍문동 고길동 집에 거주(居住)하는데 북한(北韓)으로 간답시고 날아간 곳은 한강(漢江) 과 잠실(蠶室) 야구장(野球場) 주변(周邊)이다. 즉(卽), 북한(北韓)으로 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남쪽(南쪽)으로 간 셈이다. [63] 그 와중(渦中)에 되려 자기(自己)들이 경찰(警察)에게 수상(受賞)한 인간(人間)으로 찍혀 쫓긴다. 잠수정(潛水艇) 간첩(間諜)들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경찰(警察)이 둘리 일행(一行)을 쫓고 있는 와중(渦中)에 둘이 한바탕 붙었기 때문이었다. [64] 1984년(年) CI 변경(變更)과 함께 현재(現在)의 하늘색(하늘色) 도색(塗色)으로 변경(變更)되었다. [65] 김현희, <이제는 여자(女子)가 되고 싶어요> 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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