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접신도시(新都市)와 별내신도시(別內新都市)가 지역(地域) 양대(兩大) 거점(據點)으로 표심(票心)을 이끌고 있고, 때문에 남양주(南楊州) 내(內)에서 민주당(民主黨) 지지세(支持勢)가 가장 강(剛)한 곳으로 통한다. 또 대부분(大部分)의 지역(地域) 주민(住民) 생활(生活)과
4호선(號線) 전철(電鐵)
이 밀접(密接)하다는 특징(特徵)이 있다. 진접읍 주민(住民)은
진접역(驛)
과
오남역(誤南驛)
을, 오남읍 주민(住民)은 오남역(五男役)을, 별내신도시(別內新都市) 주민(住民)은
별내별가람역(別內別伽藍驛)
을, 청학리·별내면 주민(住民)은
당고개역(驛)
을 지역(地域) 거점(據點) 전철역(電鐵驛)으로 이용(利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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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只今)이야 남양주(南楊州) 내(內)에서도 민주당(民主黨) 지지세(支持勢)가 가장 강(剛)한 지역(地域)으로 꼽히지만, 남양주(南楊州) 선거구(選擧區)가 3개(個)로 나뉘기 전(前)만 하더라도 보수(保守) 표심(票心)이 우세(優勢)하던 지역(地域)이었으며 실제로(實際로) 2007년(年) 대선(大選)과 2012년(年) 대선(大選)에서 당시(當時)의 남양주(南楊州) 을 선거구(選擧區) 지역(地域)은 보수정당(保守政黨) 후보(候補)가 1위(位)를 차지했다. 그러다 진접신도시(新都市)와 별내신도시(別內新都市)가 본격적(本格的)으로 개발(開發)되며 민주당 성향(性向)의 유권자(有權者)가 관내(管內)에 대거(大擧) 입주(入住)하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지금(只今)까지도 보수(保守) 우세(優勢) 성향(性向)을 보이는 퇴계원면·진건읍과 나중에 다산신도시(茶山新都市)로 개발(開發)되는 도농동·지금동(당시(當時)만 하더라도 보수(保守) 우세(優勢) 지역(地域)이었다.) 을
남양주시(南楊州市) 병(病)
에 넘기며 선거구(選擧區) 내 표심(票心) 구조(構造)가 급변(急變)했다.
하지만 이런 지역(地域) 역사(歷史)와는 다르게 남양주시(南楊州市) 을 선거구(選擧區)가 신설(新設)된 뒤로 국회의원(國會議員)은 민주당계(系) 정당(政黨)에서만 배출(排出)되는 중(中)이다.
박기춘
前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院內代表)의 영향력(影響力)이 컸던 지역구(地域區)이고, 그의 개인기(個人技)로 불리(不利)한 지역(地域) 분위기(雰圍氣)를 돌파(突破)하는 그림이었다. 이런 표심(票心)을 얻는 데에는 당시(當時)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런 연장(延長) 계획(計劃)이 없었던
4호선(號線)
을 진접에 차량기지(車輛基地)를 설치(設置)하는 대가(代價)로 별내(別內)·오남·진접에 끌어온 영향(影響)이 컸다. 역(驛)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표심(票心)을 이끌어내는 지하철(地下鐵)을, 그것도 아무런 계획(計劃)도 없던 상태(狀態)에서 순수(純粹) 본인(本人) 역량(力量)으로 유치(誘致)한 영향(影響)은 엄청났다. 2008년(年) 총선(總選)에서 민주당(民主黨)이 대부분(大部分)의 텃밭을 잃고 개헌저지선도(改憲沮止線度) 못 지키는 최악(最惡)의 선거(選擧)를 치렀음에도 불구(不拘)하고 박기춘 본인(本人)은 옆 선거구(選擧區)의 최재성과 더불어 넉넉한 격차(隔差)로 살아남았다. 박기춘은 이어 2012년(年) 3선(線)에 성공(成功)하였으나 2015년(年) 뇌물수수(賂物收受)로 인(因)해 실형(實刑)을 선고(宣告)받아 사실상(事實上) 정계(政界)에서 물러난 상황(狀況)이다.
2016년(年) 20대(代) 총선(總選)에서는 별내신도시(別內新都市)의 외지인(外地人)+젊은층의 투표(投票) 성향(性向) 및 당시(當時) 새누리당(새누리黨)(자유한국당(自由韓國黨)) 후보(候補)에 대(對)한 저조(低調)한 호응(呼應)에 힘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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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年) 지방선거(地方選擧)에서 남양주시장(南楊州市腸) 후보(候補)로 출마(出馬)했다 낙선(落選)했던
김한정(金漢正)
의원(議員)이 당선(當選)되었고 2020년(年)에도 역시(亦是)나 큰 득표율(得票率) 차이(差異)로 재선(再選) 의원(議員)이 되었다. 2024년(年) 총선(總選)에서는 지역(地域) 연고(緣故)가 없었던
김병주(金炳周)
의원(議員)이 남양주(南楊州) 내(內)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得票率)로 당선(當選)됨으로써 민주당(民主黨) 텃밭임을 공고히(鞏固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