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20일 대구에서 한 남성이 김태완군에게 황산을 붓고 도주하는 영구 미제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생전 김태완군의 모습. /사진= 다음 '아고라' 캡처
1999年 5月20日 大邱에서 한 男性이 김태완軍에게 黃酸을 붓고 逃走하는 永久 未濟事件이 發生했다. 寫眞은 生前 김태완君의 모습. /寫眞= 다음 '아고라' 캡처

1999年 5月20日. 身元不明의 男性이 6歲 김태완君의 얼굴에 黃酸을 붓고 逃走했다. 이른바 '太緩이 事件'으로 인해 殺人事件에 對한 公訴時效가 廢止되는 '太緩이法'이 制定됐다.

'太緩이 事件'은 犯行 動機를 알 수 없는 묻지마 犯罪였으며 아직도 풀리지 않은 永久 未濟事件이다.

正體不明의 男性에게 '逢變'… 苦痛 속에 世上 떠나

1999年 5月20日 午前 11時쯤 大邱 東區 住宅街 골목길에서 검은 비닐封紙를 든 正體不明의 男性이 金君의 얼굴에 黃酸을 부은 뒤 달아났다.


金君은 全身에 3度 火傷을 입고 病院에 옮겨져 治療를 받았으나 病床에서 死境을 헤매다 49日 만인 1999年 7月8日 敗血症으로 世上을 떠났다.

金君의 어머니 朴氏는 "아이가 피아노學院에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집 附近에서 悲鳴소리가 들리는 等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아들이 쓰러져 있었다"고 밝혔다.

警察은 "누군가 藥品을 끼얹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金君 아버지의 말에 따라 테러일 可能性이 큰 것으로 보고 金君 家族의 怨恨關係에 依한 것이거나 不特定人을 相對로 한 精神異常者의 所行 等으로 推定하고 搜査에 나섰다.


"저 아저씨"… 證言에도 犯人 못 잡은 理由

대구 황산테러 사건을 통해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이 통과됐다. 사진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살인범죄 형량 강화와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김태완군의 사진을 매만지고 있는 김군의 어머니. /사진= 뉴스1
大邱 黃酸테러 事件을 통해 殺人事件에 對한 公訴時效를 廢止하는 '太緩이法'이 通過됐다. 寫眞은 지난 2014年 5月 서울 光化門廣場에서 殺人犯罪 刑量 强化와 公訴時效 廢止를 促求하는 記者會見을 앞두고 김태완君의 寫眞을 매만지고 있는 金君의 어머니. /寫眞= 뉴스1

하지만 警察은 搜査에 難航을 겪었다. 犯人은 事件 現場에서 곧바로 逃走했으며 事件 當時 대낮이었지만 聽覺障礙人이었던 唯一한 目擊者는 陳述을 하지 못했다.

金君은 死亡하기 直前 '犯人은 치킨집 아저씨인 A氏'라고 數次例 指目했으며 金君의 親舊 亦是 寫眞을 보고 A氏를 犯人으로 指目했다.

金君이 容疑者로 指目했던 A氏의 옷가지에서도 黃酸이 發見되는 等 疑心스러운 情況이 나왔다. 하지만 거짓말 探知機에서 A氏의 證言이 '眞實' 反應이 나왔다는 點 等으로 그는 搜査網에서 멀어졌다.

또 警察은 사람 皮膚가 타들어 가는 黃酸을 비닐封紙에 들고 가는 것은 不可能하다며 金君의 陳述에 信憑性이 不足하다는 立場을 維持했다. 以後 實驗 結果 黃酸을 비닐封紙에 담아도 녹지 않는다는 點이 드러나면서 當時 警察이 제대로 된 實驗을 하지 않았으며 初動 搜査가 不實했다는 事實이 論難이 됐다.

2013年 7月4日 事件 公訴時效 3日을 앞두고 金君의 父母는 A氏를 告訴했다. 하지만 檢察 亦是 證據 不充分으로 不起訴 處分을 내렸다.

金君의 父母는 不起訴 處分 關聯 法院에 裁定申請(告訴·告發 事件에 對해 檢事가 不起訴 處分할 境遇 事件 審判을 法院에 다시 要請하는 것)을 냈지만 大法院이 裁定申請에 對한 再抗告를 棄却하면서 該當 事件은 永久 未濟事件이 됐다.

'太緩이法'을 남긴 '太緩이 事件'

'태완이법'이 시행된 후 몇몇 영구 미제사건들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졌다. 사진은 지난 2015년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故김태완군의 가족과 서영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진= 뉴스1
'太緩이法'이 施行된 後 몇몇 永久 未濟事件들에 對한 再搜査가 이뤄졌다. 寫眞은 지난 2015年 4月 서울 汝矣島 國會 正論館에서 殺人罪 公訴時效 廢止를 骨子로 한 '太緩이法'(刑事訴訟法 改正案) 國會 通過를 促求하는 記者會見을 연 故김태완君의 家族과 서영교 當時 새정치민주연합 議員. /寫眞= 뉴스1

이 事件은 被害 兒童의 이름을 딴 '太緩이法'을 남겼다. 太緩이法은 2000年 8月1日 以後 發生한 殺人事件에 對한 公訴時效를 廢止하는 것을 骨子로 한다. 이는 지난 2015年 7月 國會 本會議를 通過한 뒤 같은달 31日부터 施行됐다.

하지만 정작 凶惡 犯罪에 對한 公訴時效 廢止論을 擡頭시킨 '太緩이 事件'은 '太緩이法'이 適用되지 않아 이미 公訴時效가 滿了됐다. 그럼에도 警察은 未濟 專擔搜査팀을 꾸려 事件 搜査를 이어갔다. 公訴時效는 滿了됐지만 遺族의 恨을 풀고 眞實을 糾明하는 次元에서다.

太緩이法 施行 以後 解決되지 않았던 未濟 殺人事件들이 水面 위로 떠오르며 加害者들이 法의 審判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01年 2月 17歲 女高生을 性暴行한 뒤 殺害한 '羅州 드들강 女高生 殺人' 事件은 太緩이法을 통해 再搜査가 이뤄지면서 2015年 10月 眞犯이 檢擧됐다. 또 지난해에는 16年 동안 謎題로 남았던 '남촌동 택시技士 殺人 事件'의 眞犯 2名이 拘束되기도 했다.