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하여금 형태(形態)와 향(香), 색(色)에 미적(美的) 감각(感覺)을 느끼게 하는 꽃은 예로부터 아름다움과 화려(華麗)함을 상징(象徵)하는 비유적(比喩的) 표현(表現)으로 사용(使用)되어 왔다.
예시(例示)로는
꽃미남(美男)
,
꽃중년(中年)
,
꽃 같은 청춘(靑春)
등(等)의 표현(表現)이 있다. "영화(映畫)의 꽃은 감독(監督)"이라는 말처럼 중요(重要)한 대상(對象)을 비유(比喩)할 때 쓰이기도 한다.
한편(한便) 감상(鑑賞)의 대상(對象)으로서의 꽃은 동양권(東洋圈)을 중심(中心)으로 수동적(受動的)인 이미지로 여겨지기도 하며,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에서는 꽃의 수동적(受動的)인 이미지와 아름다운 이미지
[14]
를 토대(土臺)로 주로(主로)
여성(女性)
이 꽃에 비유(比喩)되어 왔다. 그 예(例)로 일본(日本)의 조신한 여성상(女性像)을 상징(象徵)하는
야마토 나데시코
의 나데시코는
패랭이꽃
이라는 뜻이며,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시기(時期)에는 여자(女子)는 아름답고 조신한 꽃, 남자(男子)는 꽃을 찾아 꿀을 먹고 다른 꽃을 찾아다니는
벌
로 비유(比喩)되곤 했다. 한국(韓國)의 경우(境遇) 여성(女性)의 수동성(受動性)을 강조(强調)하는
성리학(性理學)
[15]
이 조선(朝鮮) 후기(後期) 이후(以後) 강(剛)하게 자리 잡으며 약(弱)해졌지만 그 이전(以前)의 흔적(痕跡)이 남은
한국(韓國) 신화(神話)
에서는 농경신(農耕神)
자청비
처럼 꽃이 여성(女性)의 신비(神祕)한 무기(武器)처럼 사용(使用)되는 경우(境遇)도 있다. 심지어(甚至於) 신라(新羅)
화랑(花郞)
처럼 남성성(男性性)과 연관(聯關)된 경우(境遇)도 존재(存在)한다.
아름다운 사람
을 특정(特定)해서 꽃에 비유(比喩)하는 것과는 별개(別個)로
[16]
여성(女性)이라는 성별(性別) 자체(自體)가 자주(紫珠) 꽃에 비유(比喩)되어 여성(女性)은 꽃의 이미지에 맞게 행동(行動)해야 한다는 성차별적(性差別的)인 편견(偏見)도 함께 생겼었다.
#
#2
서양(西洋)에서는
여성(女性)
이 수동적(手動的)인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붉은
장미(薔薇)
가 열정(熱情)을 상징(象徵)하기도 했으며, 생명력(生命力)이나 아름다움이 강조(强調)되는 경우(境遇)가 많았다.
고대(古代) 로마
의 꽃의 여신(女神)인
플로라
는 화관(花冠)을 쓰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꽃잎을 길거리에 뿌리는 능동적(能動的)인 모습으로 묘사(描寫)되었다. 오히려 사회적(社會的) 도덕(道德) 규범(規範)도 배제(排除)되는 원초성(原初性)이 중시(重視)되기도 하여 고대(古代) 로마의
플로랄리아
같은 축제(祝祭)는 방탕(放蕩)한 모습도 연출(演出)이 되었다.
화관(花冠)
과 같은 장식(裝飾)은 숙녀(淑女)의 상징(象徵)이 되기도 했다.
#
전(全) 세계적(世界的)으로 여아(女兒)나 여자(女子) 캐릭터 이름을 지을 때 꽃 이름으로 짓는 것이 그 예시(例示)이며,
아름다운 사람
을 특정(特定)해서 꽃에 비유(比喩)하는 것과는 별개(別個)로
[17]
여성(女性)이라는 성별(性別) 자체(自體)가 자주(紫珠) 꽃에 비유(比喩)되어 여성(女性)은 꽃의 이미지에 맞게 행동(行動)해야 한다는
성차별(性差別)
적인(敵人)
편견(偏見) 및 고정관념(固定觀念)
도 함께 생겼었다.
한국(韓國) 신화(神話)
의
서천(西天)꽃밭
이나 서양(西洋)의
백합(白蛤)
처럼 꽃이
부활(復活)
을 상징(象徵)하는 경우(境遇)도 있다.
여성(女性)과 무관(無關)한 상징(象徵)으로도 많이 쓰여, 불교(佛敎)에서는
연꽃(蓮꽃)
이 부처의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를 나타내는 상징(象徵)으로 여겨진다. 기독교(基督敎)의
사도 토마스
도 인도(印度)에서의 선교(宣敎)에 대(對)한 전승(全勝)으로 인(因)해 연꽃(蓮꽃)이 상징(象徵)이다. 여러 왕실(王室)에서도 꽃이 상징(象徵)인 경우(境遇)가 많고, 일본(日本) 등지(等地)의 국가(國家)에서도 꽃이 국가(國家) 문양(文樣)으로 쓰인다.
매화(梅花)
나
국화(國花)
는 오히려 유교적(儒敎的) 질서(秩序)에서도
사군자(四君子)
의 상징(象徵)으로 여겨졌다.
인명(人名)으로 사용(使用)되는 꽃 이름으로는 한국(韓國)에서는
장미(薔薇)
,
나리
등(等)이,
일본(日本)
에서는
사쿠라
(
벚꽃
),
츠바키
(
동백꽃(冬柏꽃)
),
나데시코
(
패랭이꽃
),
아자미
(
엉겅퀴
),
스미레
(
제비꽃
),
아야메
(
붓꽃
),
보탄(補綻)
(
모란
),
유리(有利)
(
백합(白蛤)
) 등(等)이, 중동권(中東圈)에서
닐뤼페르
(
수련(修鍊)
),
야스민
(
재스민
), 영미권(圈)에서는
로즈
(
장미(薔薇)
),
바이올렛
(
제비꽃
),
릴리
(
백합(白蛤)
),
데이지
(
데이지
) 등(等)이 있다. 주로(主로) 여성(女性) 인명(人名)으로 사용(使用)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瞬間)'이기 때문인지 '행사(行事)의 꽃'이나 '꽃피지 못한 청춘(靑春)' 같은 표현(表現)처럼 절정기(絶頂期)를 비유(比喩)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 표현(表現)은
열매
에도 쓰이지만 꽃과는 논점(論點)이 다른 느낌이 있다.
[18]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얼굴이 예쁘고 마음이 맑다는 것은
클리셰
가 존재(存在)한다. 꽃반지(꽃半指)나 꽃팔찌 등(等)도 시골이나 풀밭에서 연애(戀愛)가 등장(登場)하면 자주 등장(登場)하는 물품(物品).
아름답기 때문에 선물(膳物)을 비롯한 상징적(象徵的) 의미(意味)로도 많이 사용(使用)된다.
꽃다발
, 화환(花環) 등(等)은 축하(祝賀)나 기념(記念)의 의미(意味)로 자주 쓰이며, 흰 꽃으로는 조화(調和)(弔花)를 만들기도 한다. '화환(花環)은 기념(記念)의 의미(意味)이고 조화(調和)는 추모(追慕)의 의미(意味)이므로 추모식장(追慕式章)에 보내는 것은 화환(花環)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기도 하는데, 화환(花環)(花環)이라는 단어(單語) 자체(自體)는 꽃을 고리처럼 만들었다는 뜻밖에 없다.
[19]
이외(以外)에는 스승의 날, 어버이날 같은 날 꽃을 달아 드리거나 졸업식(卒業式) 혹은(或은) 각종(各種) 시상식(施賞式)에 꽃다발을 선물(膳物)하는 경우(境遇)에 많이 볼 수 있다.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
같은 각종(各種) 기념일(記念日)에 꽃을 선물(膳物)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럴 때는 주로(主로) 남성(男性)이 여성(女性)에게 선물(膳物)하는 편(便)이다. 다만 꽃이 보기에는 예뻐도 실용성(實用性)은 낮은 물건(物件)인 데다
[20]
생화(生花)는 관리(管理)하기도 어렵고, 버릴 때쯤엔 처치곤란(處置困難)이 되는 경우(境遇)도 많이 생긴다. 이 때문에 의외로(意外로) 꽃 선물(膳物)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꽃을 좋아하더라도 특별한 날에 꽃 하나만 덜렁 주면 대부분(大部分) 실망(失望)한다. 상대(相對)의 성향(性向)을 파악(把握)해서 지나가는 선물(膳物)로 주거나, 주(週) 선물(膳物)은 따로 챙기고 보조(補助) 선물(膳物)로 주는 편(便)이 좋다. 꽃을 좋아한다면 특별히(特別히) 기념일(記念日)이 아니더라도 꽃을 선물(膳物)을 주면 반가워할 가능성(可能性)이 높으니 가끔 시도(試圖)해 보자.
사가면 "뭐 잘못했구나? 솔직히(率直히) 털어놔." 라는 질책(叱責)을 듣게 된다
현대(現代)에는 선물(膳物)받은 꽃을
드라이플라워
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벌레가 꼬일 수 있으니 주의(注意).
한국(韓國)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면 미쳤다고 하는 경우(境遇)가 많은데, 이런 인식(認識)은 최근(最近)에 생긴 것일 가능성(可能性)이 매우 높다. 정확히(正確히) '머리에 꽃 =
광녀(狂女)
'라는 이미지는 대구(大邱)의 일명(一名) '금달래'라는 여성(女性)의 일화담(逸話談)에서 비롯되었다. 금달래는 대구(大邱) 지역(地域)에 널리 퍼져있던 일화담(日和談)의 등장인물(登場人物)인데, 일화(逸話)들을 종합(綜合)하면 1930년대(年代)
대구(大邱)
달성동 지역(地域)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推定)
[21]
된다. 그녀(그女)는 개인사적(個人事的) 비극(悲劇)으로 인해 정신(精神)이 온전(穩全)치 못해 머리에 꽃을 꽂고 산발(散髮)을 한 채 대구(大邱) 서문시장(西門市場)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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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그女)에게서 이미지를 따와 드라마나 영화(映畫)(예(例)를 들어
금보라
주연(主演)의 1986년작(年作) '금달래') 같은 매체(媒體)에서 등장(登場)해 유명(有名)해졌던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머리에 꽃을 꽂는 행위(行爲)를 제정신(제精神)이 아닌 인물(人物)들이 낮은 정신연령(精神年齡)이거나 미쳤다는 것을 표현(表現)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解釋)도 존재(存在)한다.
참조(參照)링크
사실(事實) 한국(韓國)에서 머리에 꽃을 꽂는 행동(行動)이 원래(元來)부터 금기시되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實際로) 고려시대(高麗時代) 1019년(年) 2월(月) 5일(日),
현종(顯宗)
이 거란과의 전쟁(戰爭)에 승리(勝利)하고 돌아온
강감찬
을 맞이하며 금(金)으로 만든 8가지 꽃을 강감찬(姜邯贊)의 머리에 직접(直接) 꽂아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궁중(宮中) 연회(宴會) 참석자(參席者)들의 머리에
잠화(簪花)
라는
조화(弔花)
를 달았으며 장원(壯元) 급제자(及第者)에게 임금이 직접(直接)
어사화(御賜花)
라고 하는 종이꽃을 머리에 달아주기도 했다. 축제(祝祭) 날 여인(女人)들이 머리에 꽃을 장식(裝飾)했다는 기록(記錄) 역시(亦是) 전(傳)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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