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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韓國 첫 金… ‘陸上 巨木’ 최윤칠 別世 | 서울新聞

아시안게임 韓國 첫 金… ‘陸上 巨木’ 최윤칠 別世

아시안게임 韓國 첫 金… ‘陸上 巨木’ 최윤칠 別世

홍지민 기자
홍지민 記者
入力 2020-10-08 20:48
업데이트 2020-10-09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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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年 보스턴 마라톤 3位 入賞
올림픽선 棄權·4位로 메달 놓쳐
隱退 後 代表팀 코치로 後輩 育成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
최윤칠 大韓陸上聯盟 拷問
韓國 스포츠 史上 첫 아시안게임 金메달로 韓國戰爭의 廢墟 속에서 시름하던 國民을 慰勞한 ‘韓國 陸上의 巨木’ 최윤칠 大韓陸上聯盟 顧問이 8日 別世했다.

故人은 韓國戰爭 直前 열린 보스턴마라톤 大會에서 3位에 入賞하며 日帝 治下를 벗어난 韓國을 世界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92歲.

1928年 7月 咸鏡南道에서 태어난 故人은 어려서부터 ‘長距離, 마라톤 신동’으로 불리며 頭角을 나타냈다.

1950年 4月 열린 보스턴마라톤 大會에서는 함기용, 송길윤에 이어 3位에 올랐으며 1954年 마닐라아시안게임 1500m에서는 金메달을 목에 걸며 故國에 아시안게임 첫 金메달을 안겼다. 當時 5000m에서는 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國內 最頂上級 長距離 選手였지만 올림픽 메달과는 아쉽게 因緣을 맺지 못했다. 解放 뒤인 1948年 런던올림픽 마라톤에 出戰했지만 38㎞ 地點까지 先頭로 달리다 筋肉 痙攣으로 決勝線을 3㎞ 앞두고 棄權하는 不運을 겪었다.

韓國戰爭 中 열린 1952年 헬싱키올림픽 마라톤에서는 3位에 29秒 뒤진 4位로 決勝線을 通過해 施賞臺에 오르지 못했다. 當時 中間 順位를 3位로 잘못 傳達받는 바람에 順位를 維持하는 레이스를 펼치다 4位에 그쳤다는 안타까운 後日談도 傳해온다.

故人은 現役 隱退 後 代表팀 코치로 後輩 育成에 나서 1958年 도쿄아시안게임 當時 이창훈의 마라톤 金메달 獲得을 거들기도 했다. 또 大韓陸上聯盟 理事를 지내는 等 國內 陸上 發展에 寄與한 功勞로 1970年 國民勳章, 1992年 大韓民國 體育褒章을 받았다.

殯所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葬禮式場에 마련됐다. 發靷은 10日 午前 10時. (02)2227-7500.

홍지민 記者 icarus@seoul.co.kr
2020-10-09 25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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